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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Feb 01. 2020

훈련시킨 돼지

응답하라 1968 - 동물 편


서울 촌놈은 신작로에서 걸어가는 돼지를 훈련시킨 돼지라 한다.


암퇘지. 가매기 삼거리에서 아부지는 집 옆에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두르고 돼지를  마리 다. 검정 털이 듬성듬성 난 암퇘지다. 엄청 크다. 아프거나 새끼 나면 사람보다 더 대접받는다. 새끼를 낳으면 아주 예민하다. 사람이 다가가면 놀라서  새끼를 물어 죽이기도. 그래서 그때는 아부지 말고 돼지우리 근처에도 못 간다. 통나무 속이 깊게 파인 밥통에다가 밀기울을 쏟고 물을 섞어 질척하게 만들어 주거나 이것저것 걷어 먹여서 살이 오를 대로 오른다. 너무 뚱뚱해서 뒤척이다 자기도 모르게 새끼가 눌려 죽기도 한다.


수퇘지. 옆동네인 새동네에서 수퇘지가 원정을 다닌다. 우리 집 돼지보다 조금 작지만 이 놈도 크다. 휘발류 김씨 아저씨가 신작로 가에서 이놈을 작대기로 툭툭 치면서 몰고 온다. 오른쪽으로 길을 벗어나면 오른편 배를 툭 치고, 왼쪽으로 길 안으로 들어설라치면 왼편을 툭 친다. 그러면 돼지는 어슬렁어슬렁 앞으로만 간다. 빠꾸는 안 한다.


야병교 간판. 가매기 삼거리 갈림길에 간판이 우뚝 서 있다. 군부대인 야병교를 알리는 표시다. 간판이 꽉 차게 숫자 네 개가 흰 바탕에 초록 글씨로 쓰여 있다. 문짝을 가로로 눕혀 두 개 겹친 크기다. 거대한 간판 아래로 둥근 기둥 둘이 받치고, 그 기둥이 간판만큼 커다란 공그리 받침대에 박혀 있다. 받침이 장방형이라 반듯하니까 사방으로 십여 명이 걸터앉아도 넉넉하다.


간판 앞은 공터. 동네 애들은 매일 여기에 모여서 딱지 치기, 다마 치기, 비석 치기, 으찌니쌈이나 홀짝으로 다마 따먹기를 하며 논다. 여자 애들은 고무줄 넘기 하고. 삼거리 공터에 갈림길까지 합쳐져서 공중이 넓으니 여름에 비가 올 것 같으면 제비들이 낮게 휙휙 날아다닌다. 놀이 삼아 제비를 쫓아다닐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다. 야병교 간판은 애들이 모이는 곳이고 놀이터다.


서울 촌놈. 여름 방학이면 또래 남자애가 서울서 우리 동네로 놀러 오곤 한다. 동네 밖으론 어딘지  적이 없어 서울을 모르지만 녀석은 서울서 산다는 것만으로 신비로웠고 애들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하루는 녀석과 같이 사내 애들 여럿이 할 일 없이 도로 쪽을 향하고 야병교 간판 받침대에 걸터앉아 있는데 녀석이 느닷없이 큰 소리로 외친다.


"야, 저기 봐! 훈련시킨 돼지다! "


무슨 일인가 가리키는 손을 따라 눈길을 주니 공씨네 집 앞 신작로에서 우리 집 쪽으로 휘발류 김 씨 아저씨가 엄청 큰 돼지를 몰고 간다. 툭툭 치는 작대기를 피하려고 앞으로 가는 돼지를 보고 훈련시킨 돼지라는 거다. 바보 같은 놈, 그것도 모르다니. 서울 촌놈이다. 그래도 부러웠다. 서울 촌놈이. 


조금 더 커서 알게 됐다. 휘발류 김 씨 아저씨네 돼지가 씨돼지라는 걸. 그 돼지가 우리 집 돼지 새끼들 애비라는 걸. 그 돼지가 우리 동네, 이웃 동네 모든 돼지 새끼들 애비라는 걸.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세대 통역




밀기울 : 빻은 통밀을 채로 쳐서 채 위에 남는 찌꺼기. 밀은 사람이 먹고 밀껍질이 섞인 밀기울은 돼지 사료로 쓴다.


신작로 :  사전적 의미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새로 만든 큰길. 당시 흙에 자갈을 섞어 다진 길. 비포장 도로로 비 오면 파이니 채워주고 마르면 흙먼지 풀풀 날린다. 대개 군용 트럭과 짚차가 사용. 택시도, 시내버스도 없다. 인도가 따로 없어 자전거, 사람, 가축도 이 길을 이용한다.


공그리 : 콘크리트. concrete. 일본인의 영어 발음인 듯.


빠꾸 :  back. 지금 말로 후진. 일본인의 영어 발음인 듯


다마 : 유리구슬. 단색은 싸고 안에 꽃무늬가 있는 비싸다. 


으찌니쌈  : 홀짝처럼 다마 따먹기 놀이 중 하나. 홀짝이 양자택일인 것과 달리 으찌니쌈은 패가 셋이다. 예를 들어 패 잡은 이가 다마 한 개 이상을 상대가 안 보이게 한 손에 쥔다. 패 거는 이가 다마 한 개 이상을 걸고 "으찌 먹고 니"를 부른다. 손을 펴서 1, 4, 7개면 으찌. 패 잡는 이가 이긴 거고 건 다마를 갖는다. 2, 5, 8개면 니. 패 거는 이가 이긴 거고 건 만큼 패 잡는 이가 다마를 내어준다. 패 거는 이가 둘을 택해서 각각에 다마를 걸기도 한다. 이를테면 으찌 먹고 니쌈. 으찌면 패 잡는 이가 이긴 거고 니나 쌈이면 거는 이가 이긴 거다. 땅바닥에 작대기로 일, 이, 삼을 상중하로 구분하는 선을 그어 두고 다마를 그곳에 두면서 패를 건다. 으찌 먹고 니를 걸었다면 니에 다마를 놓는 거. 이찌, 니, 싼이 일본말이니 일본서 온 게임인 듯.







지금은





사진 센터 풍선처럼 생긴 파란색 지점 표시가 야병교 간판 자리. 그 위로 양쪽 길 사이부터~원 모텔에서 가로로 난 길까지 전체가 야병교 군부대. 풍선 좌 길 건너가 공씨네 집. 그 집 바로 앞에 길이 휘발류 김 씨 아저씨가 돼지를 몰고 갔던 그곳. 휘발류 김 씨 아저씨 집은 헬로무인텔 아래 CU.





서울 촌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으니 키워도, 팔아도 돈이 되고 아무거나 잘 먹으니 돼지를 친 다. 부업으로 시험 삼아서 한 마리만.

죽어서 나오는 새끼는 약이라고 먹는 사람이 있. 약은 핑계고 고기가 아까와서 그랬던 듯.


야병교가 무슨 약자인지는 모른다. 공병부대라고 들었던 것 같다. 교자가 들어가니 교육대인 것 같은데. 그럼 야전 공병 교육대인가?


군부대 표지판 자리는 새마을금고 앞 도로다. 신작로가 확장되면서 도로로 편입됐다.

훈련시킨 돼지가 지나던 길은 공 씨 아저씨 집 앞쪽이다. 역시 도로로 편입.


신작로는 진작에 아스팔트로 포장했다. 중앙선이 그어지고 도로 표지판이 생긴다. 그러고 나서 1996년 경 폭이 3배로 넓어져 왕복 6차선이 되면서 횡단보도와 신호등, 인도를 만든. 


길의 방향은 여전하다. 가매기 삼거리에서 강원, 충청, 경기 삼도와 수도 서울로 갈린다. 북서로 횡성, 홍천 거쳐 춘천이다. 북동은 둔내, 평창 거쳐 강릉이다. 가매기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외길 100 미터쯤에서 다시 삼거리를 이룬다. 거기서 남서는 경기도 여주 거쳐 서울이다. 남쪽은 충청북도 충주, 제천 간다.


2013년경. 가매기 삼거리에 동쪽으로 길을 하나 더 내어 가매기 사거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다만 동쪽 길은 사거리에서만 번듯할 뿐 바로 차 한 대 지날 소로로 꺾어진다. 산 주변 동네나 작은 절들이 이어지니 이면도로 겸 인도다.


가매기 삼거리 도로는 영동고속도로 막힐 때 상습 정체인 문막과 새말 구간을 빠져나가는 국도의 중간이다. 중앙고속도로 북원주와 남원주 구간을 질러가는 지름길이기도. 원주시내에서 치악산 구룡사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보나 사드 배치 때 거론된 것을 보면 원주는 여전히 군사 요충지다. 그중에서도 가매기 삼거리는 삼도와 서울로 갈리 전략 요충지다. 천안삼거리처럼. 그래서 삼거리 도로를 끼고 큰 부대가 셋이나 있었던 거다. 여기가 뚫리면 전국으로 연결되니까. 이 길만 지키면 강원도 외에는 나라 땅을 다 지키니까. 게다가 가매기 삼거리 도로는 앞산 고지와 뒤로 120여 미터 폭의 봉천내가 있어 최적의 방어 전략지.


원주남북한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국토 정중앙이다. 지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니 언젠가 통일되면 지금 대전 역할을 원주가 하리라.






심심풀이 문제




원주 인구 33만, 대전 인구 147만이다. 5배 가까운 차이. 평화 통일되면 원주 인구가


1. 100만

2  50만

3. 30만

4. 15만


통일되기 직전이나 직후에 빚내서라도 원주 땅을 살 필요가


5. 있다

6. 없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6.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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