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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Aug 02. 2020

잡히면 죽는다

응답하라 1968 - 놀이 편


그 누나가 없었다면, 조금만 늦었다면 나도 녀석도 그 자리에서 꼼짝 못 하고 죽었다.




구정바위




해가 쨍쨍 내리쬔다. 애들끼리 큰 개울에 목욕하러 간다.


큰 개울. 봉천내가 큰 개울, 가매기 삼거리 동네를 지나는 건 그냥 개울이다. 동네 개울은 폭이 열 걸음 정도, 큰 개울은 동네 개울보다 스무 배 정도 넓고 깊다. 그래서 큰 개울. 개울물은 새동네에서 둥근 공그리 관을 타고 제방둑 아래로 기어들어가 큰 개울로 합쳐진다. 가매기 삼거리는 애고 어른이고 봉천내를 큰 개울이라 부른다.


구정바위. 집 옆 개울 길로 나무다리집을 지나 새동네 덕신 학교. 바로 옆 둔덕이 봉천내 둑이다. 둑 반대쪽으로 내려서면 큰 개울. 큰비가 온 다음날부터 물가는 흙탕물이 줄어서 모래와 자갈밭으로 바뀐다. 물길은 내 한가운데서 살아서 흐르고 맑다. 물길 한가운데 커다란 바위 셋이 나 보란 듯 떡하니 버티고 있다. 엎어 놓은 바가지같이 생겼다. 위로 서너 명이 오를 수 있지만 꼭대기는 두어 명만 허락. 그 위에 넘어지지 않게 구부정하게 선다. 물 위로 짬뿌 한다. 물이 깊은 아래쪽은 절벽인 양 위에서부터 아래로 깍아내린 듯하다. 큰 개울가 둑 아래로 이쪽에서 저편까지 물이 꽉 차도 바위는 웬만해선 잠기지 않아서 멀리 새다리에서도 보인다. 바위라고 부를 만한 건 새다리 아래로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거 하나뿐이다.




구정바위. 옛과 똑같다. 어른 키 높이. 큰비로 흙탕물이 찼다 빠지면 젤 큰 거 윗부분만 남고 잠긴다. 수풀은 모래나 자갈밭으로 바뀌고. 그때부터 여기서 물놀이할 때.     




은 큰 바위 아래서 제 집처럼 머문다. 물이 흘러드는 위쪽 정문, 빠져나가는 아래쪽 후문은 둘 다 좁고 얕다. 물은 바위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원을 이룬다. 큰 바위 아래는 모래 바닥이 푹 패여서 갑자기 깊어진다. 한길을 훌쩍 넘는다. 바위에서 양팔 벌린 정도만 떨어지면 금방 가슴 깊이다. 여기서 물가까지 예닐곱 걸음 정도 갈수록 서서히 얕아진다. 물 바로 옆은 모래톱이다. 더 벗어나면 진흙을 뒤집어쓴 채 마른 자갈과 말끔한 자갈밭이 둑까지 펼쳐진다.


가만히 있어도 땀나는 날 한낮에는 큰 바위가 놀이터다. 새동네 애들이 십여 명, 우리 동네 여러 명. 여자 애들보다 남자 애들이 많다. 어른은 없다. 제각기, 둘이서, 때론 여럿이서 하고 싶은 대로 논다. 남자애들은 홀딱 벗고 여자애들은 옷이 젖은 채로 논다. 학교 운동회처럼 붐빈다.


물놀이. 물 깊이에 따라 노는 게 다르다. 물이 깊을수록 남자 애들이 많고 얕아지면 여자 애들이 많다.


다이빙. 큰 바위 아래가 제일 깊으니까 다이빙하기가 딱 좋다. 바위에 오른다. 미끄러질라 꾸부정하게 자세로 잡자마자 양팔과 머리를 앞세우고 얼른 물에 뛰어든다. 몇 번 하다 싫증 나면 목 깊이에서 칼 헤엄, 개구리헤엄, 옆 헤엄을 번갈아 친다.


자맥질. 물아래 모래 바닥을 밟는 듯 둥실 뜬 듯 걷다가 발바닥에 뭐라도 밟히면 자맥질. 발바닥으로 눌러보고 발고락으로 더듬어 본다. 돌 같은데 다른 거였으면 한다. 위치를 가늠하고 물 위로 솟구쳐서는 몸을 접었다 펴면서 엉덩이를 위로 머리를 아래로 해서 수직으로 송곳처럼 물을 파고든다. 손으로 모래 바닥을 더듬어서 움켜쥔다. 몸을 뒤집어 물 위로 올라서 살펴본다. 역시 돌이고 매번 돌이다. 멀리 던진다. 다시 자맥질해서 수평으로 물속을 헤치며 이리저리 누빈다. 아가미만 없을 뿐 영락없이 물고기다.


구경. 헤엄치고 자맥질하다 지치면 물 위에 누워서 하늘을 본다. 심심하면 몸을 세우고 물 위로 목만 내놓고 몸을 돌려가며 눈으로 같이 온 녀석들은 뭐 하나 찾아본다. 멀리 둑 위로 군부대 담장을 따라 일렬로 늘어선 미류나무나 더 멀리 새다리를 바라보기도 한다. 



군부대 담장 미류나무. 아름드리. 그때도 컸다.




똥덩어리. 누군가 물속에서 선 채로 똥을 눈다. 굵은 똥은 물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똥덩어리가 얼굴에 부딪히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얼굴 가까이면 볼 것 없이 피한다.  팔 거리쯤 되면 물을 끼얹어 밀어낸다. 일부러 얼굴에 부딪히라고 바로 옆에서 똥을 싸기도 한다. 당한 녀석은 복수한다고 배에 힘 주지만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니다. 똥이 매렵고 급하면 그렇게 물속에서 똥을 싼다.  참고 집에 가는 애들도 있다. 여자 애들은 옷을 입었으니 물속에서 똥 싸긴 어렵다. 오줌은 물에 섞이고 옷을 통과하니 누구고 마음 놓고 싼다. 잠시 고였다 흐르는 물이고 양도 넉넉해 이 정도야 넉넉히 감당한다.


물총. 가슴 아래 깊이에는 손바닥을 위로 제끼고 물 위에 대고 물을 스치듯이 빠르게 밀면서 물총을 쏜다. 만만찮은 상대를 만나면 양손을 다 써서 맞선다. 센 녀석에게는 물을 홈빡 뒤집어쓰고 눈을 감고서 감으로 물을 날린다.


모래 쌓기. 물가에선 실같이 적은 물이라도 흐르는 곳에선 모래로 작은 둑을 쌓는다. 새끼 피래미들을 몰아서 가둔다. 물이 다 빠진 모래톱에서는 한 손으로 모래를 파서 다른 손등부터 팔목까지 켠켠히 얹으면서 탁탁 다지며 붕긋하게 쌓는다. 그리고 손을 모래에서 살살 빼면 구멍 난 무덤이 된다.




ㅡㅡㅡ




잡히면 죽는다.



깊은 데서 목을 내밀고 둘러보다가 모래톱에 너댓 살쯤 되는 아이와 한순간 눈이 마주친다. 혼자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내가 몇 살 위. 놀아주고 싶다. 헤엄쳐 물가로 간다. 아이를 들어서 목마를 태운다. 물에 걸어 들어간다. 아이가 재미있는지 가만히 있는다. 배 깊이에서 목마에서 등으로 바꿔 업는다. 그리고 가슴 깊이에서 살살 헤엄. 가만있는다. 녀석이 가 본 적 없는 큰 바위 위로 데려가고 싶다. 잠깐이면 깊은 데를 건넌다. 바위를 향해서 엎어지면서 헤엄치기 시작한다.


느닷없이 녀석이 나를 껴안는다. 


깊은 물은 차다. 녀석이 등에 업힌 채로 몸이 찬물에 잠깐 잠기니까 버럭 겁을 집어먹은 거다. 바로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발이 바닥에 닿는데 머리가 물속이다. 숨을 못 쉰다. 다급히 몸을 접어서 손으로 녀석을 떼어본다. 녀석은 내 허벅지 하나를 단단히 부여잡고 안 떨어진다. 허리를 펴고 녀석이 붙들지 않은 다리의 발로 더듬어 녀석을 힘껏 밟아 본다. 조금 아래로 밀리는 거 같다.


숨이 막힌다. 


다시 다리에 힘을 모아서 녀석 어깨인지 팔인지에 얹고 떨어져 나가라고 밟고 또 밟는다. 끄떡없다. 녀석이 엿처럼 다리에 눌어붙어서 녀석도 나도 그 자리에 꼼짝을 못 한다. 물을 먹는다. 정신이 퍼뜩 난다. 이대로는 같이 죽는다. 죽을힘을 다해서 녀석을 사정없이 발로 누르면서 지져 밟는다. 끄떡없다. 물에 잠겨서 밟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또 물을 먹는다. 이렇게 죽는 거구나.... 정신이 아득해진다. 다른 생각은 안 난다. 


갑자기 몸이 붕 뜨는 느낌. 


숨이 쉬어진다. 머리가 물 밖이다. 살았다. 녀석은 아직도 물속에서 내 다리를 죽어라고 붙들고 있다. 다리에 거머리처럼 붙인 채로 얕은 데로 걸어 나온다. 녀석도 살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나보다 몇 살 위 녀석 누나가 얕은 쪽으로 슬쩍 밀어준 거다. 처음부터 멀찍이서 동생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그 누나가 없었다면, 조금만 늦었다면 나도 녀석도 그 자리에서 꼼짝 못 하고 죽었다. 녀석이 어깨가 아프다고 한다. 녀석 누나에겐 혼날 게 뻔하니까 사정을 말하지 못 한다. 속으로 어깨가 부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와서 엄마, 아부지, 식구 누구에게도 죽을 뻔한 일을 말하지 않았다. 살았으면 된 거고 내일 또 큰개울 가서 놀아야 하니까.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세대 통역




목욕 가다 = 헤엄치러 가다. 


짬뿌 = jump. 점프






그때는




목욕탕도 수영장도 없었다. 목욕하다는 말은 썼지만 수영하다는 말은 없었다. 어른은 겨울에 집에서 물을 데워 목욕했다. 그 물에 애도 목욕하고. 여름엔 어른은 밤에 개울 가서 목욕한다. 애들은 낮에 헤엄치다 보면 저절로 목욕이 된다. 허구한 날 동네 개울, 큰 개울이나 어쩌다 멀리 연못으로 원정 가헤엄친다. 그러니 여름엔 몸에 때가 낄 새가 없다. 가을부터 다음 해 한여름까지는 물에서 헤엄칠 일 없으니 때가 몸에 들러붙어 딱딱해진다. 학교 가면 선생님이 때 검사한다.






지금은  




-- 구정바위


옛 그대로다. 봉천내 한가운데라 살아남은 거다. 내를 세 등분하여 양쪽 삼 분지 일씩 널찍하게 둔치를 만들었다. 내 전체 폭은 약 120미터.


--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욕탕이나 목욕탕에서 목욕한다. 개울에 목욕 가자는 말은 사라졌다.


-- 군부대는 10여 년 전 옮겼고 터만 남았다. 미류나무는 여려 그루 살아남았다.


-- 급류만 위험한 게 아니다. 고인 물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물길에 놓인 바위 바로 아래는 주변보다 더 깊다. 멀쩡하다 갑자기 푹 꺼진다. 물살에 바닥이 패여서 그렇다.


물속에서는 애들 일이라고 무시하면 당신도 위험하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도 잡는다는 속담. 그냥 잡는 게 아니다. 목숨 걸고 잡는 거다. 애가 애가 아니다. 천하장사 이만기가 샅바 잡는 보다 움켜쥐는 힘이 100배다. 죽어도 안 놓는다. 말 그대로 죽어도.


누가 물에 빠져도 가까이 가면 안 된다. 절대로. 부자, 형제, 친구, 사제, 남남..... 다 같이 죽는다. 사랑, 우애, 우정, 의무, 박애..... 남겨진 자들 얘기다. 매년 여름이면 구하려다 다 죽었다는 뉴스가 반복된다. 몸 대신 잡을 걸 던져 줘야 한다.

 

아들 둘에게 죽었다 살아난 일을 자세히 말해줬다. 물론 대처 방법도. 손주에게는 이 글을 던져 주면 될 일.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6. 07.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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