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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니 Jul 10. 2022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기

부작용

둘째가 8살 초등 1학년.

같은 반 친구의 생일 파티를 하는 날이었다.

당시에는 반모임도 활발했고 생일인 달의 친구는 자연스럽게 반 전체 친구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열었다.

8월생인 우리 아이는 키즈카페에서 생일파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달 생일인 친구의 파티는 우리 동네 태권도장을 대관해서 했다.     


태권도장 한쪽 벽면은 일정 부분만큼 키즈 클라이밍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기어 올랐다. 서 너 명 오르면 빈 공간이 없었으므로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던 2호가 먼저 오르던 여자친구의 엉덩이를 밀어 올렸다.     

순식간에 험한 분위기가 되었다.

나중에 아이와 대화를 했을 때 빨리 올라가고 싶은데 쟤가 못 올라가고 안 비키니까 빨리 올라가라고 올려주려고 했어” 8살 아이는 생각 할 수 있다. 어른만 생각 못했을 뿐.      

어른인 우리는 왜 물어봐 주지 않고 들어보지 않고 어른들 멋대로 해석하고 아이들을 꾸짖고 혼내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걸까.      

8살 아이가 성적인 생각을 하고 엉덩이를 밀어 올렸다고 이미 어른의 잣대로 생각을 끝냈다. 그리고 빨리 빨리 한국인 답게 곧바로 어린 아이 하나를 빨리 나락으로 보내버린다.      


내 아이들이 각각 중2, 6학년이 되기까지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을 낙인 찍어 놓기에 급급했다.      

내 아이는 그럴 리가 없다. 내 아이는 순진하고 늘 당하기만 해서 속상하다. 남의 아이는 어쩌면 하나같이 그렇게도 문제가 많은지. 많은 어른들은 그랬다.     

그래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믿지 않는 말이 하나 생겼는데 나도 애 키우는 입장에서라는 말이다. 말버릇에 불과한 이 말은 듣기 싫은 말이 되었다.     

내가 2년 전 만났던 석우 엄마 같은 사람이나 쓸 수 있는 그런 말을 부디 아무나 추임새 넣듯 쓰지 않길 바란다.

  

교육학을 전공했다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공부는 너무 잘해서 판사, 변호사가 되었는데 공부만 잘했나보다.’ 공부만 잘했던, 건방지고 거만한 사람을 만날 때 는 생각이다.

교육학을 전공했다는 사람들의 일부는 그냥 공부만 한 선생님 사람이었다.

일부 선생님 사람의 대처를 겪어 보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 키우는 일이 책에 적혀 있는 대로 되던가?

당연히 어림도 없다. 안 된다.     

그래서 제일 쉬운 방법의 하나로 험상 궂은 표정으로 화를 내고 꾸짖어서 단번에 제압을 시키려는 건가?

잘 못된 행동, 옳지 않은 행동,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묵인 하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알려주어야 한다. 가르쳐 주어야 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일 쉬운 방법을 택하는 어른들은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이 만났다.


여자 아이가 쩌렁쩌렁 울었던 탓에 일순간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여자 아이의 엄마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벌떡 일어나 아이들 쪽으로 향했다. 자신의 아이에게 몇 마디 묻고는 재빠르게 내 아이를 혼낸다. 분이 덜 풀렸는지 여전히 화가 잔뜩 난 얼굴과 태도로 자신의 딸을 데리고 와 자리에 앉았다.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몸에 손대면 안 된다. 기분이 나쁘다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당연히 내 아이에게도 가르친다.

그런데 말 그대로, 글자 그대로만을 가르친 부작용을 생각해보았는가?     


나는 아들 둘을 키우면서 언젠가부터 이상한 걸 교육이라고 아이들에게 시키고 있었다.

두 손을 배 위에 붙이고 있으라고. 이게 교육이라고? 이게 무슨 교육?     

이게 교육인가 싶지만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가르쳐줄 때가 있다.     

놀이터에서 남중생들에게 앞차기, 옆차기로 차고 머리 끄덩이를 잡아 흔드는 여중생들을 보았다. 서로 낄낄 깔깔 좋단다. 찰지게 욕을 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반대의 경우라면 문제는 심각해졌겠지.     

같은 행동을 여자 아이가 하면 별 일 아닌 일이 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내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건 특정 성을 비하하거나 두둔하는게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더욱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차별로 인한 갈등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기에 호소하듯 쓰고 있음을 밝혀 둔다.      


종종은 그렇게 놀다가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면 어느 순간 이르기를 한다. 남자아이는 곤경에 처한다.       

모두가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부작용의 사례이다.

남자아이들이 이르기를 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설사 일렀다고 해도 별 조치 없이 넘어간다. 이 또한 모두가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남자아이 둘을 키우면서 주변에서 이런 일들을 많이 보기도 했고 실제로 내가 겪어보기도 하면서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다.      


실제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 놀이터에서 놀던 중 여자 친구랑 다투게 되었다. 여자 아이는 사회적 약자이니 아들 가진 사람이 배려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엄마를 본 적도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배려해야 한다. 그건 나도 시키는 교육이지. 그것을 초등학교 아이들이 서로 놀다가 다투는 상황에 갖다 붙인다? 그렇게 붙이는 말 이었던가 그것이?      

오늘 그렇게 목 놓아 울었던 여자 아이는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세뇌시킨 들어 맞지 않는 교육으로 인해서 탄생한 결과 인지 모르겠다.

 

곧이어 관장님 대처에 따라 아이는 움직였다. 사과를 시켰고, 곧이어 꾸중이 이어졌고 벌도 세웠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내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태권도를 가르치던, 무엇을 가르치던 교육자 아닌가. 어른이, 게다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선생님이다. 이렇게 밖에 대처 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났다.     

왜 그랬니?” 라고 물어봐주는 일이 한낱 시간 낭비에 불과한 걸까?

그렇게 재빠르게 험상궂은 얼굴을 들이 미는 것이 최선일까?

하면 안 되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사과를 하도록 해야 했다. 여자 친구에게도 상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야했다.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면 내가 가르쳐 주어야겠어서 데리고 나왔다.     

가끔 너무 화가 날 때면 너도 그냥 울어버려”, “너도 여자 친구들이 어디든 네 몸에 손을 대면 선생님께 바로 일러버려라고 했다.

참 유치했다. 그런데 마냥 유치하다고 취급 할 수도 없었다.     


아이가 여자 아이가 때렸다며 선생님께 일러바친 적이 있었다. ‘하지 말아라대수롭지 않게 말씀 하시고는 종료 되었다고 했다. 물론 선생님마다 대처방법은 달랐다.

아이는 혼동하고 실망도 했다.      


같은 방법으로 일관되게 대처하시는 선생님, 철저하게 차별적인 대처를 하시는 선생님이 존재했다.     

급기야 나는 아이들에게 두 손을 네 가슴 앞에 포개어 놓고 있으라며 해괴한 방법을 알려 주고 있었다. “절대로 아무것도 손대면 안 돼.” 라는 말도 곁들인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입으로 내뱉고 있었다.     


아이는 헷갈려했다. 여자 친구들이 선생님께 이르는 순간 얼음이 된다. 눈치를 살핀다. 또 혼이 날 테니까.

깔깔대고 웃으면서 노는 중에 기분이 나빠졌는지 불쑥 이른다.  

남자아이 여자아이의 특성이 있을 테고,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어른들의 대처일테지.     

아이가 초등 저학년 놀이터에서 놀 던 때였다.

돌멩이로 풀잎, 흙 등을 빻고 있었다. 유치원생쯤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신기하다는 듯 내 아이 주변을 빙빙 돈다. 내 아이는 자신의 주변을 빙빙 도는 여자 아이를 힐끔 거리며 의식한다. 여자 아이는 자신의 엄마에게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며 말한다. “엄마! 저 오빠 저거 다 저렇게 했어.”, 씽씽이를 타면서 놀이터 한 바퀴를 돌다가 또 다시 내 아이 주변을 빙빙 돈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의 엄마에게로 다가가 엄마! 저 오빠 또 저렇게 해수없이 반복되는 보고? 이름에 내 아이는 입이 댓발은 나와 있다. “쟤 뭔데 자꾸 나 노는거 가지고 이르는 거야?”     

여러 번 반복이 되니 나도 신경이 쓰였다. “오빠 잘 놀고 있는데 왜 이를까?” 내 말을 들은 여자 아이의 엄마도 말한다. “남자 아이들은 몰라. 여자 아이들의 마음을.” 우리는 웃었다. 생각이 많이 다르므로 더 말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웃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데 누군가가 계속 나에 대해 이르듯 보고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른인 우리는 어렵지만 이 상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 주어야 할까.

오빠는 잘 놀고 있어. 너도 재밌게 노는 게 좋겠어. 오빠 신경 쓰느라 네가 노는 시간이 없어질 것 같은데?”     

남자 아이들은 잘 몰라. 여자 아이들의 마음을이라고 한다면. ‘나는 지금 잘 놀고 있는데 왜 마치 내가 뭘 잘못한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지?’ 갈등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부작용이 시작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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