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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an 26. 2020

베스의 모정

응답하라 1968ㅡ동물 편


-- '엄마, 아부지 죽으면 이보다 더 슬플까? 얼마나 더 우는 거지?' --





- 베스 -  



      

베스는 가매기 삼거리 우리 집에서 키운 첫 번째 개다.


아담하고 귀여우며 털이 황금빛인 발바리 암컷. 순하고 영리하며 눈이 동그랗게 커서 이쁘다. 여덟 명 식구들이 다 좋아한다. 이웃이 집에 오면 누구든 쓰다듬고 새끼 나면 한 마리 달라 한다.  


개가 있는 집들은 대개 잡아먹으려고 덩치 큰 개를 키운다. 한여름 복날에 죽을 운명이라 일 년을 못 사니까 이름이 없다. 누렁이, 검둥이, 흰둥이, 얼룩이나 점박이처럼 색으로 구분하거나 그마저 마땅찮으면 미군처럼 도꾸, 메리, 쫑이라고 부른다. 그런 개들은 대개 집 밖에 나갈 수 있게 놓아서 기른다. 주인에게 밥찌꺼기를 얻어먹지만 사람도 부족한 식량이니 그거로는 모자란다.


똥개. 개들은 먹을 걸 찾아서 온 동네를 싸돌아다니다가 아이들이 집 문 밖에 똥을 싸면 웬 떡이냐 좋아라고 달려든다. 사람은 누구도 제 것이라 나서지 않으니 똥은 먼저 보는 개가 임자. 운 좋으면 아이가 똥을 누자마자 뜨거운 똥을 허겁지겁 먹는다. 다른 개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 마르고 굵은 거보다 물기를 머금어 질척하게 퍼질러 싼 거를 더 좋아한다. 그렇게 놓아기르는 개는 아이들이 싼 똥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똥개다.  


"첩첩"    


이런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는다. 마지막에는 연실 혀를 길게 내밀어 콧등과 입 주위에 묻은 거까지 싹싹 핥는다. 성질 급한 놈은 똥이 나오는 중에 받아먹다가 안 나오면 똥구멍까지 혀로 훑는다. 멍청한 놈은 똥구멍 위로 매달린 거도 먹어도 되나 긴가민가 사내아이 불알을 슬쩍 물어보기도 한다. 아이가 기겁을 하며 비명을 지르니 놈도 덩달아 깜짝 놀라서 한 번 뿐이지 다시는 그러지 않는다. 집 앞 길가에서 똥 누는 아이는 지나는 사람들은 부끄럽지 않지만 똥 먹으려 궁뎅이 아래로 주둥이를 디미는 개는 무척 신경 쓰인다. 그렇게 놓아기르는 개는 아이들이 싼 똥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똥개다.    


베스는 이런 똥개와 엄연히 다르다. 집 안에 줄에 묶어 길렀다. 당당히 베스라는 이름이 있었으며 이름도 뭔가 모르게 귀하고 고급스러웠다. 여름엔 문 옆에 서늘한 흙바닥 위에서, 겨울이면 연탄아궁이 옆으로 자리를 옮겨 주어 따뜻하게 지냈다.  


사람 눈에 들면 개들도 그런가 베스는 동네 수컷들에게도 인기다. 한 번은 베스가 매어 놓은 줄이 풀려서 집 문 밖에 나간 적이 있다. 어디선가 수컷 똥개 한 마리가 귀신같이 나타나 영차영차 궁둥이를 맞대고 한바탕 큰 일을 벌이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얼마 후 베스와 똥개가 섞인 잡종 새끼 몇 마리.

   

그 일이 터지고 나서 아부지는 베스의 개줄을 제일 비싸고 튼튼한 쇠줄로 바꾸었다. 새 줄은 쇠고리로 연결하여 끊기지도 얽히면 잘 풀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걱정되어서 결코 줄이 풀리지 않게끔 기둥에 줄을 여러 번 돌려서 감아 두었다. 아부지는 매년 한 번 베스를 어디론가 데려갔다가 오셨고, 얼마 후면 베스는 어김없이 젖이 커지고 늘어지며 배가 불렀다. 그렇게 낳은 새끼들은 생김새나 털색은 어미와 같기도 했지만 일부분만 닮은 게 더 많았다.


베스는 새끼를 낳으면 무섭게 변한다. 주인도 몰라본다. 새끼에게 가까이 가면 코에 세로로 굵직하게 주름이 여럿 잡히도록 잔뜩 찡그리고 입술을 벌리며 허연 이빨을 드러낸다.   

  

"그르릉 그르릉" 


다가오지 말라고 겁을 준다. 손이라도 댈라치면 가차 없이 문다. 젖을 떼면 강아지들이 하나둘 보이지 않다가 얼마 후 흔적도 없이 몽땅 사라진다. 아부지한테 어디 갔냐고 물으면 좋은 데 갔단다. 아부지는 동네 똥개들과 다르게 이쁘장한 개를 암컷으로 키우고, 잘생긴 수캐를 골라 접붙이고, 예쁘고 잘생긴 강아지를 받아서 장날에 맞추어 내다 파셨던 거다. 여덟 식구 먹여 살리려고 한 거다. 그걸 알게 된 이후로 강아지가 어디 갔는지 묻지 않았다.    




ㅡㅡㅡ




오늘은 가게 가는 날

 

엄마, 아부지는 가게 해서 돈을 벌고, 가게는 쌍다리 근처 스부에 있다. 스부는 원주 바깥으로 서울, 춘천, 충주, 제천, 여주로 가는 스가 다 모이는 곳. 집에서 한참 멀다.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봄날 오랜만에 베스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이상하게 여느 때와 달리 산책이 좋다고 앞서 뛰지 않는다. 줄에 묶인 채 얌전하게 어슬렁어슬렁 내 뒤를 따른다. 모퉁이를 오른쪽으로 돌아 수송부대 정문 앞을 지나고 새다리를 건너면 바로 봉천내 둑방길이다. 이 길을 타야 가게까지 가장 빠르다.  

 

둑방길. 둑방 위로 낸 길은 흙길이다. 폭은 구루마 한 대가 다닐 정도. 양쪽 길가는 풀과 꽃으로 계절을 뽐낸다. 봄이면 앉아서 뜯는 쑥과 드문드문 민들레, 여름엔 허리 굽혀서 줄기째 쑥 뽑는 강아지풀, 엄마가 잎 따서 끓는 물에 데쳐서 된장에 비벼 주는 비듬나물, 가을이 되면 선 채로 마주 보는 키 큰 코스모스 꽃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겨울엔 풀, 꽃 다 지니 쓸쓸하다. 둑방길은 눈 오면 사람들 발에 금방 밟혀 뭉치고 굳어서 미끌미끌, 눈 녹으면 질척질척. 맑은 날이 더 많아 흙먼지 날리지만 자전거 씽씽 달릴 정도로 단단하다. 강추위에는 치악산에서부터 내리치는 바람까지 더해지면 귀때기가 떨어져 나갈 듯 매서워 검정 털 귀마개나 엄마가 털실로 짠 새빨강 빵떡모자 없이는 지나기가 걱정된다. 둑방길은 자 대고 선을 그은 듯 직선으로 죽 뻗어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린다.    


판자촌. 둑 왼쪽이 봉천내, 오른편이 평원동이다. 앞쪽으로 봉천내를 가로지른 기차 철다리가 보이고, 그 아래를 지나 쌍다리까지 길이 이어진다. 둑 아래로는 둑길 폭만한 길이 둑길과 나란히 있다. 그 길 옆은 수로. 방 한 칸 폭에 어른 한 길 깊이니 장마에 물이 불으면 빠져 휩쓸릴까 겁난다. 수로는 봉천내를 가로질러 기차가 달리는 철다리 아래에서 내의 허리를 따서 수문을 냈다. 새다리 아래 정지뜰 미나리 밭에 물을 대려고 수로를 만든 거. 둑 아래 길 입구쯤에서 수로를 나무다리로 건너면 물길 따라 판잣집들이 따닥따닥 붙어서 기다랗게 줄을 선다. 집은 소위 계급장 모양에 도화지 크기만 한 돌로 이를 맞추어 켠켠이 쌓은 축대 위에 지었다. 판자는 햇빛과 비와 바람에 검게 바래서 집들이 지은 지 오래되었음을 말해 준다. 판자촌 뒤편이 부자 동네 평원동이어서 원주에서 제대로 지은 기와집은 거의 다 여기에 몰려 있다.  

 

베스와 둑방길에 들어선다. 베스와 앞산 가는 소로는 가끔 다녔지만 베스는 이 길이 처음이다. 베스는 얼마 안 되는 걸음에도 지쳤는지 가쁜 숨을 몰아쉰다.   

   



- 모정 -  




이때다.  


"컹컹컹"   

  

둑 아래쪽에서 개가 우렁차게 짖는 소리. 고개 돌려 보니 온몸이 희고 다리가 긴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우리 둘을 향해 힘차게 달려온다. 얼핏 진돗개 같지만 놓아기르니 똥개다. 흰둥이가 둑을 타고 펄쩍펄쩍 순식간에 코 앞에 닥친다. 너무 갑작스러워 이 개가 미쳤나 당황하는 사이.

 

"깨갱"    


갑자기 베스가 비명을 지른다. 깜짝 놀라 놈을 발로 걷어차니 도망은커녕 내게 덤빌 듯 말 듯 눈을 부라린다. 계속 헛발질 해대니 겅중겅중 뛰어 왔던 쪽으로 달아난다. 베스를 어루만져 달래며 살핀다. 상처 한 군데 없이 멀쩡하다. 그래도 너무 놀라서 가게 가던 길을 멈추고 서둘러 집으로 되돌아온다. 걱정되어 다시 살펴봐도 역시 상처가 없고 아픈 기색도 없다. 안심이다. 음, 다음에는 놈이 못 덤비게 둑방길 갈 때 긴 작대기를 가져가야겠다.    


며칠 후 아부지는 베스가 갑자기 새끼를 낳는다며 놀라신다. 언제 새끼를 가졌지? 이제서야 베스가 왜 산책을 반기지 않았는지, 걸음이 소처럼 늦었는지, 금방 지쳤는지 알 거 같다.  


"이상하군. 아직 새끼 낳을 때가 안 됐는데."    


아부지는 벌써 아셨던 거다. 베스가 임신했다는 걸. 나 학교 간 사이 새끼 받으려고 어디엔가 다녀오셨던 거다.    

베스가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씩 시간이 꽤 걸린다. 헌데 이번엔 금방이다. 전부 네 마리란다. 다 죽었단다. 숨 못 쉬어서 아니고 뱃속에서 이미 죽어서 나왔단다. 베스가 새끼를 여러 번 낳았지만 이런 적은 없다. 아무래도 그놈 흰둥이 때문 같다. 아부지에게 며칠 전 일을 말한다. 베스가 깨갱 했고 상처는 없었다고.     


"그놈이 배를 문 거야. 그래서 새끼가 죽은 거지."    


아, 그 개새끼. 입에서 욕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배를 물다니. 근데 뱃속에 새끼가 있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나도 몰랐는데. 기독병원 앞 청년관 마당에서 투견하는 거 보면 개들끼리는 목이나 귀를 무는데? 배는 안 무는데? 가서 콱 죽여버리고 싶다. 근데 놈이 앞발 들고 대들면 내 키만큼이나 큰 데 어쩌지. 묵직한 몽둥이를 가져가서 흠씬 두들겨 패야겠다.  


베스에게 미안했다. 밥을 듬뿍 준다. 안 먹는다. 학교 갔다 와 보니 개 밥그릇에 밥이 그대로. 다음날 헌 밥 버리고 새 밥을 다시 준다. 안 먹는다. 삼 일째. 다시 바꿔 줘도 역시 안 먹는다. 안 되겠다. 베스가 제일 좋아하는 거 만들어 줘야지. 식구들은 비싼 쌀을 아끼려고 옥수수 반을 섞어 지은 옥수수밥을 늘상 먹는다. 명절과 생일 그리고 소풍 때만 전히 하얀 쌀로 밥을 짓는다. 그 귀한 쌀밥을 새로 해서 물에 말고, 그 위에 참기름 동동 띄우고 손가락으로 휘휘 젓는다. 밥그릇을 베스 코 앞에 바싹 들이댄다. 이마저 고개를 돌린다.  

  

"베스야, 미안해. 잘못했어. 제발 먹어. 니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아부지가 안 먹으면 죽는대."   


그렇게 일주일. 베스가 진짜 죽었다. 굶어 죽었다. 그 좋아하는 걸 쳐다보지도 않고, 혀에 물 한 방울 안 적시고 죽은 거다. 개가 굶어 죽어 가는 걸 보는 건 처음이다.   




ㅡㅡㅡ




언제부터인가 죽음은 늘 내 곁에 있었다. 죽은 사람에게 하는 말은 많이 들었다. 집 앞 신작로에 상여가 지나가면 언제나 이 소리가 방에서도 들린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나가서 보면 꼭 다리를 건너기 전에 가던 길을 멈추어 선다. 한 남자가 꽃상여 위에 우뚝 서 있다. 말 탄 장군 같다. 오른손에 놋쇠로 만든 누런 종을 높이 들고 딸랑딸랑 흔들어 댄다. 노래인지 타령인지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무어라 무어라. 상여 안에 죽은 사람이 있다는 정도는 알지만 베스처럼 굶어 죽어가는 걸 본 거는 아니다.


죽은 쥐도 수없이 봤다. 쥐약 묻힌 음식을 여기저기 놓아두면 쥐들이 밤새 먹고 죽는다. 보통은 마루 밑이나 광의 구석에 찾아가 몰래 죽어서 눈에 잘 안 뜨인다. 독약 묻은 걸 너무 많이 먹고 배가 너무 아파서 그런가 어떤 때는 뻔히 보이는 곳에서 죽는다. 쥐덫, 쥐틀도 있다. 덫은 미끼를 물려다 덜컥 걸리면 몸이 조여서 죽는다. 쥐틀 안쪽에 걸어둔 미끼를 먹으려다 갇힌 건 팔팔하게 살아 있다. 쥐틀을 통째로 들고 가서 개울물에 푹 담그면 물을 먹고 죽는다. 다 먹고 죽은 거지 베스처럼 굶어 죽은 건 아니다.

   

베스는 일주일을 참기름을, 물을, 쌀밥을 코 앞에 두고도 한 방울, 한 톨도 안 먹고 굶어서 죽다니. 얼마나 슬프길래 죽은 새끼 네 마리를 따라서 죽다니.  


펑펑 울었다.    

 

내 곁을 영원히 떠난 걸 알기에 울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울고.     

새끼가 죽은 게 나 때문이라서 울고, 베스가 밥도 물도 안 먹고 굶어 죽은 게 나 때문이라서 밥 먹다가 울고, 물 마시다 울고. 데리고 나가지 않았으면, 놈을 막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울고.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울고. 문 옆에 베스가 살던 자리를 지날 때마다 울고. 변소 갈 때 그 자리를 지나가니까 변소에 쭈그리고 앉아서 울고.     

그리워서 울었다. 낮에 베스처럼 작고 예쁜 개 보면 베스가 보고 싶어서 울고. 밤에 누우면 베스가 보고 싶어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고.     

눈퉁이가 붓고 목은 쉬어버렸다.


'엄마, 아부지 죽으면 이보다 더 슬플까? 얼마나 더 우는 거지?'  

  

얼마나 슬픈지 이런 생각마저 든다. 일주일 지나도 영영 떠난 건 마찬가지고, 나 때문이기에, 생각나고, 그립다. 한 달이 지나도 여전하다. 몇 달 지나니 눈물이 멎는다. 해가 바뀌니 먹먹해진다. 동생들은 나보다 더 어려서 죽음을 몰라서 그런지, 정이 덜 들어서 그런지 찔끔 울다가 만다. 누나들은 여자라 그런지 꽤 운다. 엄마, 아부지는 어른이라 그런지 울지 않는다. 식구 중에 내가 가장 슬펐고 제일 오래도록 그리워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베스가 죽은 날 아부지는 새끼들과 함께 앞산에 묻어 주었다. 우리 집이 내려다 보인단다. 나뭇가지를 십자가 모양으로 꽂아서 표시해 두었단다. 며칠 뒤 혼자 그 자리에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는 안 갔다. 귀신 나올까 무서워서.


베스가 죽고 나서 얼마 후 몽둥이 들고 흰둥이를 찾아갔지만 멀리서 멀뚱멀뚱 바라볼 뿐 다시 달려들지는 않았다. 쫒아갈 낌새면 나를 알아보고 얼른 도망갔다. 한동안 그러다가 흰둥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풀어놓고 키우는 똥개라 한여름 복날에 주인에게 잡아먹힌 거다.


가매기 삼거리 우리 집에서 키운 두 번째 개는 똘똘이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슬픔의 이유 



티 없이 맑은 영혼의 어린 시절.

정든 개가 사고로 죽어서 펑펑 울 때 슬픔의 이유는 넷이다.


상실감이다.

죽어 내 곁을 영영 떠나 다시는 볼 수 없기에.


죄책감이다.

내 잘못인데, 잘할 수 있었는데.    


추억이다.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리움이다.

보고 싶기에.

   

넷 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망각되고 희석된다.

마지막까지 남는 눈물은 그리움 때문이다.



ㅡㅡㅡ



철들어 사랑하는 부모가 돌아가실 때 슬픔의 이유도 같다.  

  

상실감이다.

돌아가시어 내 곁을 영영 떠나 다시는 볼 수 없기에.

   

죄책감이다.

내 잘못인데, 잘할 수 있었는데.


추억이다.

함께 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리움이다.

보고 싶기에.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망각되고 희석되는 것도 같다.

마지막까지 남는 눈물이 그리움 때문인 것도 같다.  






세대 통역 




똥구멍 : 당시에 흔히 쓰이던 말. 커가면서 점잖은 표현으로 항문을 쓰기 시작


변소 : 똥뚜간을 점잖게 이르던 말. 80년대 이후 화장실로 대체


빵떡모자 : 두툼한 털실로 짠 겨울용 모자. 접어 쓰면 이마에 걸치고 길게 잡아당기면 얼굴을 덮는다. 집에서 엄마가 젓가락 같은 대나무 두 개로 새빨간 털실을 얼기설기 엮어서 뜬다.






지금은            




흰둥이는 암캐였던 게다. 자기 영역에 들어오니 달려들었을 테고 냄새든 뭐든 본능적으로 새끼 밴 걸 알고 배를 물었던 거다. 수캐는 암캐를 반기지 물지 않고, 투견판에 개들은 수컷들일 테니 서로 목이나 귀를 물고.  


얼마 전 산부인과 전문의인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개가 물 한 모금, 쌀 한 톨 안 먹고 굶어 죽냐고. 드물지만 사람도 그럴 수 있단다. 산모가 큰 충격을 받으면 호르몬계에 이상이 생긴다고.    


베스의 무덤은 산사면 어디쯤 짐작할 뿐 흔적은 없다. 산은 그대로 되 민둥산이 울창한 숲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니는 둑방길과 물길인 수로를 합쳐서 차가 달리는 4차선 강변로가 되었다. 수로 옆 판자촌도 없어졌다. 평원동 기와집은 아직 여남은 채 남아있다.  


아이의 정서 함양과 교감 능력 발달에 대단히 훌륭하다는 걸 겪어서 알기에 아들 둘이 초등학교 3, 5학년 때 젖을 갓 뗀 암컷 강아지를 집에 슬그머니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 13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제 아들 둘은 청년이 되었고 녀석이 늙어 눈이 멀고 기력이 쇠해 보내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걸 안다. 아들들 측은지심도 고스란히 지켜본다. 생로병사도 교육이고 반려견만 한 건 없다. 언젠가 녀석들도 상실, 죄책감, 추억, 그리움의 눈물을 흘릴 거다. 베스가 준 선물이다.  




   


심심풀이 문제



 

가.당시 누렁이, 바둑이, 도꾸, 메리, 쫑. 이런 식으로 전국 개 이름이 같았던 이유는?


1.다 같은 견종이라서

2.1년 안 돼서 복날이면 잡아 먹을 거라 굳이 이름 지을 필요 없어서


나.도꾸, 메리, 쫑은 dog, Mary, John.

그렇다면 베스는?


힌트 : 여자 이름, 영국 여왕, 약어, 베쓰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8.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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