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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Feb 04. 2020

옹달샘 가는 길

응답하라 1968 - 먹거리 편


-- 큰누나에게 혼났을 때는 다르다. 일부러 먼 길로 빙 돌아서 천천히 온다. --





ㅡ 옹달샘 ㅡ




가매기 삼거리 앞산 작은 계곡에는 옹달샘이 있다.


샘. 오목하게 파였다. 어른 어깨 넓이로 동그랗다. 깊이는 아이가 손을 뻗으면 바닥이 닿을 정도. 바닥과 벽 전부 바위고 수면 위쪽은 물 머금은 푸른 이끼로 덮여 있다. 물은 바닥 바위틈에서 졸졸 새어 나온다. 사시사철 온종일 쉼 없이 샘을 찰랑찰랑 채운다. 


동네 사람들은 샘물을 길어다 먹는다. 아침 일찍 가서 물이 넘치면 첫 번째로 간 거다. 밤새 샘물이 가득 고인 . 허리를 굽혀 바가지로 물을 뜬다. 산 오름에 갈증 나니 우선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켠다. 바가지를 비우고 나서 새 물을 다시  주전자에 담는다. 늦으면 무릎 꿇고 바닥을 긁어서 물을 모아.  늦게 오후에 가면 다시 샘이 넘친다.


바가지는 박으로 만든다. 가을에 박을 따서 가운데를 갈라 반으로 쪼개고 속을 파내겉은 말리면 박 한 개당 바가지 두 개. 주전자는 누런색 양은 쇠붙이. 몸통은 배부른 둥근 원통. 위로 뚜껑이 달려 여닫을 수 있어 거기로 물을 쏟아부어 담는다. 허리춤에서 주둥이를 길게 뽑아 기울이면서 물을 따른다. 양쪽에서 위쪽으로 반원형의 손잡이가 달려있어 들고 다니기 편하다. 접으면 몸통에 붙는다. 이렇게 주전자는 물 담는 몸통, 붓는 뚜껑, 쏟는 주둥이, 손잡이 넷으로 구성. 시간이 없을 때는 뚜껑을 연 채로 주전자를 통째로 샘에 밀어 눌러서 담근다. 공기 방울이 뿌글뿌글 터져 나오면서 금새 물이 다. 

 

샘물. 이슬처럼 맑다. 바닥의 바위가 생긴 대로, 색깔대로 비춰 보인다. 물은 여름엔 얼음처럼 차다. 장마엔 샘이 철철 넘친다. 비가 그쳐한동안 턱을 넘은 물이 아래로 졸졸졸 흐른다. 그러다 땅으로 스며든다. 가물어도 샘이 그친 적은 없다. 겨울이 오면 샘 위로 허연 김이 서리다가 물이 언다. 앞도 물이 흐르는 물길 외에는 넓게 펴지면서 얼어서 빙판을 이룬다. 겨울이 깊어 가면서 점점 넓고 두텁게 퍼져 나간다. 봄이 오면  저고리와 얼음 갑옷을 한 꺼풀씩 벗는다. 샘과 주변은 바위와 이끼, 흙과 풀로 제 빛을 찾는다.


 사람뿐 아니라 작은 새도 찾는다. 종종걸음으로 샘에 다가가 주둥이에 물을 담고 고개를 젖혀서 목으로 넘긴다. 새를 보는 건 어쩌다여서 숨어서 몰래 지켜본다. 저벅저벅 다가가면 제 순서가 끝났는 걸 아는지 휘리릭 자리를 비운다.  앞산은 야산이라 깊은 산이 아닌 데다 민둥산이어서 샘에서 토끼 같은 산짐승을 본 적은 없다.




ㅡ 가는 길 




샘물을 길어 오는 건 내 일이다. 하루 걸러 식구들 먹을 물을 길어 샘에 간다. 집에서 샘으로 갈 때는 신작로를 건넌다. 개울 오른편 봉구네 돼지우리가 왼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느린 경사길을 탄다. 그리고 둔덕의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길. 입구에서 한여름엔 산딸기가 커튼으로 무리 지어 나를 반긴다. 줄기에 가시를 피해 핏빛처럼 빨갛고 탱탱하게 잘 익은 걸 골라 따먹는다. 그러고 나서 오르면 산소. 능선의 끝에 자리 잡은 묘는 동산같이 커다랗고 동네 전체가 아래로 보인다. 산소에서 샘이 내려다 보이고 거의 평지길. 잠깐 걸으면 샘에 도착. 한숨 돌리며 위를 보면 꼭대기로 오르는 가파른 소롯길. 샘물을 긷고 왔던 길로 집에 되돌아온다. 


하지만, 


큰누나에게 혼났을 때는 다르다. 일부러 먼 길로 빙 돌아서 천천히 온다.


도는 길. 옹달샘 오른쪽이 과수원과 철조망. 그 옆으로 딱 한 사람 다니게 길이 나있다. 과수원을 끼고 조금 나아가면 길 왼 편이 툭 삐져나온 절벽이고 한 사람 설 만한 평평한 공간이 있다. 절벽 바로 아래로 손에 잡힐 듯이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솟아 있다. 소나무 밑 그러니까 작은 절벽 아래집 한 채. 외딴집이고 좁은 마당에 맞붙어 동네로 이어지는 개울. 절벽을 지나면 대수 아버지 혼자 스님이자 주인인 절이다. 울긋불긋 귀신 사는 집 같아서 어쩌다지만 지날 때마다 무섭다. 절은 개울에서 조금 떨어져 물길보다 약간 높이 지었다.


평지길. 절에서 나무다리를 건넌다. 우로 가면 육조판서가 다녀갔다는 육판바위길, 좌로 틀면 우리 집 가는 길이다. 왼편에 개울을 끼고 터벅쉬엄 걷는다. 오른쪽으로 논, 양어장, 봉구네 집 뒷문과 그 문 바로 앞에 개울 쪽으로 낸 봉구네 변소, 명준네 집 뒤쪽 몇 계단과 그 위로 문, 명준네 변소 창이 차례로 나온다. 그다음은 차가 다니는 신작로,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 다리 건너편이 우리 집이다. 


시간 끌기. 평지길에서 작대기를 주워서 논바닥을 쑤석이고,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흙 위에 그림을 그린다. 양어장에서는 혹시 고기가 보일까 나무 울타리 틈을 벌려서 들여다본다. 봉구네 변소에서나무판자로 만든 문을 슬쩍 당겨보고, 명준네 변소는 공책만큼이나 작은 창을 올려다본다.


집에서 샘에 들렀다 과수원, 절로 해서 집까지 한 바퀴 돌아서 온 거다. 일부러 털레털레 느릿느릿. 일부러 주전자를 한 개만 들고 가서 일부러 주전자에 물을 반만 담고서. 원래는 주전자 큰 거 한 개, 작은 거 한 개에 가득 물을 채우지만.




큰누나와 나. 딱 이때 일입니다.ㅎㅎ





큰누나한테 혼난 내가 반항한 거다. 식구들이 샘물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샘물이 없으면 밥 먹고 마실 물이 없으니까 집에 오면 난리가 난다. 아부지한테 혼난다. 내가 아니고 큰누나가. 감히 큰아들을 건드린 죄로. 아부지 힘을 빌어서 8살 위 큰누나에게 복수한 거다. 아부지가 일하러 나가면 다시 큰누나에게 내가 혼나지만. 간혹 다른 일로 내가 엄마에게 반항하면 내가 혼난다. 그땐 어김없이 아부지가 나 아닌 엄마 편을 든다.    


동네 사람들은 허드렛물을 동네 가운데 우물에서 얻고, 빨래는 앞산과 동네 사이를 지나는 개울에서 한다. 목욕은 한밤중에 우물가나 개울에서 하고, 겨울엔 그 물을 길어다 데워서 한다. 하지만 웬만하면 마실 물만큼앞산 옹달샘에서 얻는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옹달샘 위치는 동성 감리교회, 치악 하이츠빌라, 산 정상 셋을 연결한 삼각형의 정중앙쯤.

태장1동 행정복지센터 자리가 우리 집.









그때는




이 노래를 즐겨 불렀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맞다. 바로 그 옹달샘!

다만 앞산이고 토끼가 없다. 민둥산이라 풀이 못 자라니까.






지금은




ㅡ옹달샘은 동성교회 뒤쪽이다. 샘으로 가는 길이 다 막혀서 샘이 아직 있는지 알 수 없다. 

과수원도 절도 산소도 다 없어졌다. 샘이 풀이나 흙에 묻혀도 움푹 판 바위니 언제든 살릴 수 있으리라.


ㅡ마당 뽐뿌를 박은 후부터 뽐뿌 물을 먹었다. 샘에 가는  뜸해졌다. 허드렛물, 한여름에 등목, 물은  뽐뿌 물을 썼다. 수도가 놓이고 나서 뽐뿌는 필요 없어졌다. 그러니까 샘물, 마을 공동 우물, 펌프, 수도 순으로 발전.


ㅡ주전자는 스덴으로 바뀌었다. 모양은 같다. 몸통, 뚜껑, 주둥이, 손잡이 넷으로 구성된 것도 같다. 양은 주전자도 여전히 판다.


ㅡ대수네 절은 없어졌다.


어디고 산행할 때 절이 있으면 들른다.

절이 무섭지 않고 좋으니 나이가 든 거다.






세대 통역




뽐뿌 : pump. 마당에 파이프를 깊게 박고  지하수를 뽑아내는 기구. 몸통, 그 안에 위아래로 움직이는 피스톤 겸 밸브, 팔 길이만 한 손잡이, 그리고 몸통에서  주둥이 모양과 크기로 돌출된 배출구로 구성. 마중물을 한 바가지 몸통에 붓고 손잡이를 빠르게 위아래로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하면 지하수가 빨려 올라와 배출구로 콸콸 쏟아진다. 밸브 겸 피스톤 외에는 다 무쇠.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6.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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