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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Jun 25. 2024

야, 빨간 빤스다

34화. 응답하라 1968-놀이 편


여자 사람



꼬맹이는 여름이면 반바지 벗고 고추를 드러내고 세상 시원하게 집 밖을 돌아다녔다. 집 옆 공터. 사람들이 지나는 신작로 가에서 똥을 누었다. 국민학교 가면서 그게 창피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서 고추 아닌 건 어떤건지 궁금해진다. 이때쯤이다. 여자  아이에게 장난을 건다. 또래면 놀리거나 골린다. 고무줄 놀이하면 끊는다. 여자 애가 친구인 적은 없어서 누구나 그랬다. 놀리니까.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호기심을 풀기 위한 모험은 해가 지나면서 대담해진다.



ㅡ실폭탄



실을 양손으로 양쪽으로 잡아당기면 가운데 매달린 폭탄이  터진다. 해질녘 어둑어둑. 뒷골목 중앙 왼쪽에 여자 아이 집의 양문 대문. 양쪽 손잡이 부분을 묶는다. 문을 열면  터져서 깜짝 놀라게. 문 쿵쿵 두드리며 그 애 이름 부른다. 담장에 몸 바짝 붙여 숨는다. 잠시 후.


.

아아악. 엄마 어떡해. 장갑이 탔어.


비명이 너무 다. 게다가 엄마를 부른다. 깜짝 놀라서 같이 간 동무와 냅다 튄다. 뛰면서 돌아보니 장갑을 들고서 어쩔줄 몰라. 골목을 나서서 웬 장갑? 실폭탄은 소리만 나는 건데? 아악. 가운데 폭탄을 잡은 거였다. 손안에서 터진 거였다. 큰일났다. 미안했고 그 애가 걱정됐다. 엄마가 알았고 털실 장갑이 탔으니까 따지러 올 거다. 불안 불안. 다음날 그 다음날도. 아무일 없다. 내 얼굴 봤을텐데. 뒷모습만 봤나. 너무 놀라서 못 봤나? 그 아이는 이사 온 지 얼마되지 않았다. 예뻤다. 그래서 그 집을 골랐던 거.



ㅡ세탁소집 딸



어리면 때린다. 앞산에 무덤. 옹달샘 가는 도중에 봉긋 솟았다. 산쪽 계곡으로 가까이 약수터가, 몸을 돌리면 아래로 동네가 보인다. 어느집이나 옹달샘 물을 먹을 물길으러 오간다. 무덤은 지나는 길이다. 세탁소 집 둘째 딸을 무덤으로 데려가 세워놓고 두어 대 쥐어박는다. 얘가 성깔이 있어서 안 운다. 덤비지는 못 한다. 이유 없다. 반응을 보려고.



ㅡ고씨네 딸



언니가 나를 쫓아온다. 자기 동생 괴롭힌다고. 신작로를 가로질러 뛴다. 집 들어와 후다닥 문 걸고 광으로 숨는다. 판자에  옹이 빠진 동그란 구멍으로 내다본다. 판자는 소나무를 제제소에서 기계 톱으로 켠다. 소나무 진이 한데 뭉쳐 나무에 박힌 솔. 판자가 마르면 틈이 생기고 빠지기도 한다. 덩어리는 잘게 쪼개어 불쏘기개로 쓴다. 성냥불을 붙이면 기름 연기가 시커멓다. 일제가 기름이 부족하니까 관솔 기름 얻을라고 소나무를 다 베었다고 들었다. 언니는 동생이 맞은 거보다 꼬맹이 달음질을 놓친 게 분해서 씩씩댄다. 문 쾅쾅 두드린다.  말고 집에 아무도 없으니 응답도 없다. 서성인. 한참을 그러더니 들으라고 문에 대고 고함. 너 보이면 가만 안 둔다.  살 차이 여자무섭다.



ㅡ이쁜 처녀



시집 안 갔으면 다 처녀라 했. 늦으면 노처녀. 젊은 처녀를 우리집 옆 신작로 다리 밑에서 노린다. 어른 한 길 높이. 여자가 지나면 치마 속으로 빤스가 보인다. 야, 빨간 빤스다. 들으라고 큰소리. 아래로 내려다 보곤 싱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다. 이상하다. 화를 안 낸다. 더 이상한 건 하나같이 여자 빤스는 빨간색이라는 거. 허긴 집에 누나들 거도 다 빨간색이다.



ㅡ폭음탄



실폭탄에서 실을 뺀 거. 손가락 마디 둘 크기와 굵기. 원기둥 끝에 심지가 달렸다. 심지에 성냥불 붙이면 심지가 타들어간다. 쾅. 폭음. 화약을 종이로 말은 거라 파편은 종이. 이걸 대여섯 개 묶는다.


다리 지나는 처녀. 원래 하나를 던졌다. 바닥을 구르다 . 어머. 별 반응 없다.

해서 묶음탄 개발. 모든 심지에 빠르게 불 붙인다. 휙 던진다. 쾅쾅쾅 터지는 거 보고 다리 밑으로 숨는다. 이건 놀란다. 효과 있다. 연속해 터진다. 이런 거 본 적 없다. 폭음탄 하나야 애들 노는 거 늘 봤다. 이건 뭉쳐서 얼핏 수류탄 같다. 보고 놀라고, 지지직 불꽃 여럿에 놀라고, 쾅쾅쾅 소리에 놀라고, 하나 터질 때마다 개구리처럼 펄쩍 뛰니 놀란다. 화낼 거 뻔하다.


마지막 묶음탄. 이 사건으로 더 이상 않게 된다. 던진다. 헌데 바닥에 떨어지는 게 안 보인다. 어디갔지? 순간 쾅쾅쾅 소리와 함께 머리에서 연기 모락. 여자 어른이 주저앉아 엉엉 운다. 앗, 큰일났다. 튀자. 다리 밑으로 들어가 봤자 내려오면 잡힌다. 남자 친구 있으면 죽는다. 다리 아래 반대편을 지나서 개울 밖으로 나온다. 산쪽으로 달린다. 각오했는데 일주일 지나도 잡으러 안 온다. 엄마도 아무말 않고. 동네 처녀 아니니 날 몰랐거나 포기했거나. 따진들 애가 장난한 걸 가지고 뭘 그러냐는 분위기. 위험을 알았기에 그날 이후로 묶음탄, 폭음탄을 멀리했다. 대신 신호탄. 폭음탄에 가느다란 대나무를 박았다. 땅에 사선으로 세우고 심지에 불 붙이면 쐐애액 공중으로 높이 날아 포물선. 수십 미터를 난다. 사람 상할 일 없기에 한동안 빠졌다.



ㅡ양장점 처녀



동네에 양장점이 생겼다. 아저씨가 하는 양복점이었는데 그만두고 그 자리가 여자 옷으로 바뀐 거. 처녀였다. 얼굴 이쁘고, 다리도 미끈하다. 나풀나풀 꽃 원피스가 몸 맵시를 더했다. 주인집인 김 목수네 변소. 한 칸. 땅 아끼려 좁게 지어 사람 하나면 사방이 꽉찬다. 세 든 집 둘도 함께 쓴다. 가게니까 손님들도. 자리가 안 날 때가 더 많다. 한여름엔 냄새와 갇힌 공기의 열기가 콧속을 훅 끼친다. 금방 땀 난다. 옷에 다 밴다.


봉구네 변소. 옆으로 돌아서 가야지만 그쯤이야. 2인용에 칸막이 없어 세 배 넓다. 높다. 바람 숭숭 시원하다. 똥통을 개울 바닥에 브로꾸로 쌓았다. 아래 뒷쪽으로 똥 푸는 구멍을 창처럼 커다랗게 사각으로 내었다. 아래서 위로 개울 바람 확확. 개울도 계곡이고 막히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산에서 내려온 차가운 냇물에 서늘해진 공기.


꼬맹이는 처녀가 봉구네 변소를 들어가는 걸 보았다. 그 창 구멍으로 아래 위로 휑하니 바람 통하는 만큼 눈길 또한 위 아래가 통한다. 우리집 식구가 많아 변소가 차면 배는 아프고 봉구네 변소를  툭 하면 써봐서 잘 안다. 아래 내려다 보면 눈이 마주칠 거고 혼난다. 다만 똥 누려고 앉으면 눈 방향이 같다. 둘 다 앞을 향하니 눈길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고 앉으면 궁둥이가 뒤쪽 창을 가린다. 그치만 들어가서 디딤대에 양다리를 벌릴 때는 아래를 본다. 그때는 피해야 한다. 들어가서 앉은 후에 창에서 좀 떨어져서 올려다 보면 안 들킬 거. 꼬맹이 작전 계획 완료. 언제 변소 가나 기다린다. 양장점을 나와 뒷길쪽으로 간다. 꼬맹이. 개울로 폴짝 뛰어내려 멀리서 뒤를 쫓는다. 변소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후 접근. 창에서 떨어져 허리를 굽히고 위를 올려다 본다. 어른 키높이.


시커멓다. 뭐야 이거? 그늘져서? 끄응 소리. 똥구멍이 동전 모양으로 꽃 피듯이 활짝 벌어진다. 동시에 웬 놈이 쑤욱 머리를 내민다. 죽 늘어난다. 똥 덩어리. 방앗간 가래떡 같다. 색, 냄새는 다르다. 더럽다. 뚝 떨어진다. 풍덩. 에크, 똥물 튈라. 창턱 넘을리 없기에 눈을 한곳에서 떼지 않는다. 그리곤 오줌 쏴아 콸콸 쏟는다. 폭포수. 더럽다. 몸 뒤척이면 얼른 뒤로 한걸음. 들키면 놀랄까봐. 조용하면 다시 앞으로. 몇 번 끄응 하더니 금방 끝. 서서 후루룩 치마 올린다. 자세히 봤는데 잘 모르겠다. 다시 시도. 때마다 역시 시커멓고 더럽다. 변소 가는 거 눈에 띄면 뒤 따라가 똥 싸는 구경. 빤스는 여자 사람 차별 안 해서 늘 빨갰다.


누가 나를 볼까봐 걱정된다. 처녀가 똥 싸는 걸 구경하다니. 창피하다. 호되게 혼날 일이다. 누가 나처럼 이러면 어떡하지. 부끄러워할까봐, 소문낼까봐. 아이고 어른이고 다행히 나 말고 이러는 이 없었다. 입에 자물통 꽉 채운다. 친한 동무 조차 말 않는다. 변소의 주인 집 아들 봉구, 양장점 주인 집 아들 명준, 그리고 방앗간 집 우택. 싸는 건 통쾌했으나 장사가 시원찮았는지 얼마후 가게를 접었다.


학교 갔다 오전반 12시 끝나 집에 오면 해 질 때까지 노는 거 말고 시간 보낼 일이 없다. 남자 동무들은 늘 같은 놀이다. 새로이 개척한 였다. 양장점 처녀는 가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국민학교 3학년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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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하여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이런 걸 써야 하나 망설였다. 쓴 건 사내 아이가 이때쯤 이런 호기심이 생겼고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거다. 본 글이 속한 응답하라 1968. 당시 생활상에 덧붙여 교훈의 목적이지 다른 뜻 없다.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쓴다는 것도 책의 머릿글과 본 글 말미에서 밝혔다. 그렇지만 이런 글은 아니다 댓글 달면 이 부분 삭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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