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정말 어렵고, 선택에 따른 결과는 더더욱 견뎌내기 힘들다.
오랜만에 남한산성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다. 넷플릭스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았고, 우연히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도 종종 뜨길래 봤다. 그때 봤던 쇼츠는 김상헌(김윤석 분)이 뱃사공을 죽이는 장면이다. 뱃사공이 곡식을 주기만 하면 청이든 명이든 누구한테든 얼음길을 알려준다고 하였기에 김상헌은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목을 벤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쉽게 공감을 하기엔 무리인 장면이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본 남한산성 영화는 성안에서의 민초와 병사들의 삶, 조정내에서의 소수파인 최명길(이병헌 분)과 다수파인 김상헌의 대립으로 나눠져있었다. 조정내의 대립하는 장면들은 전부 명장면이었다. 꽉 막힌 줄 알았던 김상헌은 체제의 변화를 바라는 진보적이고 아이를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이었고, 마냥 진보적인 사람인줄 알았던 최명길은 오히려 체제의 안정성을 바라는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비행기가 날개 하나만으로 제대로 제어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양쪽 면이 다 있기 마련이지만, A 같은 사람이 -A같은 모습을 보일때면 사람이 얼마나 입체적이고 복잡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예전에 부기영화라는 리뷰하는 사람의 컨텐츠를 즐겨봤는데, 여기서 남한산성에 대해서 말한게 있었다. 요약하자면 대략 이렇다.
지금 대체로 최명길에 대해서 긍정하는 시선이 많다.
불리한데 여기서 옥쇄하는 것처럼 싸우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런데 그때 당시 조선의 시선으로는 청나라는 야만적이고 오랑캐였다.
지금처럼 반중정서가 이렇게 심할때, 중국이 남한을 침공하면 어떻게 할꺼냐.
그때도 화친하자고 말하기 쉬울텐가?
그때도 청나라는 조선보다 강했고, 그때도 백성들은 청나라를 좋아하진 않았다.
저 말이 나의 편협했던 사고방식을 부서줬고, 그래서 몇 년이 흐른 지금도 기억이 난다. 몇 백년이 흐른 후의 지금은 사람들의 정서나 전쟁수행의지 같은 것들은 작게 보인다. 그러나 그때 살던 사람들은 전부 바보는 아니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싸우자고 말한 김상헌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화친하자고 말한 최명길이나 둘 다 우국충정의 마음이었다. 각각의 세력에 대해서 본인에게 이득이 될 것 같아서 붙는 사람들이 간신배라고 생각한다.
현대로 돌아오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었다. 대통령이 하고자 하면 못할 것이 없다. 그래서 대통령은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때와 참모들의 의견을 따를 때를 명확히 구분해야한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레드 팀을 운영하는 이유도 리더에게 양쪽 의견을 정확히 알고, 결단을 하기를 바라는 제도가 아닐까 싶다. 하늘에서 부여받았다고 믿던, 다수당의 대표이건, 국민들의 투표로 당선됐던, 리더는 분명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돼고, 선택을 해야만 한다.
다시 개인의 삶으로 돌아와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남자 기준으로
아내와 어머니가 물에 빠지면 누구를 구해야할까요?
같은 문제가 있다.
정답은 "강해져야한다"이다. 아내를 구했다면, 어머니를 선택하지 않은 내 자신을, 어머니를 구했다면, 아내를 구하지 않은 내 자신을 견뎌낼 만큼 강해져야한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수 많은 선택지들이 놓이게 돼고, 고민도 많이 된다. 하지만 고민이 된다는 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최적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A가 B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면, A를 선택하면 된다는 것인데, B가 A에 견줄만큼 고민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의 우월성이 있다는 것이다(사실 이건 내가 지금 연구하는 Multi Objective Optimization (MOO)문제 그 자체이다, 이건 차치하고). 중요한 것은 끝까지, 끝까지 고민하다가 결단하고, 그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서 강하게 견뎌내야하는 것이다.
강한 내 자신과 강한 나라가 지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