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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Feb 23. 2020

간땡이가 부은 닭

31화. 응답하라 1968-직업 편

우리집 양계장 닭은 간땡이가 부었다. 아부지가 그렇게 만들었다.


양계장.


아부지양계장을 다. 건너집 김목수 아저씨를 불러다 나무로 양계장 뼈대를 세운다. 아부지는 앞산에서 황토흙을 파서 자루에 담아 마당으로 옮기고 바닥에 쏟는다. 볏짚을 작두에 물리고 아이 손바닥 길이로 뭉텅뭉텅 썬다. 삽으로 황토흙을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게  둥굴게 펼친다. 거기에 썰은 볏짚을 넣고 뽐뿌로 퍼올린 물을 붓는다. 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맨발 양발황토흙, 벗짚, 물을 섞고 밟으면서 치댄다. 찰진 황토를 직육면체 쇠틀에 넣고 꾹꾹 눌러서 한 장씩 벽돌을 찍어 낸다. 햇볕에 말린다.


바싹 마른 황토 벽돌을 한 줄 쌓고, 이음매가 어긋나게 다시 한 줄 고. 그렇게 올리다가 중간쯤에서 김목수가 미리 짜둔 창을 얹는다. 창은 여름에 바람이 잘 통하도록 큼지막하게 두 군데 낸다. 그 위로 황토 벽돌을 또 쌓는다. 키높이보다 훌쩍 높이면 벽이다. 꼭대기에 빗물이 흐르도록 경사지게 지붕을 스레트로 얹으면 양계장 완성. 목수 일 외에는 아부지가 다 했다. 나는 아부지 따라서 황토흙을 양발로 밟는 거만 했. 질척질척 끈적끈적 발에 들러붙으니 놀이 삼아 거다. 일이 바쁘면 아부지는 나를 번쩍 들어 어깨 위에 얹어 목마 태우고 황토 밟기를 했다.   


양계장을 짓고 아부지는 부화장에서 병아 몇 백 마리 사다가 풀어 놓았다. 사료를 먹인다. 좀 크면 배추 같은 걸 작두로 잘게 썰어 사료에 넣어 주기도. 알 낳을 때가 되면 뼛가루인 회분을 사료에 섞는다. 양손으로 버무린다. 양계장 바닥 여기저기 놓인 모이쏟아 붓는다. 물은 모이통 옆에 담아 둔다. 병아리는 아부지가 주는대로 먹고 쑥쑥 자라 닭이 되고 알을 낳았다. 


양계장을 짓고 닭을 기르는 건 아부지 일이다. 엄마는 매일 아침 일찍 계란을 팔러 나갔다. 두툼한 종이로 만든 계란판 한 판에 서른 개씩 십여 판을 자전거 뒤에 높이 쌓아 싣고서.


물렁알. 


회분을 덜 주거나 안 주면 단단한 달걀 껍질이 생기지 않는다. 껍질 안쪽의 얇은 막만 있다. 물렁물렁하되 터지지 않는다. 그래서 물렁알이다. 껍질만 물렁하지 안에 흰자위, 노른자위는 똑같다. 팔지 못하니 우리 몫이다. 물렁알이 나오는 날은 생일보다 낫다. 큰누나가 아궁이 연탄불 위에 후라이판을 얹고, 돼지기름을 두르고 그 위에 물렁알 수십 개를 깨서 후라이팬에 쏟는다. 그리고 익힌다. 후라이팬 깊이만큼 빵처럼 두툼하다. 엄청 맛있다. 그걸로 한끼를 운다. 물렁알이 나오면 아부지, 엄마는 기분이 언짢다. 나는 물렁알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쌍계란. 


달걀 한 개에 노른자가 두 개다. 그래서 쌍계란이다. 이건 우리 몫이 아니다. 따로 모아서 판다. 크고 노른자도 두 개라 비싸게 받는다. 가끔 아부지는 엄마 몰래 쌍계란을 내게 주신다. 아부지와 나 둘만의 비밀이었다. 엄마에게 들키면 아부지가 혼난다. 부지는 귀한 쌍계란을 장남에게 먹이고 싶었고, 엄마는 쌍계란을 팔아서 여덟 식구 식량으로 쌀과 보리를 사야했다.


간땡이가 부은 닭.


아부지와 엄마는 어쩌다 큰소리 치며 싸운다. 그러면 아부지는 양계장에 가서 화풀이 한다. 바닥에 놓인 사료통을 걸어가며 발로 걷어찬다. 닭들이 놀라서 후다닥 이리 뛰고 저리 날아 도망친다. 깃털이 빠져 날리고 바닥에 흙먼지 날리고 난리다. 한바탕 그러고나면 어떤 닭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그 닭 배를 가르면 크기보통 닭의 두 배라고 엄마가 말했다. 놀라서 간땡이 부어서 죽은 거란다. 한 마리만 죽으면 엄마는 그 닭을 삶아서 아부지에게 드렸다. 두 마리면  나도 한 마리 먹었다. 여러 마리면 식구들이 다 함께 먹었다. 


돌림병.


원주에 닭 돌림병이 돌았다. 다른 동네 양계장에서 닭들이 죽었단다. 우리집 들도 다 죽었다. 먼저 한 마리가 비실비실 다가 픽 쓰러진다. 그다음 여러 마리가 픽픽픽. 그러다 다 죽는다. 병이 돌면 분무기로 소독해도 소용없다. 분무기는 소독물통, 폄프, 펌프질하는 길다란 지렛대, 호스, 그 끝에 노즐, 멜빵으로 구성된다. 통은 두께가 좁고 어깨넓이에 어깨부터 허리까지 길이. 아부지는 작은 병에 든 소독약을 양동이 에 타서 분무기에 담는다. 분무기를 등에 지고 왼손으로 지렛대의 손잡이를 아래 위로 뿌걱뿌걱 올리고 누르고를 반복한다. 오른손으로 호스를 잡고 바닥, 허공, 닭을 향해 소독물뿌린다. 호스 끝에 노즐을 통해 허공에 나온 소독물 안개처럼 뿌옇다가 이내 바닥에 내려앉는다. 


돌림병으로 죽은 닭은 단 한 마리도 먹지도 팔지도 못 하고 전부 내다버렸다. 병이 사람에게 옮을까봐서다. 떼로 죽은 닭을 다 치우고나서 마음이 상해서인지, 힘들어서인지, 돌림병이 옮아서인지 아부지는 며칠 끙끙 앓았다.


아부지는 양계장에 철망으로 된 닭장을 켠켠이 쌓았다. 한 칸에 한 마리씩 닭을 넣었다. 아부지가 지나다닐 통로만 남겨두고 닭장 줄 수를 늘려 나갔다. 놓아 기르던 거에 비해서 마릿수가 엄청나게 늘었다. 소독약은 미리 쳤다. 하지만 몇 년 후 돌림병이 또 돌았다. 아부지, 엄마는 손해를 많이 보고 양계장을 그만뒀다. 닭은 금방 크고, 한 번 알 낳기 시작하면 계속 낳고, 고기로도 먹어서 좋은 점이 많지만 돌림병으로 한꺼번에 전부 죽는 건 당해낼 수가 없었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세대 통역




부화장 : 닭이 낳은 알을 인위적으로 따뜻하게 하여 병아리가 되도록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

돌림병 : 전염병





지금은




겁 없이 날뛰는 사람을 간땡이가 부었다고 한다. 놀라서 간이 붓는 거니까 겁이 많은 사람에게 그 말을 써야 다. 아님 사람은 닭과 반대인가? 그건 또 어찌 알았대? 그런 사람 배를 갈라봐야 아는 건데.


ㅡ코로나 19 즉 우한 폐렴으로 중국, 일본에 이어 전국이 난리다. 그때 닭 돌림병은 조류독감이나 사스, 코로나19  같은 것이었던 게다. 도시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양계장처럼 니까 닭 돌림병이 사람에게도 옮는 거다. 유람선, 병원, 집회처럼 갇힌 공간은 양계장 안에 닭과 똑같아서 후딱 다 번지는 거다. 비행기로 반나절이면 지구 반대편을 날아가니까 하늘을 날아 나라간 이동하는 철새보다 훨씬 빨리 조류 돌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거다. 


원주 인구 66년 10만, 75년 12만, 95년 23만, 2007년 30만, 지금 33만이니 3.3배. 그때는 사람에게 옮더라도 전국으로 퍼지기는 어려웠다. 자가용, 시내버스가 없었다. 시외버스와 기차가 다녔지만 명절 때 일부 사람들 외에는 이동할 일이 없었다. 비행기야 평생 탈 일이 없으니 나라간 전염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인간이 자연의 숙주를 없애니까 바이러스는 생존 전략으로 대신 사람을 선택하는 거다. 자연의 역습이다.


쥐를 봐도 그렇다. 쥐가 죽으면 체온이 식는다. 피를 빨고 사는 벼룩들이 필사적으로 튀어오른다. 근처에 사람이 있으면 체온이 있으니 무조건 달라 붙는다. 벼룩 안에 병원균은 쥐 대신 사람을 숙주로 택한다. 페스트다.


혹은 그때 이미 조류독감이나 사스, 코로나19가 존재했던 게다. 과학이 발달해서 지금 신종이니 변종이니 하는 것일 수 있다.


아부지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착하고 순한 분이셨다. 동네 사람이든 누구든 다투는 걸 본 적 없다. 가끔 엄마와 말로만 다퉜다. 정 화나면 물건에 화풀이 했다.


왜 물렁알은 물렁계란이 아니고 물렁알일까? 쌍계란은 쌍알이 아니고 쌍계란일까? 우리말은 영어보다 다채롭다.


종이 계란판은 같은 모양, 같은 재질로 여전히 쓰인다.  


양계장 자리는 신화철물쯤 된다. 황토가 나는 앞산은 동성교회 뒷편의 산이다. 






잊혀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20.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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