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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Feb 15. 2020

바위 보러 가다

응답하라 1968 - 군부대 편


-- 군부대에 신고했다. 낮에 군복을 입은 남자와 입술에 뻬니 바른 여자가 바위 보러 간다고--




창꽃이 활짝 피는 봄. 일요일이면 군인 아저씨와 아가씨 둘이 앞산으로 간다. 그럼 우리 동네 또래 애들은 "바위 보러 간다, 바위 보러 간다"라고 놀리며 따라간다. 귀찮다고 쫒으면 숨어서 지켜본다. 한참 있다 둘이 같이 산을 내려온다. 둘이 바위 본 거다. 어리지만 그래도 우린 알았다. 바위 보는 게 무슨 뜻인지.


앞산은 우리 동네 남자 애들 전쟁 놀이터다. 어떤 때는 앞산에 자리 잡은 산동네 아이들과 서로 짱돌 던지며 전쟁놀이하고, 수시로 계곡에 깎아지른 육칠 미터 절벽에 밧줄 걸어 두고 절벽 오르내리기 훈련하면서 낮 시간을 보낸다. 낯선 사람이 앞산 가면 적이 침범한 거.


앞산은 큰 바위가 없다. 한참 더 가야 육판바위가 있는 바위산이다. 앞산은 민둥산이다. 나라가 가난하고 국민은 더 가난해서 땔감으로 나무를 베어 산에 나무가 남아나지 않는다. 앞산은 산동네까지 있어 산에 사람들이 사니 더 많이 더 빨리 나무를 때서 앞산은 민둥산 중 왕 민둥산이다. 사람 가릴만한 나무도 수풀도 없다. 땔감이 못 되는 새끼 도토리나무, 창꽃 듬성듬성 정도. 그래서 멀찍이서도 사람이 보인다.


군인 아저씨와 아가씨 둘이서 동네에서 앞산 가는 소롯길로 들어선다.


"어디 가요?" 묻는다.

"바위 보러 간다"라고 한다.


동네 애들 여럿이 쫒아가면 이상하게 바위가 없는 앞산으로 올라간다. 더 가야 육판바위를 볼 수 있는데. 수상해서 따라가면 화를 내고 따라오지 말라며 쫓아낸다. 멀찍이 산 입구에 숨어서 지켜본다. 둘은 작고 나지막해 볼품없는 작은 바위에 앉는다. 주변은 이맘때면 창꽃 한 무리가 피어있다. 둘이서 한참 뭔 짓한다. 앉아있다가 껴안는다. 그러다 옷 벗고 그리고 옷 입고. 멀어서 형체만 구분한다.  


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간첩은 인민군복을 안 입고 한국군이나 민간인 복장으로 산에서 내려와서 산 타고 돌아간다고. 아침에 산에서 내려오고 바지 밑단이 이슬에 젖어 있으면 북에서 오는 거란다. 낮이나 저녁에 산으로 가면 북으로 넘어가는 거라고. 그런 사람 보면 군부대나 경찰서에 바로 신고하라고. 여자 간첩은 만화 가게에서 만화로 봤는데 마타하리라고 가슴이 크고 이뻤다.


앞산 바로 아래 군부대에 신고했다. 낮에 군복을 입은 남자와 입술에 뻬니 바른 여자가 바위 보러 간다고 하고서 육판바위가 있는 바위산에 안 가고 바위가 없는 앞산으로 간다고. 수상하다고. 하지만 몇 번을 신고해도 부대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봄철 일요일만 되면 바위 없는 앞산에 바위 보러 가는 군인과 아가씨가 이어진다. 산에 가는 군인에게 "어디 가요?" 물으면 늘 "바위 보러 간다"라고 한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된 이후로는 묻지 않고 졸졸 따라가며 놀린다.  


"바위 보러 간다, 바위 보러 간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세대 통역




창꽃 = 진달래꽃



민둥산 : 나무가 없어 벌거벗은 산. 바닥이 드러나서 대개 황톳빛이다. 나무를 땔감으로 베어 쓴 탓이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빗물을 저장하지 못해 웬만한 비에도 물난리, 산사태가 난다. 민둥산을 없애려고 일 년에 하루 4월 5일을 식목일을 정해서 전국적으로 산에 나무를 심었다. 땔감이 석탄으로 대체되면서 민둥산에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기름이 주연료가 되면서 산에 나무가 울창해졌다.


뻬니 : 립스틱을 엄마는 뻬니, 큰누나는 루즈라고 했다. 포탈 검색해보니 일본어 구찌 베니를 줄여서 베니, 루즈는 불어라고. 둘 다 빨간색을 뜻한다고. 그러니까 시대에 따라 일본어에서 온 뻬니, 불어 루즈, 영어 립스틱 순으로 말이 바뀐 거다. 우리말로 연지라고 있지만 찍어 바르는 거와 스틱으로 바르는 거는 차이가 커 부적합하니까 외래어를 쓴 듯.






그때는



-- 옷 벗고 둘이 구체적으로 뭘 하는지는 몰랐다.


-- 바위 없는 산에 바위 보러 간 건 나라가 가난한 탓이었다. 가매기 삼거리에 숙박 시설은 없었다. 시내 가야 원주역 근처에 여인숙이 있다. 원주는 군사도시라 일요일은 군인들로 넘쳤다. 게다가 여인숙은 앞산처럼 공짜가 아니고 돈을 내야 했다. 


-- 연탄 나오기 전까지 산에서 나무를 꺾어다 땠다. 연탄이 나왔어도 돈 아끼려고 나무를 땠다.


-- 바위 없는 앞산은 가깝다. 태장1동행정복지센터에서 봉산 사이 1/5 지점.

큰 바위가 있는 육판바위산은 멀다. 파란 풍선 표시 우측으로 난 길 따라 구불구불 좌로 첫 번째 산.




--군부대 셋이 가매기 삼거리를 에워쌌다.

군부대 1. 수송부대. 태장1동 행정복지센터부터 뒤로, 위로 봉천내변까지 통째. 세운 직사각 꼴.

군부대 2. 공병대. 파란 풍선 표시를 꼭짓점으로 한 역삼각꼴 전체. 야병교.

군부대 3. 의무대가 있던 부대. 학봉정 아래 평지부터 태장1동 행정복지센터 길 건너편까지 평지까지. 좁고 길었다.

셋 다 도로 접.








지금은




안다. 오랜만에 멀리서 면회와 외출한 청춘 남녀가 산에 바위나 보러 갔겠나? 어디 가냐 물으니까 둘러대느라 바위 보러 간다고 그랬겠지. 인근에선 그나마 육판바위가 유명하니까 핑계 삼은 거겠지. 부대에서 가장 가까운 앞산에 갔던 거다. 창꽃 피어 분위기도 살고.


포탈에서 바위 보다, 바위 보러 가다를 검색해도 청춘남녀가 연애를 핑계 대는 뜻으로는 찾을 수 없다. 우리 동네 군인들만 쓰던 말이었던 것 같다. 매주 다른 군인과 아가씨로 한쌍인데 어디 가냐고 물으면 바위 보러 간다는 대답은 같았다. 가매기 삼거리에 있는 부대의 군인들과 아이들 간과 부대원들 사이에 쓰던 은어였던 게다. 두 쌍이 한꺼번에 앞산에 가지는 않았던 걸 보면 미리 순서를 정했던 거 같다.


군부대 셋 다 없어졌다. 그중 하나인 야병교 부대 자리에 모텔촌이 들어섰다.


산동네는 작년에 다 철거했다. 앞산도 육판바위 바위산도 바위만 빼고 온 산이 수십 년 묵은 굵은 나무로 빽빽하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6. 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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