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재 가는 길
35화. 응답하라 1968-직업 편
ㅡ굿
덩덩 덩더쿵. 덩덩 덩더쿵. 북 소리에 맞추어 무당이 덩실덩실 온몸으로 춤을 춘다. 제자리서 높이 솟았다 내렸다 연실. 울긋불긋 옷 제 바람에 너풀너풀. 오른 손에 쇠 방울 서로 부딪혀 쩔렁쩔렁. 산삼 꽃을 닮아 방울 여럿을 모으고 아래로 대를 잇고 손잡이. 한참을 신들린 듯 보이더니 흰 고무신과 새하얀 버선을 벗는다. 부엌칼 두 배 폭 진짜 칼로 바꾸어 손에 잡는다. 한 길 높이 작두에 오른다. 작두를 탄다. 다리 폭으로 평행, 위를 향한 두 개의 커다란 칼날. 맨발 한 발 딛고 다른 발로 내딛는다. 발로 눈 삼고 눈은 정면 향하고. 발바닥 썩 베일까, 붉은 피 쏟을까. 보는 이들 제 발인 양 섬뜩하다. 멈추어 선다. 손에 쥔 칼끌으로 지붕 위 한 곳을 가리킨다. 귀신아 물렀거라. 귀신아 물렀거라. 뭐라 뭐라. 갸냘픈 여자 몸에서 어찌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쩌렁쩌렁 고함치며 칼을 겨냥한다. 휙 내던진다. 집 앞 신작로 변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
ㅡ처첩
염 목수는 처와 첩 하나를 두었다. 한 지붕 아래 두 가족. 집이 안으로 길다랗다. 안쪽으로 본처, 입구 쪽으로 첩. 중간을 부엌으로 갈랐다. 처답게 염 씨만한 나이. 아들 둘. 신작로 쪽으로 첩. 젊고 예쁘고 늘씬했다. 엄마 닮은 딸 하나 먼저 낳고 아들 둘 두 살 터울. 처의 아들이 첩의 딸보다 나이가 위인 것으로 보아 아들 둘 보고나서 첩을 들인 거. 나무를 다루는 목수는 수입이 좋았다. 막내 아들 열 살 되던 해. 첩은 신내림을 받았고 무당이 된다. 첫 굿을 제 집에서 치룬다.
ㅡ번재고개
꼬맹이 셋이 고개에 다다른다. 가매기삼거리에서 북동으로 2키로 걸으면 고개. 동네를 벗어나면 고개까지 오르막이 내내 이어진다. 양쪽으로 산. 사이가 제법 넓다. 너른 논, 덜 너른 논, 그다음 좁은 논. 끄트머리에서 과수원. 오른편은 경사면에 크고, 왼편으론 평지로 작다. 둘 다 복숭아. 시 중앙을 바로 아래로 내려다 보는 봉산미에서 북서로 뻗은 능선. 가장 패인 곳을 잘라서 재로 삼는다. 우 능선에 천주교 묘지, 좌로 공동묘지. 너머로 번재마을. 이편은 초가집 한 채씩 드문드문. 묘지고개가 어울릴 법하지만 번재고개라 불리었다.
ㅡ황골
꼬맹이 셋이 고개를 넘는다. 동네에서 치악산 가는 길은 하나뿐. 고개 이름이 무엇인지 모른다. 오직 치악산쪽으로 터벅터벅. 온 길만큼 멀다. 황골 계곡. 맑고 차다. 커다란 바위. 낚시대를 만든다. 나뭇가지 주워 끝에 실 묶고 반대 끝으로 미늘을 단다. 못 닮아 종이 꽂는 가는 핀을 휘어서 집에서 만들었다. 미늘에 파리 꿰어 개구리를 잡는다. 연필 깎는 칼로 배와 다리를 나눈다. 다리를 편편한 돌 위에 놓고 주먹 돌로 찧는다. 이번엔 미늘에 개구리 다리 하나를 꿴다. 바위 아래에 낚시를 찔러 넣는다. 피 냄새, 살 내음이 물속에 진하게 퍼진다. 실 움찔. 굽은 실이 펴진다. 대를 당긴다.
가재가 집게로 다릿살을 꽉 물고 놓지 않는다. 어른 낚시에 낚이면 고기는 온몸을 비틀며 턴다. 내가 만든 핀 낚시를 문 개구리는 뒷다리를 찬다. 미늘에서 벗어나려고. 녀석은 반대다. 미늘 아니라 개구리 다리를 문 거. 달아나니까 누가 뺏어가는 줄 알고 온힘을 집게에 모은다. 가매기삼거리 개울에서 가재는 안 보인다. 거슬러 앞산, 뒷산은 가야 하나 산 물 졸졸 바닥을 묻히는 정도. 해서 잘다. 그마저 드물다. 사람이 살고 눈에 띄면 잡으니까. 황골 가재는 굵다. 새끼 아니고 갑옷 두른 장수. 이 바위 저 바위 훑으니 마릿수 제법. 서늘한 계곡에서 한여름 한때가 즐겁다. 처음 와서 더욱. 꼬맹이에게 사방 100미터인 동네를 벗어나면 원정이고 여행이었다. 4키로는 횡성 처녀바위 다음으로 먼 거리였기에 더더욱.
돌아오는 길. 얼마 못 와서 준근이가 걷지를 못 한다. 지친 건 아니어서 아예 발을 못 뗀다. 땅에서 발이 안 떨어진다고. 아무리 해도 안 된단다. 몸은 안 아픈 거 같다. 집까지 업고 오기에는 너무 멀다. 어려서 힘도 부족. 부지런히 집에 와서 준근이 엄마에게 알린다. 염씨 아저씨 일 나가고 없어서 동네 어른이 등에 업고 왔다. 앞 방에 누였고, 그날부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 한다. 준근이 엄마는 귀신이 붙은 거란다.
ㅡ무당
칼 던진 자리는 아들이 누은 바로 위 지붕이었다. 며칠 후 준근이가 집 밖을 나섰다. 예전처럼 잘 걷고 잘 뛰어놀았다. 굿은 확실히 효험을 보았다. 집 앞 신작로 가에서 요란했기에 인근으로 금방 소문이 퍼졌다. 준근이 엄마는 여기저기 불려다녔다. 나는 번재고개를 두 번 다시 넘지 않았다. 치악산에서 귀신이 붙어 올까봐. 공동묘지가 있어 무서워서 원래 가지 않던 길이었다. 가재 욕심에 처음 지났던 거. 애써 잡아온 가재는 먹지 못 하고 준근이 업어오던 그날 내다버렸다.
1968년 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하여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 지금은
혹시 꾸민 일?ㅎㅎㅎ
마케팅이지 뭐.
그럼 어때. 굿 구경 제대로 했응께.
준근이 엄마. 보고싶어요.
그날 굿춤은 무서웠으나 이제와 아름다워요.
준근이도 그립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