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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un 25. 2024

가매기삼거리 사람들

33화. 응답하라 1968-직업 편


(읽기 전에ㅡ긴 스토리다. 얼개는 잡았다. 이제 다듬어야.)



ㅡㅡㅡ



ㅡ전쟁과 사랑



육이오전쟁이 끝났다. 몸뚱이뿐인 는 가매기 삼거리에서 신혼을 시작한다. 청년은 대전서 태어나 자랐고, 여자는 이북 땅 철원서 월남. 전쟁 중 둘은 군부대 식당서 일했다. 대우가 나은 영어 통역관이 구애했지만 녀는 마음이 끌리는 노씨를 택했다. 청춘 남녀는 사랑에 빠졌다. 부대가 원주로 옮기면서 가매기 삼거리로 함께 오게 되었다. 거기서 애를 낳았다. 땅을 샀고, 식구가 살 집을 직접 짓고 뿌리를 내린다. 구씨네는 대지주였다. 어느때부터인지 모른다. 가매기 삼거리 사람들은 둘 중 누가 더 잘 살 건지 궁금해 했다. 기준은 둘이었다. 재산 그리고 자식. 



ㅡ구씨네 



구씨네는 일을 안해도 넉넉하게 산다. 동네에서 유일하다. 가매기 삼거리 일대가 논이었다. 북에서 남으로 가운데를 신작로. 삼국이 오가던 시대부터 난 길이리라. 서울 경기, 충청, 강원이 여기 삼거리에서 길이 갈리고 원주에서 삼 도 갈림길은 이 길뿐이다. 전부 구씨 아저씨의 아버지 땅이었다. 할아버지 최고이자 유일한 부자. 지주. 마을을 호령하는 주인답게 구씨 할아버지는 삼거리 서쪽 끝으로 엄청 큰 기와집에서 살았다. 정남향으로 안채, ㄱ 자로 90도 꺾어 신작로 쪽으로 방 다섯 사랑채. 안채는 대청마루와 커다란 방 둘. 양 채는 마당을 고스란히 품었다. 한 칸씩 나뉜 사랑채는 전쟁 끝나고 한 집씩 세를 주었다. 남쪽 끝은 동네 중심부라서 위치가 좋아 이발소가 들어섰다. 대문은 둘이어서 이발소 반대편으로 북쪽 끝 안채 직행하게 하나, 이발소를 끼고 골목 들어가서 마당으로 통과하게 하나. 주인 문, 하인 문이었으리라. 남쪽 대문이 있는 거로 보아 남쪽 역시 원래는 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두 채 다 신작로보다 반 길 가량 낮았고 길과 기와집 사이로 수로. 이웃해 작은 기와집 한 채 더. 윗삼거리와 아랫삼거리 100미터 사이 정중앙. 반에반 크기로 방 한 칸. 큰 기와집과 작은 기와집 사이로 두어 채 공간이 있었다. 방앗간. 도로쪽으로 문을 내어서 장사하고 뒤편 끝 구석에 방 한 칸.



방앗간



설날이면 밖까지 길게 줄을 섰다. 함지박에 쌀 대개 한 말. 적으면 반 말. 기계떡 즉 가래떡 손님들. 어느 집이고 그 떡으로 설을 났으니 옆, 윗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 주인 아저씨. 내 동무인 우택이 아버지다. 기계를 다룬다. 엄마는 잔일을 다룬다. 쌀을 씼는다. 기계에 간다. 떡가루. 떡시루에 넣고 수증기로 찐다. 김 무럭무럭. 팥을 쪄서 으깬 알과 가루를 중간 중간 뿌리면 팥떡. 대개 기계떡이다. 떡 뽑는 기계 위로 시루에 찐 떡을 꾸역꾸역 밀어넣는다. 동그란 동전만한 구멍 둘에서 하얀 떡가래가 쌍으로 나온다. 가위를 물에 묻혀 팔뚝 길이로 자른다. 들러붙지 않게 찬물에 한 번 잠겼다가 가져온 함지박에 차곡차곡 담는다. 며칠 전부터 설 분위기 달아오른다. 후끈. 구렁이처럼 긴 줄. 구씨네 기와집 앞까지 늘어선다. 설 전날은 줄이 이리저리 휘어서 신작로를 건넌다.


우리집은 아부지, 엄마 일이 바빠서 당일 새벽. 뜨끈하고 쫄깃한 떡만으로도 맛나다. 쌀밥 못 먹는데 온전히 쌀만으로 떡이라니. 조청 찍어 먹기도 한다지만 귀하다. 굳으면 부엌칼로 비스듬히 썰어서 떡국. 이걸 먹어야 한 살 더 먹는 거. 연탄불에 구워먹기도 하지만 그때까지 남아나질 않는다. 식구 입이 여덟이고 쇠라도 씹어먹을 어린 먹성. 보리밥 말고 먹을 게 생겼으니 삼 일이면 동난다. 어느 해부턴가 엄마는 시내쪽 방앗간으로 발을 틀었다. 떡 기계 내부에 박힌 떡을 빼서는 안 준다고. 다른 방앗간은 계속 기계를 돌리면 이전 사람 걸 다음 사람이 받는다. 우리 동네는 매번 기계를 세우고 속에 떡을 떼어내어 따로 모은다. 반 되 정도.  곰팡이 쓸지 않게 떡을 쪼가리 내어 햇볕에 말렸다. 우리집이 방앗간 옆이라 뻔히 보였다. 엄마 쌀인데.


방앗간은 사시사철 바빴다. 고추 빻기. 이건 절구식 쿵쿵 찧는 기계. 참기름 짜기. 이건 꾹 누르는 기계. 전기 스위치를 올리면 뒤쪽에 모터가 윙 굉음. 수건 반 폭의 두툼한 띠로 동력 전달. 용도에 따라 기어인가 바꾸면 그 기계 하나만 돌아간다. 아줌마는 체구가 작아 약해 보인다. 쌀, 떡시루 씼으랴, 고추 꼭지 따랴, 여섯 식구 세 끼 챙기랴. 손은 부르트고 입술은 메말랐다. 설 대목 한 번 치루고 나면 부쩍 볼품을 잃었다. 아저씨는 주머니에 늘 돈이 넘쳤다. 정육판길 좌측으로 작은 산 사면을 샀다. 키, 덩치가 컸고 넙대대. 말술. 이웃과 안 어울리는 편이었지만 다른 여자에게는 힘들여 번 돈을 썼다. 술집 과부와 정분이 났다. 신작로 한가운데서 울고불고 대판 부부 싸움. 술집 과부 쫒아가 머리끄댕이 잡고. 과부는 창피를 못 이겨 이사 갔다. 정든 여자를 잃은 아저씨는 돼지로 관심을 돌린다. 사둔 산에다 우리를 짓고 돼지를 키운다. 아저씨는 여자 대신 동물에게 들인다. 커다란 둥근 통. 쌀 씻은 쌀물에 말린 쌀떡, 참기름 짜면 나오는 깻묵을 담는다. 매일 일이 끝나면 짐 자전거 뒤에 통 싣고 산쪽으로 페달을 밟는다. 팔자 펴 호강한 돼지. 새 지저귀는 에서 사람 먹어도 될 먹이로 무럭무럭 자랐다. 새끼 쳤고 식구가 늘었다. 딱 거기까지. 남는 떡, 깻묵이면 됐지 생 떡, 참기름을 먹일 일 없었다. 넘치는 정력을 다스리기에는 오르막 길 자전거 힘차게 밟아 산을 오가며 돼지치기는 괜찮은 취미였다.



ㅡㅡㅡ



ㅡ똥비누



아부지, 엄마는 구씨 할아버지에게 작은 기와집을 끼고 논 450평을 샀다. 그 집에 살면서 같은 지붕 아래에 비누 공장을 차렸다. 공장이래야 아부지 혼자서 다 했다. 논바닥을 다진 마당에서 왕겨 태운다. 재를 물에 걸러 잿물. 폐기름과 섞는다. 굳힌다. 두부 반 크기로 자르면 비누. 까만 비누나 똥비누라 불렀다. 사업이 신통치 않다. 약국한다며 세를 달란다. 얼씨구나. 약사라니. 대학 나온 인테리가 세를 달란다. 기와집 내부를 둘로 나눈다. 도로쪽 공간은 합판으로 칸막이로 끝. 방은 공사. 방 한 칸을 2/3, 1/3 둘로 나누어 각각 아궁이, 구들장을 깔고 황토 벽돌로 벽을 쌓아 구분한다. 보건약국. 동네에 약국이 생겼다. 동네뿐 아니라 북쪽의 수 많은 마을들이 반겼다. 긁히거나 베인 데 빨간약 아까쟁끼, 활명수 소화제, 고름 빼는 이고약, 조고약 사러 시내까지 안 나가도 된다.



ㅡ국수집



아부지, 엄마는 기와집 삼분지일로 국수 만드는 가게를 시작한다. 앞 공간, 뒤로 식구들 자는 방, 그 뒤로 부엌. 국수 뽑는 기계 설치. 밀가루 치대서 위로 반죽을 넣으면 아래 앞으로 수건 닮은 허연 판이 되어 나온다. 두세 번 반복해 치대고나서 면 뽑는 쪽에 넣으면 판이 국수가 되어 가지런히 나온다. 수건 두 배 길이. 작대기를 중앙 아래를 걸고 기계에서 끝을 자른다. 가게 앞 건조대에 하나씩 넌다. 마른 후 젓가락 길이로 토막내면 국수. 종이로 둘둘 만다. 손님이 적어서 관둔다. 이번은 공장 말고 동물 키우기. 돼지치기. 시험 삼아 일 년 하다가 양계, 즉 닭을 대량으로 키우기로 한다.



양계장



아부지,기와집 뒤쪽, 산 땅의 북면에 양계장 30여 평 짓는다. 처음엔 모래 섞은 흙 바닥에 놓아 키웠다. 여기저기 낳아 놓은 알을 주웠다. 쇠창살 닭장에 투자. 켜켜이 쌓아 한 마리씩 가두니 마릿수 세 배. 더 빨리 살이 쪘고, 알도 닭장 앞으로 도르르 굴러서 일렬로 놓여서 주워 담기도, 닭똥 치우기도 한결 수월했다. 엄마는 계란 파는 일. 자전거를 사서 배운다. 뒤에 쌓아서 싣고 시내 식당 아무데고 들어가 거래를 튼다. 돈이 좀 된다. 헌데 예상치 못 한 게 하나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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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동네 전경



육이오전쟁 직후로 가매기삼거리 길가로 집들이 빠르게 들어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태장1동 전체의 진입로였다. 주위로 군 부대 셋이 에워쌌다. 윗삼거리 Y에서 V 부분 안으로 꽉 채워서 야병교. ㅣ 부분 아래 끝에 이어서 다시 삼거리.  ㅅ 모양 되시겠다. 우 사선에 붙어서 길다란 군부대엔 막사와 의무대. 그 뒤로 앞산. 좌 사선 붙여서 수송부대. 서쪽으로 봉천 제방둑에 담장. 그러니까 동네는 위, 아래 삼거리 사이 ㅣ 직선 신작로 좌우로 형성된 마을이었다. 이리하여 동네 전체가 장사 목자리. 게다가 시내 중심가로 걸어서 10분 거리로 가까웠다. 학성국민학교 중간이라 5분. 아이 걸음으로 10분. 자연스레 동네 집들은 길을 접한 전면은 가게로 쓰고 뒤는 방으로 썼다. 가게 한 칸에 방 한 칸.


길 동편. 북에서 남 순서대로 자전거포, 구멍가게, 염 목수, 대폿집, 연탄집, 쌀집, 막걸리집, 복덕방, 김 목수, 양장점. 길 건너 서편. 구씨네, 셋집 한 칸씩 넷, 이발소, 방앗간, 비누공장. 동편 뒷줄에 양어장. 그다음 논, 그다음 산, 서편 뒷줄. 개울가로 빵공장, 나전칠기 인간문화재, 골목, 대추나무집. 골목 안. 좌. 가옥 셋, 끝에 콩나물 공장. 우. 가옥 하나. 구씨네 골목. 좌로 한씨네 집, 우로 부화장, 끝 김 상사 집. 그외 동네 경계에 외딴 집 셋. 개울 북쪽 끝에 개울 왼편으로 기태네 집. 개울 중간이자 건너로 다리에 붙어서 우리집  초가집. 개울 남쪽 끝으로 여씨네 집. 그리고 동네에서 가장 늦게  남쪽이자 앞산 끄트머리 개울가로 개척교회를 나무판자로 지었다.


도로변 가게는 장사가 제법 되었으나 뒷줄은 오래가지 못했다. 개울가 외딴 세 집 빼고 모든 집은 구씨 할아버지에게 논을 사서 집을 지었다. 세를 놓은 집은 대를 이은 구씨 아저씨, 우리집, 김 목수. 세 집이었고 목수네는 터가 좁았다. 어느 집이고 부부가 젊었고, 아이는 어렸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이는 세탁소뿐이었다. 인간문화재가 할아버지나 아이가 부를 일이 없었다. 할머니는 구씨네 단 한 분. 몸이 아파 설날 세 배 갈 때 외엔 볼 수 없었다. 어느 집이고 아들 낳기에 부부는 희망과 운명을 걸었고, 아이는 어른 수의 3배 가량 되었다. 동네는 아이들 웃고 울고 뛰놀고 싸우는 소리로 가득찼다. 싸우거나 말거나 어느 집도 아이들 노는 거에 신경쓰지 않았다. 구씨네 말고는 집마다 삼시세끼 먹고 사느라 바빴다.


단 하나 동네에 변함 없는 화제가 있었다. 둘 중 누가 더 잘 사는가? 대를 이어 땅부자인 구씨네와 새로이 터를 잡은 노씨네를 견주었다. 구씨네는 논을 조금씩 나누어 팔았고, 노씨네는 그중 제일 큰 덩어리를 샀다. 그때부터 비교가 시작되었다. 그치만 논이라서 아직 동네 면적보다 넓은 면적이 남았다. 재산이냐 자식이냐 둘 다냐. 세월을 건 승부. 정작 두 집은 별 관심 없었지만 비교 당하니 은근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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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



신혼은 초가집이었다. 수송부대 담에 붙여지었다. 신작로와 부대 사이이자 개울가. 길다랗게 빈 땅. 부대 건지 하천에 속해 나라 건지 애매. 틈새를 파고들었다. 개울가라 먼저 집 짓는 게 임자지만 부대는 달랐다. 부대 식당서 일한 연이 다. 땅 덩어리가 제법이다. 방 , 변소에 마당까지 나왔다. 어떻게 지었는지는 모른다. 벽은 어떤 방은 황토, 다른 건 부로꾸였다. 마당 담장은 철조망. 지붕은 볏단을 켜켜이 얹었다. 해 걸러 얹고 몇 번이면 밑이 썩어서 통째 갈아주어야.


 재료가 둘로 다른 것으로 보아 한꺼번에 다 지은 건 아니었다. 부엌 달아 방 한 칸 슬쩍 짓고 살다가 방에 붙여서 방 두 칸을 늘렸으리라. 더 늘릴 땅이 없자 개울 바닥에 기둥을 세우고 판자로 바닥, 지붕을 얹어 광으로 썼다. 안쪽으로 바닥에 구멍을 내고 변소로 썼다. 똥 누면 허공을 수직 낙하해 개울에 떨어졌다. 부엌 쪽으로는 나머지 빈 땅에 철조망을 둘렀다. 더 넓힐 곳이 없을 때쯤 내가 태어난 거. 음력 ,1월 생. 제일 큰 안방에서 엄마는 내게 젖을 물렸다. 이듬해까지. 제일 추울 때라 따뜻한 화롯불 앞이었다. 꿈을 꾼다. 거꾸로 매달려 머리로 종을 친다. 으아악. 종 한 번 칠 때마다 으아악. 똑같은 꿈을 수없이 꾼다. 그 장면이 너무나 무서워 좀 커서도 밤에 잠들기가 두려웠다. 엄마는 내가 애기 때 경기가 심했다고. 화로의 숯불 가스에 중독되었던 것이리라.


어느해인가 동네가 부산해진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만드세. 새마을운동. 아부지는 볏단을 내리고 서까래 손 보아 스레트를 얹는다. 그 아래는 바꿀 게 없다. 벽 쌓고. 방 바닥에 들장 깔고, 열기 지날 길 내고. 부엌에 아궁이를 판다. 거꾸로면 한 지붕 아래 집 완성. 황토 벽돌은 앞산 진흙 파다가 토막 볏짚 섞어 나무 틀에 찍어서 말린다. 목수는 돈 주고 산다. 목공 외에는 다 직접 짓는다. 아부지는 이렇게 첫 집을 지었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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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허가 건물 철거 명령. 버티다 못 해 이사한다. 지붕 털고, 벽 헐고 나면 사면 꼭지에 나무 기둥만 남는다. 아부지, 동네 어른 셋이 귀퉁이 하나씩 잡고 번쩍 든다. 다리 건너 신작로 오십 여 미터. 꺼져 낮은 너른 터 지나서 기와집 뒤, 양계장 맞은 편에 놓는다. 사둔 땅으로 옮긴 거. 스레트 지붕 얹고 광으로 쓴다. 훗날 부로꾸 벽 쌓고 칸을 넷으로 나누어 월세를 준다.



ㅡ근데 아줌마



이사는 집 사서 옮겼다. 연탄집과 염 목수네 사이. 집 뒤로 좁게 빈 터. 나무와 철망으로 장을 짜서 토끼 몇 마리를 키운다. 잡아 먹으려고. 문제가 있었다. 유독 이 터만 푹 꺼져 도로, 양 옆집 빗물이 콸콸 쏟아든다. 두어 번 여름을 겪고는 안 되겠어서 이사. 앞은 대폿집으로 세 주고 뒤는 젊은 홀애비에  또래 남자 아이 하나인 이에게 세 주고.


대폿집은 방이 달렸다. 대폿집은 과부인  아줌마에게 술집으로 세를 주었다. 곧 근데 아줌마라 불린다. 근데 근데 첫 마디가 항상 근데라서. 어느날 신작로 건너편 방앗간 집 아저씨 부부 대판 싸움. 두 가게 사이 신작로에서 아내가 신작로 안에 들어서서 울고 불고. 있는 고생 다 시키고선 근대 아줌마와 정분났다며. 아저씨는 말리다가 도망가다가 말리다가. 근데 아줌마 주책없이 나서서 근데 근데 하다가 머리채 잡히고. 분에 받친 방앗간 아줌마는 신작로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고 아이고 억울하여 목 놓아 울었다.


뒤에 세 든 이는 아내가 도망갔다. 남자 아이 하나. 술 먹으면 무섭게 팼다. 가르치려고 때리는 거 아니어서 죽도록. 아내에 대한 울분을 발길질, 주먹질에 죄다 실어서. 경찰이 와도 구경만. 집안일이라고. 세 번을 불러도 같은 말 뿐이더니 그마저 않는다. 비만 오면 비 샌다, 물 찬다 고쳐달라고. 지붕은 새는 곳 땜빵하더라도 하수구는 아무리 깊게 파봐야 터가 낮아 대책 없다. 게다가 남의 집 가정 불화, 경찰 뜨고. 월세도 안 내기 일쑤. 하늘의 재앙인 줄 알았던 그집이 귀신이 씌였나, 속 썩기 싫으셨나 학비에 보태려나 그 집을 팔았다. 허긴 그때쯤 염 목수집 둘째 아내가 신내림 굿하고 무당이 되었다. 둘째 아들 춘근이에게 들러붙은 귀신 쫓는다고 큰 굿을 하였다. 귀신이 놀라옆집이자 아랫집인 우리집으로 피신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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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쌀집



시골서 농사짓다 왔다. 남자가 건장했다. 쌀과 보리 등 잡곡을 되로 재어 팔았다. 간혹 가마니는 짐자전거 뒤에 실어 날랐다. 엄청난 고민 하나. 딸만 줄줄이 일곱. 마지막에 성공해 아들. 상태가 나빴다. 그 정도면 태어나자마자 아무도 모르게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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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연탄집



탄만 판다. 겨울이면 트럭으로 수 백 장 들여오고 집마다 나누어 구루마로 배달해 준다. 어려운 집은 낱장으로 사간다. 새끼 줄을 한 가운데 구멍으로 디민다. 반대쪽으로 나온 새끼를 묶는다. 양손에 한 장씩 두 장. 돈이 넉넉하면 차로 받는다. 부부가 힘이 좋아야 한다. 트럭서 내릴 때, 구루마 실을 때, 언덕 오를 때 온힘 다 써야. 늘 탄에 절어 새카맣다. 얼굴은 지키려 해도 땀 한 번 스윽 닦으면 끝. 피부가 까무잡잡하면 누구든  여지없이 별명 연탄. 동네 오래 살았어도 소문 한 번 없다. 


사람이 죽는다. 연탄 가스. 방바닥. 구들장 깔고 황토로 틈 메꾸고 그 위로 세멘 바른다. 그 위로 한지 두텁게 여러 장 붙인다. 둥근 천 주머니에 무언가 넣어 문지른다. 기름 먹이는 거. 황토나 브로꾸 벽에 벽지 바른다. 방바닥과 사방 벽이 90도 직각으로 만나는 모서리. 살다보면 여기에 틈이 생긴다. 바닥 발걸음 쿵쿵. 구들 틈 벌어지거나 깨져서 틈 생기기도. 벽지가 들뜬다. 벽지에 앞서 초벌로 신문지를 바른다. 꼼꼼히 바르지 않거나 벽이 습기 찬다. 빗물은 지붕, 천장 새는 곳을 귀신같이 찾는다. 못이 삭거나 쥐 이빨로 갈거나. 물이 벽 타고 내려와 벽지를 벽에서 떼거나 바닥 닿는 끝이 너덜너덜. 먹고 살기 바쁘고 지난해, 어제 별일 없었기에 수리 않거나 봄 오길 기다린다. 연탄 가스. 아궁이에서 구들 아래 지나서 굴뚝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모서리 틈새로 솔솔 샌다. 밤이니까 잠 쿨쿨. 추우니까 방문 꽁꽁. 누웠으니 코로 입으로 들숨 타고 폐로 들어간다. 아침에 보일 사람이 안 나타난다. 문 열어 보면 굳은 시신들. 밖에 들고 나와 찬바람 쏘이면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다. 방문 쪽은 문틈으로 새어들어온 새 공기와 탄가스가 섞여서 살고, 안쪽은 한참 지나 깨어나고, 가스 새는 모서리에 머리를 두어서 죽는다. 심하지 않으면 집에서 동치미 국물 한 사발을 먹이고 만다. 살얼음 뜨고 차가워서 정신차리라고. 안 깨어나면, 시내면 자전거 타고 기독병원 가서 병원차를 부른다.

겨울이면 연탄 가스 중독 사망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깨어서도 연탄 갈 때, 밥 할 때, 세숫물 데울 때, 겨울이면 탄 가스를 밤낮으로 달고 산다. 다행히 우리 동네에 죽은 이 없으나 머리 띵한 중독은 누구나 겪는다.


신작로와 탄 가게 앞이 높이가 같고 동네 중앙이라 장사 트럭들을 여기에 잠시 세운다. 겨울. 연탄 트럭, 도루묵 트럭, 꽁치 트럭, 양미리 트럭. 생선은 제철 한 종류씩 실어다 삽으로 퍼서 팔았다. 여름에 생선은 얼음이 귀하고 비싸서 상상도 못 한다. 트럭 옆에서 원맨 쇼가 벌어졌다.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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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염 목수



직업 목수라 어른들은 염 목수라 부른다. 특별하다. 한 지붕 아래 두 여자와 동거. 처와 . 신내림 받아 무당이 되었고, 귀신 붙어 옴쭉달싹 못하는 아들 병을 굿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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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담뱃



상사로 제대했다. 부부 둘이 운영. 동네에 하나뿐인 구멍가게다. 담배는 종류인가 화랑인가를 팔았지만 이름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화랑이 군인 담배인 건 안다. 아부지가 담배를 안 피워 담배 심부름을 한 적 없다. 군대 가서 배웠는데 몸에 안 좋다고 피지 말라 해서 끊었다고. 크림빵 한 개 10원, 눈깔사탕, 아이들 놀이용 유리구슬, 딱지. 그리고 종합선물세트. 군부대 면회 온 사람이 샀을 . 그리고 우리 아부지. 밤새도록 화투 쳐서 돈 따면 꼭 사오셔서 새벽에 나를 깨웠다. 여러가지 안 되지만 장사는 그럭저럭. 연금을 받는다고 했다. 늘 여유롭게 보였다. 외상도 잘 주었다. 아이인 내게도. 수첩 장부에 연필로 침을 묻혀서 쓴다. 이름 별로 뭘 얼마 사갔는지 빼곡하다. 노씨네. 큰 아들. 크림빵 1. 날자. 이런 식으로 기록. 몇 번 외상 했다가 엄마에게 들켜서 엄청 혼났다. 굶어 죽어도 외상은 하지 말라고. 상사 아저씨는 동네 사람들 상대로 외상장부를 끊이지 않고 다. 하지만 동네 어른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윷도 안 놀고 화투도 안 친다. 군 출신인 거 외에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ㅡ세탁소



토박이로는 유일하게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다른 어른 남자 들은 다 젊었다. 동네 사람들은 세탁소를 이용할 일 없었다. 다리미로 다릴 만한 옷이 없다. 꿰메는 거야 집에서 다들. 세탁소 천장은 군복으로 꽉 차서 걸렸다. 장교들 거. 진급하면 계급장을 미싱으로 단정히 달았다. 다리미로 다리고 카라 깃 세우고. 다리미는 불에 달구다가 증기바꾸었다. 부대가 셋이라 잘 됐다. 동네에서 구씨 아저씨네 말고는 전부 외지인. 맨손. 돈을 빌려서 거의 다 거래가 있다. 어느날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이사 갔다.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못 받은 돈이 많을 텐데 왜 도망가듯이 이사갔는지 어른들은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결과가 아쉬웠다. 해마다 설날 큰절하면 내 손 꼭 잡아주면서 세뱃돈을 제일 많이 쥐어주었다. 그걸 못 받게 되었다.



ㅡ강씨네 



강씨는 가매기삼거리 장이다. 다워서 동네 중앙에 산다. 변소를 크게 지었다. 2인용은 유일하다. 개울 바닥에 브로꾸를 쌓아 똥통, 그 위로 싸리나무로 가리판자로 지붕을 얹었다. 소롯길에서 들어가고, 똥을 위 아닌 뒤에서 푸는 희한한 구조. 이웃이 써도 아무말 않는다. 해서 꼬맹이는 양장점 처녀 머시기를 관찰하는 유혹에 넘어간다. 매년 장맛비가 퍼부으면 불어나는 냇물에 뛰어든다. 일 년에 한 번 거사를 치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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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서 조금 더 오르면 봉산미. 거기서 시작해 북쪽 능선에 육십고개라라 불리우는 산길을 개척한. 동네 안팤을 이만큼 챙길 이 없으니 만년 장. 중키보다 컸다. 카리스마가 있었다. 깡마른 사람이 그렇듯 신경질적. 가족에게 엄했다. 아내가 꼼짝 못 한다. 장남인 성구에게도 매우 엄격했다. 술 먹고 화가 치밀어 도끼를 던져서 장남이 진짜 맞아 죽을 뻔 했다고. 성구 동생 봉구가 내 동무였다.


돼지 부자. 봉구네 집은 돼지를 많이 쳤다. 우리집은 돼지 한 마리 시험 삼아 일 년 하고 그만두었으니 동네에서 봉구네만 돼지 키운 거. 군부대와 개울 사이. 산끄트머리에 자투리 땅 모양대로 길게 한 줄로 돼지우리. 어미 예닐곱 마리. 개울 건너편에 변소쪽과 작은 다리를 놓아 왔다 갔다. 봉구와 성구는 매일 동네를 집마다 돌면서 통에다 희멀건 뜸물을 담았다. 사람도 먹을 게 귀하니 잡곡 씻은 물, 어쩌다 쌀 씻은 물. 통이 봉구 몸 반만하다. 어린 봉구가 통을 들은 건지  통이 봉구를 끌고가는 건지. 봉구가 자기집 돼지 자랑을 한다. 돼지가 산에서 내려온 뱀을 잡아먹는다고. 주둥이를 내밀면 뱀이 칭칭  감는다고. 그걸 세멘 바닥에 세게 문대서 토막내 죽인단다. 그걸 주워 먹는다고. 봉구네 돼지는 뱀을 먹어서 그런가 튼튼했다. 새끼도 여럿 잘 낳았다. 한여름 낮에 우리에 들어갔다. 철사를 머리 크기로 둥글게 말고, 아래로 몸 두 배 길이 작대기에 매단다. 잠자리 채. 봉구네 돼지우리에서 철사에 거미줄을 칭칭 감으려고. 그걸 평평한 곳에 앉아 있는 잠자리 위에서 덮으면서 누른다. 거미줄에 붙여서 잡는 거. 돼지우리는 늘 돼지가 똥, 오줌이 늘 바닥에 깔렸다. 그래서 날벌레 꼬인다. 거미줄 천지. 거미줄을 철사에 마는데 등 따끔. 손가락 마디만한 노란 땡벌이 쏘고 달아난다. 쑤시듯 아프다. 손 뒤로 아무리 해도 안 닿는다. 정확히 등 위쪽 한가운데. 혼자 몸 이리 저리 비틀어도 안 되어 집에 달려간다. 큰누나가 된장을 발라준다. 통증이 덜 한 기분. 놈은 손 안 자라는 위치를 정확히 알고 쏜 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땡벌에 쏘인 거라 모른다. 코스모스에 꿀 빠는 벌은 크기가 작다. 몇 번을 쏘였지만 손이지 등은 아니다. 훨씬 덜 아프다. 괜히 땡벌 아니다. 강씨 아저씨가 개울에 붙여서 돼지우리를 지은 건 공짜 땅이기도 했지만 돼지똥을 치우기 쉬워서다. 냇물에 버리면 되니까. 변소도 그래서 집 안 아니고 개울 바닥에 쌓았던 거였다. 봉구 아버지는 머리가 좋다. 부대에서 짬밥을 얻어 먹이는 넉넉했지만 우리가 좁았다. 땅 살 돈은 안 되고 돼지로는 생계가 안 되어 가게를 차린다. 구멍가게가 동네 끝에 하나 있었지만 눈치 볼 입장이 못 되었다. 그 가게 주인이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기에 반장으로서 손가락질 받지 않았다. 집 앞쪽에 공간을 내어  배 크기. 물건을 훨씬 많이 들였다. 하지만 동네 사람만으론 역시나 돈이 안 된다. 해서 벽시계 대리점 사업 병행. 촌으로 다니면서 외판. 사업이 잘 되어 형편이 풀리기 시작. 


(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봉구 아버지와 충돌. 아버지한테 쌍욕하며 삿대질. 동네 사람들 다 보는데. 쳔성이 순해서 싸움이라곤 모르는 아버지를 얕잡아보고 몰아붙인 거. 정도가 지나치다. 그치질 않는다. 씨ㅂㅏㅇㅏㄹ. 뭘 잘못했다고 지ㄹㅏㄹ이야. 버럭 고함치며 아부지 앞을 막아서서 정면으로 노려보니 그져서야 멈춘다. 그날 난 동네 사람들 앞에서 성인 신고식을 하였다.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봉구 아버지와 부딪힐 일은 없었다. 시계 사업은 번창해 사람을 두었는데 수금한 돈 전부 가지고 튀어서 곤경에 빠졌고 서울로 이사)



ㅡ막걸리집



부부. 여기서 어른들 밤새도록 화투를 쳤다. 막걸리만 판다. 먹지는 못 하고 양은주전자 가져가면 담아준다. 바닥에 묻은 술 항아리 몇. 벽으로 국자 몇을 걸었다. 스텐. 두툼 묵직해서 머리 살짝 스쳐도 아프다. 자손이 없어 큰집에서 조카 하나 얻어 아들로 들였다. 보다 못 한 엄마가 처들어가서 화투판을 뒤엎는다. 아녀자가 감히. 엄마는 이 사건으로 악처, 아부지는 못난 남자로 낙인 찍힌다. 해서 봉구 아버지가 아부지를 우습게 보았던 거. (그러고보면 봉구네와 우리집은 집안 분위기 반대. 가정은 엄격 대 화목, 아내에게 권위 대 애정, 장남에게 도끼 대 무한 사랑)



ㅡ복덕방



태장1동 전체에 하나. 주인이 누군지 모른다. 내가 복덕방에 갈 일은 없었다. 어른들도 처음 동네 올 때 빼고는 들를 일 없다. 가게 앞에서 장기를 두지만 상대가 동네 어른은 아니었다. 다들 한가할 수 없었다.



ㅡ양장점



강렬한 첫 경험. 여자 옷 정장을 맞춤으로 지어 팔았다. 원피스. 눈에 확 뜨였고 화려하다. 꽃무늬 유행. 두어 해 하다가 관둔다. 20대 처녀는 꼬맹이인 나의 호기심을 한껏 끌어올린다. 그녀는 봉구네 변소에서 치마를 훌러덩 올리고 궁둥이를 깐다. 신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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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자전거포



부부. 동네 유일하게 자식이 없다. 여자가 아이를 못 낳는다는 소문. 늘 바쁘다. 바퀴 튜브에 바람 넣고, 빵꾸 때우고, 창살 갈고, 체인 고치고. 호구 부러지면 핸들을 통째로 바꾼다. 헌 자전거를 사서 고쳐 팔기도. 나중엔 새 자전거를 들여와 팔았다. 구멍가게 옆. 북쪽 자전저포에서 시작해 양장점까지 점포 일렬. 길에서 자전거 한 대 간격을 띄웠다.



ㅡ이발소



늘 붐볐다. 이발사 둘, 면도하는 아가씨 하나, 이발 배우는 아이 둘. 머리 감는 거 몇 년 해야 가위를 잡는다. 머리 감을 때  쓰는 조리통으로 수없이 머리통을 두들겨 맞으며 기술을 배운다. 학교 안 보내고 대신에 부모가 이발사에게 부탁한다. 돈은 못 받는다. 미용실은 없었다. 여자들은 집에서 가위로 잘랐다. 상고머리. 아이는 하나같다. 아래를 두피까지 바짝 붙여서 치고 위로 서서히 두텁다. 늘어진 머리칼 끝은 빳빳하게 서는 선까지 사정 없이 자른다. 머리 끝선을 면도 전용 칼로 잡는다. 어른은 면도 아가씨가 이발사를 돕는다. 수건을 적신다. 연통에 널어 잠시 데운다. 손님 얼굴에 덮는다. 뜨끈. 수건을 위부터 아래로 까면서 면도 칼날 세워서 면도질. 구렛나루, 콧수염, 잔털까지 얼굴 전체 털이란 털, 솜털 하나까지 꼼꼼히 민다. 목에 칼 댄다. 확 그으면 피 터지는 상상을 거른 적 없다. 아이건 어른이건 이발, 면도가 끝나면 머리를 감겨준다. 수건 목에 두르고 의자에 앉아 머리를 세면대로 들이민다. 조리로 물 뿌리고 비누 칠, 거품 내고. 프라스틱 솔로 벅벅 민다. 이래야 시원하지 손으로는 간지럽다. 두 번 반복. 배우는 아이가 버티지 못 해 그만두면 이발사가 한다. 아이보다 이발사가 자주 했으니 이발사가 무서웠던 거. 혼나는 걸 자주 본다. 그래서일 거다. 둘을 데리고 있었던 게. 하나 그만두면 남은 하나 쓰려고. 어떤 때는 셋이 보였지만 결국은 이발사 혼자 머리를 감겼다.


머리 깎는 가위, 얼굴 털 미는 면도 칼은 고운 숫돌에 간다. 물 뿌려가며 슥슥 문댄다. 면도칼은 예민해서 한 번 더 공 들인다. 걸어둔 손바닥 폭 가죽 띠를 한손으로 수평하게 들어올린다. 칼날을 좌우로 번갈아 문대서 날을 정돈한다. 겨울엔 연탄난로를 피웠다. 더운 물로 감겨준다. 연통에 좁고 짧고 앒은 이발소 전용 수건을 걸어서 말린다. 정면 상단에 그림 한 장. 서양 아이 남녀 아이 둘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고개 돌려 입맞춤. 정면이라 아니 볼 수가 없다. 볼 때마다 신기해 내내 뚫어져라. 그러다 스르륵 잠든다. 이발소 셋. 동네, 학성국민학교 후문, 새다리 옆 정지뜰 한가운데. 나 학교 다니고나서는 엄마는 늘 정지뜰로 데려갔다. 제일 쌌다. 시내와 떨어진 우리 동네는 비쌌다. 정지 이발사. 어유, 머리 숯이 쇠털 같아요. 힘 줘서 손가락 아파요. 바리깡 기계는 좀 시간이 지나서 나왔다. 일제. 이때부턴가 상고머리를 스포츠가리라고도 했다. 그럼 좀 있어 보였다. 여자들 미용실은 없었다. 집에서 가위로 잘랐다. 시집 가기 전에 남자 만나면 머리카락을 전부 자른다. 울퉁불퉁 일부러 흉하게. 창피해서 밖에 못 나가게. 파마는 약이 들었고 비쌌다. 훨씬 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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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빵공장



심씨 아저씨. 경상도 사나이? 심씨만은 아니다. 성이 그래서인가 심술덩어리.  군부대 상대로 도나스 단팥빵 납품. 기름에 튀긴 거라 무척 맛나 보이지만 먹어본 적 없다. 빵이 곰팡이 나도록 안 준다. 조각내어 말린다. 단 한 개도 어른이고 아이고 나눈 적 없다. 그거야 아저씨 거니까 뭐. 문제는 아부지가 산 땅 두 면을 접했다. 두 면 다 경계에 집의 황토 벽돌로 쌓았다. 내민 처마만큼 침범. 제 땅엔 물받이 달고 남 땅 침범하고는 물받이 안 단다. 그리곤 벽에 황토를 덧붙인다. 자기 땅 늘리려고. 참지 못 한 아부지가 항의해도 꿈쩍 않는다. 심 씨가 나이가 위고 아부지가 순해서 함부로 못 한다. 빗물이 튀어서 황토가 패이니 그제서야 물받이. 아들 둘 중 하나가 상길. 빵길이라 불렀다.



ㅡ부화장



비밀 덩어리. 닭알 부화 시켜 병아리 만드는 곳. 철저히 밀폐하 들어가 본 적 없다. 로로 길게 지었다. 대문 따로 없어서 출입구가 부화장. 판자 문짝부터 두꺼운 비닐로 바람 안 새게 꽁꽁 막았다. 창문도 똑같다. 우리집 양계장 크기. 병아리 암놈, 숫놈 감별한다던데 본 적 없다. 공장 주인이 누군지 얼굴도 모른다. 확실한 건 아부지는 여기서 병아리를 가져다 닭으로 키웠다.



ㅡ콩나물 공장



깜깜하다. 부화장이 빛 환한데 비밀이라면 콩나물 공장은 어두워서 비밀이었다. 손님이 직접 문읕 열 수 있다. 부르면 옆집에서 샤람이 나온다. 닫으면 한낮에 아무것도 안 보인다. 열어도 컴컴하다. 전기 불이 짙은 습기로 빛나지 못 하고 안개 모양 뿌옇다. 나무 문 안팎으로 두툼한 거적대기를 붙여서 보온. 습기가 잔뜩 차서 무겁다. 문 아구가 안 맞고 치우쳐서 삐딱. 가끔 갈 때마다 좀 고치지. 판자 틈을 기껏 거적으로 막고는 그 무게를 못 이겨 문과 틀 사이로 갈다란 삼각 틈. 거기로 바람 숭숭. 거적으로 왜 막은 거? 콩나물은 빛 완전히 가리고 키워야 빨리 자란다. 닭은 철제 닭장에 한 마리씩 넣는다. 걷고 뛰고 날지 못 하니 금방 크고 살 토실. 콩나물은 아예 딱 붙여서 한 덩어리. 빛 가려서 잎 못 크고 키만 빨리 크는 건가?주는 건 물이 전부. 통로 좌우로 커다란 사각 나무 통 이어서 대여섯 개씩. 통 가득 빼곡히 노란 콩나물 대가리들. 통마다 수확 일자가 달라서 언제 가도 살 수 있다.


주둥이 길고 잔 구멍 여럿으로 비처럼 물 쏟는 조리개로 물을 뿌린다. 매일 몇 번이고 물을 준다. 콩나물 잘 크라고 똥을 준다는 소문이 돌았다. 집에서 떡시루에서 맑은 물로 키위서 먹는 건데? 냄새날 텐데?콩나물이 땅속 아니라 물에 뿌리 내리고, 물 뿌려서 자라고, 그걸 통째로 먹는데? 똥물이 다 묻을텐데? 엄마가 바빠서 못 키우면 사러가야 했다. 내부가 온도와 습도로 늘 찝찝하다. 똥 얘기 들은 후에는 찜찜이 더 해져 피하게 되었다. 20여 평. 부화장과 콩나물 공장 둘이 두 집 끼고  이웃이라 가까웠지만 여러모로 달랐다. 동물 식물, 빛 어둠, 문짝 빈틈 없고 있고, 주인 모르고 알고, 하나는 같았다. 비밀이 있었다.



ㅡ인간문화재



김봉룡 할아버지. 전국 유명인. 나전칠기 장인. 마지막에 옻칠. 옻공장이 동네 바로 옆이라서 동네에 사는 것이리라. 늘 한복 차림. 백색 한복에 흰 수염이 걷는 바람에도 휘날린다. 단아하고 멋지다. 여자 한 분. 아내는 아니고 수발 드는 이라는 소문.  나이가 한참 위인데다 공예를 하는 분이라 그런지 동네 누구도 말을 섞지 못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동네에 유일한 자랑거리라는 건 다들 잘 알았다.



ㅡ여씨네 집



동네  서쪽 끝 마지막 집. 한쪽은 개울, 다른쪽은 구씨 아저씨네 논과 접했다. 개울쪽은 축대를 쌓았고 논쪽은 길이 논물을 막았다. 군무원인가 그랬다. 아저씨 이름 인국. 큰딸 인숙. 큰아들 제일. 막내아들 재수. 여 자가 붙으면 애써 지은 이름이 하나같이 이상해진다. 여인국, 여인숙, 여제일, 여재수. 다 여자 같다. 여자 나라. 여인이 자는 곳, 여자 중 제일, 여자 죄수. 놀려 먹기 딱 좋았지만 감히 그러지 못 했다. 여인국. 아저씨라 이름 부를 일 없다. 여인숙. 큰누나 친구. 여제일. 6학년으로 동네 골목대장. 여재수. 4학년. 나보다  살 위.


제일형은 쌈을 잘했다. 치고 받는 걸 본 적은 없다. 누구한텐가 들었다. 나보다 커서 고개를 들어야 했다. 잘 생겨서 먼저 싸움을 걸 거 같지 않았다. 인물로 꼬맹이들 대장이 된 건 아니었다. 아지트를 만들었다. 산 아래 붙은 부대. 산사면에 철조망을 둘렀다. 거기에 잔나무가 빼곡. 입구를 무릎 꿇고 들어가면 대여섯이 앉을 공간. 이뿐만 아니어서 형은 신기한 재주가 있었다. 참새를 맨손으로 잡았다. 빠까총. 팔뚝 굵기 소나무를 톱으로 손바닥 길이로 자른다. 접이식 주머니 칼을 편다. 껍질 벗기고 다듬는다. 한 끝을 빠각빠각 긁어서 U자 형. 양 날개 윗쪽에 둥글게 홈을 낸다. 가죽을 작은 사각 지우개 모양으로 가위로 자른다. 양 끝 중앙에 송곳으로 구멍. 애기 기저귀 위로 둘러 허리에 묶는 노란 고무줄을 구멍에 걸어 묶는다. 고무줄을 나무 홈에 걸고 가는 철사로 단단히 동인다. 총 완성. 작은 돌맹이를 가죽에 올리고 오른손 엄지, 검지로 구부려 잡는다. 왼팔 뻗어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U자 사이로 새 겨냥. 손가락 놓으면 발사. 해마다 며칠 소나무 깎아서 총 만들어 수 없이 쐈지만 단 한 번도 새를 맞춘 적 없다.


새를 손으로 잡다니. 참새는 떼로 다녀서 눈이 수십 개라 접근을 못 하는데 어떻게? 형은 대장답게 부하에게 비밀을 숨기지 않았다. 새벽에 새가 잠잘 때 잡는다. 보여준 적은 없다. 몇 날을 아침 일찍 가봤지만 나는 잡지 못 했다. 마지막 무언가를 말해주지 않았던 거. 새가 문제랴. 형은 본부를 만들었고 우리가 쓰는 걸 허락했다. 참새 떼가 늘 아지트 위에서 짹짹짹. 형은 거기서 새를 잡다가 너른 공간을 발견해 입구를 내고 안을 넖혔던 거. 안으로 들어서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고 나뭇가지 틈새로 밖이 보였다. 너댓이 빙 둘러 앉으면 딱 군인 작전 회의. 부대가 아래로 접해서 내려다보였다. 군인들이 왔다갔다 해서 더 그런 기분이 든다. 매일 모여서 수근수근. 별 거 아니나 이 안에서면 군인 아저씨 같았다. 형은 제일 높은 사람이라 그런가 어쩌다 나타났다. 동생인 재수가 형에게 보고한다. 내 키보다 작았으나 성질이 있고 몸이 날래서 덤비지는 않았다. 형에게 이르면 맞을 걱정이 앞섰지만 대장은 부하 누구도 때리지 않았다. 아지트가 제 것이라고 위세를 떨지도 않았다. 제일이 형이 대장이라는 거에 아무도 다른 말 않았다. 이름마저 제일 최고 아닌가.


꼬맹이들은 형을 진심으로 대장님으로 알았다. 우리끼리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 애들은 관심조차 없었다. 새를 손으로 잡건, 아지트에서 모이건, 제일이가 제일이건 아니건. 그래서 대장님이 아지트에 잘 안 보였는지 모른다. 형이 꼬맹이 대장이라는 거, 여기서 존경 받는 모든 일이 또래 여자 애들한테는 웃음거리였을 거다. 아지트에 모여서 낄낄댄 건 두어 해. 나도 아지트 안에 들어가는 거보다 여자 치마 속이 궁금해졌다.



ㅡ대추나무집



빵공장과 여씨네 사이 집 둘. 고씨네와 대추나무집. 그 정도만 안다. 다 개울가로 집을 지었다. 축대 쌓고 길, 그다음 집들. 여씨네만 개울에 붙여서 길과 사이. 동네에 나무 있는 집이 둘 중 하나다. 집안에 길 쪽으로 구석에 대추나무 한 그루. 지붕 높이.  가을 대추 주렁주렁. 우리집에 미류나무. 지붕보다 높았다. 꽤 묵어서 고목 같았다. 위 나무 기둥에 커다란 버섯이 자랐다. 희고 두텁고 부채 닮았다. 해 걸러 여름이면 아부지는 나무에 올라가 땄다. 물에 데쳐서 찢어 먹었다. 쫄깃 미끌 뽀드득. 미류나무버섯 싹이 희끗 보이면 그 맛을 기대했다. 금방 쑥쑥 자라서 부채가 되는 데 오래진 않았다. 대추나무집에서 90도 우측으로 꺾어서 골목길. 좌로 가정집 둘, 그다음이자 끝이 콩나물 공장.



ㅡ김 상사 집



구씨네 기와집 남쪽 대문은 골목 안에 있다. 골목 입구 우가 이발소, 좌가 방앗간. 구씨네 집 다음이 부화장, 그 다음이 김 상사 집. 방앗간 다음이 한씨네 집. 우리집 양계장과 붙었다. 동네에서 가장 작은 집. 아부지는 이 땅까지 샀는데 구씨 할아버지가 두 번 팔았다고 푸념. 쪼가리 땅이라서 그냥 넘겼다. 부부와 자식 둘이 살았는데 어른이나 아이나 동네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모른다. 땅도 집도 작아서 그런 거도 있지만 막내인 딸이 다리를 절었다. 병신이라 놀리고 사람 취급 않을 게 뻔하니 숨듯 피해서 산 거 같다.


김 상사는 제대 군인. 터가 넓어 텃밭을 가꿨다. 작은 자두인가 과실나무도 자랐다. 아부지는 아줌마가 노씨라고 하면서 뭐라도 챙겨주길 바랐지만 외간 남자라 그러지는 않았다. 골목 안으로 들어와서 가매기 토박이지만 기인 듯 아닌 듯. 어떤 때는 끼고 그러다 아니고. 둘째 아들 상균이가 작은 누나 또래고 형이 하나인데 공부 잘했다는데 내 또래 아니어서 잘은 모른다.



우물



골목까지 들어왔으니 우물을 빼놓을 수 없다.

부화장과 상균네 사이 길 가운데 커다란 우물.  골목은 여기에서 골목 집 사람들 공동 마당 격으로 넓다. 우리 양계상 뒷쪽. 지름 1.5미터, 깊이 5미터쯤 둥글게 팠다. 지면에서 1미터 좀 넘게 동그랗게 둥그스름한 돌을 쌓았다. 지하수라 물 맑았지만 쇳내가 나서 마시는 물로 쓰지는 못 했다. 작은 빨래, 여름에 남자 등목, 여자들 달밤에 옷 입은 채 물 끼얹기 정도. 밧줄 달린 나무 두레박을 내려서 퍼올렸다. 하나뿐인 우물이라 뒷집들은 쓸모 많았지만 신작로 변 집들은 개울이 빠르고 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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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노씨 이야기



노씨는 꼬맹이 아부지다. 키 크고 건장했다. 잘 생겼고 귓밥이 부처를 닮았다. 인상과 같이 법 없이도 살 사람으로 이웃이건  남이건 피해를 주는 일이 없었다. 대전. 갓난아기 때 엄마를 잃어 마을 사람들 젖을 먹고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 두 살 연상이자 이북서 사범학교를 나온 엄마를 만났다. 전쟁 중에 영어 통역관을 제꼈으니 능력자. 엄마를 끔찍히 사랑했다. 사랑은 일곱 아이가 되었다. 대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기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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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매기삼거리에 주민 말고 단체가 셋이다. 고아원은 일제시대 때였으리라. 군인부대는 육이오전쟁이었을 거, 교회는 동네가 다 생긴 후에 생겼다. 동네 주민 아니나 영향이 다. 고아원은 부모의 존재를 일깨웠다. 군부대는 직간접 연관 짓고 살았다. 교회는 달랐다. 나 말고 누구도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목사님은 악동인 나를 사탕으로 꼬셨다.



ㅡ개척교회



앞산 끄트머리를 잘라서 속이 높게 판자로 집을 짓는다. 집 한두 채 크기. 입구를 신작로 쪽으로 두어 안으로 길다. 지붕 머리 십자가를 세운다. 가매기삼거리 북과 동 산으로 절과 점집 수두룩. 봉천을 내려보는 배산임수에 모래 섞여 배수 잘 되는 마사토. 조선 성종은 처음 딸을 낳고 기뻤다. 전국에 지관을 풀어 알아본 자리가 여기. 태항아리를 묻는다고 육조판서가 납신다. 열 일 제끼고 한양서 가마 타고 내려와 바위에서 바둑을 둔다. 육판바위. 그만큼 묘자리로 뛰어나 공동묘지, 화장터. 부처님, 산신님 터줏대감에 예수님이 끼어든 거. 꼬맹이에게 신은 문제가 아니었다. 앞산에 만들어 둔 놀이터. 교회가 그 진입로를 떡하니 막아섰다. 복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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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군부대



마을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군부대를 빼면 가매기삼거리는 반쪽이다. 민가 열댓 가구지만 부대 셋은 터가 워낙 넓었다, 군인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알게 모르게 거래가 있었다. 세탁소는 군복 다려서 돈을 벌어 동네 사람들에게 이자를 놓았다. 달리는 군용트럭 뒤칸에서 군인이 천막을 걷더니 길가 우리집 앞에 무언가 응차 던진다. 바닥에 텅. 보니 밀가루 포대만 하고 두툼한 죽은 가오리 한 마리. 아부지는 얼른 집안으로 들인다. 다급하면 부대 안 의무대로 데려가 치료도 해준다. 군인들은 매일 한 번 시계 역할도 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애국가 합창으로 여섯 시를 알렸다. 동네 사람들은 이래저래 부대와 인연을 맺고 살았다. 철부지 꼬맹이는 고마움을 몰랐다. 돌맹이보다 흔한 군인들을 얕보았다. 애인이 면회 와 외출 나오면 따라가며 놀렸다. 부대 안 쓰레기장은 보물창고. 개구멍으로 들락거렸다. 그러다 된통 한 번 당하고, 횡재 한 번 벼락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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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고아원



자신보육원. 부모 없는 어린 아이들을 모았다. 함께 살아도 얼굴을 몰랐다. 동네 쓰레기장에서 어쩌다 보인다. 봉구네 변소 가는 개울 길. 양장점 옆 그 길에서 다리 옆으로 동네 사람들은 쓰레기를 버렸다. 어린애 한 길 높이 축대 아래까지 쌓였다. 개울 가까지 작은 둔덕. 살기 어려워서 버릴 게 없었지만 그래도 못 쓸 거는 꾸준히 나왔다. 그마저 새동네 넝마주이가 훑어서 푼돈이라도 될 만한 거라곤 아예 없다. 고아원 남자 아이 하나가 무얼 집어서 먹고 있다. 럭키치약. 맞아. 저건 먹을 수 있어. 나는 새콤한 그 맛을 안다.


치약이 처음 나왔다. 치솔도. 치약은 알루미늄 안에 들었다. 뚜껑 열고 꾹 누르면 기계떡처럼 주욱 치약이 나온다.

엄마한테 혼난다. 비싼 걸 많이 쓴다고. 해서 입구를 칫솔에 대고 살살 짜면서 치솔에 칠하듯이 묻힌다. 물에 담가서 이를 닦으면 양 많은 거 같이 거품이 잘 난다. 아껴서 쓰다보면 굶은 빈대 처럼 납작, 할배 이마 주름처럼 쭈글, 쇠라서 울퉁불퉁. 이 정도면 아무리 짜도 치약이 안 나온다. 삐죽 나온 주둥이를 칫솔의 솔로 파서 묻힌다. 두세 번 더 쓴다. 이마저 다하면 몸통을 칼로 째서 벌린다. 안쪽에 묻은 치약을 칫솔에 묻힌다. 여러 번 더 이를 닦는다. 이렇게까지 아끼고 아끼고 또 아끼고 아끼는 집은 우리집밖에 없다. 대개 입구까지 파서 쓰고 버린다. 고아원 애는 이빨로 알미늄을 물어뜯어 벌려서 칫솔모 대신 혀를 대고 핥아먹고 있었다. 나도 핥아 먹었다. 칫솔로 긁고 나면 더 이상 치약은 없다. 흰 흔적뿐. 그걸 혀로 침 바르고 훑으면 그 맛이라니. 어데고 없는 희한한 맛이다. 중독성 있어서 한 번 맛보면 계속하게 된다. 녀석도 그걸 아는 거.


고아원은 늘 문이 활짝 열렸다. 그외 사방 철조망. 문에 들어서면 엄청 큰 플라타너스 몇 그루. 고아원이 오래되었다는 걸 알려준다. 일제시대 때 심은걸까? 나무는 고아원과 동네를 북남으로 경계 지었다.  측백나무. 신작로 쪽으로 촘촘히 심어 고아원을 막았다. 어른 키높이. 동네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둘을 구해서 놀았다. 플라타너스 열매. 둥글고 크며 가닥이 달렸다. 가닥을 잡고 휘둘러 이마를 치면 딱밤. 여름에 푸르고 단단. 높아서 딸 수 없다. 가을에 누렇다. 떨어진 걸 줍는다. 몇 번 놀다 버리지 그리 재미나지 않는다. 측백나무 열매는 달랐다. 콩알 두 배 크기로 둥글되 뾰족 뾰족 뿔이 전체에 났다. 이걸 갖고 놀려고 도구가 총을 만든다. 대나무를 길이로 반으로 쪼갠다. 중간 막은 파낸다. 못을 연탄불 구멍에 넣어 벌겋게 달군다. 뻰치로 잡아 대나무에 구멍 셋을 낸다. 양끝 구멍에 노란 고무줄을 걸어서 묶는다. 대나무로 화살을 만든다. 앞은 가늘고 끝을 뾰족하게 다듬는다. 뒤는 앞보다 굵고 넓게 일직선. 끝 면에 홈을 판다. 화살 앞을 총 가운데 구멍에 넣는다. 총 완성. 화살 끝에 측백나무 알을 꽂는다. 홈을 고무줄에 건 채 손가락으로 잡고서 뒤로 한껏 당긴다. 동무나 여자 애를 겨누고 줄을 놓는다. 탕. 화살 뒤가 구멍에 걸리는 순간 소리를 내며 알이 앞으로 직선으로 튕긴다. 제법 세서 맞으면 아프다.


고아원 열린 문으로 동네 사람들 들어갈 수 있지만 안에 고아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 았다. 플라타너스 아래로 그네가 둘이어서 동네 아이들이 탔지만 고아원 아이들이 탄 걸 본 적 없다. 고아원은 시인가 나라에서 지원 받았다. 고아들은 동네 아이들만큼 말랐다. 동네 아이들은 세 끼 밥 먹고 종일 뛰어놀아 말랐지만, 고아원 아이들은 갇혀 있는데 말랐다. 원장은 양복을 입고 다녔고 얼굴에 살이 붙어 보기 좋았다. 동네 어른들은 큰일 있으면 깨끗한 잠바 정도지 양복 자체가 없었다. 구씨네 빼곤 늘 노동해야 해서 원장과 달리 다들 말랐다. 럭키치약을 먹던 아이는 고아원에선 나이 먹은 편이었다.   문을 나선 건 배가 고파서였으리라. 갈 데 많은데 하필 쓰레기장을 찾았다. 나는 치약을 재미 삼아 먹은 거지 배 고파서 먹은 건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은 한결같이 고아원 애들이 불쌍했다. 엄마가 없다니, 형제가 없다니. 두려움이 더 컸다. 아부지 없이 자라다니.  고아는 혼자 외롭게 크는 거였다. 강해야 살아남는 거였다. 애들 생각에 고아는 갖은 고초를 다 겪은 아이였다. 또래보다 훨씬 어른이었다. 어쩌면 어른보다 강할 지도 모른다. 고아원에서 나올 수 없어서 만나서 얘기를 나눈 적 없기에 상상은 사실이 되었고 두려움으로 변했다. 이를 증명하는 사건이 심심찮게 터졌다. 앞산에 산 동네 아이들. 대여섯 가구. 우리 동네와 패 싸움. 주로 짱돌 던지기. 숫자 적어도 위라서 유리했다. 우린 오르고 걔네는 내려다 보며 던진다. 냅다 뛰어가 고아원에 들어가 창을 두드린다. 좀 도와줘. 산동네와 패싸움 붙었어. 득달같이 두엇이 산 도착. 큰소리로 외친다. 고아원 애들 왔어. 고아원이야 고아원. 다 도망간다. 한 번 이러곤 싸움이 안 된다. 고아원만 부르면 늘 이긴다. 고맙다는 말 하기도 전에 사라진다. 고아원 애들은 늘 우리를 도왔다. 우리는 도운 적 없는데 패싸움만 부르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런 고아원 아이가 쓰레기장에 나타난 거. 원래는 우리 동네에 누가 나타나면 가만 안 둔다. 거기다 먹을 걸 훔치다니. 쓰레기장은 동네 것이자 내 것. 쓰레기도 허락 받아야. 헌데 고아원은 동네에 나무 하나 사이일 뿐.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았어도 패싸움 우리 편에다가 늘 승리의 주역. 그 아이에게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가서 치약을 통째로 먹으라고 내줄 수도 없고. 아무리 어려도 그게 많이 먹는 건 아니란 건 알았다.그 애에게 특별히 줄 만한 게 없었다. 우리 집이나 고아원이나 세 끼니 밥 말고 먹을 게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옷 하나로 계절 나고, 검정 고무신 한 짝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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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우리집이 고아원 다름 아니다. 애 여섯 한 방서 몰려자고, 방까지 쥐 들락, 머릿니, 서캐 들끓고. 뱃속은 회가 끊이지 않는다. 면 그들이 낫다. 놀이터에 그네에 큰 나무. 신식으로 지은 집이라 지붕에 비 안 새고 개울에 멀찍이 떨어져 휩쓸려 떠내려 갈까 밤새 뜬 눈 걱정 없다. 시, 나라에서 지켜주니 굶을 걱정 뚝. 후원 단체에서 이것저것 먹을 거, 입을 거, 돈도 챙겨준다. 원장님이 안전하게 보호해 줬다. 아무리 그래도 부럽지 않았던 건 두 가지 이유였다. 불쌍하다, 무섭다. 엄마가 없다니, 아부지가 없다니. 세상에 어떤 것도 내 엄마, 내 아부지 그리고 내 형제자매를 대신할 수 없다는 걸 꼬맹이지만 알고 있었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문화극장에서 단체 영화 보며 내내 울었다. 감동과 충격을 한꺼번에  받아서인지 끝나고 영화관 나서서 집 가는 길을 잃었다. 이후 엄마, 아부지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겼다.



ㅡㅡㅡ



가매기삼거리 사람들 얼추 풀었다. 헌데 앞산, 그리고 개울 빼고 가매기삼거리는 반쪽이다. 치악산이 원주 시민의 아부지, 봉천이 엄마라면, 앞산은 가매기삼거리 주민의 아부지, 개울은 엄마다. 산은 먹을 물, 집 지을 황토를 아낌없이 내주었다. 개울에서 남자들은 변소 치울 큰물, 세멘에 섞을 모래를 얻었다. 여자들은 빨래하고 목욕하고.

아이들은 산이고 냇물이고 온통 놀이터. 사시사철 하루의 거반을 산이나 물이나 빙판에서 지냈다.



ㅡ앞산



앞산은 가매기 삼거리 남동에서 동네와 닿아 있다. 우리집 맞은 편. 산은 동네를 나즈막히 내려다 보았다. 무엇이든 들어주는 큰아부지 같다. 사람들 모두에게 먹을 물을 주었다. 집 지을 황토를 내주었다. 아이들에겐 놀이터. 오른쪽 패인 곳 좌로 작은 소나무 한 그루. 밑둥에 밧줄을 걸었다. 남자 아이들은 거기서 밧줄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전쟁 놀이. 경사는 마사토라 미끄러웠다. 부서져 아래로 모래가 쌓였다. 앞산에서 가장 큰 나무다. 그래봤자 중학생 키, 손목 굵기. 온산이 땔감으로 벌거벗은 민둥산 된 지 오래. 손목은커녕 손가락으로 굵기도 전에 싹둑. 이 나무가 유일한 나무다. 살아남은 건 비탈이어서 아니다. 어른은  까짓 한달음이면 오른다. 어른이나 다루는 밧줄과 나무가 온전한 거로 보아 누가 일부러 애들 놀으라고 걸어 놓았고, 이걸 알고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우리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거나 반장이고 동네 일에 앞장서는 강씨 아저씨 둘 중 하나시다. 그 외엔 그리 자상하지도 동네를 아끼지도 않았다.


산 입구에서 우로 편편한 돌 층층이. 신작로에서 보인다. 사이로 찰흙. 긁어 모아서 뭉친다, 뭉갰다 쪼물딱 쪼물딱. 양이 적어서 무얼 만들지는 못 해도 워낙 찰져서 한때 놀기. 집에서 산으로 잠깐 오르면 무덤. 너머로 야트막 계곡에 옹달샘. 왼편에 복숭아 과수원. 철망으로 막았다. 과수원 따라 산을 내려오면 기태네 집 윗쪽. 동네를 조금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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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은 헐벗었다. 모든 걸 주었다. 나무는 땔감으로 진작 사라졌다. 산에 나무다운 나무라곤 없었다. 굳이 꼽으라면 애들 놀으라고 후미진 곳에 키만한 작은 소나무 한 그루. 듬성 도토리나무. 나무라 하기엔 뭐 해서 꼬맹이 앉으면 가릴 정도. 도토리나무는 크건 작건 잎 크기는 같다. 애들은 잎이 커다란 잎을 따고 가지를 꺾어 토막내 하나씩 겹쳐서 꿰어 잇는다. 대 여섯 장. 마지막 한 장을 처음 잎에 꿰면 둥근 관. 머리에 쓴다. 이걸  군인 철모라 여겼다. 나무를 휘어 짱돌을 끝에 얹는다. 손 놓으면 돌이 얼만큼 날아간다. 애들에게  이게 대포였다. 산등성에서 저쪽 산동네로 날린다. 가매기삼거리 애들에겐 적이었다. 패싸움이 벌어지면 앞산 이 편에서 저 편으로 포탄을 날리는 거. 택도 없지만 그렇게 서로 자기 땅이라 주장하는 거. 넘어오지 말라 하는 거. 온산에 꽃도 달랑 세 가지. 옹달샘 위로 주황색 나리 두세 송이. 이뻐서 꽃 피고 다음날 가면 꺾어 가서 안 보인다. 산동네 가는 길에 할미꽃, 산사면 바위 근처 드문드문 창꽃. 셋 다 양지 바른  곳에 피었다. 둘은 마른 땅, 나리는 흙이 축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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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는 앞산에 키우던 개묻었다. 남들은 개를 먹었지만 아부지는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작게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꽂았다. 그리곤 내게 장소를 일러주었다. 베스. 내 잘못으로 죽었다. 꼬맹이는 몇 달을 눈물을 흘렸다. 처음 엄마, 아부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죽음보다 슬픔을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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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개울



물길 따라 내려가  보자.


번재고개는 빗물을 북과 남으로 나누었다. 고개에서 가매기삼거리까지 멀어서 꼬맹이 걸음으로 시간여. 내내 완만해서 고개에 다다러서야 비탈을 걸었다는 걸 안다. 산과 산사이가 넓어 평지 비스름. 해서 웬만큼 큰물 아니고선 대부분 비를 땅이 받아낸다.

고개 바로 아래에서 비는 복숭아 과수원에 물을 댄다. 그 아래로 논의 연속. 경사는 계단을 주었다. 가매기삼거리 끝인 기태네 집 이르기까지 온통 논이다. 논은 평평한 저수지. 비 가두고 풀고.  갇힌 물은 모를 벼로 키우고 개구리를 부른다. 벼 익으면 포기 건너 메뚜기. 이를 가만 냅둘 꼬맹이가 아니다. 가매기 최고의 전사는 신무기를 개발한다. 개구리 낚시 그리고 파리를 맨손으로 잡는 신공. 근본은 다 비 그리고 냇물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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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에서부터 민가가 드물었다. 논뿐 아니라 나무가 얼마간 살아남은 숲으로 빗물이 홍수를 막았다. 고개에서 얼마간 내려오면 실 같이 졸졸. 그러다 작은 물줄기, 구루마 폭의 시냇물, 기태네 집에서 좌로 휘어 신작로 가까운 폭으로 개울 되어 흐른다. 윗쪽 산이 낮되 워낙 넓어 사시사철 산이 뱉는 물이 끊기지 않는다. 봉구네 변소 바로 위에 세멘으로 보를 만들었다. 여름. 낮이면 꼬맹이들 물놀이, 모래성 쌓기. 여자들. 낮으론 빨래. 밤으론 보 아래 자그마한 폭포. 길쪽 귀퉁이로 숨어서 여자들 목욕. 축대에 가려 남 눈에 더 안 띄니까. 여럿은 못 하고 하나씩 정 더우면 어둠을 가림막 삼아 더위를 식힌다.


보 직전 좌측 축대 너머로 소롯길에 붙어서 양어장. 기태네 집부터 세탁소 집 뒤편까지. 폭우 다음날 양어장 잉어가 다 빠져 나왔다. 또래인 명훈이 아버지는 망했지만 그날 동네는 매운탕 축제가 벌어졌다. 입은 달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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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매운탕이 입맛을 돋우었을까. 떳떳하게 먹고 싶어서일까. 동네 어른들 십여 명이 뭉친다. 횡성 병지방으로 고기 잡으러 간다. 그 정도면 토박이는 대개 모인 거. 양어장 명훈이 아부지는 차마 부르지 못 했다. 아이는 나 하나. 아부지는 반장인 강씨에게 특별히 허락 받았다. 버스를 타고 덜컹덜컹 한참을 달린다. 산 사이 논이 너르다. 누른 듯 푸른 듯 빈틈없이 꽉 들어차 벼 벌판. 죽 뻗은 농로를 떼지어 걷는다. 왁자지껄. 들떴다. 덩달아 꼬맹이도 괜스리 달린다. 뱀이다. 수로를 가로지르며 오른다. 해 쨍쨍. 산들바람이 벼를 핥는 조용한 소리를 음악 삼아 볕을 즐기던 뱀이 쿵쿵 발과 떠드는 소리에 놀랐다. 도망 가자. 물 풍덩. 소음 반대쪽으로 오르는 거. 사람 하나는 안 무섭다. 밟으면 콱 깨문다. 아니면 움직여 겁 주면서 슬금 피하면 된다. 뱀이 수로를 건널 수는 있지만 물길을 거스를 이유는   없다. 지가 무슨 잉어가 아니지 않은가. 밧데리 아저씨. 뱀을 보자마자 얼른 등에 멘 밧데리를 켜고 작대기 둘을 뱀 주위 물에 댄다. 뱀 동작 그만. 물은 그대로 흐르는데 뱀 뻣뻣. 등에서 작대기 끝으로 전기선인 삐삐선 연결. 작대기 끝에 구리로 긴 침. 전기가 빠지직. 아저씨는 작대기를 물어서 떼고 뱀 꼬리를 잡는다. 어랏. 구불구불한 채로 들린다.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길 한가운데로 휙 내던진다. 땅바닥에 패대기처져도  꿈쩍 않는다. 죽었나 보다. 꼬맹이는 신기해 뱀 안 보일 때까지 연실 되돌아본다. 그대로. 죽었구나. 개울로 내려가 밧데리로 훑는다. 물가 풀숲, 물 가운데 돌 근처. 댔다 하면 물 위로 갖은 고기 두둥실. 뻣뻣. 센 놈 장어는 몸 부르르 떤다. 침 옆에 대면 정지. 아저씨는 무릎 위까지 덮는 고무 장화를 신었다. 물에서 작대기를 떼어 하늘 향해 들어올린다. 사람들 뛰어들어 고기를 줍는다. 장어도 많지만 메기도 흔하다. 꺽지, 미꾸라지, 붕어. 새우는 안중에 없다. 너도 줍고 나도 줍고 꼬맹이도 줍고. 금방 동그랗고 자그마한 대바구니가 금새 찬다. 이리 많을 줄 전날 꿈에도 몰랐다.  아부지가 바지를 벗는다. 혹시 몰라 내의를 챙겨 입으신 거. 양 다리 묶어 그 안에 고기를 담는다. 한 번 지지면 대여섯 마리. 백 미터도 못 가서 내의가 터질 듯 부푼다. 먹어도 될 정도로 물 맑으나 가물어 깊지는 않아 목욕은 않고  주저앉아 늦여름을 식힌다. 계획보다 이르지만 목표 서너 배 달성했기에 빠꾸. 바지를 벗을 수는 없고 그 정도면 열 집 매운탕으로 너끈하다. 집에 가서 나누는 장면을 떠올리면 올 때보다 들뜬다. 오던 길 되짚는다. 뱀. 꿈틀. 엥, 죽었었는데? 다들 꼼짝 않고 지켜본다. 꿈틀꿈틀. 옆 풀숲으로 기어든다. 그렇다. 녀석 기절했던 거. 집 도착하자마자 내의, 바구니를 쏟아 고기를 같은 양으로 나눈다. 장어는 마릿수 세어서 정확하게. 이게 제일 인기고 나머지는 눈대중. 꿈틀꿈틀. 그렇네. 고기들도 다 기절이지 죽은 게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 단체로 간 첫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  가매기삼거리는 두 번째 매운탕 축제로 모처럼 흥에 겨웠다. 첫 축제와 달리 이번은 숨을 죽이지 않아도 되었다.


보 지나자마자 좌 봉구네 변소, 우 봉구네 돼지우리. 개울은 일 년에 한 번 장마 첫날에 사람 똥, 여러번 돼지 똥을 뒤집어쓴다. 물 불었을 때 똥 치우는 거. 개울은 그걸 아는지 그 사이를 빠르게 지나친다. 하지만 고기는 다르다. 물가로 풀이 자라 숲을 이룬다. 똥은 거름이 되었고 가운데 물길 빼고 풀이 자란다. 여기만 풀이 무성하다. 세찬 비가 지나면 아부지나 내가 족대를 들고 나간다. 물길에 닿은 풀숲에 펴고 발을 푸걱푸걱 족대쪽으로 밟는다. 들어올리면 미꾸라지, 붕어 새끼, 중투리. 다 버리고 미꾸라지만 건진다. 집에 와 뽐뿌 맑은 물을 퍼올려 대야에 담는다. 미꾸라지를 하루 둔다. 모래를 토해낸다. 물 버리고 굵은 왕소금 한 웅큼 뿌린다. 지랄발광. 바로 비벼서 미끌미끌 닦아낸다. 그새 죽는다. 밀가루 걸죽하게 반죽해 미꾸라지에 입힌다. 이동식 연탄불. 후라이팬에 기름 듬뿍 두르고 불 위에 얹는다. 지글지글 튀기듯 익힌다. 맛나다. 더럽지 않다. 미꾸라지는 거기서 똥물 먹고 큰 게 아니고 큰개울이라고 부른 봉천에서 거슬러 오른 거. 중투라지를 보면 안다. 녀석은 맑은 물에서만 산다. 평소 물 적을 때 미꾸라지 어쩌다 한 마리. 큰비 뒤면 열댓 마리 금방 잡는다. 먹어도 된다.


냇물 내려오며 인 듯 정면인 듯 축대. 여기서 축대를 들이받고 우로 비스듬히 방향을 튼다. 해서 마름모 커다란 돌을 튼튼하게 쌓아올렸다. 바닥은 세멘으로 발랐고 돌 틈은 남는 세멘으로 메꿨다. 몇 해 장마가 지나자 세멘 바닥 아래로 흙이 파였고 그 뒤로 축대 돌 사이도 구멍 숭숭. 가물으면 동네 어른 몇이 축대 부근을 흙을 쌓아 물길을 왼쪽으로 튼다. 갇힌 물을 양동이로 대충 퍼낸다. 그리고 카바이트. 석회석인가를 깡통에 담고 물을 적시면 가스. 그걸 쇠 덮개로 모아서 끝에 구멍으로 내뿜게 한다. 성냥불을 대면 불이 붙는다. 시내 가면 홍합 파는 포장마차. 밤에 장사할 때 붉은 불로 내부를 밝힌다. 사람 몸만한 둥근 산소통을 연결하고 가스를 세게 나오게 하면 쐐애액 파란 불길. 쇠를 녹여서 붙이는 용접. 석회석이 다 물에 다 녹으면 흰 반죽으로 변한다. 이게 카바이트. 이걸 가둔 물에 풀면 짙은 안개인 양 물이 뿌옇다. 그 물을 먹고 꾸물꾸물 물 위에 뜨는 것. 메기와 장어. 씨가 굵지는 않아도 제법 크다. 열댓 마리. 매운탕. 어른들 술자리라 애들까지 몫은 없다. 두어 해 한 번. 장마철 큰물에 봉천에서 고기가 오르기를 기다린다. 동네 사람들이 축대 에서 고기잡이를 즐겼다면 우리집 식구들은 그 축대 때문에 새벽을 뜬 눈으로 하얗게 지새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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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은 다리 아래를 지난다. 빵 공장, 대추나무 집 거쳐 여씨네 집 옆을 빠져나간다. 여기서 폭이 반으로 줄어 급물살. 다리 위에서 나는 종이배를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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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어김없이 얼음 지치기. 여름은 가물면 졸졸, 장마면 콸콸, 홍수면 넘실. 냇물 폭과 높이 차이가 크다. 겨울이 깊어가면 바닥 온통 얼음 땡땡. 아부지는 뛰기 시작한 나를 위해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만들었다. 그 위에 앉히고 뒤에서 밀고 앞에 줄 매달아 끌었다. 대장간서 스케이트 칼날 한 쌍을 산다. 쇠를 달구어 해머, 망치로 두드려 편다. 약  30센티 길이, 5센티 폭. 위는 중간 두 곳에 거리 두고 양쪽으로 구부리고 못 구멍 각 두 개씩.  이렇게 두 개. 톱으로 각기목을 날 길이로 두 개 자른다. 날 뒤집어 각기목 위에 얹는다. 못을 구멍에 대고 망치로 못질. 사각으로 방석만하게 톱으로 잘라 둔 두터운 베니어합판. 각기목 둘을 칼날을 아래로 해서 평행하게 세운다. 폭은 합판 끄트머리에서 안쪽으로 조금 들여서. 합판 위로 못을 양 각기목에 서넛씩 박는다. 꼬챙이. 아카시나무를 베어온다. 40센티쯤 둘. 대못을 연탄불에 적당히 달군다. 나무를 땅바닥에 세운다. 못을 뻰치로 집어서  

망치로 살살 두드려 나무 중심에 박는다. 탄불에 다시 달군다. 이번은 탄 구멍 19개 중 한가운데에 넣어서 바짝 달군다. 꺼내어 쇳덩어리나 돌 위에 얹고 망치로 머리를 두들긴다. 날카롭게 침 모양이면 꼬챙이 완성. 개울 빙판에 스케이트에 앉아서 양손에 꼬챙이로 얼음을 내리 꽂으면서 앞으로 내닫는다. 아주 어릴 땐 꼬챙이 없이 아부지가 밀고 끌고. 국민학교 갈 때쯤 나 혼자 꼬챙이질. 양반다리 아니라 무릎 꿇는다. 속도 내려고. 3학년쯤 내가 스케이트, 꼬챙이 다 만들고. 4학년 되어 외발 스케이트. 날 길이 반, 발걸이로 날개를 단다. 5학년 외발에 외꼬챙이. 이건 바지 가랑이 사이로 넣어서 뒤쪽 빙판을 꼽아서 미는 힘. 해서 꼬챙이 길이가 한 배 반. 가장 신나는 건 외발에 양꼬챙이. 속도 제일 빠르다. 순간 서고 가고 자유자재. 얼음 깨지거나 녹아서 빙판 위로 물 흐르면 더 재미나. 옆 칼질로 급히 서면 칼날에 물 좌악. 껑충껑충 장애물 뛰어넘거나 일부러 얼음을 깨기도. 이걸 다 빠르게 하려고 칼날을 쇠톱으로 반토막 내어 앞쪽 날만 남긴다. 뒷면이 수직이라 앞을 들면 얼음에 찌지직 금 내며 급정거. 영하 10도고 20도고 상관 없다. 정 추우면 모닥불. 봄 가까와 얼음 깨지면 얼음 배. 얕지만 들썩들썩 앞으로 전진. 스케이트 말고도 팽이. 아주 꼬맹이 땐 채찍. 국민학교 가서는 줄 팽이. 줄로 꼭지부터 꼭꼭 눌러 칭칭 감는다. 팽이를 세워잡고 줄 끝을 새끼나 약지 사이에 끼워서 고정. 몸 낮추어 팽이를 빙판 위에 수평으로 던진다. 줄이 화르륵 풀리면서 팽이 팽그르. 팽이든 스케이트든 혼자선 재미 없다. 내가 먼저면 동무가 보고 나오고, 동무가 먼저면 내가 보고 나오고. 둘이면 둘이 속도 경쟁, 서넛이면 우르륵 우르륵 떼로 빙판을 누빈다.

방학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논다. 겨울은 개울 빙판에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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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엄마는 사 둔 450평 빈 땅에 집을 짓기로 한다. 땅 중앙쯤. 광 옆이자 기와집 뒤편. 방 한 칸 부엌 하나. 두어 해. 세를 달란다. 것도 집뿐 아니라 빈 땅 전부. 목공소. 신혼부부. 형과 아우가 집 앞 너른 공터에 땅을 파서 굴을 만든다. 한 길 반 깊이,  두 칸 방 넓이. 각기목 사다리로 오르내린다.  토막낸 통나무를 빼곡히 쌓는다. 겨울엔 땅굴에 난로를 피워 뎁힌다. 통나무를 벗기고 잘라서 나무 도시락, 나무 젓가락을 대량으로 만든다. 몇 해 지나 가구로 돌린다. 장롱을 주로 짠다. 해서 우리집은 기와집으로 이사했. 그전에 그 집에서 보건약국이 몇 년 하다가 다른 으로 옮겼다.


약국 부부는 젊은데 아이가 없었다. 동네에서 대학 나온 이가 엄마 말고 없는데 둘 다 대학을 나왔다. 인테리라 그런지 친절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지는 않았다. 부부 싸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먹는 거도 살림도 단촐해 이삿짐 역시 그랬다. 세탁소처럼 아들 얻으려고 야반도주는 아니었다. 자전거포같이 여자가 아이를 못 낳는 건지 동네 어른들은 늘 궁금했다. 일본 여자일 거야. 그래서일 거야. 여위고 단아했다. 약 사러 가면 말수는 적어도 싹싹했다. 한국말이 서투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를 수 없는 호기심을 소문으로 달랬고 이사와 함께 잊혀졌다.


집집마다 줄줄이 꼬맹이들이 훌쩍 컸기 때문이다. 세 끼니 걱정은 덜었지만 중학 공부 시키는 데 교납금이 들어간다. 우리집은 나 대학까지 보내려면 등록금까지 미리 모아야 했다. 촛불 대신 전기, 뽐뿌 빼고 수도가 들어와 편리했지만 돈 들어갈 데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동네 사람들은 일을 더 오래 많이 해야했다. 토박이마저 돈 벌러 하나둘 동네를 떠나기 시작했다. 쌀집, 김 목수네는 버텼다. 가매기삼거리를 마지막까지 지킨 집은 구씨네와 노씨네 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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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매기삼거리 사람들 먹고 사는 이야기는 이쯤이다. 이제야 자식 이야기를 꺼낸다. 처음에 말하지 않았는가?동네 사람들은 구씨네와 노씨네 중 누가 더 잘 사나 늘 궁금했다고. 재산 그리고 자식. 이걸 기억한다면 당신은 천재. 글이란 게 또 그렇다. 수미가 쌍관하면 중간이 좀 어리숙해짜임새 있어 보인다. 긴 글이면 더 하다. 때로 화룡점정 되기도. 이제껏 첫 얘기 들으신 거. 이제 자식 이야기되시겠다. 겁먹지 마시라. 한 꼭지로 짧게 끊었다. 출생의 비밀이 있어서 익명. 알아서 상상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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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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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나 63세. 아부지 35년전 57세, 엄마 9년전 86세에 가셨다. 두 분 바람대로 합장해 드렸다. 아부지는 말씀 않았지만 원했다는 걸 안다. 가매기삼거리 근처다. 나도 아부지, 엄마 아래에 묻힐 거.


땅은 진작 도로로 편입 되어 일부만 남았다. 내가 번 돈으로 땅 사서 붙였다. 그 땅에서 아버지 보내드렸고 어머니 모셨다. 아내와 결혼해 살았고 두 아이를 키웠다. 사업 쫄딱 망해서 몽땅 날렸고 10억 빚졌다. 그 땅만은 되찾아야 했고 10년 걸렸다. 부모 생전 바람. 동생 뒤를 나름 봐주고 있다. 그 땅은  육신이고 내 영혼이다. 그래서 필명 '가매기 삼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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