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쥐에 너무너무너무 놀라서 한동안 밤에 잘 때 바지 밑단을 까만 고무줄로 묶고 잤다.
한겨울 새벽.
잠결에 허벅지에 뭐가 느껴진다.
꿈인가? 생시인가?
거기서 뭐가 꿈틀댄다.
꿈이 아닌 거 같다.
손을 허벅지로 가져가서 슬쩍 만져본다.
물컹.
움직인다.
뇌리에 번쩍.
앗, 쥐다!
아악! 아아악!!!
빛의 속도로 벌떡 일어나 허겁지겁 바지를 벗는데 바짓가랑이로 쥐가 툭 떨어진다.
어린 새앙쥐.
새벽에 온 식구가 다 깨서 쥐잡기.
기겁을 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몸 맨살 허벅지에 붙어서 꿈틀댔던 쥐에 너무너무너무 놀라서 한동안 밤에 잘 때 바지 바지 밑단을 까만 고무줄로 묶고 잤다.
쥐가 바짓가랑이로 못 들어오게.
ㅡㅡㅡ
집쥐. 집에 쥐가 하도 많아서 집쥐라는 말 하나로는 부족하다. 집에서 눈에 띄는 곳에 따라서 달리 부르면 좋을 정도. 부엌 쥐, 변소 쥐, 천장 쥐, 골방쥐, 다락 쥐, 광 쥐. 시궁쥐. 우리 집이 여덟 식구니까 3배 치면 우리 집만도 쥐 24마리 정도 살았을 거다. 머리 수로 보면 사람보다 쥐 집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사람은 낮에 활동하고 쥐는 밤에 움직이고.
천장 쥐. 그중 천장에 사는 천장 쥐는 다른 쥐아 달리 볼 기회가 없다. 하지만 달리는 말처럼 요란한 발소리로 거기 산다는 걸 안다. 우리 집 식구가 다 잠들어 조용해지면 그때부터 쥐들이 밤이면 밤마다 천장에서 몰려다닌다. 천장에서 지진이라도 난 거처럼,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인 양 우르륵 우르륵 소리를 내며 달린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다시 반대로, 그리고 반복해서. 시끄러워 베개를 던져 천장에 쿵 부딪히면 조용해진다. 허나 잠시 후 다시 우르륵 우르륵. 식구들은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든다.
천장은 지붕 아래로 각기목으로 틀을 짜고 얄팍한 베니아판을 한 장씩 작은 못으로 박았다. 밀가루를 찬물에 엷게 풀어서 연탄불로 쑤어 만든 풀로 도배지를 붙인다. 오래되면 못이 빠져서 베니아판은 평평하게 처진다. 그러니 각기목 턱이 없는 천장 위 베니아판은 장애물 없는 운동장 격.
쥐구멍. 평생 이빨이 자라기 때문에 나무를 부지런히 갈지 않으면 죽는 게 쥐. 베니아 판때기쯤이야 일도 아니다. 벽에 맞닿은 천장 모서리 구석에 딱 한 마리 드나들 정도로 작은 구멍을 낸다. 밤에 천장과 방 사이를 오가는 통로다.
어른 쥐. 혼자 다니며 먹이를 찾아 조심조심 걸어 다닌다. 헌데 천장 쥐는 여럿이 몰려 뛰어다닌다. 천장엔 먹을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새끼를 천장에서 낳은 거다. 한 번에 대여섯 마리 낳는다. 새끼들은 금새 꼬맹이가 되고 천장을 놀이터로 알고 뛰어다니는 거다. 한 녀석이 달리니 다른 형제자매도 따라 달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미는 걱정되니 뒤를 쫓아 달리고. 그렇게 우리 집 천장은 밤이 되면 쥐 가족의 놀이터가 된다. 그 아래선 우리 집 식구 여덟이 나란히 누워 자고.
ㅡㅡㅡ
내 바지 속 허벅지에서 꿈틀댔던 허벅쥐는 꼬맹이 쥐답게 호기심으로 혼자 천장에서 방바닥으로 내려온 거였다. 철이 없으니 사람 무서운 줄 몰랐을 거다. 한겨울은 자기 전에 머리맡에 먹을 물을 놓아두면 밤새 땡땡 얼 정도로 방이 추워서 이불을 얼굴까지 푹 덮고 몸을 웅크린다. 잔챙이 솜털밖에 없는 어린 쥐니 춥기도 했을 거. 그러니까 따스한 이불속, 더 욕심내서 곤히 잠든 나의 바지 속으로 파고 들어와 허벅지까지 기어오른 거다.
그날 천장 쥐 가족은 식구 하나를 잃었다. 그렇지만 다음날 밤에도 우르르 우르르 뛰고 노는 소리는 여전했다. 어린 새앙쥐들이 철이 들 때까지 우리집 천장은 쥐 놀이터였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그때는
부자든 가난하든 어느 집이나 쥐가 들끓었다.
새앙쥐가 자는데 바지 안에, 것도 허벅지까지 올라온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쥐 종류가 많은데 허벅쥐란 말은 없는 걸로 보아 특별한 일이었던 게다.
지금은
집에 쥐 대신 바퀴가 산다. 집에 쥐만 살면 후진국, 바퀴만 살면 선진국이다. 둘 다 살면 중진국.
왜?
난방 차이, 집에 빈틈이 있고 없고 크고 작고 차이니까. 사는 집을 보면 경제 수준을 아니까.
그때 얼마나 놀라서 얼마나 크게 비명을 질렀는지 남동생이 뚜렷이 기억한다.
2016. 0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