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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an 12. 2020

공공의 적

응답하라 1968 - 보건 의료 편


-- 회충을 없애려면 채소를 익혀서 먹으라고, 손을 씻고 먹으라고 허구한 날 가르친다. 그래도 회충은 줄지 않았다. --




회충. 굵은 우동 가락하고 똑같이 생겼다. 같은 모양, 같은 색, 같은 굵기고 기다랗다. 눈, 코, 귀, 입 아무것도 안 보인다. 다른 점은 회충은 둥글고 꼬리 부분에서 점점 가늘어진다는 거. 전신이 맨질맨질 우윳빛 광택이 난다는 거다. 다 자란 건 나무젓가락 길이다. 징그럽다.


사람이 변소에서 똥을 싼다. 똥엔 회충알이 잔뜩 들어있다. 일 년 모은 똥, 오줌을 여름이면 휘휘 저어서 퍼다가 밭에 거름으로 뿌린다. 배추, 상추 잎에 똥물에 든 회충알이 묻는다. 뙤약볕에 배추, 상추가 쑥쑥 자란다. 한여름엔 잎을 뜯어다 된장 바르고 밥에 싸서 먹는다. 회충알이 배로 들어간다. 뱃속에서 회충알이 자라서 성충이 되고 알을 깐다. 사람이 변소에서 똥을 싼다. 똥엔 회충알이 잔뜩 들어있다.


이게 회충의 일생이라고 학교 가면 배운다. 그래서 회충을 없애려면 채소를 익혀서 먹으라고, 손을 씻고 먹으라고 허구한 날 가르친다. 그래도 회충은 줄지 않았다.


회충알. 말만 말만 들었지 본 적 없다. 궁금해서 배추, 상추 잎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같은 건 안 보인다. 회충알은 무척 작고 무척 많은 거다. 눈에 안 보이니까 배추, 상추를 익혀서 먹는 사람도, 손을 씻고 먹는 사람도 없다. 원래 배추쌈, 상추쌈 생으로 먹는 거지 익혀 먹는 것도 아니다.


여름에 집 옆 길가 공터에서 똥을 눈다. 똥 눌 때 똥구멍이 간질간질하고, 똥덩어리가 대롱대롱 매달리면서 잘 안 떨어지면 십중팔구 회충이다. 회충이 기다라니까, 똥 줄기와 한 몸이 되어 안 끊어지니까 그런 거다. 똥 눌 때 궁뎅이를 들고 아래로 똥덩이를 내려다보면 회충이 보인다. 똥 눟고나서 다시 보면 기다란 은백색 회충이 똥덩이를 헤집고 꿈틀거린다. 몸통에 똥이 묻지 않는다. 냅두면 똥이 식으면서 죽는다. 똥구멍 근처 창자에서 살던 녀석이 얼떨결에 밀려서 나온 거다. 자리를 잘못 잡았거나 뱃속 안쪽에 좋은 자리가 차서 밀린 거다. 똥이 급해서 힘줘서 갑자기 싸니까 똥에 파묻혀 나오는 거다.


회충약. 하얀색 알약으로 물과 함께 삼키면 회충이 죽어서 나온다. 이때는 똥  때 똥구멍이 간질간질하지 않다. 회충이 꿈틀대지 않으니까. 이 정도면 건강한 거다. 회충이 많으면 영양분을 회충이 먹어대고, 아주 많아서 닭갈비 우동이 덩어리로 얽히고설킨 것처럼 창자에 꽉 차면 회충약이 안 듣는다. 이 정도면 사람이 죽는다. 


애건 어른이건 사람이면 누구나 뱃속에 회충 몇 마리는 끼고 산다. 회충은 온 국민의 적이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지금은




회충이 사라졌다. 변소가 수세식으로 바뀌고 거름으로 인분 대신 비료를 쓴 덕이지 회충약 때문은 아니다.


사스, 메르스, 신종 코로나 같은 돌림병이 국민의 적이다.


닭갈비집 가서 닭갈비 먹고 나서 굵은 우동이 나오면 언뜻 회충이 생각난다. 곧 잊고 맛있게 먹는다. 먹는 자리라서 자식들에겐 회충 얘기는 안 한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6.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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