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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매기 삼거리에서
Jul 25. 2020
유후인.
선물 상점을 둘러 본다.
시간이 한참 남아서다.
유리 소품이 앙증맞고 가격도 착하다.
찬찬히 구경하다 보니 자연 고르게 된다.
개 한 마리. 누런 털에 귀가 늘어진.
그리고 개구리 한 마리. 오른손에 붕어가 낚인 낚시대를 들고 있는.
손가락 한두 마디 크기.
너무 작다.
허나 여기 쇼핑하러 왔나 장인 어른 팔순
땜에 왔지.
일본 와 돈 쓸 일 있나 한국 감 널린 게 상품인데.
계산대로 가는데 하단 구석에 Sale 표시.
세일 상품을 대놓고 내놓지 못 하는 건
미련이 남아서다.
그 가격엔 팔기 아깝다는 거.
또는 자리가 아까워서다.
마진 좋은 거 놓을 자리를 차지하니까.
이래서는 돈 못 번다.
어차피 세일이면 매장 전면, 가능하면 가판대에 배치해 미끼로 던져 손님을 끌어들이는 게 낫다. 매장에 구경하는 사람이 있으면 머가 있나 보다 하고 둘, 넷이 들어오고, 보다 보면 사게 된다.
그러니 미끼 상품. 설사 원가 이하로 팔아도 안 하는 거보다 더 남게 마련이다.
어디든 공간을 차지하면 비용이다.
더구나 종류가 엄청 많은 이런 매장은 앞으로 남고 뒤로 밎진다. 재고에 치여서니 회전이 생명이다.
어떻든 손님 입장에선 세일은 좋은 거.
특히 눈에 안 뜨이는 구석에 세일이라 붙인 건 그렇다.
쭈그리고 앉아서 찬찬히 살핀다.
역시다.
물건 좋고 구색 좋고 가격은 더 좋다.
청동빛 금속 공예품이다.
수십 개가 엉키듯 쌓여 있다.
버림 받은 상품의 운명.
먼지가 묻어나지 않는 거로 보아
대접 받고 살다 최근에 구석으로 내몰린 거다.
유리보다 재료와 품을 네 배는 들였다.
고마운 건 유리보다 더 저렴하다는거.
반가운 건 스무 배는 더 큼직하다는 거.
역시 난 물견 즉 물건 보는 눈이 있다.
내가 만들어 본 말이긴 하지만.
받을 사람 각자에 의미를 찾다보니 셋을 고르게 된다.
비올라, 트럼펫, 열차
다 선물할 수는 없으니 기준은 지난 1년 난 받았는데 못 준 사람.
아내는 유리 고양이. 세일품 아니란다.
ㅡㅡㅡ
카운터는 20대 후반 여자.
뚱뚱하고 중키에 얼굴은 각진 데 없이 붕그렇다.
이런 얼굴형은 살이 정도껏 찌면 귀여움이 흔적이나마 남지만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고양이와 함께 셋을 카운터에 내려놓는다.
반기는 기색이 없다.
먼가 불만이 있다는 거.
카운터녀가 아무 말 없이 A4 백색 코팅 용지를 불쑥 내민다.
한국어, 중국어로 세일품은 반품이 안된다는 내용.
코팅이 낡고 지저분한 게 오래 전부터 쓰던 수법이란 걸 말해 준다.
태도로 보아 안내가 아니라 경고하는 거다.
아내가 만 엔 지폐 한장을 내니 잔돈 없다고 손짓, 몸짓한다.
아내가 내게 고양이를 안 사면 가진 천엔 권으로 계산된다며 고양이를 빼려니까, 카운터녀 잽싸게 고양이를 낚아채며 잔돈 있단다. 역시 말은 없고 손짓 몸짓으로.
그렇군 이게 많이 남는 거군.
포장 되냐니 카운터녀는 같은 코팅지를 다시 내민다.
2차 경고.
귀찮게 말 걸지 말라는 거,
세일품 섞어서 사는 주제에 먼 포장이냐는 거다.
그리 쓰이진 않았지만 표정으로 안다.
아내가 뻘줌해서 다시 고양이를 빼려하니 카운터녀 다시 날렵하게 빼앗아 박스에 넣고는 봉투에 담는다.
확실하군. 이윤이 엄청 좋군.
내 꺼 세 개는 각각 볼록이로 둘둘 말고 스카치 테잎으로 대충 고정하고 셋을 몽땅 종이 봉투 한 개에 담는다. 세일품이니까.
머가 그리 불만인가?
시종일관 싸가지 없어 화 좀 내려다가 삶을 달관한 친구 말이 떠올라 참기로 한다.
한국 사람들이 분노하는 걸 보고
미국인이 많이 놀란단다.
허긴 다시 안 오면 그만이고 올 일 또한 없을 터이니.
계산을 끝내고 묻는다.
토일레토?
없어요.
단칼에 자른다.
어랏 우리말 아네.
지금껏 우리 둘 얘기 다 알아 들은 거네.
터진 입 뒀다 어디다 쓰려고.
아님 화장실만 거부할라고 이 말만 딸딸 외운거?
그럼 넌 엇따 싸냐? 한마디 쏠래다가
꾹 참는다. 친구 말이 다시 생각나서다.
ㅡㅡㅡ
쇼핑을 끝내고 버스로 가는 길.
앞서 가는 가이드에게 달려가 붙들고 푸념한다.
촌동네가 더 무섭다, 이 동네 공용 화장실은 멀고, 상점은 불친절하다 못해 왜 이리 싸가지가 없냐고.
가이드 설명과 내 추측 믹스.
1.공용 화장실 없었다. 작년에서야 젤 외진 구석에 한 개 만들었다.
상점 화장실은 물건을 사도 못 쓰게 하는 데가 태반.
2.민박 1박 50~70만 원 고가다.
원래 소수 일본인 고소득층 받을라 했는데 어캐 알았는지 한국에 이어서 중국인들이 떼지어 몰려왔다. 20년 전부터.
3.한국인은 화장실에 휴지통이 없으니 변기 밖에 똥휴지 버리고, 생리대를 변기에 쑤셔 넣고, 중국인은 좌변기 위에 올라가 똥 싸고.
관광지 어디가나 화장실마다 그리 말라 커다랗게 붙어 있어 눈길을 피할 수 없다.
한국어, 중국어로 써서 대놓고 지적하니
저간의 사정이 뻔히 보인다. 안내문의 이면에 숨겨진 증오심까지.
그들 욕심에 돈되는 숙박은 안하고 빙 둘러보고 싸구려만 골라 사고는 똥만 싸지르고 가는 거다.
3.그래서 상점서 물건 사도 무인사, 무표정, 화장실 없다고 딱 잡아떼는 거.
안 받자니 당장 아쉽고, 받자니 승질나고.
한마디로 우린 계륵
4.근데 왜 거가 유명 관광코스?
입장료가 없으니까 여행사 입장에서 거긴 봉이요, 우린 밥인 셈
가이드 설명을 듣고 나니 부아가 치민다.
한국인 꼴보기 싫음 입장료 만 엔 받든가
그럼 안 올 거 아녀.
잃어버린 20년인데, 이 동네는 한국, 중국 관광객 덕에 상점들 많이 생기고
잘 먹고 잘 싼 주제에.
ㅡㅡㅡ
되짚어 보니 이 마을 상점 어디가나 인사가 없다.
상점이라면 듣는 그 흔한 이랏샤이마세 조차도.
하나같이 카운터녀 같다.
개울 건너가 점심으로 단체로 돈까스를 먹은 음식점 종업원녀. 19세쯤.
맛대가리 없는 거야 주방장 탓이라 해도, 서빙하는 돈까스녀 또한 반기거나 잘가라는 인사도, 웃음도, 표정도 없다. 멀 시켜도 대답은 없고 몸만 움직인다.
좀비 같다.
생긴 건 이쁘장하구만.
호수가에 20대 중반 카페녀도 마찬가지.
북마커 하나 샀는데 계산 내내 한마디 말이 없고 역시 무표정.
카페 카운터가 어두우니 딱 좀비다.
인간들은 그렇다손치더라도
괸광지라면서 정작 볼거리가 없다.
금린호수?
먼 호수? 그냥 연못이다.
산에서 찬 물이 내려와 온천수가 합쳐져
호수가 되었다고?
산물이야 당연히 찬 거고, 온천수는 어디서 얼마니 솟는지 알 길 없고, 못에 손 담가 보니 그냥 찬 물인데?
게다가 카운터녀처럼 살이 디룩디룩 오른 잉어가 떼로 몰려 다니는데,
팔뚝만한 건 푹 삶아서 누래진 돼지 앞다리가 살아 꿈틀대는 거 같아 징그럽다.
차라리 십여 배 면적의 원주 매지리 연세대 저수지가 호수이고, 그 둘레길이 훨 볼 만하다.
식생도 거반 한국 거라 식상하다.
쑥, 담쟁이넝쿨, 단풍나무, 연못 가에 버드나무...
이름을 몰라 그렇지 내 동네 가매기에 널린 거다.
ㅡㅡㅡ
도대체 여기가 왜 관광지?
유후인.
의역하면 영어로 불쉿, 우리말로 소똥.
그래서인가 작년에 다녀갔던 다른 친구가 유명해서 먹어봤다는 고로케가 똥색이라 찝찝하단다. 똥 넣었을 지 모른다고.
유후인.
유하고, 후하고, 인자할 거 같은 지명.
천만에.
무인사, 무표정, 무웃음. 3무다.
쓸 수 없는 화장실까지 4무.
해야 할 건 안하고, 있어야 할 건 없다.
재수 없는 동네다.
두 번 다시 안 간다.
단, 2박 3일 35만원에 스기노이호텔 낀 코스면 여행사 손 들어줄 만하다.
유후인은 기념으로 똥 한번 질러 주고 지나면 그뿐.
2018.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