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an 08. 2020

엄마는 밥상에 계절을 차렸다

응답하라 1968 - 먹거리 편


-- 그렇게 여덟 식구가 평생 엄마가 차려 준 밥을 먹는 줄 알았다. 그게 행복인 줄 몰랐다. --




엄마, 아부지, 그리고 3남 3녀 여섯 형제 합해서 여덟 명이 밥상에 둘러앉는다. 식구가 많으니 밥상은 늘 북새통이다. 애, 어른 구분 없이 밥사발에 밥을 꾹꾹 눌러 산소처럼 봉긋하게 고봉으로 담는다. 사발은 사기로 구워 만들었고 담긴 밥 양은 조그만 공깃밥의 네 배쯤이다.     


밥은 비싼 쌀을 아끼려고 잡곡을 섞어 지은 콩밥, 팥밥, 조밥, 옥수수밥이다. 쌀밥은 명절과 생일에만 짓는다. 쌀이 부족하면 밥 지을 때 끓는 밥물 위에 얹어 밀가루 버무리를 만든다. 쌀독에 쌀이 바닥을 보이면 감자를 쌀 속에 박아 밥 지으면 밥 반 감자 반이 된다. 쌀이 영 부족하거나 쌀 살 돈이 없으면 버무리와 감자밥을 한꺼번에 한다. 그래도 꺼끌꺼끌하고 먹고 나면 방귀 뿡뿡인 보리밥보다 훨씬 낫고 맛나다. 쌀이 떨어지거나 쌀을 더 아끼려면 멸치로 국물을 내고 호박을 숭숭 썰어 넣은 국수나 수제비로 끼니를 때운다. 국수는 점심, 수제비는 저녁이어서 아침은 꼭 든든한 잡곡밥을 먹였다. 그래도 쌀 반 보리 반인 보리밥이던 전보다 형편이 나아진 거고 여덟 명 대식구를 배불리 먹이려는 엄마의 지혜이기도 하다.    


반찬은 된장, 고추장, 간장 중 하나나 둘 그리고 국, 그리고 제철 나물이나 채소다. 엄마는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든다. 뜨뜻한 아랫목에서 메주를 이불에 덮어 띄운 후 새끼줄로 묶어 천장 아래 기둥에 매단다. 그리고 된장, 고추장, 간장을 담근다. 국은 된장을 풀고 재료를 넣고 끓인 된장국이다. 배추를 넣으면 배춧국, 무를 썰어 넣으면 뭇국. 된장이 안 들어가는 건 콩나물국. 콩나물은 콩나물시루에 매일 몇 번씩 물만 주면 잘 자란다. 생일에는 소고기 미역국. 소고기는 잘게 썰은 몇 점이 전부고 생일 외에 소고기는 볼 일이 없다. 반찬으로 생선은 주로 겨울에 간간이 상에 올랐다. 꽁치, 고등어, 도루묵, 양미리, 오징어, 명태, 갈치 등등. 그러니 반찬은 대개 장류, 채소류에 겨울에 어쩌다 생선류인 것이다.     




ㅡㅡㅡ




반찬으로 채소는 계절마다 변하니 다채롭다.



뿌리나 작은 잎이다. 들판의 땅속에서 겨울을 스스로 이겨낸 뿌리를 캐서 먹는다. 냉이가 첫 번째다. 무침이나 국으로 향긋한 내음과 씹으면 달콤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고들빼기는 써서 무침으로만 하고 입맛을 돋운다. 달래도 냉이처럼 뿌리, 줄기, 잎을 통째로 먹고 무침이나 국이다. 고들빼기는 씁쓸하여 입맛을 돋우고 무침으로만 먹는다.     


여름 


커다란 잎이다. 주로 텃밭에 씨를 뿌리고 인분으로 직접 기른 푸성귀. 잎이 크고 풍성해서 밥상으로는 부족하니 바닥에 상을 차릴 때가 많다. 상추. 상추 잎 한 장에 쑥갓 두세 줄기를 얹고 듬뿍 밥을 듬뿍 올린다. 된장을 그 위에 얹는다. 주먹만 하니 입을 한껏 벌리고 우적우적 대충 씹고 목구멍으로 두 번,  세 번 나누어 넘긴다. 새파란 풋고추는 새빨간 고추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들이면 지천에 널린 쑥은 쑥국을 끓인다. 들이든 집 옆 공터 어디고 자라는 씨아똥. 이건 톱날 같은 잎줄기를 꺾으면 새똥같이 하얀 진액이 배어 나온다. 씁쓸하니 숭숭 썰어 밥에 올리고 고추장과 함께 비벼 먹는다. 비름나물. 근처 둑방길에서 비름 잎을 따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된장으로 비벼 무침으로 먹는다. 가지. 밥 할 때 쌀 위에 올려 쪄낸 후 밥이 다 되면 손으로 가로로 찢어 무쳐 먹는다. 신작로 변 비탈에 심으면 잘 자라는 호박은 볶음으로 먹는다.


가을, 겨울


열매다. 콩은 오래가니 일 년 내내 콩자반으로 먹는다. 감자볶음 정도. 겨울은 추워서 들에도 밭에도 나는 게 없다. 그러니 겨우내 먹을 김장을 준비한다. 집마다 식구가 많으니 한 접 백 포기는 우습다. 동치미로 무를 통째로  항아리에 담아 두었다가 한겨울에 먹는다. 김장이나 동치미나 항아리를 땅에 묻고 끼니때 꺼내 먹는다. 김장은 군내가 나기 전까지 먹는다. 무청은 처마 밑 그늘에 말려서 시래기로 봄까지 국이나 무침으로 먹는다.    




ㅡㅡㅡ




밀가루 버무리 


가장 맛난 건 밥도 반찬도 아닌 쌀이 부족할 때 해주신 밀가루 버무리. 재료는 단 세 가지 밀가루, 소금. 물. 엄마는 밀가루에 소금을 뿌려 간을 맞춘다. 물을 흩뿌리며 손으로 조물조물 대충 버무린다. 밀가루가 살짝 뭉쳐져 질지 않고 가루가 약간 날릴 정도. 밥물이 끓어 쌀알 사이로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기 시작할 때 밥물 위에 버무리를 골고루 뿌린다. 손가락 두 마디 가량 두께. 솥뚜껑을 닫고 밥이 뜸 들기를 기다린다. 밥이  되면 버무리도 완성.


잘 된 밀가루 버무리는 길쭘한 듯 두툼한 듯 갈라진 듯 뭉친 듯 모양은 제 멋대로. 겉은 윤이 자르르 나며 가루가 날리지도 떡지지도 끈적이지도 않고, 속은 니로 끊을 때 꾸덕꾸덕 눌리다가 뚝 끊어지면  잘 익은 거. 떡도 빵도 아닌 것이 떡도 되고 빵도 된다. 양이 적어 여덟 식구가 조금씩 나눈다. 찢어서 먹기도 하고 덩이째 먹기도 한다. 밥 먹기 직전 허기질 먹으니 못생겨도 맛있다. 그다음 밥을 먹으면 밥이 더 맛난다. 밀가루는 계절을 타지 않고 대식구라 쌀독이 금방 비어 엄마는 수시로 버무리를 해주셨다.


엄마는 밥상에 계절을 차렸다. 엄마가 다시 냉이로 상을 차리면 겨울이 지난 거고 한 살 더 먹은 거다. 그렇게 내 살과 뼈는 엄마의 밥상으로 쑥쑥 자랐다.    


그렇게 여덟 식구가 평생 엄마가 차려 준 밥을 먹는 줄 알았다. 그게 행복인 줄 몰랐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그때는




초근목피는 벗어났다.  

다 자연에서 나온 재료다. 다 집밥이다. 학교 점심도 엄마가 싸 준 도시락이다. 식당은 없다.    

합성조미료인 미원과 삼양라면은 그 후에 나왔다.      






지금은 




엄마가 해준 밀가루 버무리가 너무나 먹고 싶다.


밥상은 없고 식탁만 있다. 아내는 나를 위해 식탁에 상을 차리고 단 둘이서 식사한다.

자식 둘은 장성해서 어쩌다 넷이 함께 식사한다.     


비닐하우스가 생긴 이후 밥상으로 계절을 알 수 없다.   

쌀이 남아돌아 밥은 쌀밥과 동의어다. 식탁은 육고기가 넘친다. 수시로 육고기로만 배를 채우고 밥은 안 먹는다.


집에서 한 끼 먹으면 자주 먹는다. 것도 공장서 찍어낸 간편식이 많다.  

식당이 널렸다.  


씨아똥은 쌔똥이라고도 한다. 새똥과 발음, 색, 크기, 모양이 흡사하니 새똥에서 유래된 게 틀림없다.    


아내가 어무이, 아부지 제사상을 준비하면 내가 상을 차린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9.07.15

이전 20화 공공의 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