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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니 Oct 03. 2022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않도록

그것들과 함께 하길

“아빠 어쩜 이리 색칠을 꼼꼼하게 잘하신대?”

아빠는 수줍음으로 답했다.     


친정아빠는 약 2년 전 노인 장기요양등급판정을 받았다.     

치매로써 인지지원등급을 받으셨다. 인지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었으나 경도 치매로 많은 치매 환자가 그렇듯 지남력 부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기능 저하를 보이셨다. 이후 1년쯤 지날 때에는 심한 손떨림 증상으로 도파민 검사를 진행하고 파킨슨병을 진단받으셔서 5등급으로 변경되었다.     


5등급(치매특별등급) : 45점 이상~51점 미만

 - 인지기능장애와 문제행동으로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경증 치매대상자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은 적음)     


인지지원등급 (2018년 1월 신설) : 45점 미만

 - 치매로 확인 받은 자


엄마는 내게 아빠가 손을 심각하게 떤다며 짜증과 화가 섞인 전화를 자주 하셨다. 짜증, 화, 일 처리 부탁 등 엄마의 전화를 받는 게 버겁고 지쳤다.     

나는 앞으로는 그 어떤 이유로든 부정적인 상황에 노출되는 걸 피하고 싶었다. 짜증과 화를 섞어 자주 내게 그 감정을 전달하는 엄마를 피하고만 싶었다.

항상 같은 상황임에도 매번 짜증 섞인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받았다.

덤덤히 차근차근히 해결해 나가고 싶어 엄마에게 그 방법을 전하기도 했다. 엄마의 습관은 바뀌지 않았다. 엄마의 전화를 받으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중에 있던 나는 곧 화의 불구덩이로 빠져 들었다. 빈번히 일상을 망치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내게 짜증을 쏟아붓고 있는 전화로부터 도망치고만 싶었다.       

“아빠가 요즘 부쩍 손을 많이 떠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정도로 해주길 바랐다.

“어휴. 지겨워 죽겠어. 너네 아빠 왜 이렇게 손을 떤다니? 부쩍 더 떨어. 숟가락도 못 들고 질질 흘리고. 내가 노는 사람이야? 나도 바쁜 사람인데 아주 지겨워 죽겠어. 평생을 그렇게 술을 먹었는데 그럼 뭐 멀쩡해?”   

  

아빠로부터 고됐던 엄마의 삶에 나와 연년생 오빠는 화풀이 대상이었다. 어린 우리는 늘 기가 죽어있었고 매일 엄마의 감정과 화를 받아 내야만 하는 힘없는 아이였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삼일 꼴로 이런 전화를 받아야 하는 나는 그야말로 감정 쓰레기통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어디에 어떻게 통을 비워내야 할까. 괴로웠다.


아빠는 평일에 집 앞에 있는 어르신주야간보호센터에 다니신다.

처음 한동안은 가기 싫다며 엄마와 나를 애먹이기도 하셨다.

센터에서는 당연히 아빠가 나오시지 않으니 보호자로 지정해 둔 친정 가까이에 사는 내게 전화를 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과 많이 흡사했지만 부모라는 점에서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2년 전, 당시 아이들 케어에 바쁘고 특히 2호를 신경 쓰느라 더욱 지쳐 있었기에 정말이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결혼 후 내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는 시집의 울타리에서 힘들었고, 맘 좀 편히 살고 싶은 게 소원이었던 내게 세상은 호락호락 편안한 상태를 내어주지 않았다.      

아이가 아프고 그야말로 맨탈이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나조차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한 상태의 나날을 보냈다. 내 몸과 마음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급기야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때였다. 특히 아이가 아파 케어하면서도 이런저런 일로 부딪히고 감당해야 하는 뒤처리들이 힘에 부치고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다.


엄마에게 털어놓을 수 있기는커녕, 근심과 걱정, 화를 더 얹어주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모든 걸 짊어 메고 해결해야 할 해결사인가? 나는 그럴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내 현실이 너무 무겁고 버겁다고 느꼈다.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 해도 가족의 일에는 이론대로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다. 평온한 일상을 살고 싶어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하는 나에게 하루 걸러 하루씩 힘들고 짜증 나고 화가 잔뜩 섞인 부정적인 말 덩어리들이 들어오니 미칠 것 만 같았다. 엄마에게 똑같이 화도 내 보고 설득을 시켜 보기도 했다.     

똑같은 말을 해도 습관처럼 계속 짜증을 섞어서 얘기하면 말하는 엄마도 듣는 나도 지치고 힘들다고. 사람이 살면서 늘 행복하고 좋은 일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안 좋은 얘기를 할 때 더 의식적으로 짜증과 화를 빼고 얘기하자고 했다. 노력해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내게 저항도 하시고 더욱 분노를 표출하셨지만 서서히 말씀하시는 억양에 노력하고 계시는 느낌이 배였다.   


부모님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어렵고 힘들어 며칠을 중단하고 있을 때였다. 내 블로그에 흔적을 남겨주신 이웃님의 블로그 포스팅을 보게 되면서 숙제처럼 남아있던 며칠간의 멈춤에 움직일 바람이 일었다. 우연히 읽게 된 글이 막힌 가슴속을 뚫어 주는 길을 열었다.     

그 글귀를 정지된 채 한참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인정하기 싫었다. 글을 읽고 설득당하기 싫었다. 무엇보다는 더 이상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으므로 보지 않으려 했고 깨닫게 되기도 싫었다. 그럼에도 곱씹어 글을 마주 했다는 건 힘든 마음과 갈등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블로그 '짱편한 힐러'님의 블로그 포스팅 글 인용     


‘내게 화내는 사람의 말을 경청하라’

남의 말에 깊이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그(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에 연민의 정이 나의 마음속에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소방관이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그 불길 속에 들어가면 그를 도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나마저도 불길에 휩싸일 수 있다.

그 장비가 바로 연민의 정이다.     

호흡을 의식적으로 하면 자각의 에너지가 생성된다.

호흡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으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의 가슴속에 쌓인 것을 다 털어놓게 해주고자 하는 목표를 잃지 않을 수 있다.

의식적인 호흡을 통해서 연민의 정이 마음속에 살아 있게 하면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연민의 정이 나의 마음을 기름지게 하는 거름이 된다.

내가 지금 그가 고통을 덜어내도록 돕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그에게(그녀에게) 최고의 심리치료사가 되어줄 수 있다.

연민의 정은 행복과 이해에서 나온다.

그의(그녀의) 말이 나에게 고통을 주지 못할 것이고 깊이 귀를 기울이기만 할 수 있다.

그 자질은 수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실이다.]


화가 난 사람의 말을 경청하라고 알려주시는 이웃님의 포스팅 글 속의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은 그저 내 안에 부정적인 것들을 못 들어오도록 차단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내게 일침을 놓아주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이 여유가 없어 다른 고통을 들어줄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남의 이야기에는 객관적일 수 있었지만 가족의 이야기에는 객관적인 상담사의 마인드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간혹 의식적인 호흡으로 이것들을 실천해보기 위한 노력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무너지고 다시 날카로운 방어 태세를 취했다. 밀어내고 차단하고 싶어 안달 난 상태가 되어버리곤 했다.     

그저 내가 괴로워지면 내 남편, 내 아이들에게 화가 전가된다는 생각으로 부정적인 것을 멀리하기에만 급급해했다.

예전 나의 감정 상태가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화풀이 대상이었다는 죄책감에 다시 그렇게 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이미 경험해본 바로 강박처럼 그랬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밀어내고 멀어지려는 일이 더욱 힘든 일임을 알면서도 어리석은 생각만을 하며 내내 편하지 않았다.        

나를 지켜내야 내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다는 생각에 휩싸였지만 내내 편하지 않음이 힘들었던 내게 글은 묵은 체증을 내려가도록 해주었다.     


마침 새벽 기상 챌린지에서 김미경 선생님께서도 이야기를 풀어내어 주었다.     

내 주변을 돌고 있는 무게들 덕분에 내가 중심을 잡은 것이다.

족쇄일까? 중력일까?

족쇄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중력이며 내 주변을 돈다.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내 일들이 내 주변을 돈다.

내 주위의 나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 돌다 보면 중력 안에서 존재감과 무게감이 생긴다.

나 처지고 싶은 대로, 나 울고 싶은 대로, 나 떠나고 싶은 대로 다 떠나면 표류할 것이다.

어쩌면 내 가족은 나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며 중력이었구나.     


질량과 존재감

지겨운 일상이 나를 끌어가는 중력이 된다.

걱정거리가 없다는 건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희로애락, 생로병사가 안 들어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버티면서 존재감과 중력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기쁨의 중력, 지겨운 일상의 중력

이 모든 것이 꼬여진 새끼줄을 끊어내면 존재와 실체가 사라진다.

더 잘 살고, 버티고, 잘 견뎌내기 위해서 새끼줄에 다 꼬여서 한 줄인 것이다.

다들 힘들지만 버티고 살아간다.

중력은 견디고 버티고 버티는데서 생겨난다.

줄을 놓으면 안 된다.     


지겨운 것, 견디는 것, 억지로 해내는 것,

이 모든 것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참 오래 두고두고 나를 괴롭혀 왔던 생각이 이제야 정리되는 기분이다. 마음이 한결 가볍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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