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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Feb 15. 2020

다시 띄우는 종이배

응답하라 1968 - 놀이 편


배를 접고, 물길을 보고, 물에 띄우는 건 내 일이다. 멀리 가고 못 가고는 운에 달렸다.





여름날 폭우가 지나면 물이 꽉 들어차고 파도가 넘실대는 동네 개울에 종이배를 띄운다.


배는 내 손을 떠나 다리 아래 개울에 내려앉는다. 심 씨 아저씨네 빵공장집, 대추나무집, 여씨 아저씨네 집, 나무다리집을 차례로 지난다. 마지막에 배수관을 타고 둑을 통과해 큰 개울 봉천내로 흘러간다.


배를 접고, 물길을 보고, 물에 띄우는 건 내 일이다. 멀리 가고 못 가고는 운에 달렸다. 




ㅡ 성공 ㅡ




물길 보기. 종이배를 집 바로 옆 다리 위로 가져간다. 다리 한가운데 선다. 개울 왼쪽은 내내 얕아서 나아가질 못하니 피한다. 개울 오른쪽은 소용돌이, 큰 바위가 있고 이를 피해도 대추나무집 앞에서 튀어나온 돌에 걸린다. 그러니 물살이 가장 거센 한가운데를 택한다. 당장은 제일 위험하나 멀리 보면 안전하다.


배 띄우기. 양손으로 배 모양과 중심을 잡는다. 뾰족탑을 위쪽으로 해서 양손 엄지와 검지로 배 양쪽 허리를 조심스럽게 잡는다. 다리에서 개울 아래쪽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고 물살을 보면서 배를 잡은 양손을 쭉 뻗는다. 배 중심을 잘 잡은 채로 양손 손가락을 살짝 놓아서 뒤집히지 않게 떨어뜨린다. 종이배가 쓰러지거나 뒤집히지 않고 바닥이 물 위에 사뿐히 내려앉으면 반은 성공.


항해. 물에 닿자마자 백 미터 달리기 선수가 출발할 때처럼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나도 잽싸게 뛰어서 다리 옆에 난 길로 내려가 배를 쫒아간다. 잘 가면 물길이 휘어지는 여씨 아저씨네 집까지 간다. 거기부터 개울 폭이 급히 좁아져서 급류에다 거센 물결이 내내 이어진다.


도착. 아주 잘 가면 옆동네 새동네까지 간다. 개울 위로 나무다리를 놓은 집에 가까워진다. 이때는 조급한 마음에 미리 나무다리까지 뛰어가서 배를 기다린다. 다리 기둥에 들러붙은 풀 무더기와 나뭇가지에 두툼한 물살이 치받으며 휘말리며 솟구친다. 빠르게 배가 다리로 다가온다. 운 좋게 기둥을 피해서 지나갈 건가? 기둥에 부딪혀 옆으로 쓰러질 건가? 아니면 들썩 크게 한번 요동치고 한 바퀴 돌며 다시 나아갈 건가? 다리를 지나면 물살이 잔잔해져서 평온하다. 그다음 엄청 큰 둥근 배수관의 입구로 빨려 들어간다. 관은 둑 아래를 지나 봉천내로 이어진다. 배수관으로 들어간 배는 더 이상 볼 수 없으니 빠이빠이~


여기까지 가면 정말 기분 좋은 날!




ㅡ 실패 ㅡ




배 접기. 애초에 종이로 배를 접을 때 대충 접거나 균형이 잘 맞게 펼치지 않으면 물에 닿자마자 배가 기울거나 눕는다. 곧 배에 물이 들어찬다.  쓴 노트가 종이배에 제격이고 신문지는 물에 젖어서 안 쓴다. 달력은 두텁고 무거워서 파도나 장애물을 만나면 쉽게 쓰러진다.


소용돌이. 배를 잘 접어도 잘 띄워도 곧 문제가 생긴다. 다리 바로 아래에서 공병부대인 야병교 배수로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개울과 만난다. 배수로 물은 부대에서 차량 정비하다 흘린 기름이 둥둥 떠 있다. 배수로 물이 개울 물 옆구리를 치면서 물이 빙빙 돈다. 제법 크게 돈다. 물 위로 기름이 널리 퍼져서 무지갯빛을 띠며 원을 그린다. 배가 여기 갇히면 오도 가도 못한다. 빙빙 돌기도 하거니와 배 밑바닥에 기름이 배를 붙들고 놔주질 않는다. 지켜보다가 성질나면 돌을 던져 배를 맞춰서 물에 빠뜨린다.


바위. 소용돌이를 용케 피해도 장애물은 또 있다. 빵공장집 앞이다. 길 바로 아래 물가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대개 바위에 잠시 막힌 물에서 일렁일렁 몇 바퀴 돌며 잠깐 머물다가 지나간다. 재수 없이 여기 갇히면 길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바위로 뛰어 올라 배를 물길 안쪽으로 밀어준다. 나뭇가지가 짧거나 없으면 포기.


돌. 대추나무집까지도 쉬운 듯 어렵다. 물길이 넓고 얕아지면서 여기저기 튀어나온 돌에 물이 솟아오른다. 배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겼다가 돌에 부딪혀 치솟거나 역류하는 물을 만나면 배는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진다. 작은 돌이지만 큰 바위보다 겁난다.


파도. 여씨 아저씨네 집 다음은 모 아니면 도. 그 집 앞에서 개울이 오른쪽으로 휘며 좁아진다. 개울 폭이 반에 반으로 갑자기 좁아져서 급류로 돌변. 물살이 높은 파도로 처음 바뀌는 곳은 부딪혀 봐야 안다. 배에 물이 들이쳐 기울거나, 옆면으로 받으면 파도 속으로 단박에 고꾸라진다. 


대개 다섯 중 하나에 걸려서 실패.




ㅡ 다시 띄우는 종이배 ㅡ




종이배를 띄우려다가 시작부터 물에 빠지면 다시 접고, 가다가 뱅뱅 돌면  접고, 가다 말고 쓰러지면 다시 접는다. 어쩌다 끝까지 갈 때는 신이 나서 다시 접는다. 간혹 둘이 누가 더 빨리 더 멀리 가나 내기를 하지만 혼자 집중해야 훨씬 더 재미있다. 폭우가 지나면 혼자 종이배를 접고 띄우기로 반나절은 후딱 간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지금은





인생은 다시 띄우는 종이배. 살아보니 그렇다. 다 살고 면 단 한 번뿐인 종이배가 되겠지만.


사업은 지폐로 접은 종이배. 이 업 저 업 바꿔가며 흥해도 보고 망해도 보니 다시 흥해도 보니 그렇다. 그래도 훨 낫다. 올라타서 조타를 하니까. 여전히 운은 작용한다.


 개울은 복개되어 주차장이나 이면도로다. 집들 중 대추나무집만 살아남았다. 다른 다 철거.


 종이배를 손으로 접는 건 쉽다. 글로 접는 건 어렵다. 대신 손으로 접은 종이배는 금방 쓰레기가 된다. 글로 접는 종이배는 오래간다. 그러니 글로 접어 본다.


종이배 접기




1. A4 용지 한 장을 준비한다.
2. 세로로 길게 바닥에 놓고 반을 접고 접힌 부분을 손톱으로 강하게 눌러 문지른다.
3. 90도 회전. 반을 접고 접힌 부분을 손톱으로 강하게 눌러 문지른다.


4. 원상태로 되돌려서 접힌 부분을 아래쪽으로 해서 편다.
5. 왼쪽 아래를 대각선으로 접어서 아래가 정중앙의 선에 닿도록 한다. 접힌 부분을 손톱으로 강하게 눌러 문지른다.
6. 오른쪽 아래를 대각선으로 접어서 아래가 정중앙의 선에 닿도록 한다. 접힌 부분을 손톱으로 강하게 눌러 문지른다.


7. 180도 회전. 아래 두 장 중 한 장을 5번과 6번 접힌 선에서 위로 향하도록 접는다. 접힌 부분을 손톱으로 강하게 눌러 문지른다.
8. 뒤집어서 7번과 똑같이 한다.
9. 들어서 수직으로 세운다.

10. 양손으로 세모 꼭지를 앞쪽을 향하게 한 후 양손 엄지를 접힌 곳에 넣어서 양쪽으로 조금 벌린다.
11. 한쪽 검지로 위 끝에 한쪽 모서리를 반대쪽 모서리 밑으로 밀어 넣는다.
12. 180도 회전. 11번과 똑같이 한다.


13. 그 상태에서 위와 아래가 서로 닿게 접는다. 접힌 부분을 손톱으로 강하게 눌러 문지른다.
14. 그 상태에서 아래 두 장 중 한 장을 위쪽으로 올려서 접는다. 꼭짓점과 꼭짓점이 닿는다. 접힌 부분을 손톱으로 강하게 눌러 문지른다.
15. 180도 회전. 14번과 똑같이 한다.


16. 90도 시계 방향으로 돌려서 양 엄지를 중앙에 집어넣고 양쪽으로 잡아당겨 벌린다.
17. 엄지를 빼고 위가 아래에 닿도록 접는다. 접힌 부분을 손톱으로 강하게 눌러 문지른다.
18. 위가 천장, 벌어진 아래가 바닥을 향하도록 세운다.


19. 그 상태에서 양손 엄지와 검지로 위에 분리된 부분을 각각 잡고 양쪽으로 끝까지 잡아당겨서 벌린다.
20. 정가운데 뾰족탑을 위쪽으로 향해서 바닥에 놓는다. 접힌 부분을 손톱으로 강하게 눌러 문지른다.
21. 뾰족탑이 몸 쪽으로 향하게 수직으로 양손으로 들고, 양손 중지와 약지를 반대 편 구멍에 넣어서 양쪽으로 살살 벌리면서 배 모양을 만들면 종이배 완성.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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