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un 27. 2024

달팽이 소년

36화. 응답하라 1968-놀이 편


지금 횡성 치마바위에 달팽이 천지래. 그으래? 당장 가자. 달팽이 잡으러. 우렁이는 발꼬락으로 잡아봤다. 달팽이 삶은 거 뒤 깨고 앞 쪽쪽 빨아 여름이면 먹었지만 잡은 적 없다. 생각만 해도 신난다. 횡성이 어딘지, 치마바위가 얼마나 먼지는 모른다. 방향은 안다. 가매기삼거리 북신작로다.  달팽이 줍는 거 따위에 준비는 필요 없다. 맨몸뚱이. 꼬맹이 넷은 힘차게 발을 내딛는다.


횡성이 어디야? 치마바위는?


출발할 땐 들떴다. 동네 있어봐야 늘 노는 게 같다. 여름방학이라 학교도 안 간다. 오전반은 학교서 보냈는데 방학이라 아침부터 단짝 넷이 모이니 뭐 하고 놀지 몰라 무작정 길 떠난 거. 사방 100미터 가매기삼거리를 벗어나면 원정이고 모험이었디.


ㅡ서쪽. 배부룽산


시내 가로지르면 만삭 배처럼 불뚝. 두어 해에 한 번. 멀다. 샘물 없어 목 말라. 뱀  많다는데 뱀굴도 보이지 않아 굴 쑤시는 재미마저 없다. 놀 일 영 없으면 남향. 시에서 북쪽 첫 산이 봉산미라면 남쪽 첫 산 배부룽산. 4키로 여.


ㅡ남. 신대리연못


마음이 앞선다. 저수지라 목욕, 진흙뻘이라 우렁이 우글우글. 한 길 넘는다. 수직으로 솟았다 몸무게로 수직으로 내리면 발이 바닥에 닿는다. 떠오르기 전에 빠르게 발가락으로 꾹꾹꾹. 운 좋아 엄지 사이로 끼면 몸 접어 한 마리. 대개는 위치만 확인 후 자맥질. 거꾸로 물속을 헤집고 들어가 손으로 바닥 다시 꾹꾹. 단단하면 우렁이. 서너 번 중 하나는 둥근 돌맹이. 아무리 많다해도 바닥이 우렁이 장판은 아니기에 발 손 꾹꾹꾹. 물놀이 겸 우렁이 잡기. 한 나절 놀다보면 한 무더기. 오갈 때 기찻길 통과는 덤이다. 시내가 철교, 축대인 거와 달라서 여기는 땅바닥에 철로. 해에 잔뜩 달군 쇠와 자갈이라 잠깐이지만 저 멀리 뻥 뚫린 선로에 마음도 뻥. 어디로 가는 걸까? 두어 번 물어도 아무도 답 없다. 가는 길도 연못도 철길도 텃세란 없다. 해마다 두어 번. 허나 멀어서 큰맘 먹어야. 3키로여.


ㅡ북동. 소일연못


장수잠자리 잡으러. 우렁이 한 마리 없으면서 텃세가 드세다. 고등학생, 동네 어른까지 나서는 대사건. 이후로 발 끊는다.


https://brunch.co.kr/@sknohs/1477



ㅡ동. 치악산 황골


가재 잡으러 딱 한 번. 굿판까지 벌렸으니 다시는 갈 엄두 안 나.


https://brunch.co.kr/@sknohs/1522



ㅡㅡㅡ



ㅡ삼거리


가매기삼거리는 윗삼거리, 아랫삼거리 둘 사이 100여 미터다. 아랫 삼거리에서 갈라지는 신작로 둘. 남동 신대리연못, 서 배부룽산. 윗삼거리도 갈리는 신작로 둘. 북동으로 소일연못. 동. 도로 뒤편 구루마 길 타고 가면 번재고개 넘어 치악산 황골마을.


ㅡ새동네


그러니까 윗삼거리 북쪽 도로 하나만 못 타본 거. 백 미터 거리 새동네 입구까지는 가봤다. 삼거리 다음이 옻공장. 삼거리도 아니고 새동네도 아니고. 그러기에 둘 다인. 공장 전면이 오십여 미터. 굉장히 길고 크다. 새동네는 두 아저씨와 한 동무로 안다. 휘발류 김씨, 산수 과외 선생님, 그리고 1,2학년 같은 반 동무인 김제일.


과외래봤자 쌀 값 좀 드린다. 하꼬방 방 한 칸에 혼자 사셨다. 군대 갔다와서 그런지 늘 군대 반합에 밥을 짓는다. 반합째 숟가락으로 파서 드신다. 선생님이라 그런지 보리 한 알 안 섞고 새하얀 이팝. 년 배운다. 과외란 게 쌀 아깝다 여겼는지 끝. 동무는 고아였다. 두 살 위. 어리면 가매기삼거리 북단에 자신보육원. 좀 크면 새동네 자활대. 어른용이라 어린애 몸 만한 넝마통을 짊어진다. 시내를 오간다. 팔 만한 건 무엇이고 집게로 집어서 등뒤로 넘겨 담는다. 버리는 양도 적지만 서로 훑어서 돈 되기 쉽지 않다. 안 하느니 낫다. 스스로 활동하는 무리라는 단체 이름. 모아서 팔아 먹는데 보탠다. 휘발류 김씨는 유명했다. 우리 동네뿐 아니라 인근 마을 모든 돼지들의 아버지 격이었다. 그뿐인. 고물상에서 포탄 꽝 터져서 즉사. 좋은 점이 영 없지는 않다. 새동네는 새로 온 사람들이라서 텃세는 없다. 헌데 사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안 간다. 선생님만 새동네 입구라서 잠깐 들렀다. 새동네? 육이오전쟁 나면서 피난민. 새로이 생겨서 새동네. 헌동네도 있겠네?평원동. 기와집 즐비한 부자 동네다. 강원감영 쪽이니 적어도 조선시대.  봉천내가 서와 동으로 헌과 신, 부와 가난을 갈랐다.



https://brunch.co.kr/@sknohs/100



https://brunch.co.kr/@sknohs/104



ㅡㅡㅡ



ㅡ현충탑


새동네 후딱 지난다. 우로 길 꺾으면 현충탑. 육이오전쟁 때 죽은 군인 아저씨들 혼을 모았다. 해마다 6월 6일 현충일이면 큰 행사. 현충탑 뒷산 너머가 소일고개, 그 우측 산에 화장터, 공동묘지. 나 사는 태장동은 죽은 영혼과 산 사람이 어울려 산다.


현충탑에서 봉천을 만난다. 둑길로 가면 태장2동. 다시 신작로. 북단 좌 1군 사령부, 우 캠프롱 미군부대. 부대가 있으니 시 외곽. 여기까지 집에서 4키로여.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불 붙는다. 지친다. 아침 일찍 먹은 배가 꺼진다. 물도 없어 목 마르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는다. 여기서부터는 그냥 논이다. 끊임없이 논이다. 가도 가도 논이다.


횡성이 어디? 치마바위는 어디?


서로 수없이 물었다. 어쩌다 지나는 군용 트럭, 더 귀한 버스를 세워 물어볼 수도 없고. 달팽이는 물에 살고, 내든 강이든 보여야 물을 찾는데 먼지 풀풀 신작로만 끝없이 이어진다. 달팽이고 뭐고 냇물이든 강물이든 보여야 머리 처박고 물이라도 들이킬 텐데.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대여섯 시간을 걸은 거. 돌아가고 싶다. 너무 멀리왔다는 걸 알기에 그럴 엄두가 안 난다.


앗, 저거닷!


아카시나무 새 순. 몇 가닥 삐죽. 꺾어 껍질 벗겨 먹는다. 달다. 헌데 턱없이 양 적다. 그래도 이거밖에 먹을 게 없다. 평소 정 심심하면 재미로 까먹는 거. 그게 무슨 밥 아니고 먹을 물은 더구나 아니다. 신작로 곁 아카시나무 새순 찾느라 지친 길을 힘낸다. 한여름이라 그마저 드물다. 아카시아꽃 제철 지나 없는데 새순은 무슨. 어쩌다 두엇. 번갈아 가며 나누어 먹는다. 다시 걷고 또 걷는다. 기진맥진. 그나마 해 뉘엿. 땡볕은 피했지만 열기는 여전하다. 탈진. 꼬맹이 넷은 그래도 간다.

횡성? 치마바위? 그 바람도 이젠 버렸다. 되돌아갈 수 없으니 반걸음이라도 나아갈 밖에.


시균아아아, 시균아아, 시균아.


멀리서 누가 부르는 소리. 뒤돌아보니 아부지. 자전거 타고 달려온다. 꿈인가 생시인가. 아부지가 이리 반가운 적은 없다. 첫아들 태어났다고 문 위로 새끼줄에 새빨간 고추, 새카만 숯덩어리 주렁주렁. 고추야, 고추거든. 딸만 셋 본 두려움은 환희로 돌변했다. 젖 떼고 걸으니 그 비싼 자전거 사서 앞에 쇠창살 바구니를 달아맨다. 나 얹어 태우고 동네방네 누빈다. 내 아들이야, 내 아들이거든. 말은 않아도 다들 그런 줄 안다. 그런 장남이 없어진 거. 점심 때가 한참 지났는데 집에 안 온다. 사고 났나? 심장 덜컹. 동네 애들 싹 다 붙들고 물어보니 저쪽으로 넷이 갔다고. 달팽이 잡으러 간다 했다고. 자전거 집어타고 허겁지겁 달려온 거.


횡성 치마바위는 가지도 못 했지만 태어나 가장 먼 길이었다. 그날 이후로 북쪽 길은 다시는 안 다. 횡성은 지구보다 멀어, 치마바위는 치마 닮은 바위일 거야. 백 미터 둘레 가매기 삼거리를 벗어나면  사건, 사고가 따랐다.


1968년 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하여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 그후



ㅡ고교 때 낚시 겸 처음 치마바위를 딱 한 번 찾아 가본다. 공군부대 뒤. 횡성강인가에 제법 너른 바위. 버스 탔고 치마바위서 세워 달라 했다. 걸어서 20여 키로.


공군부대까지 간 듯. 부대 끼고 큰 고개 넘으면 횡성이다. 그 서쪽에 횡성강과 출렁다리. 여기서도 도로에선 여전히 강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부대를 지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막바지엔 아카시나무 새순만 찾았지 주변을 둘러볼 여유라곤 없었다.


ㅡ개구리 소년


1991년. 5명. 국민학교 3,4,5,6학년. 도롱뇽 알 잡는다며 갔다고. 그건 깊은 산. 사람 손 탄 곳은 못 산다. 초행이었을 거. 산속에서 길 잃지 않았을까. 굶은데다 물 한 모금 못 마시면 탈진. 산중 밤이면 저체온. 그런 거 아닐까. 준비 않은 성인도 산에 갇히면 까딱하면 죽는다 . 산은 시대가 없다.  없는 산은 언제고 원시다. 우리 넷도 산이었으면 꼼짝없이 당했을 거.

매거진의 이전글 번재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