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내 친구야
[저번에 7년만에 만나서 얘기 듣고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상상도 못할만큼 힘들었겠다 하면서도 나도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너무 오랜시간을 내가 무심했구나 하고 참 많은 생각을 했어. 수고 많이 했어 천아. 뭐라 할말이 없다. 그럼 시험은 다 끝난거야? 자격증 받는건가?ㅋㅋ]
[이 지지배가 아침부터 사람을 울려ㅋㅋㅋ 결혼해서 7년은 시집, 이후로는 아이 아픈 것 그렇게 16년이 지났어. 이젠 정말 살만해졌어. 살면서 생각이 바뀐것도 있겠고. 그리고 우리 서로 자책은 하지 말기로. 결혼하고 나도 신경 못썼고 서로 바쁘게 정신없이 지내는 시기가 있지. 그게 정상이야. 괜찮아. 몇 년 연락 안해도 잊지 않았어. 그럼 된거 아녀?ㅋㅋㅋ“
요양보호사 시험을 본 후 블로그포스팅 한 링크를 친구에게 보내주었다.
친구는 내 블로그에 글을 몇 개 읽으며 둘러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잠들어 있는 어제 밤 긴 톡을 보내왔다.
나는 오늘 아침 톡을 읽고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내가 답장을 쓰면서 ㅋㅋㅋ를 날리는 순간에도 눈물은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포함 되어 있으리라.
하나하나 나열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 그랬으리라.
얼마전 친구가 날 만나러 우리 동네에 왔다.
내가 이곳에 이사오고 우리 아이들이 8살, 6살 때 다녀 간 후로 7년만에 만났다.
아이들을 보고 싶다고 데리고 나오라고 했지만 사춘기인 아이들이 나올리 없다.
중.고등과 이십대를 함께한 내 친구는 그야말로 내게는 마음속에 늘 잊지 않고 존재하는 친구다.
중. 고등학교때는 김건모 팬클럽이었던 친구와 소녀팬 놀이도 많이 했다.
가요톱10을 아는가? 당시 우리는 그렇게 여의도를 활보했다.ㅋ
‘응답하라’에 나온 그 장면이 우리 모습이었으리라.
당시 REF, 클론 등 수 많은 연예인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연예인의 회사, 집, 생일파티, 콘서트 할 것 없이 발발대고 다녔다.
그 시절 너무 재미있었던 학창 시절이 스쳐지나며 마냥 그립다.
김건모를 기준으로 이전에는 더블루, 이후에는 HOT를 좋아했다. REF의 찐팬이었던 또 다른 친구를 따라 REF의 팬이 되기도 했다. 참시 옛 추억에 젖어 주마등처럼 그들이 스쳐 지나간다.
태능 푸른동산(당시 이름)으로 중학교 사생대회를 갔다.
우린 끝나고 방송국을 가려던 참이었다.
색상지로 정성들여 만든 플래카드를 가방에 넣고 갔다가 선생님께 들켰다.
‘삐삐’도 들켜서 빼앗겼다.
나와 친구는 플래카드를 쫙 펼치고는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벌을 받아야 했다.
앉으면서 ‘건모오빠’ 일어나면서 ‘사랑해요’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시대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벌의 사유.
이게 무슨 벌을 받을 상황이란 말인가.
아무튼 그렇게 공개 망신을 당하고 우린 사생대회가 끝난 후 꿋꿋이 여의도에 갔다.
향수를 한통 부었는지 김건모와 악수를 한 내손에 향수 냄새가 베었다.
김건모 찐팬이었던 내 친구의 손에는 향기가 남지 않아 삐져있던 네가 생각나 픽 웃음이 난다.
20대가 되어 각자의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자주 만나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놀았다.
구석구석 서로의 가정사를 알고, 알몸을 내보이며 목욕탕에도 자주 함께 갔다.
다른 보통의 평범한 10대, 20대의 생활, 고민들을 우리도 함께 나누었다. 남자친구 얘기, 직장얘기, 각자의 집 얘기 등.
그저 우리가 제일 힘들다고 힘들어하던 날들.
지금 생각하니 그저 귀엽고 세상 밝았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는 계속 처음을 만나고 겪어내지만, 그때의 우리는 세상 풍파가 이렇게 가혹하다는 걸 상상도 못할 때였으니까.
그게 당연한거지. 그 시절 해맑지 않으면 언제 해맑겠는가.
엄마에게 자주 혼이 났다.
여의도에서 상계동이 좀 멀어야말이지.
늦게 올 수 밖에 없으니 혼이 나는 일을 감수해야했다.
당시 나의 연년생 오빠가 거들어 준다고 한말인지 뭔지 모를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엄마, 쟤 나둬요. 이성친구 만난다고 돌아다니는 것 보다 낫잖아”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기다. 연년생 오빠가 할말이냐 이게?ㅋㅋㅋ
나는 28살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처음 1~2년은 친구와 연락하고 결혼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곧 나의 생활은 달라졌다. 아이가 태어나고 가정과 아이를 신경쓰느라 점차 친구들과 소통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없어져버렸다. 그 어떤 겨를도 내겐 없었다.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냈을까. 내게 16년이 꿈 같이 흘렀다.
아이들도 어느정도 크고 조금씩 여유가 생기니 비로소 친구가 생각나고 보고 싶다.
오랜만에 만난 네가 너무 그리웠다.
너는 내게 무심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너무 미안해.
그래서 계속 ㅋㅋ하는거라고.
그래서 ㅋㅋ하면서 눈물이 나는거라고.
그런데 친구야. 우리 지금부터는 서로 미안해하지 말자.
자책도 하지 말자.
연락을 못했지만 항상 마음에 데리고 다니는 친구였잖아.
그걸로 고마워.
늘 그리웠어.
앞으로는 너와 내가 그저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우리 예전에 그랬듯 지금부터 다시 하면 돼.
즐거워도 힘들어도 함께 조잘조잘.
그거 지금부터 다시 하면 돼.
앞으로가 더 많아.
우린 아직 할게 너무 많아.
그래서 말인데 친구야. 5년뒤에 나랑 시골 가서 집 지을래?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