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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Feb 18. 2020

무덤에 할미꽃

응답하라 1968 ㅡ 식물 편


변소에 구더기가 생기면 할미꽃 뿌리를 캐다 짓이겨서 똥물 위에 뿌린다.




앞산에 꽃 이름을 거의 다 안다. 민둥산이라 종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금방 눈에 띄는 건 앞산 가는 길에 아카시아 꽃, 산에 창꽃, 옹달샘 위쪽으 나리꽃, 그리고 무덤에 할미꽃. 


할미꽃은 양지바른 무덤에 핀다.

앞산 자락을 신작로와 나란히 깎고 좁고 길게 군부대가 들어서 다.  

산과 부대 경계에 철조망을 쳤다.

그 철조망을 끼고 산동네 가는 소롯길을 냈다.

그 길가에 남쪽을 향해 무덤 하나.


봄이면 무덤에 할미꽃이 너댓 개 핀다. 

서로 떨어져서 드문드문  개씩 따로 핀다.

바싹 말라 누런 잔디에 묻힌 듯 삐쭉 솟아 조문하듯 고개를 숙인 채.

 

아카시아꽃, 창꽃과 달리 이건 못 먹는다.

변소에 구더기가 생기면 할미꽃 뿌리를 캐다 짓이겨서 똥물 위에 뿌린다.

구더기가 죽는다. 독이다.


할미꽃은 한 뼘 길이 꽃대 끝에 한 송이 검붉은 꽃을 피운다.

꽃대는 꼿꼿하고 끝단에서 푹 고꾸라져 꽃이 초롱불처럼 매달린다.

꽃은 작은 튤립 모양. 꽃대꽃잎은 흰 잔털이 보숭보숭 덮여 있다.


허리 굽어 고개 숙인 백발의 할머니 같다.

그래서 할미꽃인가 보다 생각한다.


앞산은 민둥산이라 숲이 없어 꽃이 돋보인다.


1968년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지금은




할미꽃 이름은 언제 누군지 참 잘 지었다. 꽃 모양, 색깔, 자라는 곳, 분위기 모두 딱 어울린다. 이를테면 할애비꽃은 영 아니다.


무덤이 없어졌다. 할미꽃도 같이 사라졌다. 군부대가 떠나고 그 자리에 주택이 일렬로 들어서면서 소롯길까지 콘크리트 옹벽을 쳤다. 아마 그때 무덤을 파헤친 게다.


소롯길 위로는 개발이 멈췄다. 산 꼭대기까지 큰 나무 숲을 이뤘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6.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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