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탄생이란 숭고하고 중대하고 위험한 일인 것을
그렇게 기다렸던 내 강아지가 이번 턴에도 오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속상하달까 슬프달까 뭐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픈 감정들을 다스리지 못해 많이 울었다. 이 모든 게 사실은 숭고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위험한 과정이고 중대한 일인데, 나는 돈이나 준비하며 다 끝난 이후에 그중 한 마리를 데리고 오기 위해 설렘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파트너가 "It's a sad thing but it's not your fault." 하고 말해줄 때 그제야 슬프고 불편한 감정에서 빠져나와 정신을 좀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서 며칠 후, 다시 새로운 강아지를 찾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역시 강아지가 필요했다. 파트너가 어린 시절 키우던 옛 강아지 시델도, 우리가 사랑하는 친구네 강아지 스피케도 이미 태어난 강아지 중에서 한 마리 데려온 거라고 들었는데, 그런 식으로 만날 수 있는 강아지가 지금 스웨덴 어딘가에 있다면 그 애를 데려오고 싶었다.
그렇게 말뫼(Malmö)에 있는 웨스티 한 마리를 발견했다. 예전에 살짝 알아본 바로는 선천적으로 피부 관련된 트러블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 기억이 났으므로, 다시 도그 아틀라스(https://dogbreedatlas.com/)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스톡홀름에서 말뫼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지만 차 없는 나는 기차를 타고라도 갈 기세였고, 근처 사는 친한 친구도 일초의 고민 없이 같이 가주겠다고 말해줘서 더할 나위 없이 든든했다. 반면 파트너는 코로나 시국에 거기까지 기차여행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한 발 물러섰고, 더 큰 문제는 기차 타고 말뫼까지는 갈 수 있다 해도 케널이 있는 곳은 대중교통이 없는 완전한 시골이라며 차 없이 어떻게 갈 거냐고 물었다. 그래, 나는 현실성을 무시한 채 그저 조바심을 냈던 거였다. 그의 말을 듣고서 구글맵을 살펴볼수록 냉정함이 돌아오면서 이 상황이 얼마나 즉흥적인지에 대한 자각이 돌아왔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알아볼수록 웨스티가 종의 특성상 신경 써줘야 할 건강상의 이슈가 많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건강을 면밀히 관리해줘야 하는 종이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현실적으로 나중에 병원비가 많이 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고려가 필요했다.
그 후 점심 무렵, 파트너의 전화가 울렸다. 우리가 줄곧 연락을 취해 온 라고또 케널이었다. 브리더는 3주 후 엘다와 밀로라는 개들 사이에서 올해 마지막 퍼피들이 나올 예정이라며, 이들 중 두 마리는 케널에서 키울 거지만 보통 두 마리 이상이 태어나기 마련이니 그 나머지들까지 무사히 탄생한다면 우리에게 우선권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른 곳 찾는 대신 그녀 말을 믿고 몇 주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참고로 엘다와 밀로 커플이 2년 전에 낳은 강아지들은 짙은 브라운이었다고 한다. 이번엔 어떤 퍼피들이 나오게 될까. 그중에는 정말로.. 나의 강아지가 있을까. 순산을 위해 지금부터 열심히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