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또 딸. 엄마는 딸 셋을 줄러리 낳고 죄인이 되었다. 그러고나서 소원 성취 나. 아들 하나 외롭다며 하나 더 낳으려다 또 딸. 그 다음 아들. 엄마 마흔 살 되어 그만 낳으려 했는데생겼다고. 1954년부터 1969년. 일곱에 15년 걸렸으니 엄마는 한 해 걸러 하나를 낳았다.
엄마는 아부지와 함께 돈을 벌어야 했다. 아부지는 큰누나에게 엄마 일을 맡겼다. 네가 장녀니까 동생들 돌봐야 한다며. 아부지는 첫째 딸이 싫었다. 고추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못났다. 영리하지 않았다. 고구마, 고구마. 아무리 고구마라 해도 쪼즈망, 쪼즈망 했단다. 버스부에서 가게할 때는 엄마, 아부지 출퇴근. 장사가 잘됐다. 녹초된 엄마도와서 빨래. 헤진 양말, 옷 꿰메고. 겨울엔 대바늘로 털실 옷 짜고. 엄마, 아부지는 큰딸을 중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
작은누나는 운이 좋았다. 딸이지만 맏이 아니었고, 예뻤고, 약았다. 아부지는 큰누나에게 줄 사랑을 작은언니에게 주었다. 큰누나는 동생 건사가 의무였기에 게으르면 혼나고 매를 맞았다. 둘째 누나는 기억에 없다. 일찍 죽었다고.
큰누나는 가게 일도 도와야 했다. 워낙 바빴고 일손이 부족했다. 출근 순서. 아부지 새벽, 엄마는 우리 학교 보내고나서, 큰누나는동생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먹을 거 챙겨주고나서. 큰누나 소심한 복수. 가게에서 동전을 몰래 가저왔다. 집 골방에 빨간 돼지저금통. 끊이지 않고 동전을 넣었지만 저금통은 등까지 차지 않았다. 내가 숨겨둔 걸 발견했고 뒤집어서 동전을 빼썼기 때문이다. 나중엔 작은누나도. 큰누나처음엔 뭐라 하더니 아무말 않았다. 내가 다른 일로 일렀고 큰누나는 아부지한테 혼났다.
작은누나는 나를 미워했다. 괴롭힌다. 아부지 안 보는데서 쥐어박는다. 아부지가지보다 나를 훨씬 위해줘서다. 나 국민학교 2학년쯤. 또 쥐어박는다. 연탄집게를 든다. 첫 반항. 눈치챈다. 도망간다. 죽인다고 쫓는다. 놀라서 튄다. 마당에서 방으로, 광으로, 마당으로. 몇 바퀴 도는데 큰누나 놀라서 연탄집게를 빼앗는다. 그날 이후 작은누나는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양계할 때. 물렁알. 회분 즉 뼛가루가 부족하면 닭알 껍질이 안 생긴다. 얇은 막 채로 알을 낳는다. 이십여 개. 팔지 못 한다. 특식. 큰누나가 후라이팬에 한꺼번에 계란후라이. 두툼한 빵. 큰누나는물렁알 나올 때마다 먹성 좋은 나잘 크라고계란 빵을 만들어 주었다.
아부지는 노래를 즐겼다. 아부지 따라서 아, 신라의 다아알 바아암이여. 현인이란다. 제일 좋아하신다. 봄봄 봄이로구나 봄. 이팔청춘 방긋 웃는 봄이로구나 봄. 이건 누구 노래인지 모른다. 아부지 닮아 누나도 노래를 늘 불렀다. 남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나훈아 등등. 누나 따라서 흥얼흥얼. 일곱 살 차이지만 유행가를 일찍 접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미국 가수도 알게 되었다.
나 어릴적 반은 큰누나가 키웠다. 노래를 즐기게 된 건 누나와 아부지 덕이다.
1968년 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큰누나와 꼬맹이. 국민학교 소풍 가서.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하여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 그때는
둘째 아들은 장남이 외롭다기보다 죽으면 대가 끊길까 두려워서다.
7형제 중 장남 하나 대학 보내는 게목표였다.
중간에 언니는 오타 아니다. 나중에야 누나라 불렀다. 언니만 들으니 따라했을 터. 지금도 자연스레 언니로 써진 걸 수정 않았다.
♤ 지금은
나 대졸, 큰누나 국민학교졸, 작은누나 상고졸, 여동생 고졸. 남동생 대졸,남동생 막내 고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