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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Feb 07. 2020

장맛비가 퍼부으면

응답하라 1968 - 주거 편

--- 장맛비가 퍼붓는 첫날은 개울가로 변소를 낸 집들분주하다.--- 





ㅡ장마 첫날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다. 동네 개울이 금새 붇는다. 햇빛을 삼키며 뱉으며 반짝반짝 개울 가운데서 졸졸졸 흐르던 투명한 냇물이 빗물에 황토가 더해져 똥색 흙탕물로 돌변해서 으르렁댄다. 바람에 부러진 나무는 친구 삼아 데리고 가고, 작은 바위나 물막이 보라도 막아서면 장애물 경기 선수인 양 훌쩍 타 넘고, 는 거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휩쓸며 침없이 처내려 간다. 앞산 계곡에서 봉천내로, 봉구네 집에서 우리 집 쪽으로.    


동네 어른들은 모처럼 일손을 놓고 처마 아래 마루에 앉아서 좍좍 내리 쏟는 비를 즐긴다. 아내는 미제 깡통에 담아서 굳힌 돼지비계 기름을 한 숟가락 듬뿍 떠내서 프라이팬에 두르고 연탄불에 지글지글 부치기를 부친다. 남편은 빗소리를 반주 삼고 부침개를 안주로 해서 막걸리를 들거나, 우산을 펴 들고 다리 위에 옹기종기 모여서 물난리 걱정하면서 물구경을 한다. 그렇지만 몇몇 집 아부지들은 오히려 바빠진다. 개울가로 변소를 바짝 붙여서 지은 집들이다.

   

 

ㅡ변소



변소는 똥을 퍼낼 때나 발이나 몸이 빠질 때는 똥통, 볼일 보러 갈 때는 똥뚜간이라고 부른다. 어른들은 점잖게 변소라고도 하고 뭔가 있어 보이니까 애들도 따라 한다. 어른 키 정도 기다란 작대기에 반구 모양 군인 철모를 매단 것, 똥바가지다. 변소에는 나무 발판이 놓여 있다. 그 아래로 제비 새끼가 먹이를 보채듯이 입 떡 벌리고 쳐다보고 있는 것, 아이가 들어가서 고개만 숙이면 숨바꼭질 하기에 안성맞춤인 둥근 . 도라무깡이다. 똥통이다.     

우리 집 변소는 집 옆으로 뒤쪽 구석에 아부지가 지었다. 땅을 파고 도라무깡통째로 묻었다, 도라무깡 위쪽 끝은 땅 높이로 맞춘다. 그 위에  양발을 어깨넓이로 딛고 몸무게를 지탱할 넓고 굵은 판자 두 장을 나란히 발판으로 얹었다. 발판 방향은 앉으면 변소 문이 보이게. 그 위로 사람이 서서 들어가게끔 사방에 기둥을 세우고 얇은 판자를 못으로 박아 가림막을 만들었다. 앞쪽 기둥에는 문짝을 짜서 경첩을 달아 붙였다. 각기목 몇 개로 서까래 깔고 지붕에 스레트를 얹으면 변소 완성. 도라무깡, 경첩, 못, 스레트 외에는 다 나무다. 



ㅡ똥 눟기



아부지가 여덟 식구들 위해서 실력 발휘해서 지은 변소에 큰일 보러 간다. 다리를 벌리고 양발을 발판 가운데 위로 딛고 자리를 잡는다.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 웅크리고 앉는다. 끙 아랫배에 힘주면서 똥을 눈다. 다 누면 가져 간 신문지 조각을 손바닥에 펼쳐 밑을 닦는다. 등 뒤로 돌려서 똥구멍에 갖다 댄다. 엄지를 뺀 손가락에 힘을 모아서 쓰윽 당긴다. 한 번 닦고 신문지를 반으로 접고, 두 번 닦고 또 반으로 접고, 다시 한번 닦는다. 


신문지. 똥 닦는 신문지는 공책 반에 반만 한 크기로 자르고 아껴서 쓴다. 신문지는 포장, 벽지, 접는 딱지, 붓글씨 연습  비싼 종이 대신 어디든 쓰였다. 엄마는 일제시대에 이북 있을 때 신문지 대신 새끼줄을 탔다고 한다. 똥뚜간은 거적때기로 대충 가렸다고. 똥뚜간 앞에 자라는 나무 두 그루 사이에 새끼줄을 매어둔단다. 똥 다 눟고 똥뚜간을 나와서 새끼줄에 다리를 벌린 채 걸어가면 밑이 닦인단다. 거기에 비하면 신문지는 고급이었다. 신문지로 밑을 다 닦으면 두 다리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똥통으로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휙 내던진다.


구더기. 여름날 기분 좋을 땐 똥 닦은 신문지를 꼬깃꼬깃 구기고 탁구공처럼 둥글게 돌돌 뭉쳐서 아래를 겨냥해 구더기를 맞춰 보기도 한다. 똥통엔 파리 알에서 난 누런 구더기가 우글우글 하다. 꾸물꾸물 대며 조금씩 이동하는데 똥통 가장자리에서 막힌다. 어떤 놈은 겁도 없이 똥통을 타고 기어오른다. 헌데 똥통 도라무깡은 자기 몸길이 백 배가 넘는 절벽이다. 녀석은 일 센티 남짓 크기에 원통처럼 둥글고 길되 한끝에서 뾰족하다. 더욱이 손도 발도 없고 가진 건 오직 몸뚱이 하나뿐. 몸통 안에서 주름인지 살인지 물인지 모를 뭔가를 꾸물꾸물하면 앞으로 나아간다. 원래 구더기는 이동하지 않든지 평평한 곳이 맞지 깎아지른 절벽은 아닌 거다. 그러니 똥통을 오르는 구더기는 죽을힘 다해서 기어오르는 거다.


다행인 것은 도라무깡은 중간에 띄엄띄엄 같은 간격으로 주름이 잡혀 패인 데가 있다. 거기서 한 숨 돌릴 수 있지만 거기까지 오르는 놈은 몇 마리 안된다. 그렇다고 시간이 마냥 있는 건 아니다. 똥통이 온통 구더기 천지면 아부지는 똥통에 횟가루를 뿌려서 두텁게 덮는다. 그러면 구더기가 다 죽고 파리도 알을 깔 수가 없다. 횟가루가 늦으면 똥통은 구더기로 완전히 뒤덮여 똥 대신 구더기만 보인다. 신문지 뭉치는 똥통을 오르고 있는 구더기  제일 높이 오른 놈에게 던지는 거다. 맞춰서 바닥에 떨구려고. 일등이니 표적이 되는 거다. 아침에 변소 가면 어쩌다 구더기 몇 마리가 바닥 흙에 보이는데 탈출에 성공한 건지 변소 바로 옆으로 땅을 파 물길을 낸 하수구에서 온 건지 볼 때마다 궁금하다.


파리. 여름 변소 안에는 파리가 늘 있다. 알을 낳으려고 온 건 지, 알에서 깬 건지 모르지만 구더기 수보다는 확실히 적다. 이삼십 마리 가량. 헌데 붕붕 날아다닌다. 앞이나 위에서 날거나 똥구멍에 근처에서 난다. 똥꾸멍 근처에서 날개바람이 느껴지면 파리가 접근하는 거다. 그러다 똥꾸멍에 들러붙는 느낌이 확 오면 앉은 거고 간질이면 걷는 거다. 날 땐 성가실 뿐이지만 앉고 걸어 다니면 찝찝한 느낌을 잠시도 참기 어렵다. 궁둥이를 좌로 우로 돌려보고 발판에 양발을 앞으로 뒤로 옮겨 앉아도 마찬가지. 어쩔 수 없이 궁둥이를 들고 한 손을 그 아래로 뻗고 도망가라고 휘젓는다. 그제야 손을 피해 날아오른다.


앞에서 날아다니는 녀석들은 손을 저어 쫓으면 문이나 벽에 가 앉는다. 내가 몸을 움직이면 겁을 내고 다시 날아오른다. 똥꾸멍에 앉은 놈들은 손으로 쫓아도 다른 데로 날아가 앉지 않고 똥구멍 근처에서 계속 날아다닌다. 놈들은 똥구멍에서 똥이 나온다는 걸 확실히 아는 거다. 날고 있다가 잠잠하면 똥구멍에 달려든다. 똥구멍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떨어진 똥에 달라붙는 파리도 있다. 허나 그건 오줌과 범벅이 된 똥 늪에 이내 가라앉는다. 파리는 젖는 걸 싫어하니 다시 위로 날아오른다. 똥 싸는 내내 똥구멍 근처는 전쟁터다. 똥구멍에 앉으려고 하는 파리와 그걸 쫓으려고 하는 나 사이에.


똥파리. 변소에 파리는 다 집에 사는 집파리다. 집안 어디나 너무 흔해서 그냥 파리라 한다. 가끔 덩치가 집파리보다 세 배 크고 등이 초록빛을 띠는 파리가 두어 마리 나타나지만 햇빛이 내리쬐는 장독대나 담장이지 변소는 아니다. 들이나 산에는 똥파리가 흔하지만 집파리는 볼 수가 없다. 집파리와 모양과 색은 같되 크기는 똥파리만 한 쉬파리도 똥파리처럼 양지바른 데서 어쩌다 눈에 뜨이지만 역시 변소엔 안 보인다. 손가락 마디 크기로 엄청나게 큰 쇠파리는 소 피를 빨아먹고 동네에 소를 키우는 집이 없으니 변소 건 동네 어디서 곤 볼 일이 없다. 똥 천지인 똥뚜간에 정작 똥파리는 없다.


겨울에는 똥통에 싼 똥이 퍼지지 않고 언다. 계속 쌓이면서 중앙이 뾰족한 산 모양이 된다. 그러니 똥통이 금방 찬다. 겨울이 깊어가면서 얼은 똥산 무럭무럭 자라서  발판 사이로 머리를 내민다. 끝이 창 같아 똥구멍을 찌르니 닿지 않게 엉거주춤 앉는다. 더 이상 피하기 어려우면 삽을 가져다가 땡땡 언  무더기 밑동을 잘라내 비어있는 옆으로 채워 넣는다. 이건 식구들이 서로 미루고 버티다 정 못 참겠는 사람 몫이다. 대여섯 차례 그러다 보면 똥 덩어리가 녹아서 평평해진다. 그럼 봄이 온 거다.


똥통에 똥은 여름엔 냄새가 콧구멍을 찌르고 겨울엔 똥구멍을 찌른다. 한여름 바람 한 점 없는 날은 똥 가스가 눈을 찔러대 눈이 시리고, 한겨울 강추위에는 냉기가 벗은 궁둥이를 찔러대궁둥이시리다. 



ㅡ똥 푸기



장맛비가 퍼부으면 아부지는 똥바가지로 똥통에서 똥을 푼다. 오줌과 섞인 똥이라 끈적끈적 하니 똥바가지에 개울물을 몇 바가지 떠서 똥통에 붓고 휘적휘적 저어서 조금 묽게 만든다. 그래야 똥이 똥바가지에 조청처럼 들러붙지 않는다. 그리고 똥바가지에 똥을 가득 담아서 똥 빛 개울로 쳐내는 거다.


일 년 만에 온 기회다. 봄에 텃밭에 똥을 준 이후로 쌓인 누런 똥과 그 아래서 숨도 못 쉬고  해 묵어 푹 썩은 국방색 똥까지 치울 수 있다. 부슬부슬 부슬비는 쓸모없다. 퍼부어야 똥통을 통째로 비울 수 있다. 그래야 황토가 섞여 똥 빛을 띤 물에 섞여 똥물이 표가 안 난다. 물살이 거세어 흔적 없이 휩쓸려 내려가서 구릿한 냄새가 금방 사라진다. 똥에 절은 신문지 조각들이 개울 바닥과 돌 여기저기에 너덜너덜 붙지 않아 똥 푼 흔적이 남지 않는다. 비가 잦거나 그치기 전에 끝내야 하니까 잠시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퍼낸다. 땀인지 빗물인지 온 몸이 흠뻑 젖고 몸에서 모락모락 김이 난다. 푸고 나면 개울물을 떠서 똥통에 부어 씻고 그걸 다시 퍼낸다. 똥바가지까지 말끔히 헹구고 나면 똥 푸기 끝. 매년 장마에 딱 한 번이다.  



ㅡ봉구네 변소



봉구네 변소는 우리 집과 다르다. 동네에서 제일 크게 마당이 아니라 개울에 지었다. 우리 집 거보다 세 배 가량 넓고 두 배 정도 깊다. 봉구네 집 대문 앞에 사람 둘이 나란히 걸을 만한 소롯길을 사이에 두고 길에 바짝 붙여서 개울 바닥에 변소를 지었다.


봉구네 똥통은 땅에 묻은 게 아니라 땅 위에 쌓았다. 개울 바닥부터 길까지 키 큰 어른 한 길 높이로 부로꾸를 쌓아 올려서 길과 나란히 장방형으로 똥통을 만들었다. 길에서 빗물이 똥통으로 흘러들지 않도록 길보다 약간 높다. 부로꾸 안쪽은 똥물 새지 말라고 공들여 미장을 했고 바깥은 굳이 미장할 필요가 없으니까 부로꾸가 몇 장 들었는지 세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부로꾸 위에 나무 발판을 네 개 얹었다. 두 명이 함께 궁뎅이 까고 볼 일 볼 수 있게끔 간격을 두고 나란히 . 그러고 나서 삼 면은 다시 부로꾸를 이어 올려서 벽을 만들고, 길 쪽 정면은 목공소에서 켜다 남은 소나무 쪼가리 판자를 얻어다가 수직으로 이어서 가림막을 쳤다. 부족한 판자는 산에서 잘라 온 싸리나무를 세워서 메꿨다. 싸리비는 잎을 떼지만 안을 가려야 하니 잎을 떼지 않았다. 마주 보고 오른쪽 귀퉁이에 문을 내었다.


정면과 문가림 정도라서 사이사이로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지만 거꾸로 밖에서 안은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고는 누가 있는지 없는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문고리는 따로 없고 못을 반쯤 박고 튀어나온 못대가리에 노끈을 동여매어 연필 길이쯤 여유 있게 늘어뜨렸다. 손을 뻗어 노끈을 당기고 있으면 문을 잠근 거고 놓으면 열린 거다. 칸막이가 없어서 어쩌다 어른과 애가 나란히 같이 쓸 때도 있지만, 웬만해선 안 그런다. 아무리 급해도 남자, 여자 구분은 한다. 부로꾸 벽 위로 지붕을 얹어서 비가 오면 피할 수 있다.


봉구네 변소는 희한하게 똥을 위에서 아니라 뒤에서 푼다. 그러려고 뒤쪽 개울 쪽으로 똥통 중간에 창문 만하게 큼지막한 구멍을 냈다. 바람이 술술 통하니 냄새도 덜고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이런 똥통은 동네에  하나뿐이어서 그 구멍을 볼 때마다 봉구 아버지는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봉구네 변소는 동네 사람들이 같이 쓴다. 변소가 집 밖 길가라서 동네 사람들이 급할 때 몰래 쓴다. 나도 우리 집도 변소를 식구가 차지하고 빨리 안 나오고 내가 급하면  봉구네 변소에 간다. 변소까지 가는데 봉구네 식구가 근처에 있으면 아닌 척 지나치고 보이지 않으면 잽싸게 들어간다. 안에서 똥 누고 있는데 밖에서 저벅저벅 발소리가 나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소스라치게 놀라 문을 못 열게 노끈을 힘껏 잡아당기고 혹시라도 알아볼까 봐 꿩처럼 고개를 숙 무릎에 박아서 눈길이라도 피해 본다.    


봉구 아부지는 문을 슬쩍 당겨보고 열리지 않으면 자기네 식구가 아닌지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 없이 돌아선다. 어떤 때는 으흠 으흠 헛기침을 두어 번 하는데 이건 급하다는 신호다. 이쯤 되면 내 집 가서 이어서 쌀 생각으로 서둘러서 끝낸다. 판자 사이로 봉구네 식구가 없는 걸 살피고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후다닥 우리 집 쪽으로 내닫는다. 누구라도 있으면 나가지 못하고 변소 안에서 숨죽이고 기다린다. 그럴 때면 봉구네 식구도 집 대문 안쪽에서 조용히 기다려준다. 서로 기다리는 거다. 한쪽은 도망가려고, 다른 쪽은 제발 빨리 도망가라고. 어떤 때는 봉구네 식구가 아니면 오히려 그 사람이 더 기겁한다. 몰래 쓰려고 왔는데 안에 누가 있으니까 봉구네 식구로 착각한 거다. 이 때도 역시 볼 일을 서둘러 마친다. 누구든 변소 문을 당기면 불안해서다. 수없이 봉구네 변소를 썼지만 봉구 아부지도 봉구도 내게 오지 말라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변소에 자물쇠를 채우지도 않는다.



ㅡ장맛비가 퍼부으면



장맛비가 퍼부으면 봉구 아부지 잡는 날이다. 같은 시간에 다른 집 몇 배는 퍼야 하니까. 위험하기도 하다. 똥통 위에서 옆 개울로 던져 버려야 안전한데, 똥통 뒤 점점 불어나는 물에 서서 똥을 퍼내니 까닥하다 넘어지거나 급류에 휩쓸릴 수 있다. 휘몰아치는 흙탕물에 무릎 위가 잠긴 채 똥 푸는 걸 볼 때마다 걱정되고 미안하다. 내 똥도 거기에 섞여 있으니까.  


장맛비가 퍼부으면 우리 아부지도 바쁘다. 비 그치기 전에 끝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언제 비가 그칠지 모르고 그러면 똥 푸던 걸 그만두기도 계속하기도 뭐하니까. 하지만 우리 집 변소는 양이 반에 반 정도다. 한 번에 한 명 들어가는 보통 변소니까.


장맛비가 퍼붓는 첫날은 개울가로 변소를 낸 집들분주하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세대 통역  




새끼줄 : 볏짚을 양손으로 비비면서 꼬아 만든 줄.     

도라무깡 : drum통

세멘 : 시멘트. cement

부로꾸 : 블록. block   

싸리비 :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 싸리나무는 연필처럼 가늘고 탄력 있고 잔가지가 많아서 마당을 쓰는 빗자루로 쓰였다. 바닥을 쓸 때 잎이 떨어지므로 잎은 훑어서 제거했다. 벌로 종아리를 칠 때 휘는 나무가 싸리나무다. 울타리 재료로도 쓰였다. 변소 가림막으로 쓰는 건 드물다.






그때는




장맛비가 내리면 가매기 삼거리뿐만 아니라 전국이 다 그랬던 거다.


봉구 아부지는 땅을 아끼려고 개울에 변소를 지었던 거다. 공짜 땅이고 식구가 일곱이라 한 칸으론 부족하니 두 칸으로 크게 지은 거다. 똥통 바닥과 발판 사이가 높아 위에서 똥 푸기가 어렵고, 똥통이 크니까 쌓이는 양이 많고, 뒤에서 퍼서 바로 개울에 버리면 편리하니까 똥통 뒤로 창을 낸 거다.


소는 아니나 똥통이  있다. 농사짓는 집은 집 근처 밭에 똥통을 따로 기도 했다. 넓게 땅을 파고 변소에서 푼 똥을 똥지게로 지어다 거기에 똥을 보관했다. 비료가 나오기 전이라 똥을 비료로 써야 하니까. 넓이와 깊이는 농토 면적에 비례. 위가 굳고 바람에 날린 흙이 덮이면 땅 같다. 거기가 똥통인지 모르는 사람은 지나다가 빠진다. 속은 늪처럼 끈적끈적해서 얕으면 어른 무릎 높이까지 깊으면 목 높이까지 똥이 차오른다. 아이는 키가 작으니 똥통에 빠져서 죽는 사고도 난다. 똥통에 빠져 죽는 거다.


비유적으로 쓰는 말로 똥통 학교.

 





지금은     

       



개울은 복개해서 이면 도로 겸 주차장이다.    

집마다 수세식 화장실이고 문에는 잠금장치가 있다.

똥뚜간, 변소, 화장실 그리고 새끼줄, 신문지, 휴지, 비데로 발전한 거다.

온갖 독성 화학 물질을 전 국민이 사시사철 무한정 쏟아낸다. 개울에 직접 버리진 않지만 결국 물로 간다. 그에 비하면 똥 푸는 건 일 년에 한 번 폭우 때이고, 개울 옆에 변소를 낸 집만 그랬고, 똥은 자연의 일부다..


올리브 피자가 봉구네 집 자리. 봉구네 변소는 그 아래쪽 개울 바닥 위에 있었다. 개울을 복개했으니 지금은 없다.







 

딴생각   




비가 퍼붓다 = 영어로 pour, 발음 포오. 파우어 아님.

비가 퍼붓다 → 포붓다 → 포 pour

외울 땐 억지로 갖다 붙인다.

포 pour 영어 시험에 발음이나 뜻을 묻는 문제로 가끔 나온다. 주로 발음 사지선다. 파우어로 찍기 쉬우니까. 아이에게 물어봐서 알면 어휘 중급 이상.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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