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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Jul 28. 2020

귀순병 살려 죽여 (노 상병)

망군 亡軍


-- 철책에서 월남 간첩 사살은 운빨이다. --





1983년.

최전방 철책서 야간 경계 근무.

철책에 해가 직전 투입, 해 뜨고 나서 철수. 밤 사이 2교대. 이삼십 미터마다 한 개씩 초소.



소총 들고 겨울 경계 근무 투입 전 복장. 전면 우 주인공 상황병 평소 복장.   




북한서 무장간첩은 야음을 틈타 그쪽 철책을 넘는다. 남쪽과 마찬가지로 철책 바로 앞 맨땅에 심은 지뢰 지대 통과, 관목 숲으로 이루어진 개활지 지나 우리 쪽 철책 앞쪽 도착. 여기까지 약 400미터. 거기서 은폐해 웅크리거나 엎드려서 어디로 침투할 건지 살핀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귀 활짝 열어젖히고. 목숨이 달려 있기에 극도의 긴장 속에 이쪽을 지켜본다.

최전방 군인의 야간 경계 근무 수칙은 분명하다.

1. 대화 절대 금지. 들리니까.
2. 흡연 절대 금지. 성냥불, 담뱃불이 번쩍번쩍 보이니까. 냄새 멀리 가고.
3. 전방 주시. 앞에서 나타나니까.
4. 단, 한 곳을 응시하지 마라. 헛것이 사람이나 귀신으로 보이니까.
5. 멀리서 가까이 가까이서 멀리.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사람을 움직임으로 포착해야 하니까.

무기는 셋으로 완벽하다.

1. 소총과 총알 120발가량
2. 수류탄 2개
3. 크레모아 폭탄 격발기 하나. 폭탄은 철책에 설치되어 있고 격발기를 연결해서 누르면 폭탄이 터진다.

무기 사용의 원칙.

움직이면 쏴라.

적 발견 시 대응 3단계

1. 크레모아 격발기 누르면 쾅 폭탄 터지고
2. 소총을 자동으로 돌린 후 방아쇠 당겨 연발로 드르륵 사격하고
3. 수류탄 두 발 투척 쾅 쾅

즉각 그러라고 초소에 투입되면 크레모아 격발기는 크레모아 선에 연결해서 초소 앞면 뗏장 위에 둔다. 선은 철책 상단 높이 회오리 철조망에 묶어 둔 크레모아 폭탄 본체에 연결. 크레모아는 사각형이되 양은 도시락을 활처럼 휜 모양과 크기. 반드시 굽은 바깥쪽이 적을 향하게 해야 파편이 적 쪽으로 비산. 직선으로 뒤에 서 있으면 후폭풍 위험. 소총은 탄창을 채운 채로 총구를 전방을 향해 역시 뗏장 상단에 거치하고, 수류탄은 초소 투입 전에 미리 양 가슴에 하나씩 걸어 두고.

초소는 맨땅 위에 흙을 잔뜩 품은 뗏장을 삽으로 떠서 배꼽 높이, 팔뚝 폭으로 ㄷ 자를 90도 우로 세운 형태로 차곡차곡 쌓아 만든다. ㄷ 자 안은 둘이 나란히 서는 공간 정도고 지붕은 없다. 전체 초소 중 산 중턱에 하나만 콘크리트 구조로 지붕이 있고 전방으로 총을 내밀도록 창문 없는 창을 내었다.
주간 초소 둘은 나무로 지었다. 키높이로 계단을 넣어 바닥이 높아 전방을 조망한다. 역시 나무로 지붕을 얹었다. 
 초소 셋 외에는 전부 뗏장 초소.


모든 초소는 2인 1조다. 초소당 고참 하나, 쫄따구 하나.

이 정도면 물 샐 틈 없고 전투 준비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ㅡㅡㅡ




허나,

어떻게 야간 12시간 2교대 6시간씩 내내 사람이 꼿꼿이 서 있나? 깜깜한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전방을 내내 주시하나? 반년 182.5일, 일 년 365일 내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강풍 부나, 사방이 숲이라 여름에 모기 들끓지 최북단이니 영하 15도, 20도는 우습지 군인도 사람인데 어찌 내내 그러고 서 있나? 허수아비를 땅에 꽂아놔도 모자 날리거나 옷 헤지거나 쓰러질 터. 마징가 Z라도 수시로 고장 날 터.

게다가, 쫄따구가 신병이면 애인 있냐, 누나 있냐부터 시작해 사회에서 뭐 했냐 주저리주저리 말을 시킨다. 그러다 지겨우면 군기 잡기. 엎드려뻗쳐, 소총으로 빠따 치고, 죽통 날리고.


짬밥 좀 먹은 쫄따구는 플러스 알파. 너 쫄따구 누가 군기 빠졌더라, 실실 웃고 다니더라, 너 책임이라며 구타한다. 고참은 괴롭히다 지치면 땅바닥에 쭈그리거나 드러누워 잔다. 비라도 오면 판초 우의 뒤집어쓰고 바로 디비져 잔다. 밤에 한 번 순찰 도는 소대장이나 선임하사 접근하면 잽싸게 깨우라고, 놓치면 죽는다고 쫄따구에게 엄명하고서. 담배는 당연히 피운다. 고참은 대놓고 피고, 쫄따구는 고참이 깊이 잠든 거 확인한 후에 몰래 피고.

그러다 쫄따구마저 잠든다. 바닥은 고참이 차지했고, 푹 잠들어서 좌우로 순찰 도는 간부 경계 놓쳤다간 매를 버니, 무릎 꿇고 허리 굽혀 초소 앞쪽 흙더미에 가슴을 엎고 선잠을 청한다.

그렇게 비몽사몽 한 시간, 두 시간.....

둘 다 잠든 초소는 고요와 적막만이 남는다. 



ㅡㅡㅡ



앗, 여기가 구멍이닷!


철책 앞까지 도착해 어둠에 숨어서 지켜보던 무언가가 드디어 틈을 발견한다.

조용하니까.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철책으로 접근하느라 부스럭 부스럭.


바로 그때. 우연히 지극히 우연히 쫄따구가 부스스 눈을 뜬다. 앞에서 부스럭 소리에다가 가까이 움직이는 형상!
인간이 만든 조명이라곤 아예 없고 달, 별이 떠도 멀찍이서는 사람인지 동물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믐이면 한 걸음 앞에 군복 입고 서 있어도 모를 정도.

움직이면 쏴라. 뗏장 윗면 그러니까 엎어 자던 바로 옆에 놓인 크레모아 격발기 누르고, 소총 자동으로 드르륵드르륵 갈기고, 수류탄 두 발 던지고. 이건 교육 훈련받은 곧이곧대로. 고참도 천둥소리에 화들짝 깨서 소총 갈겨대고, 수류탄 던지고.

그 시각 이후 난리가 난다. 소대장 뜨고, 선임 하사 뜨고. 상황병은 딸딸이 전화기로 중대로 보고. 중대는 대대로, 대대는 연대로, 연대는 사단으로 긴급 보고. 이웃 초소, 이웃 소초, 이웃 중대는 머야, 먼 소리야 소리에 놀라고, 상급 부대서 떨어진 경계 강화 지시에 전 사단이 호떡집에 불난 거. 것도 심야에.

허나, 밤이라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영화처럼 죽은 척했다가 반격할 수도 있다. 철책 안이라 들어갈 수도 없다.

날이 밝으면 확인.




ㅡㅡㅡ




아뿔싸. 역시나 멧돼지.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일이다. 철책 안은 DMZ demilitarized zone 비무장 지대. 육이오 전쟁 이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온갖 짐승들이 자생한다. 특히 멧돼지, 노루는 이동을 가로막은 철책까지 다가와 툭툭 건드리기도 한다. 간첩이나 동물이나 사람 소리, 냄새 안 나는 곳을 눈에 안 뜨이게 찾아다니는 건 같다.

지오피 철책선 155마일에서 수십 번, 수백 번 짐승들을 쏴 잡아야 무장간첩 한 명 사살한다. 군 3년 복무해도 최전방서 간첩 사살했다는 걸 보거나 듣는 이는 드물다.

거짓부렁이다. 초병이 밤새도록 두 눈 초롱초롱 전방 주시하고 있다가 간첩을 발견하고 사격해서 때려잡았다는 건.


철책에서 월남 간첩 사살은 운빨이다.





ㅡㅡㅡ



헌데, 간첩이야 그렇다 치고 귀순병은? 그렇게 쏴 죽여도 되는 거야?

물론 귀순병은 기다렸다가 아침 해가 밝으면 흰색 깃발 들고 나타나겠지만 총으로 쏴? 말어?
이건 교육받은 적 없다. 전방에 적이 나타나면 움직이면 쏴라, 낮이고 밤이고 무조건 3단계 즉각 대응 크레모아 격발, 소총 자동 사격, 수류탄 투척만 배웠는데?

귀순병은 적이여? 아니여?

사살하면,


나는 훈장에 영웅담 전국 강연에 군 생활 확 필 뿐만 아니라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 진급은 따놓은 당상인데?
대통령도 한 건 한 거고 매스컴에 모두 영웅으로 도배할 텐데. 그러니까 알아서 귀순병을 간첩으로 몰아갈 거고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멀쩡한 아군도 구타해 죽이고 숨기고 속이는 데 도가 튼 군인데 적군 귀순병을 간첩 만드는 건 손바닥 뒤집기만큼 쉬운 일.

살려주면,

나 영창 가고 다 엿 먹는데?
왜? 개가 다 봤잖아. 개판인 거. 경계 근무 수칙 다 어기는 거. 기무사에서 분 단위로 캐묻고, 일거수일투족을 다 까발릴 텐데 온전한 자 어딨겠어. 지휘 책임 다 져야 하고. 따지고 보면 지 하나 살자고 가족, 동료 다 버린 놈인데, 왜 그런 놈 하나 때문에 나 다치고 동료들이 줄줄이 피해 봐야 해? 가족까지 걱정시키고. 하지만 그래도 귀한 사람 목숨.

죽이면 영웅, 살리면 폭망. 귀순병 살려? 죽여? 

사람 목숨 하나뿐인 문제가 아니어서 육군 이병 노 이병은 자대 배치 초장부터 고민에 빠졌으니.



2020. 0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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