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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ul 26. 2020

너 간첩이지 (노 병장)

망군 亡軍


-- 근처엔 이런 또라이 새끼가 없는데? 헬기 타고 오나? 진짜 사단장? 먼가 일이 터진 건 확실하다. --






상황실 근무 중인 주인공




1983년.


지오피 소초 상황병 때.


상황병은 소대 딸딸이 담당이다. 딸딸이가 딸딸딸 울린다. 잽싸게 전화 수화기를 잡는다.

나. 통신보안 육군 병장 노 병장입니다.
그. 야 새꺄 소대장 바꿔.

나. 누구십니까?
그. 이 씨새끼가 바꾸라면 바꾸지 먼 말이 많아.

나. 누구십니까? 관등성명 대십시오.
그. 이 새끼 이거. 나 누군지 몰라?

나. (첨 듣는 목소리다. 빠르게 짱구 굴려도 모르겠다) 모르겠습니다. 누구십니까? 관등성명을 밝히십시오. 그래야 바꿔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욕하지 마십시오.
그. 머? 이런 개새ㄲ. 소대장 바꿔 ㅆㅂ놈아.

나. 안 됩니다. 관등성명부터 대십시오. 욕하지 마십시오.
그. 이새ㄲ가 죽을라고 환장했나? 바꿔 좋새꺄.

이런 식으로 점점 더 쌍욕 하고. 난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근데 이 새퀴가 나보다 높은 놈인 건 확실하다. 얼마나 높지? 중대장 목소린 아니다.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받은 적 없어 모른다. 근데 엄청 화난다. 이새퀴한테 잠깐 사이에 먹은 욕이 군대 와서 들은 거 전부를 합친 거보다 많다. 직접 1 : 1로는.

나.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관등성명 대야 소대장님 바꿔줍니다. 욕하지 마십시오. 또 욕하면 가만있지 않겠습니다
그. 머머머, 남 거시기, 여 머시기, 도꾸의 새끼.....

난 양 성기가 아니고, 동물의 새끼는 더구나 아니다. 난 사람 남자고, 울 엄마 큰아들이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육군 병장이다.

나. 마지막 경고입니다. 욕하지 마십시오.
그. 더 지랄.

나. 마지막 경고다. 욕하지 마라.
그. 더더더 지랄레이션.

이건 아니다. 진짜 아니다. 난 군에서 배운 대로 시킨 대로 했을 뿐이다. 더 이상 참는다면 군과 국가에 욕보이는 일이다. 사회에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면 군에서는 좋에는 좋, 씿에는 씿이다.

전투 개시. 일단 전투면 무조건 승리가 목표다.

나. 야, 씨바ㄹ녀나.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첨 배운 거부터 시작해서 이 새퀴가 한 욕 × 3배 + 군대서 배운 온갖 욕 다 복기해서 자근자근 씹는다. 전투로 치면 크레모아 폭탄 누르고 수류탄 투척, 자동 소총에 기관총 난사에 박격포에 화염방사기로 마무리. 5분간 개인 화기, 공용 화기까지 총동원.

기가 질렸는지 이새퀴가 말을 잃는다.

완승이다.
우히히히

그리곤
그. 너... 너... 너... 5분만 기다려.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

그리고 전화 뚝.

5분? 근처엔 이런 또라이 새끼가 없는데? 헬기 타고 오나? 진짜 사단장? 먼가 일이 터진 건 확실하다.





1부 끝.


여기서 쉬어가기 문제 둘.



담 중 육군 병장 노 병장이 전투 용어=욕을 총동원하면서 전투 역량 극대화 및 상대 심리 교란을 위해서

가. 했음직한 추임새 하나는?

1. 너 대대장이지? 씨새꺄
2. 너 연대장이지? 개새꺄
3. 너 사단장이지? 존만아
4. 너 간첩이지? 호로새꺄. 그러니까 관등성명 못 대지


나. 이때 바람직한 어투 하나는?

5. 큰소리로 우렁차게
6.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7. 수화기를 탁자에 땅땅 치며 흥분해서
8. 작은 소리로 책을 한 줄 한 줄 읽듯이 야비한 어조로



-----


이 길로 와서 저 문으로 난입. 문 반대편 오른쪽 끝이 상황실. 상의 군복이 주인공.





20분쯤 후.


쾅.


문짝 걷어 차는 소리.
소초 막사 입구. 내가 있는 상황실 반대편 문이다.


올 게 왔구나.
아, 쓰벌. 왜 안 좋은 일은 꼭 시간 맞춰 온다는 말인가?

이어서 고함 소리.


"노 병장이 누구야? 나와 이새ㄲ."

난 상황실 밖으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상황병답게 상황을 살핀다.


4명이다. 한 명은 완전 무장. 철모 쓰고 M16 검은 소총 총구를 막사 천장을 향해 왼손에 거치하고, 허리엔 실탄 탄입대 차고, 가슴에 수류탄까지 2개. 한 명은 오른손으로 줄에 묶은 군견 한 마리 끌고. 원단 셰퍼드다. 군인 열보다 무섭다. 얼마 전 바로 옆 봉우리 위에 소초를 지나 온 적이 있다. 타 중대라 서로 모른다. 소로 옆에 철근 개장에 갇힌 녀석의 눈을 마주 본 적이 있다. 찢어진 누런 듯 붉은 듯 이글이글 불타는 두 눈. 커다란 덩치는 고사하고 두 눈만 마주쳐도 기가 질린다. 바로 그 군견이다. 그리고 두 명은 비무장.

한눈에 파악한 상황은 이렇다.


여기는 최전방. 어디 가나 또라이는 있기 마련. 문제는 실탄 지향 사격, 수류탄 투척 사고가 잊을 만하면 뻥 터진다는 거다. 내가 세게 나가니까 이새퀴가 겁을 잔뜩 집어 먹은 거다. 그래서 완전무장에 사나운 군견에 군견병까지 대동한 거다. 것도 불안해서 두 명 더해 떼거지로. 일단 총구가 천장을 향했으니 나를 바로 쏠 생각은 없다. 원래 아군에 총질해대는 놈은 혼자지 떼로 다니지 않고, 대한민국 군 역사상 떼로 총질한 사고는 내가 알기론 없다.

헌데 멀어서 무장한 새퀴 계급장이 안 보인다. 헬기 소리 안 났으니 사단장은 아니다. 아니, 혹시 사단장이 옆 초소 왔다가 전화한 거? 것도 아니다. 그 정도면 미리 전파될뿐더러 늙수구리 영관급이 따라붙는데 다들 새파랗다. 무엇보다 사단장이 아무리 쫄아도 그렇지 수류탄 차고 나타날 리가 없다. 머야 그럼?

다시 고함소리.


"노 병장이 누구야, 나와 개새ㄲ야."

딸딸이로도 수없이 묻고 마지막 세 번 경고까지 강조해도 관등성명을 안 대더니 남의 소초에 무단 침입하고서도
이새퀴는 안하무인이다. 도대체 예절이라곤 모르는 개새퀴다. 허긴 그러니 사람을 개떼처럼 몰고 다니지.

상황병의 주요 임무 중 하나. 주간에 소초에 무단 침입을 경계하다 적 판단 시 즉각 사살. 최전방이라 과거 무장공비 소초 난입 사건도 들은 바 있다. 아군으로 위장한 적으로 간주해 실탄으로 갈겨도 되기는 하다. 실탄을 지금 손에 쥐고 있다면. 이새퀴만 보면 그렇다. 헌데 강제 동원되어 딸려온 병사는? 무엇보다 군견이 아는 녀석이다. 인간이 밉지 개가 무슨 죄가 있으랴.

다시 고함 소리.


"노 병장 나와 새꺄."

숨을 데도 없고 숨을 이유도 없다. 상황 파악도 끝.

"나다 존마나"


고함이라면 이새퀴만 못하랴. 나도 한 고함 한다.


"내가 육군 병장 노 병장이다"


버럭 소리치며 성난 맹호처럼 날렵하게 상황실을 박차고 나선다. 좁은 막사 중앙 통로의 양끝에서 정면으로 서로 째려보며 다가간다. 타오르는 증오와 복수의 욕망에 사로 잡힌 서부의 총잡이 대결 일촉즉발처럼.
1 : 4. 게다가 일당 십 셰퍼드까지.

두둥

마침내 복도 한가운데서 마주 선다.
총 든 새퀴 계급장이 보인다.
중사다. 선임하사.





바로 요기서 또라이와 마주 선다. 소초 안 복도 정중앙. 오른쪽이 주인공.





에잇, 사단장까지 생각해 줬구먼, 이런 무례한 새퀴는 조또 아니다. 하나도 안 무섭다.

근데 군견은 다르다. 눈은 이새퀴를 향해 부라리지만 신경은 온통 녀석에게 쏠려있다.

이새퀴 입장에선 잘 데려온 거다. 나머지는 똥폼으로 달고 온 허수아비들.
허나 무식한 이새퀴와 달리 난 원래 예절이 바르다.

나. 충성. 누구십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그. 몰라서 물어 개새꺄. 물어. 물어.

군견한테 물으라는데 정작 군견병은 줄을 부여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짖지도 물려고도 않는다. 줄에 붙들려서만은 아닌 것 같다. 영리한 녀석은 아는 게다. 인간 세상엔 개만도 못한 인간이 널렸다는 걸. 이새퀴가 바로 그런 인간이란 걸. 애초에 관등성명을 안 밝힌 이새퀴 잘못이란 걸.

나. 누군 줄 내가 어캐 압니까? 남의 소초에 무단 침입했으면 관등성명을 밝혀야 하지 않습니까? 떼로 몰려와서 이게 먼 소란입니까?
그. 아 이 개새ㄲ가. 그래 씨새꺄 나 바로 옆 봉우리 소초에 2중대 화기 소대 박 중사다.

그러면서 군홧발로 쪼인트를 날린다. 원래 선방은 맞아주는 게 예의고 피하면 상대가 불쾌해하니 실례다. 난 예의가 바르니 피하지 않는다.

나. 진작에 밝혔으면 이럴 일 없지 않습니까?
그. 이새ㄲ가 그래도.

이번엔 군화가 무릎을 차더니, 이어서 배를 향한다. 이건 아니다. 선방을 곱게 맞아 줬으면 상대 말 한마디 정도는 받아주는 게 사나이 간 답례다. 더구나 배라니? 군화라 탈장 위험이 있고, 최전방이라 수술 병원이 멀어 탈장은 곧 죽음과 진배없다. 날 호구로 본 거다. 더구나 나같이 철저한 근무 수칙 준수에 예의까지 바른 고참병의 부상은 육군 전력에 큰 손실이 틀림없다. 다시 반격할 명분이 충분히 쌓인 거다.

나. 아, 씨바알 내가 멀 잘못했다고 이러는 겁니까. 전군 구타금지 명령 때문에 쫄따구 때 허벌나게 맞고 고참 돼서 꾹 참고 있는데 이리 패도 되는 겁니까. 씨바알. 
그. 그래 새꺄 내가 군법이다.

그러면서 군홧발로 사정없이 계속 찬다. 와중에 군견병은 사건으로 번질까 봐, 그러면 제대에 지장 있을 테니까 개줄을 죽어라고 붙들고 놓지 않는다. 개도 군견병도 이새퀴 패악질에 개처럼 끌려온 게 틀림없다. 데려온 허수아비 둘도 멀뚱멀뚱 눈알 굴리며 구경만.


병신 새퀴. 겁은 존나 많아서리. 전투를 쪽수로 하나 정신 무장이 돼있어야지.

다시 격 태세.

이때다. 우리 선임하사가 주간 초소 순찰 돌고 나서 막사에 진입.

선. 어, 박 중사 웬일이야. 병사들에다가 군견까지 끌고 오고. 노 병장 무슨 일이야. 둘이 아는 사이야?
그. 이새ㄲ가 욕하구 어쩌구 약 올리고 저쩌구
나. 관등성명 어쩌구 구타 저쩌구.
선. 에이, 중사가 실수했구먼. 노 병장은 그래도 그렇지 이게 먼가. 하하하

우리 선임하사가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라는 말에야 이새퀴는 못 이기는 척 응하더니 한참 지나도 나한테는 사과 한마디 없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역시 예절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새퀴다.  

그날 소총, 수류탄 완전 무장과 무시무시한 군견의 위협에 떼로 몰려왔지만 난 홀로 비무장 상태의 악조건에서도 불굴의 투지 하나만으로 대한민국 육군 병장 노 병장의 명예를 지켰다. 군홧발로 몇 대 차이긴 했지만 그 정도야 이새퀴보다 몇 배 욕으로 갚아줬으니까 머.
  




The end





세 번째 문제.



이 군대는

9.   53년 육이오 전쟁 때다.
10. 63년이다
11. 73년이다
12. 83년이다



마지막 문제.


다음 중 2018년 새해에 군에서 완전히 반드시 박멸해야 할 것이 아닌 하나는?

13. 구타
14. 욕설
15. 폭탄주
16. 예절


201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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