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하여 난 한 시간마다 엘리베타를 타야 했다. --
뜨아악, 편의점 알바 이틀 반치다.
길거리 뻥 터진데도 5만 원이구만.
이게 말이 돼?
그러니 데스크에 전화.
아가씨 받고.
나:발코니에서 담배 펴도 벌금 내요?
아:예, 그렇습니다. 흡연은 로비 입구 실외에서 피우셔야 합니다.
나:발코니는 터졌잖아요. 실외잖아요.
아:안 됩니다. 엘리베타 타고 1층 내려와 바깥에서 피우셔야 합니다.
나:발코니도 바깥인데 왜 안 되죠?
아:문으로 담배 연기 들어오고 냄새 냄새 배서 안 됩니다.
나:문 닫으면 차단되잖아요.
아:1층 실외에서 피우셔야 합니다.
나:그렇다 치고. 벌금 20만 원 맞아요?
아:맞습니다. 20만 원.
나:왜 이렇게 비싸요?
아:....
나:그건 할인 안 돼요? 50%
아:안 됩니다.
나:근데 룸이나 발코니에 씨씨티비 있어요?
아:없습니다.
나:담배 핀 걸 어떻게 알죠?
아:직원이나 하우스키퍼가 청소하면 냄새로 압니다.
나:안 피웠다고 우기면 되잖아요.
아:그래도 압니다.
나:그래도 우기면 어떻게 하죠?
아:...
나:일단 알겠어요.
밤이 되어 카운터로 가니 남자 혼자. 가슴에 시큐러티. 음, 이 친구는 뭔가 비밀을 알겠군.
나:실내에서 담배 피는 걸 어떻게 알아요? 씨씨티비도 없는데.
남:냄새가 납니다.
나:안 폈다고 우기면? 담배 피는 사람 다 냄새나잖아요.
남:담배꽁초 보면 압니다.
나:꽁초 안 버리면요?
남:담배 냄새나요.
나:안 폈다고 우기면?
남:꽁초로 압니다.
나:꽁초 안 버리면?
남:....
그렇다. 그건 담배꽁초였다.
그럼 꽁초만 없애면 증거 인멸?
아니다. 담뱃재가 있다.
그럼 그거도 치우면?
아니다. 발코니면 외부 아래에서 보인다. 사진 찍히면?
답 나온다.
아래서 보이지 않게 발코니 안쪽에 쪼그리고 앉아 핀다. 그러고 나서 담뱃재 없애고 꽁초는 내다 버리면 완전 범죄.
고민된다.
선비치 리조트 30평 복층. 일박 95만 원짜리를 70% 할인해서 27만 원에 들어왔다. 코로나로 객이 뚝 끊겨서다. 발코니서 담배 한 대만 펴도 20만 원 버는 거. 내일 또 피면 40만 원. 그럼 13만 원 남는 거.
허나 나가 누구인가.
월드 베스트 편의점 알바 아니던가. 코로나로 처음으로 알게 된 최선진국의 일등 시민 아니던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지 않던가. 누가 보든 아니든, 씨씨티비로 감시하든 아니든, 확인이 가능하든 아니든 규칙은 지킬 줄 알아야지.
그리하여 난 한 시간마다 엘리베타를 타야 했다. 밖은 태풍의 아우쯤 되는 바람에 박쥐처럼 비 날아다니고, 바다는 서퍼가 환호할 정도로 집채만 한 파도가 허리를 둥글게 접으며 연실 밀려든다. 파도는 방파제를 때리는 거로 만족하지 못하고 타 넘어 2차선 해안도로 바닥까지 허연 혀를 날름댄다. 그런 무시무시한 광경을 눈 앞에 두고 실외에서 청승맞게 쭈그리고 앉아 20만 원짜리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피운다.
온통 화이트인 침대 이불을 뱀처럼 파고든다. 역시나 커다랗고 푹신한 베개는 여행만큼이나 늘 불편하다. 왜 호텔은 한결같이 베개 선택권이 없을까? 다음 여행은 집에 단단하고 각진 작은 내 베개를 꼭 챙겨 오리라 다짐한다. 스맛폰 보며 잠을 청해 보지만 오히려 달아난다. 한참을 뒤척인다. 어렵사리 잠이 든다.
새벽에 눈이 떠진다. 밤새 맑아진 피가 니코틴 주입하라고 명령. 이때 담배를 안 피면 불안 초조. 중독 증상이다. 억누르고 발코니로 나선다. 바다는 온통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동해의 해는 어디에고 보이지 않는다.
정동진. 배 형상에 동해가 보이는 일류 호텔급 14층. 거기서 떠오르는 해를 못 보다니. 날이 궂은 건 알고 왔지만 그래도 서운하다. 피와 합세해 마음마저 담배를 부른다. 몸도 마음도 하나 되어 애타게 담배를 찾는 거. 슬그머니 주머니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고 바라본다. 완전 범죄는 가능하다.
피워? 말어?
절대 발코니서 피지 말라던 두 아들. 피면 바로 자진해서 20만 원 벌금 물어야 한다고 머리 좀 컸다고 몇 번이고 내게 엄포 놓던 녀석들. 나이 들면 자식 말 들어야 한다며 편들던 아내는 깊이 잠들어 아무것도 모르고.
피워? 말어?
월드 베스트 편의점 알바의 품위,
최선진국 일등 시민의 품격.
이거 지키는 거 결코 쉬운 거 아니다.
2020. 06.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