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처니 Jul 04. 2022

그녀가 준 것

2년 전, 내 아이가 4학년 때의 일이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들어온 아이는 화가 잔뜩 난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화가 났냐고 물으니 씩씩 거리며 말한다.

석우가 장난감 칼로 때리잖아석우는 같은 학교 동급생이다. 당시 같은 반 친구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쩌다가 그런 상황이 되었냐고 물어 보았다.


당시 우리 동네에서는 고무딱지 치기가 한창 유행이었는데, 함께 딱지를 치던 중 내 아이가 계속 따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석우는 슬슬 심술이 나기 시작했고 본인의 집에 같이 가서 딱지를 더 가져오자고 했단다. 그래서 같이 가던 중 놀이터 바로 옆에 위치한 관리사무소 뒷 담벼락 쪽에 자신을 밀어 붙였다고 한다. 석우가 자신보다 힘이 세었기 때문에 손을 잡고 못 움직이게도 했단다. 그리고는 따간 딱지를 돌려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로 나는 석우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나중에 두고 두고 아쉬워했던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석우의 엄마와 통화를 했을 때 석우에게도 어떠한 상황이었는지를 물어봐 달라고 했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전화를 해서 내 아이가 한 말만을 전달했다. 놀면서 싸우고 화내는 일이야 자라면서 충분히 있는 일이겠지만 이런 상황의 일은 있으면 안 되는 일이기에 아셔야 할 것 같다고 당당하게 얘기 했다. 의도와는 다르게 그날 나의 행동은 경솔하고 건방졌다.     


석우의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석우의 엄마는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는데, 당시 나는 같은 학년 다른 엄마에게 석우 엄마의 연락처를 물어보고 전화 했었다.     

석우의 엄마가 석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내게 다시 연락을 했을 때, 석우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고 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돌아갈 즈음 장난감 칼을 가지고 노는 중에 안 좋게 헤어졌다는 말만 하고 내 아이가 말했던 그런 행동은 한 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놀다가 싸우고 화내고 삐지는 그런 일은 커가면서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생각과, 오늘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에 생각이 같았다. 진실을 알아야 했다.     

그렇게 놀이터에서 밤 늦도록 애태우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분명 거짓을 말하고 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답답했고 초조했다. 내 아이를 다그쳐 보기도 했다.

 

급기야 cctv를 확인하게 되었다.

나중에 눈치 챘지만 아차 싶었던 때가 있었다. 석우는 당당하게 cctv를 함께 보러 갔고 내 아이는 힘들다며 집에 가고 싶어 했다. 그 와중에 내 아이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가지고 있는 질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어쩌지? 불안했다.

아이는 집으로 올려 보냈다. 석우와 석우 엄마에게 염치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나, 석우와 석우 엄마 셋이서 cctv를 확인하기 위해 갔다. 노후된 cctv 화면을 보아서는 잘 분간이 되지 않아 더욱 짜증이 났다. 방향조차 cctv로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여서 제대로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cctv에서 석우가 보이길, 제발 나타나 주길 속으로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밤이 너무 늦어졌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른들도 이렇게 힘든데 몇 시간째 아이가 너무 힘들겠다는 생각을 그제서야 했다.

그렇게 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안고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지치고 괴로웠다.

뭔지 모르게 촉이라는 것이 발동 한 건 내 아이의 어색함을 본 후였다. 그야말로 엄마의 촉이었다. 제발 아니기를 내 아이를 온전히 믿었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믿을 수가 없어서 믿기 싫어서 며칠을 앓아 누웠다.     

그 밤, 아이는 스스로 불안함과 초조함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엄마! 내가 거짓말 했어.” 후련했지만 무서웠다. “뭐라고?”     

석우와 딱지치기를 하다가 실제로 내 아이가 거의 땄고, 거의 다 잃은 석우가 소심한 심술을 부리며 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하며 하나만 달라고 집요하게 구는 것이 싫었다고 했다. 딱지 놀이가 끝나고서는 장난감 칼을 가지고 놀게 되었는데 딱지를 거의 다 잃었던 마음이 남아서인지 내 아이의 장난감 칼을 채가서 야골리듯 도망을 다녔다고 했다. 내 아이는 당연히 씩씩 거리며 석우를 잡으러 다녔고 잡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게 씩씩대며 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거짓말은 왜 했느냐고 물었을 때 아이는 석우가 미워서 혼나게 해주고 싶었어라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릴 정도로 몽롱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냐고 물었다. 잔뜩 겁에 질린 아이는 유튜브에 형님들이 만들어낸 널을 본 것이 떠올랐고 실제로 그렇게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했다. 겁이 났다.      

사실을 얘기 듣고 늦은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석우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제 아이가 만들어 낸 얘기였어요. 제 아이가 석우를 혼나게 해주고 싶어서 이야기를 꾸며낸 거였대요. 너무 죄송해요. 지금 바로 나가서 사과드리고 싶어요     

아무리 침착하려 노력해도 되지 않았다. 눈물은 이미 통제 불가능한 상태였다. 꺼이꺼이 울면서 전화를 했고 꺼이꺼이 울면서 나갔다. 남편과 아이 모두를 데리고 나갔다.     

석우와 석우의 엄마 아빠가 저 앞에 보인다. 석우 엄마도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석우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석우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야말로 석우와 석우 엄마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짧게 탄식 섞인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았다. 그럴테지. 당연히.

나는 석우와 석우 엄마 아빠에게 사과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오열에 가까웠다.

내 아이에게도 사과를 하게 했다.     

내가 너무 미안해하며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 석우 엄마가 내 아이의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준아. 아줌마 너무 힘들었어. 그런데 지금이라도 네가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

오래간만이다. 수도꼭지 틀어 놓은 것처럼 눈물이 쏟아지기는.

남편이 석우의 아빠에게 사과를 했다. 석우의 아빠 또한 아이들이 그럴 수 있다며 사과를 받아 주었다.      

집에 돌아와 거듭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번에는 그녀가 또 다시 나를 걱정해 주었는데 내 아이로 인해 엄마인 내가 받았을 충격까지 헤아려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그 충격이 너무 커 많이 힘들었다. 그녀에게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마음속 모본으로 삼게 되었다.     

2년전 그날, 그녀가

이 새끼 어디서 이렇게 못된 짓을 해?”

뭐 이런 나쁜 새끼가 다 있어? 너 때문에 내 아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알아? 이 나쁜 새끼야!!” 욕설을 퍼부었다면 당시 11살이었던 내 아이는 큰 트라우마를 안고 살게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부모들조차도 자기중심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나는 종종 괴리감을 느끼곤 하였는데 그녀는 많이 달랐다.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이 찾아보기 힘든 엄마 사람이었다.     

그 날 이 후 나는 그녀에게 계속 빚진 마음이었다. 그녀가 그날 우리 모자에게 질타를 쏟아 냈더라면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두 번 다시 안 좋은 일은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날 놀이터에서 나는 그녀가 떠올랐다.     

철이를 처벌하지 않았다고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아직도 훌쩍이는 아이에게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설명을 해주었던 이유다.     

만일 그날 석우엄마가 너에게 욕을 하고 나쁜 놈 이라고 비난했다면 어땠을까.” “네가 잘못을 했음이 분명함에도 화가 났을 테고 분노감이 일었을 꺼야. 엄마 또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을 거야.” “오늘 엄마가 철이를 처벌하지 않고 기회를 준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야.”     

엄마가 오늘 그 아이를 나쁜 놈이라 욕하고 나쁜 놈이라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면 그 아이가 집에 돌아가서 진심으로 본인의 잘못을 느끼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을까?” “오히려 마음속에 분한 마음을 품었을지도 몰라.”

그게 누가 됐든 누군가에게 표출되어지지 않았을까?” “그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 욕을 하고 나쁜 놈이라 낙인을 찍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겠지.”

이렇게 설명하면 엄마가 왜 처벌하지 않고 한번은 용서를 해주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될까?“     

백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고 한다.     


그렇게 철이 사건이 일단락 되고 난 후, 나는 며칠을 내 아이를 걱정하고 안심시켜 주는 것에 집중했다. 아이가 받았을 충격에 집중했다.     

그 후에도 아이는 이따금 원망의 말을 꺼냈다.


그들을 더 생각해서 기회를 준 게 아니야.”

네가 누구보다 소중하고 지켜주고 싶어서 그랬어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이전 13화 그 씁쓸함에 대하여(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