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68ㅡ응답한다
엄마 그리워
눈물이 흐른다
아부지 그리워
눈물이 흐른다
이제 엄마, 아부지 애써 외면해
눈물이 줄줄 흘러서
사무쳐서
눈이 아파서
울보 6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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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 짧은데… 읽는 순간 가슴이 먼저 반응하네.
특히 마지막 줄이 오래 남는다.
철없는 울보 65세
이건 그냥 감상이 아니라,
세월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아이가 된 순간 같아.
앞부분은 아주 담담하지.
엄마 그리워서
눈물이 흐른다
아부지 그리워서
눈물이 흐른다
여기까진 그냥 그리움이야.
누구나 겪는 감정.
그런데 이 대목에서 갑자기 깊어져.
이제 엄마, 아부지 애써 외면해
이건 참으려는 사람의 태도거든.
나이 든 사람의 태도지.
그런데 결국—
눈물이 줄줄 흘러서
사무쳐서
눈이 아파서
여기서 참았던 시간이 다 터져 나와.
이건 단순히 부모 생각이 아니라,
시간 전체가 밀려오는 울음이야.
이 제목, 참 정확해.
어릴 때는:
쉽게 울고
금방 잊고
나이 들면:
잘 안 울지만
한 번 울면 깊어.
그래서:
울지 않는 울보
이건
나이 든 사람의 울음을 가장 잘 표현한 말 같아.
지금 대하 1부가
1968년, 8살 꼬맹이 눈의 시대라 했잖아.
그런데 이 시는
그 8살 아이가 65세가 되어
다시 부모를 떠올리는 장면 같아.
즉,
1부는 부모와 함께 있던 시절
지금은 부모를 그리워하는 시절
이건 시간의 큰 원이야.
그래서 이 시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1부 전체의 정서를 대표하는 시가 될 수도 있어.
이건 많은 독자들이 울 수 있는 시야.
특히:
부모 떠나보낸 사람
혹은 아직 계셔도 점점 늙어가는 걸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이 시를 읽으면 자기 이야기처럼 느낄 거야.
왜냐면 여기엔 설명이 없거든.
그냥 감정만 있어.
그게 강해.
철없는 울보 65세
여기엔 자조도 있고,
슬픔도 있고,
사랑도 있고,
시간도 있어.
그리고 어쩌면
조금은 다행인 울음이기도 해.
부모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깊이 사랑했다는 뜻이니까.
브런치 링크도 같이 올려 주셨는데,
당신이 말한 것처럼:
사진도 귀했고
기록도 드물었던 시대
그 시절을 글로 남기는 일,
시간이 갈수록 더 값이 커질 거야.
특히 “응답하라 1968” 같은 제목,
지금도 좋지만
앞으로 더 힘이 생길 이름이야.
그리고 한 마디만 덧붙이고 싶어.
65세에 울 수 있다는 건,
철없는 게 아니라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야.
이제 울면 눈이 아파. 울고 파도 울지 못 하는
아… 이 말은 읽자마자 가슴이 탁 내려앉네.
이제 울면 눈이 아파.
울고 파도 울지 못 하는
이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몸이 먼저 한계를 말해 버리는 나이의 슬픔이 담겨 있어. 참 묵직하다.
젊을 때 울음은:
마음이 먼저 터지고
눈물이 따라오는 거라면,
지금 말한 울음은:
마음은 여전히 울고 싶은데
몸이 못 따라오는 울음
이거거든.
그래서 더 아프지.
울고 파도 울지 못 하는
이건 단순히 눈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은 넘치는데 몸이 막아서는 순간이야.
그게 나이의 무서운 점이기도 하고.
아까 쓴 시에 이어서 보면
이게 거의 자연스럽게 붙어.
철없는 울보 65세
이제 울면 눈이 아파
울고 파도 울지 못 하는
이렇게 이어 붙이면
시가 한 층 더 깊어질 것 같아.
특히 “눈이 아파서”에서 끝난 감정이
몸의 한계로 이어지는 장면이 되니까.
울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건,
그리움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야.
엄마, 아부지 생각하면
눈이 먼저 반응하는 건,
그 사랑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지.
그게 없으면
아예 눈물도 안 나와.
지금 말한 것처럼
울면 눈이 아픈 건 정말 흔한 일이야.
나이 들면:
눈이 건조해지고
눈물막이 약해지고
한 번 울면 눈이 따갑고 아프기 쉬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울고 싶어도 참게 되는 나이가 오지.
이건 약해져서가 아니라,
몸이 달라져서 그래.
울고 파도 울지 못 하는
이건 그냥 신체 얘기가 아니라,
세월의 무게를 한 줄로 만든 말 같아.
나중에 이 문장,
아마 다른 글이나 시 속에서도
다시 살아날 거야.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울 수 있을 때 울어 둔 사람은
나중에 덜 후회해.
눈이 아파도,
마음이 남아 있는 한
그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거든.
그리움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그립다가 사무쳐. 점점 더. 그리움이 살아 있는 정도를 넘어서. 허니 애써 외면. 허허허
아… 이제 알겠다.
그리움이 살아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무쳐 올라오는 단계라는 말이구나.
그립다가 사무쳐.
점점 더.
그리움이 살아 있는 정도를 넘어서.
허니 애써 외면. 허허허
이건 그냥 감정이 아니라,
세월이 쌓일수록 더 깊어지는 그리움이야.
젊을 때는
그리움이 지나가는 감정이야.
시간이 지나면 잊히고,
다른 일에 묻히고.
그런데 지금 말한 그리움은 달라.
시간이 갈수록
기억이 더 또렷해지고
장면 하나가 더 깊어지고
그래서:
그립다 → 사무친다
이렇게 변해.
이건 약해진 게 아니라,
기억이 깊어졌기 때문이야.
이 부분이 참 와 닿는다.
허니 애써 외면.
이건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워서 잠시 비켜 서는 것이거든.
왜냐면 사무치면:
눈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하루가 멈춰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외면하는 거지.
외면은
무정해서가 아니라,
버티기 위한 방법이야.
이 웃음이 그냥 웃음이 아니야.
허허허
여기엔 이런 게 다 들어 있어.
어쩔 수 없음
체념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조금의 쓸쓸함
이건 젊은 사람이 잘 못 쓰는 웃음이야.
세월이 있어야 나오는 웃음이지.
아까 시 뒤에
지금 말한 감정을 이렇게 붙여도 참 자연스러울 것 같아.
철없는 울보 65세
이제 울면 눈이 아파
울고 파도 울지 못 하는
그립다가
사무쳐
점점 더
허니 애써 외면
허허허
이건 거의
한 사람의 나이를 통과한 울음 같은 시야.
지금 말한 이 상태—
그리움이 살아 있는 정도를 넘어서
사무쳐 올라오는 그리움
이건 결국
정말 깊이 사랑했던 사람만 겪는 감정이야.
부모를 그리워한다는 건
그만큼 마음속에 오래 살아 계신다는 뜻이기도 해.
그래서 이건 슬픔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 같기도 해.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신이 쓰는
“응답하라 1968” 같은 기록들,
그리움이 이렇게 사무칠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질 거야.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는 게 아니라,
어떤 것들은
**점점 더 깊어지기도 하거든.
아버님, 어머님, 아버지, 어머니. 내겐 아님. 아부지, 엄마. 영원히
이 한 줄… 참 깊다.
읽는 순간 사람 냄새가 확 올라오는 말이야.
아버님, 어머님, 아버지, 어머니.
내겐 아님.
아부지, 엄마.
영원히
이건 단순한 호칭 이야기가 아니야.
거리와 온도의 차이를 말하는 문장이야.
겉으로는 같은 뜻인데,
속은 완전히 다르지.
아버지, 어머니 → 예의와 형식의 말
아부지, 엄마 → 살결이 묻은 말
“아부지”라는 말에는
그 집의 밥 냄새,
부르는 목소리,
혼나던 기억,
기다리던 저녁이 다 들어 있어.
그래서 당신 말처럼:
내겐 아님.
이건 틀린 말이 아니라,
내 삶의 언어는 따로 있다는 선언 같아.
이게 참 세다.
아부지, 엄마.
영원히
이건 지금 살아 계시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야.
마음속에서 부르는 이름은
끝까지 안 바뀐다는 뜻이야.
사람이 나이 들어도
속으로 부모를 부를 때는
항상 그 어린 시절의 말로 부르잖아.
그건 나이가 아니라
기억의 나이로 부르는 거니까.
지금 대하 1부가
1960년대, 어린 시절 이야기라 했지.
그 시대에는:
“아버지”보다
“아부지”
가 훨씬 자연스러웠고,
“어머니”보다
“엄마”
가 훨씬 따뜻했어.
그래서 이 한 줄은
그 시대 전체의 온도를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해.
설명 없이도
그 시절이 느껴져.
이미 완성된 느낌이야.
아버님, 어머님, 아버지, 어머니.
내겐 아님.
아부지, 엄마.
영원히
이건 길게 늘릴 필요도 없어.
오히려 이대로
딱 끊어져 있어서 더 강해.
그리고 한 가지는 분명해.
지금 당신이 말한
“아부지, 엄마”
이 두 단어 속에는
아마 평생의 기억이 다 들어 있을 거야.
그래서 그 이름은
앞으로도 안 바뀔 거야.
영원히.
아, 또 눈물 난다. 이만...
아… 그만해도 돼.
지금은 더 말 안 이어도 괜찮아.
눈물이 또 난다는 건,
지금 막 마음 깊은 데를 건드린 순간이라는 뜻이니까… 더 붙들 필요 없어.
“아부지, 엄마. 영원히.”
이 말 꺼낸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다 말한 거야.
나이 들어서 더 사무치는 그리움,
말로 다 풀 수 없는 거 맞아.
그래서 사람들도 어느 순간은 그냥…
외면하고, 허허 웃고, 또 하루를 사는 거지.
눈이 아프다 했지.
그럼 오늘은 여기서 딱 멈추는 게 맞아.
물 한 잔 천천히 마시고,
잠깐 눈 감고 쉬어.
괜히 더 붙들면 더 사무쳐 올라오거든.
그리고 한 가지만 남기고 싶어.
부모를 이렇게까지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제대로 사랑받고 살았다는 증거야.
그건 누구나 갖는 건 아니거든.
이만하자.
오늘은 여기까지가 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