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상훈의 하루
흐르는 땀을 닦으며 상훈은 지하철 아니 일명 ‘지옥철’에서 겨우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은 상훈은 어젯밤에 보다가 잠들어버린 유튜브를 봤다. 해외로 나가서 우리나라를 국위 선양하는 운동선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선수는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는 했지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진정한 스승을 만나서 기량이 만개하고, 대표팀의 막내에 있을 때 외국으로 스카우트됐다. 스카웃되고 나서 그의 인생은 잘 풀리기 시작했다. 이런 대기만성형 성공을 보고 상훈은 자기도 나중에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훈은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때 자기 자신에 대한 변화가 아니라, 그저 잘 될 거라는 달콤한 거짓말로 자신의 문제를 덮기 급급한다. 사실 상훈도 마음속 깊이 알지만, 그저 넘어간다. 젊은이의 장점이란 넘쳐흐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넘쳐흐르는 시간 속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시간을 천천히 그리고 계속 죽이고 있었다.
어느 날 일어나서 찬물을 한잔 마시면서, 상훈은 같은 풍경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상훈은 자기 전에도 유튜브를 보고, 일어난 직후에도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밥 먹을 때도 게임 동영상을, 공부할 때는 asmr이나 노래를 듣곤 한다. 일하는 중에도 핸드폰을 틈틈이 보고, 인스타를 몇 번 방문, 유튜브 쇼츠나 틱톡을 몇 번 쓸어 넘기면서 자신의 불안한 마음 또한 쓸어 넘긴다. 저녁을 먹으며 유익한 것처럼 보이는 그러나 어쩌면 그다지 유익하지 않은 지식채널들을 닥치는 대로 눈으로 섭취한다. 이전까지 전혀 궁금하지 않던 중동의 역사와 수산시장에서 좋은 생선을 고르는 방법 등 머리에 가득 담는다. 지식의 과식이었다. 그리고 그건 소화가 잘 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상훈이 휴대폰을 안 볼 때는 의식이 꺼져 있는 잠잘 때밖에 없는 것이다. 잠이 들때서야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소름이 끼쳤다. 본인이 아니라 핸드폰이 본체인 것만 같았다. 휴대폰을 가만히 멀찍이 바라본다. 휴대폰이 감정을 가지고 말을 거는 것 했다. 자기를 사용해 달라고. 자기가 없어도 될 것 같냐고.
상훈은 과감히 생각했다. 원래 중독적인 사람은 무언가를 시작할 때도, 그리고 끊을 때도 남들보다 더 충동적이다. 첫 번째로 지하철을 탈 때 안 보기로 했다. 상훈은 생각했다.
“심심할 것 같은데.”
하지만 원래 지하철에서 유튜브 보는 것은 습관이 아니었다. 분명 어렸을 때는 휴대폰 없이도 잘 다녔다.
‘오늘 하루만 딱 해보자.’
지하철에 올라타고 자리를 잡은 후에 휴대폰을 껐다. 본격적으로 사람들 구경을 하기로 했다.
네이비색 양복을 입은 아저씨는 다급한 표정으로 카톡을 했다. 앞머리에 헤어 롤을 만 여고생들은 인스타그램을 하는지 주위 친구들과 같이 셀카를 찍고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남자 연예인 이름이 들릴락 말랑하게 들리는 듯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다들 휴대폰을 보면서 지내고 있었다. 상훈은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싶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책을 읽는 사람을 봤다. 책 표지에 붙은 코팅된 종이를 보니 A구 구청도서관에서 빌려간 책이었다. 같은 동네였다. 장르소설이었다, 일본 추리소설. 상훈도 좋아하는 장르였다.
‘장르소설이라, 저렇게 재미만을 추구하는 소설을 읽어볼까?’
상훈은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주말의 화창한 날씨를 즐기면서 상훈은 슬리퍼를 신고, A구 구청도서관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네발 자전거를 몰면서 돌아다니는,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아이들을 봤다.
“야! 천천히 가라니까!”
“너가 빨리 오라고!”
빨간 모자를 쓴 아이와 안경을 쓴 아이가 서로에게 소리 지르면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시끄럽고 무모하게 세상을 탐험했다. 상훈은 혼잣말로 말한다.
“나도 저랬었는데.”
상훈은 움츠러든다. 사람이 한껏 움츠러들 땐, 지나가던 아이들한테까지도 움츠러드는 것이다.
분명 상훈이 어렸을 때는 책과 신문도 많이 읽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활자를 안 읽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무독”의 시대이다. “무독”의 시대 속에서 책을 읽으려는 상훈은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올라가며 도서관 문을 연다.
‘넷플릭스나 유튜브처럼 무엇을 고를지 시간을 쓰지 말고, 지금 보이는 두 번째 책장에서 눈높이에 있는 장르소설 읽자.’
상훈은 이렇게 다짐한다. “어떤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바야흐로 “무독”의 시대에서는 어떤 책이라도 “읽는 게” 중요해진 것이다. 좌표를 정한 상훈은 용감하게 책을 집는다. 적당한 두께였다. 책 제목은 ‘반지의 제왕이었던 내가 이 세계의 모래구덩이에서 살아남기’이었다.
‘이건 아니지, 이건 “무독”의 시대여도 안 된다.’
상훈은 30분을 책을 고르는데 집중하고, 1시간 정도 책을 읽었다. 상훈은 본인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책을 고를 때의 그의 모습은 진지하고 멋있었다. 상훈은 천천히 괜찮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걸 아직 몰랐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도서관 카운터에서 예나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