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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Aug 03. 2020

천장에서 빗물이 뚝톡통

응답하라 1968 - 주거 편

비가 많이 오면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받는다.

물그릇으로.


지붕에 깐 루삥이 찢어져서 생긴 틈으로 빗물이 스민다.

루삥 아래 나무판자를 적신다.

그 아래 각기목을 타고 흐르다 천장 도배 종이에 물이 갇힌다.

종이에 배어나온 물방울이 방바닥에 떨어진다.

얼른 부엌에서 물그릇 하나 가져온다.

물 떨어지는 데다가 가운데를 잘 맞춰서 놓는다.


처음엔 뚝, 뚝, 뚝

물방울이 잘게 쪼개지며 그릇 안에서 사방팔방으로 튄다. 밖까지 튀기도.


물이 고이면 톡, 톡, 톡

물 위에 닿는 순간 왕관 모양을 이루었다가 바로 수그러든다.


물이 많이 차면 통~, 통~, 통~

소리가 울린다.


비가 계속 오면 물그릇 한 개 더,

뚝톡, 톡통~, 통~통~


많이 오고 많이 새면 세숫대야까지.

뚝톡통~, 톡톡통~뚝, 통~통~통~


그릇에 찬 물의 양에 따라서 다른 소리가 나고

그릇 크기에 따라서 소리 크기가 다르고

그릇 숫자가 늘면 소리가 어우러져 다르다.

물방울 크기도 소리에 한몫한다.


비가 그치고 시간이 지나면 천장이 마른다.

누렇게 크고 작은 지도가 여기저기.

비가 그쳐도 웬만하면 지붕은 고치지 않는다.

비오면 받으면 되니까.


제대로 비가 새면 벽을 타고 내려 온다.

벽 도배지와 벽돌 사이로 시냇물처럼 줄줄 흐른다.

지붕이 망가진거다.


볏짚이 밑단까지 죄다 썩어 제 구실 못 하거나

강풍에 루삥이 찢어졌거나

태풍에 함석이 통째로 날아갔거나

어떤 놈이 던진 돌에 스레트가 왕창 깨졌거나


이건 비를 홀딱 맞으면서 지붕 타고 고친다.


천장에서 새는 빗물도 단물이지만 빨랫물로 쓰지않고 버린다.

양이 적을 뿐더러 찌든 먼지가 섞여서.


1968년 꼬맹이때. 그땐 그랬다.






세대 통역




지붕은 초가나 기와, 루삥, 함석, 스레트 순으로 개발되었다.


초가. 볏짚이라 쉽게 썩어 몇 년마다 갈아줘야.

기와. 오래가나 비싸고 시공이 어렵다.

루삥. roofing찌꺼기 같은 시커먼 골텐인가 뭔가를 먹인 두터운 종이 재질. 물이 젖지 않고 흐르지만 강풍에 곧잘 찢어진다.

함석. 얇은 도금 철재라 녹슨다. 태풍에 날라가기도.

스레트. 돌가루를 뭉친 거라 깨진다.





지금은




지붕이 콘크리트인 양옥집에 살면서 비새는 걱정이 없어졌다.

아파트는 최고층 아니면 남의 집 바닥이 내 지붕. 남의 엉덩이를 하늘 같이 떠받들고 사는 셈.


60년간 초가, 기와, 루삥, 함석, 스레트, 양옥, 아파트 순서대로 지붕만 최소 7번 갈아타며 살아보았으니 

오래 살면 난 무형 문화재급이다.ㅎㅎㅎ




잊혀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20.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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