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2022년 5월 10일.
언젠가부터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는 잘 받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또한 그 이유에서다. 지긋지긋한 스팸전화.
그날따라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망설임 없이 받았다.
친정엄마께서 우리 집에 잠시 들르셨다. 스마트폰 사용법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때 뿐, 엄마는 기계가 이상하다며 매번 말도 안 되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런데 이상한 엄마의 스마트폰이 내 손에 오면 정상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기계가 이상하다고 우기고 계신다. 전화상으로 설명을 하려니 목소리가 자꾸 높아지는 것을 인지하고 우리집으로 오시라고 했다. 가끔 요구르드 한 봉지씩 사다 주고 가시는 가까운 거리에 친정이 있다. 스마트폰 사용법에 대해 열강을 하던 중 망설임 없이 받은 전화에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다.
“달달 파출소 달달 경찰관입니다. 별별 엄마시죠?”
이유도 모른 채 놀란 마음이 엄습했다. 전화한 이유를 설명하는 경찰관에게 1분 안에 놀이터로 내려간다는 말을 함과 동시에 뛰었다.
놀이터로 내려가는 1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는데 잘 되지는 않았다.
15년째 아이를 키우는 중이고, 게다가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다. 아무래도 여자 아이를 키운 엄마들 보다는 여러모로 내성이 좀 더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내 가슴이 둥당 둥당 둥당질을 해댄다.
놀이터에서 아이들 간에 일이 일어난 것임은 언뜻 봐도 알 수 있었다. 내 아이는 한쪽에 앉아있고 상대 아이는 조금 거리를 둔 다른 한쪽에 앉아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싸우고, 삐지고, 울고 불고. 뭐 이런 걸 한 두 번 겪어봤겠는가.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각목이 보이고 부러진 나무 가지가 보인다.
내 아이는 훌쩍이며 울고 있고 함께 있던 같은 반 친구가 내 아이의 팔을 계속 살펴보고 있다. 느낌이 쌔하다. 다가가 아이의 팔을 이리저리 살피니 상처가 있고 힘줄 부위에 멍과 부어오름이 있다. 일단은 안심을 시켜주었지만 열불이 난다.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그때 증거만 있었더라면’ 했었던 일을 겪어 낸 몇 번의 기억이 있다.
예측 할 수 없이 불시에 피해를 입은 몇 번의 경험이 나를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를 겪고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있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겼다. 정신을 차리고 되도록 빨리 이성을 찾아 대처해야한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강박이 되어버린 듯 했다.
그런 노력 ‘때문’ 인건지 ‘덕분’ 인건지 지금의 상황과 증거를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법 빠르게 카메라를 켰다.
내가 상대 아이에게 다가가려하자 경찰관 한 명이 나를 제지했다. 경찰관이 4명씩이나 있었던 것은 의아하다. 상대 아이의 부모님도 불렀으니 오면 얘기하자고 한다.
그리고는 나에게 먼저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준다.
코로나19가 터지고 아이들이 크면서부터는 놀이터에서의 지킴이, 일명 팅커벨 놀이는 더이상 하지 않는 레벨로 올라섰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내가 잠깐씩 산책을 하면서 지나칠 때마다 아직 놀이터를 지키는 어린 아이가 있는 동네 엄마들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젠가부터 타 학교 아이들 네 다섯명이 놀러 왔고 내 아이에게 욕설을 하고 시비를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내 아이가 싸우기 싫다는 말을 여러 차례 말로 표현했다고도 했다. 여러 번 말을 해도 통하지 않자 그 아이들이 하는 어떤 말과 행동에도 무시로 대응했다고 했다.
어린 아이들이 많이 놀고 있는 우리 집 앞 놀이터에 그 아이들이 오는 순간 욕설로 충만해진 놀이터가 되어 버리는 것에 화가 나 예의주시하던 현재 팅커벨 엄마들은 몇 번의 주의를 주었음에도 되려 비아냥 거리는 제스처를 보이는 녀석들로 인해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물어보았다. 요즘 놀이터에서 다른 학교 아이들과 문제 상황이 있었는지를.
그리고 놀이터에서 동네 엄마들이 보았다는 것도 얘기했다.
그 아이들은 5학년, 그러니까 내 아이보다 1살 어린 동생들이었다. 처음에는 서로의 학교를 비하하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는 싸우지 않고 같이 놀게 되었다고 했다.
오늘 놀이터에서 양쪽 아이들이 내 아이와 같은 말을 하는 걸 보니 지금은 이 아이들과 내 아이가 함께 노는 사이다.
놀이라고 하기에 뭣한 놀이를 본인들은 놀이라고 하니 얘기는 해야 했다. 아이들은 욕도 하고 몸으로 밀고 밀치고 놀았는데 서로 기분 나쁘지 않았고 장난으로 그러면서 노는 것 이라고 했다.
그러니 놀이터에서 놀았다는 행동을 보고 엄마들이 충분히 오해했을 수도 있었겠다.
실제로 초반에는 서로의 학교를 비하하며 싸우는 모습을 보였으므로 오해가 아니기도 하다.
문제는 평소 놀이터에서 만나게 되어 놀 때는 안보이던 이 아이들의 같은 학교 동급생 ‘철이’ 라는 아이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4시 40분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놀이터 앞에서 내 아이와 내 아이 친구를 마주쳤다. 떡볶이를 사먹을 거라고 신나했었다. 나는 맛있게 먹고 재밌게 놀으라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일은 내가 집으로 들어오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철이는 본인과 동급생인 5학년 아이들과 내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고는 내 아이에게 시비를 걸어왔다고 했다.
밀고 밀치고 욕하면서 낄낄대는 이 아이들이 보기 불편했는지 과하게 화를 내기에 아이들은 말했다. “우리 노는 거야. 우리 지금 서로 기분 나쁘지 않고 노는 중이야.” 여러 차례 얘기를 했고 그만 간섭하라고 말하면서 철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단다.
기어이 철이는 내 아이에게 공포스러운 행동을 보였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말과 행동이었다고 한다. 동급생인 5학년 동생들은 반응하는 내 아이를 말렸다. 동급생인 아이들은 철이가 집에서 칼도 갖고 나오는 아이라고 하면서 말리고 있었다.
철이는 내 아이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는데 그럴 것 같지 않은 내 아이는 무엇에 압도되었는지 5학년 동생들과 친구가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집요함과 분노에 가득 차 있는 철이 앞에 그냥 무릎을 꿇게 되었다고 했다.
종종 뉴스나 인터넷 기사에 나오는 상황이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어처구니없이 당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당할 수 있지?”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또한 그들의 주변인들이 인터뷰에서 하나같이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 그는 평범하고 정상적인데다가 똑부러지는 사람이었다고. 아이러니 했다.
나는 화가 많이 나있었다. 그리고 뒤에 이어진 내용을 더 듣고는 이 감정마저 초월해 버렸다.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했고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내 아이가 무릎을 꿇은 이유를 말했다. 그렇게 하면 더 이상 우리가 노는데에 끼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러나 결코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놀던 동생들은 학원으로 갔다. 내 아이도 친구와 놀았다. 학원간 동급생 친구들이 학원에서 끝날 시간이 되자 철이는 다시 다가 왔다.
“내 친구들을 다시 부를테니 아까 무릎 꿇었던 때의 모습 그대로의 상황을 만들어서 다시 무릎 꿇어”말하며 학원에 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아까 사진을 안 찍어서 다시 사진을 찍어서 뿌리면 형이 더 쪽팔릴 거 아냐?”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줄곧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던 내가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거짓 마음 말고, 지켜야 할 이성 말고, 솔직한 진짜 내 마음이 그 아이를 마구 후려갈기고 욕을 한바가지 퍼붓고 있었다.
내가 이성의 끈을 조금이라도 놓는다면 순간에 일을 저지를 수도 있는 상태로 당시 나는 몹시 아슬아슬했다.
다행히 내 아이는 또 다시 무릎을 꿇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까 전에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또 무릎을 꿇는 일은 못하겠다고 생각했단다.
내 아이의 친구가 네 엄마께 연락하자고 했지만 마다했다고 했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내가 사과하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너의 생각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것이었는지에 대해 얘기 하는 것은 집에 돌아와서 한참 동안 이어졌다.
조금 뒤 놀이터에서 놀던 어린 동생이 내 아이에게 다급히 얘기했다.
“저 쪽에서 아까 그 오빠가 막대기를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어.”
내 아이는 그 얘기를 듣고 바로 방어할 만한 도구를 찾아 들고 있었다.
어느새 내 아이 앞에 다가온 철이는 들고 온 막대기를 휘둘렀고 내 아이도 대비하고 들고 있던 나무로 방어를 했다. 그런데 결국 그 막대기로 세게 한 대 맞게 되었고 그제서야 내 아이의 친구가 다급하게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한 것이다.
한참 뒤 철이의 아빠가 놀이터로 왔다. 끝내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어떤 가정인지는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듣고는 내 앞에 무릎이라도 꿇겠다고 한다. 도대체 부자가 똑같이 무릎 타령이다.
전화로 대충의 얘기를 내게 듣고는 퇴근길 놀이터로 급히 온 남편은 철이의 아빠에게 돌진하듯 갔다. “뭡니까? 뭐 어쩌고 어째? 무릎을 꿇어? 사진을 찍어? 이런 땡발” 금방이라도 처박을 기세다. 아이에게 돌아서서는 “어떤 새끼야! 너야?” 잔뜩 흥분을 했다.
지금 남편의 감정과 다를 것 하나 없이 나 또한 남편과 같은 분노를 처음부터 똑같이 느끼고 었었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만큼은 절대 이성을 놓으면 안 된다며 스스로를 붙잡고 또 붙잡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남편을 붙잡았다.
연신 자신이라도 무릎을 꿇겠다는 철이의 아빠는 그 와중에도 내 아이가 들고 있던 나무의 크기가 본인 아이의 각목보다 크기가 큰 것임을 말하고 싶어 했다. “각목 가지고 오는 아이 앞에 크기가 작은 것으로 골라 들고 방어해야 하나요?” 나는 이런 태도에 싹을 잘랐다.
차근차근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여러 번 날 시험에 빠뜨렸다.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려는 것을 안다.
그럴테지. 자식일이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이성이라는 것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안다.
그것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챙겨야 하는 것임을 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