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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May 25. 2024

숲속의 사냥꾼

23화. 109인 대학 신입생 납치 사건

1983년


수색 정찰. 4명. 소대 선임하사 인솔. 나는 처음이다. 


시간여 산을 내려간다. 평지 소롯길. 중간 중간 사주경계 폼 잡아보고. 분대 이동시 각 앞뒤 양옆 즉 사방을 경계한다. 주변이 산인 너른 개활지. 관목과 수풀. 낙오된 슨 탱크 외로이  대가 이곳이 육이오전쟁의 격전장이었음을 웅변한다. 목에 턱 걸리는 무엇. 손으로 잡으니 철선. 가느다래 보이지 않았던 거. 당기니 팽팽. 하나의 줄이 저 멀리까지 이어져. 여기저기 선들 투성이. 이게 대체 뭡니까? 피아노선이야. 아, 헬기에서 쏘는 토우미사일을 탱크로 유도하는 그 선. 이래서 탱크가 헬기의 밥 백발백중이로군. 육이오 때 미사일 무장 헬기?최신 미사일 아님? 캐물으니 이곳서 헬기 훈련한다고. 전쟁 때 멈춘 적군 탱크 하나가 이후 집중 타겟이 된 것. 지지리도 운 없는 놈. 군을 휘몰아친 대가를 대표해서 20여 년째 불 몽둥이 찜질.


시간 돼서 철수. 뒤져봤자 산에 갇힌 벌판에 간첩, 무장 적군이 있겠나, 민간인이 있으랴. 왔던 소롯길 지나는데 왼편 둔덕에 사슴 출현. 세 마리. 50여 미터. 즉각 M16 소총 서서 쏴 자세. 실탄은 유사시 대비해 장전 상태. 안전 장치 풀고, 눈과 가늠자녀석을 겨눈다. 여신인 양 쭉 은 다리와 목선이 아름답다. 목 부위를 가늠쇠에 올리고 숨 정지. 방아쇠 당기려는 순간, 비웃듯 녀석 고개 슬쩍 돌려 둔덕 너머로 사라진다.


선임하사님, 쫒아가서 잡아오겠습니다!

해 봐.


노루는 잡으면 피 부르는 사고 터진다고 군 경험 충만하고 소대 엄마 격인 선임하사가 못 잡게 한다. 사슴은 아니다. 혼자 총 들고 냅다 숲에 뛰어든다. 녀석 섰던 둔덕에 올라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간 거지? 채집 이전의 인류에 각인된 사냥 본능에 후천성 왕호기심 작열. 거기다 첫 사냥의 희열. 따라잡으려 송곳처럼 숲을 한 방향으로 파고든다. 반 시간여. 바닥 돌에 두텁게 푸른 이끼가 밭을 이룬다. 숲이 깊다. 내내 평지. 사람 지난 흔적 전무.


아악, 미확인 지뢰지대닷!


지뢰를 묻었는지 아닌지 모르는. 행여라도 군인이 들어올 일 없는 숲이기지뢰 표지판마저 없다. 전쟁 후 나를 처음 받은 숫처녀일 지도. 순간 온몸에 소름 좌르륵. 소총을 전방 지향한 채 짐승 쫒는 허리 굽은 자세를 바꾸어 장승처럼 꼿꼿이 선다. 부동자세. 개죽음. 적 공격도 방어도 경계도 아니다. 훈련도 아니어서 기껏 사슴 하나 잡으려다 지뢰 밟아 죽는다면? 가문의 망신 아닌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탈출 작전.




ㅡㅡㅡ




최전방 철책 GOP, 그 안 GP에서 지뢰 밟아 죽는 군인 있다고. 더덕 캐다가. 향 엄청 짙다. 두어 발 주위면 후각 세포 강진. 굵다. 캐서 껍질 까 장에 찍어먹거나 짬밥에 넣어 비벼 먹거나 술 담근다. 소주 한 병에 손가락만한 작은 뿌리 하나 담고 밀봉. 땅에 소주병 둘 깊이 가량 묻어두어 달포면 양주로 변신. 25도 소주의 쓴 맛 사라지고 그윽한 향. 근데 복무중 더덕 채취 때문에 실제 지뢰 밟았다는 군인은 듣도 보도 못 한다. 더덕이란 게 산중 비탈에서 자라기 마련. 지뢰를 그런데 심으라 명령할 멍청 지휘관은 없다. 남이든 북이든. 달 없는 야밤에 이동하다 흘린 거라면 모를까. 이 또한 택도 없는 일. 그래도 안전 또 안전. 평지라고 더덕 영 없는 거 아니어서 인적 끊긴 평지 숲이든 개활지든 아예 발 들이지 말아야.


철책을 사다리 걸치고 넘어 월북한 이등병이 있었다. 북측 철책 닿기 전에 급히 잡으려고 장교 셋인가 허둥지둥 지피 안으로 진입. 대인지뢰 꽝. 전원 즉사한 사건으로 옆 부대 발칵. 철책 안 지피는 대인지뢰 밭. 풀숲 사이로 소롯길 빼고는 온통. 정확한 길 모른 채 서두르다 참변. 이걸 어찌 알았냐. 우리 소대 의무병이 잘려나간 팔 다리, 살점 수습해 사람 형체 만들고 와서는 구역질로 며칠 밥 한 술 못 뜨더라는. 대인지뢰는 땅에 묻힌 채 아니고 1미터 가량 공중 부양 후 터져서 살상력 극대화한다. 월북자는 저쪽 철책까지 다 가서는 그 아래 촘촘히 심은 지뢰를 밟았다. 인민군이 들쳐 없고 철책 넘어가.


지뢰는 만에 9,999 동물이 밟는다고 보는 게 맞다. 대개 멧돼지. 지뢰지대 표지판을 못 읽으니까. 체중이 인간과 전차 사이되 사람에 훨 근접하니까. 허나 지뢰 밟아 쾅 소리는 들어도 그 사체를 볼 일은 없다. 그렇다면 으레 평지고 지뢰 표지판 붙었을 거다. 멧돼지 고기 파티하겠다고 제발로 거기를 들어갈 군인은 없다. 노루, 사슴일 수도 있겠다. 어차피 확인 안 되니까. 오소리는 아닐 거. 가볍다. 다만 폭발 빈도는 세월 갈수록 줄어든다. 심지는 않고 터지기만 하니까.


시균이 다른 글에서 따온 다른 개활지의 지뢰 스토리




'진짜 사나이'에서.  얘기 아닌데 옮겨 쓰기 귀차니즘 이해하시압



이러한 미확인 지뢰지대를 반 시간이나 저돌한 거. 멧돼지 저 갑자기 돌.




ㅡㅡㅡ




이걸 어쩌나.


외쳐 보자. 선임하사니이임! 분대장니이임! 김 병장니이이임! 목젖 터져라 몇 번을 불러도 응답 없다. 거리뿐 아니라 위로 무성한 나뭇잎, 아래로 관목과 풀이 소리를 별미인 양 먹어치운다. 허긴 30여 분 뛰듯 왔으니 외침으로는 어림없다. 어쩌나. 여전히 제자리 붙박이. 단 한 발짝도 못 뗀다. 대인지뢰 심기 딱 적합한 조건이기에. 대전차지뢰는 사람 몸무게론 작동 안 하는 거로 알고 있고 냉면 그릇만 하니 눈에 뜨일 터라 염려 던다.


이번엔 입 대신  쫑긋 한껏 기울인. 멀리서 아주 희미한 졸졸 물 소리. 그래,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 당황은 1차 사고를 더 큰 2차 사고로 키운다. 냉철해야. 물길에는 지뢰를 못 묻지. 헌데 거기까지 어떻게 이동? 바닥에 바늘침 뭉치처럼 뾰족 튀어나온 거  없나 면밀히 확인 후 한 걸음, 그다음 한 걸음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눈 부릅뜨고 수 십 미터를 수 십 분에 통과. 시냇물. 한 칸 폭에 발목 깊이. 얕다. 태고의 물인 양 더없이 맑다.


살았다!


 위로 삐죽 머리 내민 돌을 딛고 선다. 위기 모면. 허나 목함지뢰. 도시락 크기로 직사각 나무 상자. 상자에 뭐가 들었나 뚜껑 열면 쾅 터지게 설계. 나무라 세찬 빗물에 흘러 냇가에 좌초. 눈에 확 띄기에 문제 없다. 개봉할 일 더구나 없어. 발목지뢰. 이게 무섭다. 땅에 심지 않고 숲에다 우수수 뿌린다. 어린애 주먹 크기. 군용 후레쉬 아래 뚜껑 모양. 작고 가벼워 장마, 태풍에 냇물로 수이 흘러든다. 물 속에 잠겨 있을 터. 보이지 않아. 그래, 커다란 돌만 밟자. 혹시 쾅 터지더라도 돌이 나 대신해 충격 흡수할 . 내 발목 날아갈 일 없다. 발목지뢰는 죽이지는 않고 발만 부상 시켜서 전투력을 상실한다. 부상자를 옮기는 전우. 둘을 전선에서 빼버리니 병력 수가 승패를 좌우하는 전투에선 이게 효과적이다. 고추든 사람이든 지뢰든 작다고 우습게 보다간 당한다.


 방향은 온 방향이고 물 흐르는 아래쪽. 겅중겅중. 돌만 골라서 딛는다. 큰 돌 작은 돌, 둥근 돌 사각 돌, 뜬 돌 잠긴 돌, 검은 돌, 흰 돌. 무척 지체되었다. 속도를 붙인다. 겅중겅중. 발로 건반을 연주한다. 제목. 숲속의 사냥꾼. 소나타. 천연의 속살에서 초연의 곡조가 물길 따라 흐른다.


이런 냇물 되시겠다.



ㅡㅡㅡ




푸다다닥!

굉음. 물에서


으아아악!

비명. 나


두려움은 현실이 되면 더욱 무섭다. 헌데 지뢰는 쾅인데  푸다닥? 즉각 발 아래 보니 물고기. 팔뚝만하다. 그러니까 커다란 명태 같은.  마리가 동시에 발작하니 지뢰 소리 못지않았던 거. 냇물에서 이처럼 큰 물고기는 본 적 없다. 한창 가물었던 거. 이리 푸드득 저리 푸드득. 녀석들도 쿵 딛는 울림과 난생처음 수직으로 선 기이한 동물을 보고 나만큼이나 기겁했던 거. 멀리 갈 물살 못되기에 근처 수풀에 몸 다 내보이며 꿩처럼 은신. 노루 대신 명태? 바다 아닌데? 따질 시간 없다. 순찰조가 나를 목 빠지게 기다릴 터. 고참 아니고 쫄다구. 갈길 멀고 발목지뢰 걱정이 끝난 거도 아니다. 짙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겅중겅중.


왜 이렇게 늦어. 걱정 했잖아.


선임하사는 빈손인 나를 질타 반, 몸 성한 나를 보고 안심 반.


선임하사님, 이따만한 고기가 네 마리.


팔뚝 내보이며 설명하니 김일성 고기란다. 당장 가잔다. 넷이 개울 타고 바삐 오른다. 발목지뢰 피하는 요령 알려주니 따른다. 상관이라도 실전 경험 없기는 매한가지. 발 안 날리려면 별수 있나.  함께 겅중겅중.


푸다다닥!


역시나 반은 잠기고 반은 내민 몸뚱아리. 녀석들 운수 조진 날. 수직 괴물을 두 번이나 만나다니. 더욱이 이번은 넷. 더더욱이 잡자고 달려든다. 1:1 각개전투. 각자 한 마리 쫒는다. 나 역시 한 놈 몸통을 양손으로 꽉 쥐어잡는다. 헌데 미끌. 몇 번을 손아귀에 넣자마자 바짝 조여도 미끄덩. 천하장사 미꾸라지. 본래 고기란 머리는 두고 꼬리를 흔들어 전진하는 이치. 허리를 잡히면 머리와 꼬리를 반대로 용틀음. 그 사이 척추는 탄력을 얻는다. 온몸에 비늘은 비누 모냥 미끄러우니 아무리 해도 손으로는 잡을 수 없다. 넷 다 열일 텀벙텀벙뿐 하나같이 빈손.


동작 그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발상 1.군복을 벗어서 고기를 감싼다. 낫다. 헌데 워낙 힘이 센데다가 옷에 비린내. 발상 2.소총 개머리판으로 내리찍는다. 엑셀런트 아이디어. 즉각 실행. 돌과 돌에 양발 넓게 딛는다. 소총을 양손으로 잡고 개머리판을 물길 중앙을 겨눈다. 순찰조에 쫒긴 고기가 돌 사이를 통과할 때 있는 힘껏 등을 내리친다. 오, 역시나. 비틀비틀. 몸 솟구쳐 붕 날면서 체중 실어 최후의 일격. 기왕 죽일 거 고통 줄여줘야. 전사의 예절. 단 두 방에 작살낸다. 물가로 한 마리 던지고 나머지 셋도 같은 어로. 하나씩 개머리판으로 때려잡는다. 괜히 김일성고기라 이름 아니어서 상식으론 잡을 수 없다. 탈출의 소나타는 학살로 클라이맥스.



ㅡㅡㅡ



수색 정찰 전무후무 대성과. 그날 밤 24시경 기상. 야간 경계 근무. 소초실 즉 소대장 방 지나는데 어랏, 중대장이 왔네? 충성. 선임하사도 함께다. 셋이 김일성고기 매운탕 먹고 있던 거. 나를 보고도 먹으란 말 않는다. 쓰벌, 내가 발견했고 내가 잡았는데. 쓰벌, 네 마리씩이나 되는데. 쓰벌, 위험 무릅쓰고 미확인 지뢰지대 휘저은 끝에 잡은.거구만. 쓰벌, 그게 목구멍에 넘어가냐? 노 상병은 초소에 다다랐 별빛 찬란밤하늘을 바라본다. 허무.


김일성고기는 열목어다. 숭어 빼어닮아 늘씬하다. 눈에 띄는 특징은 대가리 빼고 몸통에  수 십. 점은 검정 개구리알을 투명 보호막째 몸통에 심은 듯 뚜렷하다. 둥글고 큼지막하며 배열 불규칙. 1급수 이상 0급수에 서식. 눈에 열이 있어서 열목어라는데 과연 그러한지. . 그래서인가 가장 서늘한 최상류 계곡에서 보인. 고지대라 기온이 낮다. 나무 뿌리가 방금 뱉어낸 물과 양쪽 숲이 던진 그늘. 그 삼 박자가 어우러진 신비한 곳. 바위 아래로 넉넉 깊은 물. 비운의 주인공 넷은 가뭄에 나와 조우하는 불운까지 겹쳐. 지금은 천연기념물. 쓸데없는 발상으로 청춘에 잔인함뉘우친다.


그곳 수색 정찰은 단 한 번이었다.


이거 두 배 크기 되시겠다





입대 8개월부터 살아서 전역 하기로 마음 바꿔 먹어. 허나 지리한 군 생활.  재미난 거 없나, 새로운 거 없나 고질 도져서 오바한 거. 덕에 별난 에피소드가 수두룩하기는 하다. 그전은 납치된 강박에 스스로 고문관 갖은 고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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