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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니 Mar 28. 2024

글 그릇

 “가슴에도 마음을 담아 두는 공간이 정해져 있어서, 너무 많은 마음을 담아 두고 뱉어 내지 않으면 가슴이 뻥 터질 것처럼 갑갑해지거든.”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이꽃님 -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던 그때 내 머리와 마음은 힘겨운 버티기 중이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여 사납게 소용돌이쳤다. 제대로 된 일상을 지내기 힘들 만큼 날뛰다가 고요했다. 무기력증이 이런 거라면, 나는 외롭고 무서운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일상에서 무언가를 할 때 생각이란 놈은 나서야 할 때와 안 나서야 할 때를 좀처럼 가리지 못했다. 불쑥 튀어나와 나를 휘감아 버리기 일쑤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불청객이 다녀간 후에는 쓰러지다시피 철푸덕 드러누워 하루를 송두리째 반납해야 했다.


 내 정신력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며 도리어 힘든 나를 닦달하고 몰아세웠다. 내 생각조차 내 의지력으로 떨쳐내지 못하는 나를 한심하다고 비난하면서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한동안 어떠한 방법으로 분노의 감정이 솟구쳐도 저항하지 못하고 바라보게 되었을 때 다행히 나는 애쓰지 않게 되었다. 그것을 떨쳐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못살게 굴지 않게 되었을 때야 드디어 맥을 못 추고 물러났다.     


 내가 피폐해짐을 알아차리고도 피폐해져 무엇을 해도 의욕이 없던 시절, 그러니까 의욕이라는 게 생길 수 없었던 시절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매일같이 시간이 빨리 흘러 저 만치 나를 데려가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던 그 날, 간신히 가족들 먹을 밥을 하면서 기록의 힘으로 일정을 챙기는 날이었다.      


 의미 없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글쓰기라는 단어를 발견하고는 둥당 질하는 가슴을 느꼈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찰나의 순간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에 가슴이 바쁘게 뛰었다. 자포자기라는 길로 서서히 걸어가는 내게 그러지 말라고 손 내밀어 잡아주었던 그날, 아직도 그날의 감정과 콩닥거림이 느껴지는 듯하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이 강했기에 일면부지 누군가와 글을 쓰는 일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몸 구석구석 마음 근육이 배는 느낌에 빠져들었다. 그것을 느끼는 일이 즐거웠다.     


 ‘은유의 글쓰기’라는 책의 저자 은유는 말했다. “쓰는 고통이 크면 안 쓴다. 안 쓰는 고통이 더 큰 사람은 쓴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안 쓰는 것이 쓰는 것 보다 힘든 사람. 그래서 글을 써야 하는 사람. 그렇게 글쓰기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온라인 안에서 글을 쓰기 위한 목적이 같은 동지들을 만나 스터디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과 함께 글을 쓰며 어둡기만 했던 날이 엷어 졌다. 내 습관과 글쓰기가 결합될수록 흐르듯 밝은 색으로 터를 옮겼다.        

 매일 새벽 깜깜한 고요함속에 노트북을 열고 머릿속에 가득 찬 그것들을 풀어내었다. 머리와 가슴이 가득 차 더 이상 눌러 담지 못할 때, 하얀 종이에 하나하나 끼적이며 쏟아내는 일이 설레었고 통쾌했다.      

 가득 찬 쓰레기통을 계속 밟아 눌러봐야 결국에 깨지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담을 수도 없고 비우지도 않는 일은 잔인한 일이다. 우리가 살면서 담고 버리는 일이 순환되어지지 않으면 깨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어찌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우연히 인터넷 기사에서 본 청소년들이 다수 가담해 있는 ‘우울증갤러리’라는 카페는 존재 그대로 무서웠다. 10대 청소년 두 명이 목숨을 버리려는 과정을 SNS에 생중계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한 시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기사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이런 카페가 있고 이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어쩐지 가슴 한 편이 아려왔다. 부디 아이들이 정상이 아닌 이들 무리에 놀아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조급해졌다. 내가 글쓰기를 만났을 때처럼 이 아이들이 밝음을 만나기를. 부정의 단어에 자석처럼 이끌려 휘말릴 때 찰나의 선택이 나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마음이 바빠졌다.     

 

 펜을 들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무기력하고 우울한 감정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를 더욱 자세히 관찰하고 내 상태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일부터 해보기로 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묵묵히 내 말을 들어주고 도닥여 줄수록 나는 최대한 이기적으로 가득 들어찬 감정을 꺼내어 풀었다.   

  

 하얀 종이를 까맣게 덮어 더 이상 백지가 아니었을 때 후련함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묵묵히 내 감정을 받아주는 하얀 종이에 더 이상 우울함과 분노가 아닌 행복이라는 단어가 입력되는 시기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억눌린 내 감정을 받아주느라 애썼다며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건 누가 시킨 일이 아니었다. 그저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느끼는 내가 신기해 또 다시 몇 번이고 감사했다.      


 글쓰기와 더불어 무작정 걸었다. 걸으면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마음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진다. 애써 신체 활동을 하기 위한 시간을 내었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진정시키기에 걷기만큼 좋은 일이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기분 전환이 되니 스스로 스트레스와 불안을 관리하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격한 운동을 하는 것만이 갑갑함과 괴로움을 떨쳐내는 일이 아니다. 공원을 산책하거나 사람이 많은 도시를 거닐거나 벤치에 앉아 야외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관리하는 강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시간이 나서가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밖으로 나가는 일은 어떤 가치로도 환산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갑갑함과 힘든 감정이 가까이 오기 시작할 때를 알아차리고 일단 나가려고 했다. 혼자가 아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신체활동으로 기분이 전환되고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끼적이다보니 나를 누르는 압박에서 점점 해방되는 것을 느꼈다.     


 놀랍고 신기한 것은 부정이 아닌 긍정에 한 발 딛는 순간 선순환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그 무엇도 아닌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선순환을 경험한 일은 계속 생각해보아도 뿌듯하고 미소 짓게 하는 예쁜 경험이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의 현재의 은유가 과거의 은유를 만나 고민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과정은 결국 현재의 은유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은유의 고민과 생각을 함께 사는 아빠와 나누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지만 은유는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해소하면서 성장했다. 은유가 아빠와 직접 소통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은유의 방식으로 편지글에 풀어내었듯이 숨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방법으로든 곧 가벼운 상태를 만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혼자 감당하려는 위험한 생각을 버린다면 분명 해소하고 해결할 방법은 있다. 친구와 만나 솔직히 말하고 교감을 나누는 일이든, 일기를 쓰는 일이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일이든, 신체활동을 통해 마음을 정화시키는 일이든 드러내는 일이 우선되어지면 더 갇히지 않는다는 것을 내 경험으로 말하고 싶다. 내가 선택한 글쓰기란 분명 가벼워진 머리와 가슴을 만나게 해주는 감사한 그것이 되었다. 그것의 선순환은 나를 의욕 있고 의지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온통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난한 가정환경과 매일 싸우시는 부모님을 보는 일은 괴로움을 넘어 어린 내 감정을 조절 할 수 없게 했다. 술주정을 하시는 자상한 아빠는 내 마음을 터놓을 공간이 되지 못했고, 매일 힘에 부쳐 간신히 하루를 사는 엄마에게 내 감정 따위를 감히 더할 수 없었다. 엄마의 지치고 고된 부정의 말과 한탄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야 했으므로 어린 나는 늘 외롭고 괴로웠다. 조금 더 일찍 풀어내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그래도 여전히 쓰지 않는 것이 더 힘들었을까? 알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힘들고 답답해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공간을 가득 채우지 않고, 마음을 가득 채우지 않고 풀어낼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마음속 빈 공간의 여유를 누리고 그 기쁨을 맛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가슴에도 마음을 담아 두는 공간이 정해져 있어서, 너무 많은 마음을 담아 두고 뱉어 내지 않으면 가슴이 뻥 터질 것처럼 갑갑해지거든.” 이 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에 지친 십 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십 대, 아이를 낳고 기르기를 가장 많이 하는 삼사십 대 모두 나를 귀히 여겨 돌보았으면 좋겠다. 나만의 방식으로 일상에 나 돌보는 일을 끼워 넣었으면 좋겠다.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더 힘든 사람이 글을 쓰면서 행복한 사람이 되었듯이 그대들도 힘들 때, 기쁠 때, 즐거울 때, 슬플 때 하얀 백지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오늘도 공간을 비우고 만들기 위해 하얀 종이 위에 칭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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