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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Aug 14. 2020

꿈은 무서워 - 꿈의 기록과 해석

응답하라 1968 - 교육 편


아주 아주 어릴 때

애기 때 같다.

젤 무서운 건 종이었다.


불 화로 곁에서 엄마 젖을 빨다 잠든다.

꿈에 밑도 끝도 없이 거꾸로 매달려서

왔다리 갔다리 크게 흔들리면서

큰 종에 머리를 몇 번이고 짓찧는다.

줄거리도 없고 그게 전부다.

시도 때도 없다.

장면은 매번 같다.

너무 무서워서 내내 버둥버둥 대다가 깬다.

그 꿈을 아주 자주 꿨다.

잠드는 게 무섭다.



-----



어릴 때

국민학교 가기 한참 전.

젤 무서운 건 호랭이였다.


엄마는 내가 울 때마다 탁 치면서,

"뚝! 자꾸 울면 호랭이가 잡아간다"


국민학교 갈 때쯤.

젤 무서운 건 문둥이였다.

아부지는 내가 밖에 놀러 나갈 때면,

"멀리 가지 마라. 문둥이가 잡아간다, 애들 간 빼먹는다"

 

어쩌다 아무도 없는 논에서 혼자 있을 때

못 보던 어른이 가까이 다가올라치면

어김없이 문둥이가 떠올랐고

고무신을 슬그머니 벗어서 손에 움켜쥔다.

맘 속에 내달을 준비를 단단히 하고서.


문둥이를 본 적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르기에.

꿈은 아니지만 무서운 이야기 하는 중이라서.



-----



국민학교 때.

젤 무서운 건 전쟁이었다.


꿈에 전쟁이 난다.

비행기가 날아다닌다.

폭탄이 꽝꽝 떨어진다.

피난민이 엄청나게 많다.

저 멀리서 북한군이 논두렁으로 피난 가는 우리한테 총을 쏜다.

어떤 땐 다리가 잘리고, 어떤 땐 몸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무시무시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나나 엄마나 아부지나 형제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거나 헤어진다.


꿈속에서는 도망가야 하는데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꿈속에서는 엄마나 아부지를 쫓아가야 하는데 도무지 안 된다.

너무 무섭고 너무 슬퍼서 닭똥 같은 굵은 눈물을 줄줄 흘린다.  

꿈결에 이게 꿈이란 걸, 깨야 끝낼 수 있다는 걸 안다. 

일어나려 버둥대지만 안 일어나진다.

잠들면 안 된다고 다짐하지만 소용없다.

몇 번이고 반복되다가 어찌어찌하다가 깨 보면 눈가에 눈물이 흥건하다.

이런 꿈을 한 달이면 몇 번은 꿨다.


즐겁거나 행복한 꿈을 꾸지는 않았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그때는




---종 꿈은 꿈이 아니라 경끼 같다. 엄마도 내가 애기 때 경끼가 심했었다고 했다. 방안에 놓인 숯불 화로 곁이라 가스 중독일 수도. 꿈 아니라 환각 아닐까? 애기 때 일이 기억나는 거로 봐서 그럴 수도.


---전쟁 꿈은 6.25 전쟁 교육 때문인 것 같다. 그러지 않고 그렇게 생생하게, 그렇게 자주 전쟁 꿈을 꿀 리 없다.


1. 학교 가면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 교육.


도덕 시간에 방공 방첩, 국어 시간에 표어 짓기, 미술 시간에 그림 그리기. 6월 25일은 육이오 전쟁 터진 날이니까 학교 전체가 전쟁 행사.


2. 실제 사건이 뻥뻥 터진다.


서울에서 총 쏘고 폭탄 던진 김신조 무장공비 사건, 주문진 무장공비 사건, 울진 무장공비 침투 사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다고 무장공비들이 이승복 어린이 입을 찢어 죽이고 식구들도 총 쏴 죽였다는 사건.


3. 삐라도 있다.


북한이 하늘에 뿌린 삐라가 시내까지 눈처럼 내린다. 주워서 선생님 갖다 주면 공책, 연필을 준다. 상 받을 욕심으로 공중에서 펄럭 펄럭 떨어지는 걸 서로 먼저 잡으려고 쏜살같이 내닫다가 돌에 걸려 자빠지고 땅 파서 만든 똥통에 빠지고. 산이나 소풍 갔다 땅에 떨어져 오래 지나 색 바랜 삐라 주으면 무서워서 두근 좋아서 두근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콩닥.





지금은


  

---종 꿈 안 꾼다.


---문둥이, 문둥병란 말은 안 쓴다. 한센병이다.


---전쟁 꿈은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쯤 가끔 꾼다.


꿈속에 장면은 국민학교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눈물이 펑펑 날 정도로 생생하고 실감 나 꿈 깨고 나서 전쟁 영화 만들면 대박 나겠다고 상상하지만, 안타깝게도 매번 줄거리가 깜박깜박 생각나지 않는다.

씬 하나는 어릴 적과 지금이 다르다. 북한군이 멀리서 우리에게 총을 쏘는 장면에서 어릴 때는 총소리가 탕탕탕이었다. 근데 군대 갔다 온 후에는 그 씬에서 총소리가 딱딱딱이다. 군대 있을 때 경험해보니까 총소리 한 방이 옆에서 들릴 땐 탕~ 하고 울린다. 정면에서 들릴 땐 딱 하고 끊긴다.

배운 게 꿈에 반영된 거다. 이걸 보면 육이오 전쟁 교육이 내게 평생 전쟁 꿈의 멍에를 씌운 게 확실하다.


알아두시라.

총소리가 딱 딱 딱 하고 들리면 즉시 납작 엎드려라.

누가 날 겨누어 쏘고 있는 거다.


---태몽도 무서웠다.


신혼 초 아내가 아이를 낳기 전.

멀리 치악산에서 점으로 시작한 호랑이 두 마리가 겅중겅중 점점 커진다. 순식간에 집채만 해져서 집에서 바라보는 내게 달려드는 듯 하더니 서 있는 아래 지하실로 뛰어든다. 너무나 무서워 선 채로 꼼짝 못 한다.


희한하게 아내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 둘을 2년 터울로 낳았다.

그 후 태몽이란 걸 믿게 되었다.

태몽은 단 한 번 뿐이었고 호랑이 꿈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해 지금도 기억이 뚜렷하다.


ㅡㅡ군대 다시 가는 꿈


끔찍. 이 나이 되도록 끈질기다. 군에 다시 가 있다니. 30개월 나날을 첫날부터 다시 헤아려야 하다니. 꿈속에서 이건 꿈일 거야, 아니 현실 맞아. 갈팡질팡하다 현실이라고 결론. 몹시 괴로워하다 깬다. 실제. 군에 강제 징집 당했다. 마음의 준비 없이 느닷없이 입대. 훈련소 5주 내내 자살할 방법을 찾았다. 사람 아닌 짐승만도 못한 취급, 구타. 짐승도 허구헌날 매질 않는다. 치욕과 명예 사이에서 청춘의 자유 영혼은 심히 갈등. 실제 자살 여러 명




꿈의 원리



---자다 꿈을 꾼다. 현실인가, 상상인가? 과거인가, 미래인가?

왜 꿈을 꿀까? 언제 꿈을 꿀까? 꿈은 어떻게 작동될까?

AI 시대지만 과학은 꿈에 대해서는 어쩌다 단편적 연구 결과만 내놓을 뿐.

1900년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이후에도 꿈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경험에 비추어 꿈의 원리를  짚어 본다. 한 사람은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지만 쌓으면 언젠가 코끼리가 완성되리니.


---호랑이 태몽이 아들을 간절히 원해서는 아니다.

아들은 진작에 포기했으니까. 집안 내력이 딸 둘셋 후 아들이었니까.


먼저 우리 형제. 딸 셋 후 나 아들, 넷째 딸, 그리고 둘째 아들, 딸 그리고 막내아들.

큰누나는 시집가서 딸 쌍둥이, 딸 후 외아들.

작은 누나는 딸 둘 낳고 그만.

막내 남동생이 먼저 장가가 애 낳았는데 딸 둘 그다음 아들.


그러니 난 당연히 딸 둘이나 셋은 낳아야 첫아들 갖겠거니. 내가 장남이라 대를 이을 아들을 기다리는 걸 잘 아는 아내에게 말은 못 하고 내심 딸 둘 그다음에 운 좋으면 아들 둘 합 최소한 자식 넷은 각오했는데. 

헌데 딸 딸 생략하고 바로 아들이라니!

것도 연타라니!

무조건 아들 우선인 어머니에게 손자를 둘이나 안겨주다니!

이거만 해도 아내는 내게 은인이었다.

태몽이란 게 있다는 걸 믿지 않을 수 있으랴.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 '응답하라 1968 - 베이비 부머의 기록'에서




2016.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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