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리 집 중2, 1호는 정상 등교를 했다. 학교에 다녀와서는 오늘 반에서 4명의 친구가 코로나에 확진되었다고 던지듯 무심히 얘기한다. 하교 후 집에 돌아 왔을 때에는 아무 증상이 없었지만 반에 4명이나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니 혹시 몰라 바로 자가 키트를 해보았고 한 줄 이었다.
하교 후 저녁까지는 아무 증상이 없었다. 그런데 밤부터 갑자기 감기증상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오후에 해 본 자가 키트 검사로는 음성이었으므로 그냥 잤다.
8월 27일(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자가 키트를 해보았지만 한 줄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조금씩 기침도 하고 몸이 안 좋은 것 같다며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만 표현했다. 열 체크를 해보니 37.9도다. 즉시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와서 다시 열체크를 하니 38.2도다.
신속항원검사 결과 확진이다. 나도 바로 검사를 하고 남편과 2호를 병원으로 호출했다.
6학년 2호는 그동안 반에 동급생의 거의 대부분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을 부러워했다. 그때마다 나는, 아픈 아이라 특히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 엄마 마음을 모르는 아이를 나무랐다. 2호가 우리가족은 슈퍼가족이라고 말할 때 내심 ‘진짠가 봐’ 라는 생각도 했다. 이 난리통에 지금껏 잘 버텨오다가 일순간에 아이가 확진이 되니 뭔가 좀 허탈했다.
열이 언제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려나, 내일부터 열이라도 안나야할텐데, 코로나 처음 겪어 보는 초짜라 걱정이 태산이었다.
다행히 이틀 열이 나고 삼일 째 되던 아침부터 열은 안 났다.
그 대신 기침은 더욱 심해졌고 목도 많이 아프다고 했다.
그저께와 어제는 마른기침처럼 했다면 오늘은 기침 소리가 확연히 다르다. 가래기침 소리가 난다. 열이 떨어지면서 가래기침이 시작되었나보다. 기침 소리를 듣는 내 목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얼마나 힘들까.
2호는 형아 확진과 함께 학교와 학원 모두 쉬도록 했다.
조금 더 상황을 보고 이상이 없다면 5일차부터는 정상적으로 활동 시킬 예정이다.
식판에 밥 받아 먹는 형아가 부러웠던지 2호도 덩달아 식판에 밥을 달라고 한다. 갑자기 식판 배식이 간편하게 느껴진다.
1호는 목이 너무 아파서 밥을 못 먹겠다고 한다. 달걀후라이 한 조각이라도 먹고 아침 약부터 먹도록 했다. 눈뜨면 밥부터 먹는 아이가 밥을 마다한다. 복숭아를 깎아 주었다. 이거라도 먹으니 다행이다.
약 먹고 30분쯤 지나니 목의 통증이 조금 괜찮아지는지 아침밥을 다 먹는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에는 덱시부프로펜(맥시부펜) 성분이 들어 있어서 혹시 몰라 교차 복용 가능한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세토펜, 챔프빨강) 성분을 비상용으로 더 사 두었다.
처방받은 약 봉투를 약국에 가져가서 보여주고 아이가 계속 목이 많이 아프다고 한다며 말했다.
어제 열이 많이 나서 타이레놀 교차로 먹인 얘기를 했는데 처방약에 있는 맥시부펜이알정에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이 들어있단다. 병에 들어있는 맥시부펜과 다른 거라고. 뭐가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교차로 먹은 타이레놀 두 알까지는 괜찮다신다.
그리고 밀가루와 소고기 섭취를 피하라고 한다.
어제 부침개, 소고기 다 먹었는데.
평소보다 1호의 먹는 양이 많이 줄어서 복숭아를 한 번 더 깎아주었다.
바로 이날 저녁부터는 식판을 싹싹 비우고 밥과 반찬도 종류별로 조금씩 더 달라고 했다.
저녁 약을 먹고는 게임에 파이팅 하고 있는 걸 보니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중인 것 같다.
1호의 격리 해제 일을 이틀 남겨두고 오늘 새벽 나는 머리가 띵했다.
날씨가 선선해져서 그런가? 조금 추운 것 같기도 하다.
새벽 기상과 글쓰기를 모두 했을 정도로 많이 안 좋지는 않았다.
2호도 새벽에 몇 번을 뒤척이면서 속이 미식 거린다고 한다. 학교를 쉬게 할 생각으로 계속 자도록 두었다.
글쓰기를 마치고 나서 나는 다시 잠을 잤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 오한과 두통, 온몸 뼈 마디마디가 쑤셔서 깨니 엄청난 통증이 왔다.
속이 안 좋다는 2호와 병원 문 열자마자가서 신속항원검사를 했지만 음성이었다.
병원도 간신히 다녀올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와 2호 둘 다 미열과 감기몸살 증상으로 여기고 5일치의 약만 처방받아왔다.
조금 전 병원에서는 37.6도였던 내 체온이 집에 와 다시 재보니 38도가 넘는다.
너무너무 심하게 아팠다. 반대로 2호는 아침보다 괜찮아졌다.
오락가락 헷갈리는 이 증상에 슬슬 짜증이 났다.
이렇게 심하게 아프다니 온 몸 구석구석 쑤시고 울렁거리고 머리도 깨지는듯하다.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두 시간 후 땀에 흠뻑 젖어 깼다. 열은 37도로 내려갔다.
오후가 되어 다시 자가 키트를 해보니 두 줄이 나온다.
아직 기침을 많이 하는 1호는 약 처방을 더 받아야 하기에 함께 다시 병원에 갔다.
9월의 첫날 이렇게 나는 방에 격리되었다.
2호가 내게 컵라면을 대령하고 낮에 배달시킨 햄버거를 가져다준다.
입 심심할 때 먹으라며 바나나킥을 멀찍이서 던져준다.;;
꼼짝마 신세가 되고 보니 급 현타가 온다.
땀이 나고 열이 내려 낮에는 잠시 살만했었는데 저녁 7시쯤 되니 다시 오들오들 춥고 열이 오른다.
9월 3일 1호는 드디어 자유가 되었다. 나는 아직까지 열이 왔다 갔다 한다.
멀쩡하다가 갑자기 으슬으슬 하고 힘들다 싶으면 어김없이 열이 또 올라가 있다.
우리 집 반려견 포도는 어리둥절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하염없이 쳐다만 본다.
포도가 침을 튀기며 재채기를 하고 토할 것처럼 헛구역질을 한다.
아침에 동물병원에 전화해서 증상을 말하니 데리고 와보라고 한다.
남편이 데리고 병원에 갔다. 미열이 조금 있고 감기인 것 같다고 주사와 약 처방을 받았다.
포도는 다행히 3일치 약을 먹고 괜찮았다.
나는 그 와중에 누워서 새벽기상 챌린지에 참여했다. 미련을 떠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꼭 해내고 싶었다.
그저 평범한 날이 제일 행복한 거였다고 다시 한 번 느끼면서 격리 해제 문자만 기다렸다.
나를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 누구도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9월 5일 월요일 아침 2호가 끙끙댄다. 열도 난다. 자가 키트를 하니 두 줄이 나온다.
하. 이때부터 특히 예민해 지고 맘을 졸였다. 걱정했던 2호의 확진에 겁도 났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의욕이 없어지고 슬슬 짜증도 났다. 나는 9월 7일까지 격리인데 2호가 새로 시작이다.
퇴근해 돌아온 남편에게 어서 빨리 자가 키트 먼저 해보라고 재촉했다.
이제 다 틀렸다며 어차피 걸릴 거 같으니 지금 걸리라고 했다. 어이없는 말이지만 현실이었다. 또 다시 4~5일 뒤에 남편이 확진 된다면 나는 머리에 꽃을 달겠다고 했다. 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결과는 한 줄 이었다. 지금까지 우리 세 명이 헷갈리는 이 과정을 지났기에 심란해졌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몸이 으슬으슬 하다고 한다. 바로 실시한 자가 키트에 두 줄이 나온다. 병원으로 가서 신속항원을 했다. 양성이다. 9월 6일 남편 확진을 마지막으로 최종 격리 해제일은 9월 12일이 되었다.
남편의 회사는 9월 8일(목)부터 추석 연휴에 들어갔다. 남편은 코로나로 9월 6일~7일 이틀만 쉬게 된다며 기왕이면 추석 연휴가 다 끝나갈 때 확진되지 왜 지금 된 거냐고 아쉬워한다. 누구 숨 막히라고. 나는 속으로 다행이야를 외쳤다.
다행인지 뭔지 추석연휴 우리는 집안에서 자유자재로 자유로운 확진자로 지냈다.
코로나에 걸려보고 싶다던 초6, 2호는 언제 밖에 나갈 수 있냐며 연신 물었고 격리 해제된 날 하루 종일 밖에 나가 놀다왔다. 그리고는 다시는 코로나에 걸리고 싶지 않다는 깊은 깨달음을 전했다.
평범한 평일 날이었다면 격리자만 남고 각자의 학교, 회사로 갔을 테지만 격리 해제가 되었다고 해도 연휴기간이라 잠깐씩 산책하는 것 외엔 딱히 갈 곳이 없으니 갑갑했다.
걸려있는 달력에 9월 13일(화)만 응시했다. 안 올 것 같은 그날은 오고 모두 나갔다.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 각자의 갈 곳으로 갔다. 특히 2호가 너무 신나고 즐겁게 학교에 갔다. 불청객 코로나였지만 별 일 없이 지나가준 코로나와 별일 없이 이겨내준 우리 가족에게 고마웠다.
코로나를 먼저 겪은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증상을 겪었다는 말에 솔직히 말해서 크게 공감하지 못했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냥 그랬었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아직 갖추어야 할 점이 많은 부족한 사람이었음에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에 내 맘처럼 공감해주지 못한다고 원망했었던 일의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니 조금은 쉽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이런 느낌과 깨달음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고 더 배려하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싶다. 깨치는 것에 더 다가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돌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 갈 힘을 얻어간다. 이만하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