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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an 30. 2020

사탕과 교회

응답하라 1968 - 종교 편


가매기 삼거리에 적이 나타났다! 교회다.




ㅡ교회ㅡ




앞산 아래쪽 산 끄트머리를 깎아서 터를 닦는다. 목재로 기둥을 세우고  위로 서까래를 각기목으로 짜고 지붕으로 스레트로 얹는다. 벽은 빗물이 흐르도록 판자를 아래부터 한 장씩 윗장 아랫부분이 아랫장 윗부분이 겹치게 못질해 붙여 나간다. 판잣집을 다 짓고 나서 건물 정면 위로 뾰족하게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세운다. 문 옆에 세로로 매단 작은 나무 간판을 보니 동성감리교회. 이렇게 가매기 삼거리에 처음 교회가 지어졌다. 그날부터 교회나의 적이 되었다.

교회 터 동네 아이들 전쟁 훈련장으로 가는 길목이다. 터를 지나 작은 협곡에 들어서면 왼쪽에 흙이 드러난 급경사면. 위쪽 소나무 등걸에 밧줄을 걸어 두었다. 줄 잡고 오르고 미끄럼 타고 내려오고. 심심하면 거기서 그러고 논다.

교회 터에 접한 오른쪽 경사면은 찰흙이 나는 곳이다. 편편하게 쪼개지는 돌로 켠켠이 층을 이루었다. 돌 틈 사이로 아주 찰진 진흙. 그걸 긁어모아서 주물떡 주물떡. 가끔 고 놀기에 다. 

교회 터 위쪽은 산동네 패싸움 벌이는 전쟁터 중 하나다. 교회 터 오른쪽 급경사 위쪽에 집이 예닐곱 채 산동네. 가매기 삼거리 열한 집 아이들 30여 명과 산동네 아이들 10여 명. 아지랑이 피어나는 완연한 봄이 되면 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의 이유는 딱히 없다. 굳이 들자면 산동네와 가매기 삼거리 동네의 경계가 정해진 바 없고 봄철에는 놀거리가 마땅찮기 때문이. 수는 우리 동네가 많지만 아래라 불리. 접근전은 없고 멀리서 짱돌 던지기. 운 없는 누군가 다치지만 머리에 정통으로 맞아서 피가 철철 흐르지 않는 한 어른들은 웬만해선 끼어들 않는다.


게다가 교회 터는 뒤쪽 언덕 너머 옹달샘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교회와 그 뒤쪽에 목사 집이 떡하니 길을 막아 샘물을 길어 먹을 수 없다. 옹달샘에 가려면 개울 따라 난 길로 냇물을 거슬러 오르다가 개울 건너 절을 지나 과수원 울타리를 끼고 빙 돌아야 한다. 되돌아오면 시간이 네 배도 더 걸린다. 집에서 샘물 긷는 건 내 일이니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런 요충지를 느닷없이 교회가 점령한 거다. 그러니 적이 산동네에서 교회로 바뀔 수밖에.




ㅡ사탕ㅡ




교회가 하늘에 계신 하느님과 통하는 곳이라 그런가 교회의 약점은 하늘 쪽 즉 지붕. 교회 앞마당에서 오른쪽으로 가파른 경사면을 오르면 봉산미에서 내려오는 능선의 끝. 스레트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스레트. 회색에 표면이 꺼끌꺼끌하다. 어른이 양손으로 들고 옮기기 적당하게 문짝만 한 크기로 얇은 공책 반 두께. 연속된 물결 굴곡이 있어 빗물이 잘 흐른다. 각기목 서까래에 스레트를 얹는다. 스레트 전용 못을 박는다. 못은 일반 못과 김새는 같되 좀 더 가늘고 길다. 동전만 한 원형의 두툼한 비닐이 달려있다. 망치로 스레트에 못을 밖으면 비닐이 못대가리와 스레트 사이에 꽉 끼어서 둘 사이의 틈을 막는다. 마지막으로 다 박은 못 대가리와 비닐 주위를 감싸도록 새카맣고 끈적끈적한 골탄을 두툼하게 바른다. 그럼 빗물이 스며들지 못한다. 스레트의 단점은 누르는 힘약해서 발에 체중을 실어 밟으면 깨지지만 지붕이 충격받을 일이 특별히 없으니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지붕 수리하러 지붕에 올라 스레트를 디딜 때는 우지끈 깨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교회 지붕을 내려다보고 선다. 동네 패싸움 때보다 큰 돌을 집어 든다. 지붕 스레트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냅다 던진다. 

와장창

스레트가 깨지거나 구멍이 난다. 지붕 아래로 스레트를 받친 각기목 외에 허공이니 비가 오면 빗물이 바로 바닥으로 직행. 강단이든 긴 의자든 바닥이든 적실 . 지붕 깨지는 소리에 깜짝 놀란 목사가 달려 나온다. 쉽게 잡힐 위치가 아니니 들으라고 크게 외친다. 


교회 망해라! 교회 망해라! 교회 망해라!

그러길 여러 번. 교회 입구 큰길에서 얼쩡이는데 목사가 웃으면서 손짓으로 부른다. 때릴까 봐 도망가려니까 손바닥에 여러 개 사탕을 내보이며 받으란다. 표정이 거짓 같지 않다. 주춤주춤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음에 교회 오면 사탕 또 준단다. 혼내지 않는다. 돌 던지면 안 된다는 말도 없다. 그래서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 사탕 먹는 재미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찬송가도 여럿 배웠다. 맨날 짓궂게 놀다가 노래를 합창하니 신이 났다.


찬송가.


나는 진군하는 보병이나 말 타는 기병이나 포 쏘는 포병이나 적 위 나는 공군은 돼도 나는 주님의 군병 나는 주님의 군병 나는 주님의 군병 나는 진군하는 보병이나 말 타는 기병이나 포 쏘는 포병이나 적 위 나는 공군은 안돼도 나는 주님의 군병


 하나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네 예수 이름으로 예수 이름으로 승리를 얻었예수 이름으로 나갈 때 누가 우리 앞에 서리오 예수 이름으로 나갈 때 승리를 얻었


톱밥 난로. 처음엔 사탕 때문에 교회 갔지만 겨울엔 따뜻해서 열심히 갔다. 교회에 커다란 톱밥 난로가 . 무쇠고 겉은 녹으로 검붉다. 난로 곁에는 톱밥 통. 난로 안에 판자를 태워 불씨를 만든다. 톱밥 통에서 톱밥을 퍼서 잿불 위로 가득 채운다. 오래 타도록 살짝 꾹 눌러준다. 아래부터 톱밥이 서서히 타들어간다. 거진 타서 톱밥이 푹 가라앉으면 위로 톱밥을 얹는다. 언 손을 난로 가까이 쬐면 따스하다. 단점이 있다. 난로 위가 트여 있어서 아래에서 불붙은 톱밥이 이따금 퍽 소리 내며 튄다. 불씨가 난로 밖까지 사방팔방 날린다. 얼른 피해야지 안 그러면 나이롱 잠바에 쌀알, 좁쌀 같은 구멍이 여기저기 뚫린다.


교회는 장방형으로 교실 반만 한 넓이에 단출하다. 입구에서  경첩을 단 무문을 삐거덕 열고 들어선다. 바닥은 흙. 중앙에 한 명 반 지나는 통로. 그 좌우로 서넛이 앉는 기다란 의자가 열 맞춰서 줄러리. 끝에 세워진 탁자. 거기에 목사님이 성경을 놓고 설교. 오른편에 풍금 하나. 찬송가 부를 때 다.


목사님은 아부지보다 젊었다. 매일 아침 일찍 흙마당을 싸리 빗자루로 쓸었다. 겨울에 못 볼 걸 봤다. 목사님이 코로 크읍하면서 혀 끝으로 누런 코 한 움큼을 모아 뱉으려 한다. 나를 보더니 꿀꺽 삼킨다. 너무 더러웠다.


부흥회. 교회에서 부흥회가 단다. 아이는 못 들어간다. 소리가 집까들린다. 교회에 가서 몰래 문틈으로 훔쳐본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목사님이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함치며 뭐라 뭐라 한다. 울고 불고 그러다 찬송가 부르고 난리다. 무섭다. 교회 가면 사탕 고 찬송가 따라 하면 과자도 지만 부흥회를 본 이후 교회 가는 게 뜸해졌다. 거기다 목사님이 누런 코를 삼키는 걸 본 후로는 목사님 보면 예수님보다 그게 먼저 떠올랐다. 흥미를 잃었고 교회 가는 걸 그만뒀다.


그렇게 교회에 봄부터 겨울까지 한 해 다녔다. 산신령님을 믿는 엄마 몰래. 사탕 받아먹으려고.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세대 통역



스레트


slate. 회색의 지붕용 건축 자재. 스레트가 공장에서 생산되기 전 지붕재는 볏짚이었고 그게 초가집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의 초가지붕을 스레트로 바꾼다. 시공이 쉽다. 값싼 대신에 폐암을 유발하는 일급 발암물질인 석면이라 진작부터 생산 및 사용 엄격히 금지. 빗물처럼 기름 또한 잘 흐르기에 한때 삼겹살 구이판으로 스레트가 유행했고, 지금도 그러는 사람이 간혹 보인다. 건강에 대단히 위험하다. 


ㅡ골탄


원유 정제 후 남는 끈적끈적한 액체. 점착성이 강하고 상온에서 굳어 고체가 된다.


잠바


jumper. 겨울이나 작업용으로 입는 두툼한 상의 겉옷


수도가 놓이기 전엔 땅에 파이프를 아 지하수를 펌프로 끌어올려 먹었다. 그전엔 샘물을 길어다 먹었다.






지금은




ㅡ돌이켜 보니


스레트를 몇 번 깼어화 한 번 안 내시고 사탕을 주며 악동인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거다.


심한 축농증이었던 거다. 코를 입에 모아 마당에 뱉으려다가 가 보고 있으니까 그 더러운 걸 꾹 참고 억지로 삼키셨던 거다. 마당이 흙이라 뱉고 으면 그만인데 어린 가 보고 배울까 봐 삼키신 거다.


개척교회 새내기 목사님이었던 거다. 그래서 땅값이 헐한 산자락에 판잣집으로 교회를 짓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셨던 거다.


부흥회는 불구자나 불치병 환자를 낫게 하려고 예수님의 기적을 바랐던 거다. 마지막 희망이라 절했던 거다.


가매기 삼거리 동네 크기는 그대로인동성교회는 증축을 거듭해 열 배는 커졌다. 콘크리트 구조에 2층 높이, 외부 바닥까지 콘크리트로 깔았다. 교회 전용 버스도 있다. 사탕을 주는 대신에 건물 정면에 LED가 번쩍이며 지나는 사람의 눈길을 끈다.


최근 가두에서 동성 감리교회 신자 모집 때 커피 한 잔 얻어먹었다. 개척교회 시절을 간략히 말해주니 목사가 대여섯  바뀌어 그 목사님은 안 계신다고. 나는 주님의 군병, 예수 이름으로 찬송가를 읇조리며 완창 하니 장로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다니는 교회 있냐고 묻는다. 그때 이후로 교회는 가 본 적이 없다니까 깜짝 놀란다. 나는 주님의 군병이란 찬송가는 자기도 처음 듣는다고, 커피 타 준 여학생도 처음이라고 그 찬송가는 지금은 안 배운다고. 


장로가 교회 나오라길래 산신령님 덕에 태어났고, 삶의 철학으로 불교를 믿지만 불교의 사후 세계관은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찬송가를 50년 기억에 담고 살았으니 주님은 제 마음에 있는 것 아니겠냐 했다. 어느 종교든 존중한다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혹시 필요하다면 동성 감리교회 교회의 증인은 되어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동성감리교회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이 글을 동성 감리교회 개척 시절 목사님께 바칩니다.




2020.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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