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에세이를 읽고 나서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에세이를 읽고 나서
코로나 19 때문에 인문학 세미나를 2년 만에 ~
복지관에 입사 후 코로나 19가 찾아와서 많은 것들이 부자연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생겼고 조심해야 할 일들이 생겼고 사람들이 모여서는 안 되고, 마스크를 안 쓰면 어색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복지관 내에서도 해야 할 일과 조심해야 할 일들도 많아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미루어야 했다.
인문학 세미나 역시 작년에는 건너뛰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인문학 세미나를 할 예정이니 책을 투표하고 결정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조별로 읽은 내용을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나누고, 읽고 나서 떠오른 생각, 아이디어 등을 나누는 시간, 책에서 배운 것들을 나누는 시간, 내 삶과 연결할 수 있는 부분, 적용 가능한 부분 등을 나누기로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허지웅~ 나뿐 아닌 다른 사람들 역시 허지웅 하면 영화평론가에 비평가 등으로 부드럽게 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방송에서 보이는 허지웅은 까칠한 사람이었다.
책도 그럴 것이다 생각하고 펼쳤다.
책을 읽으면서 허지웅 작가가 혈액암으로 투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고 싶다는 농담] 책 제목처럼 정말 허지웅 작가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생사를 오가던 그날 밤의 고통으로 책은 시작한다. 암과의 싸움을 혼자 견뎌내고 버티면서 이겨낸 것이다. 그날 밤 고통을 버티지 않았다면 이 책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익숙한 것들만 안전하게 하고 싶어 한다. 작가 역시 익숙한 것만 하고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것들은 시도해 보지 않았던 삶을 살았던 것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사람이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다시 시작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즐기면서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 본문에서 요가 선생님 말처럼 “너무 애를 쓰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즐기면서 해야지 오래 할 수 있어요.” 살면서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지치지 않게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삶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지치지 말고 오래가는 사람. 작가의 삶은 늘 전투적이었던 것 같다. 누구 하나 그의 삶에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 밤 고통 속에서도 늘 아무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혼자서 고통을 참아냈다. 그는 알게 되었다. 늘 고통과 번뇌는 혼자 버텼기 때문에 주변에 도와줄 사람, 손잡아 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버텼던 것인데 그게 아니었다. 손을 내밀었다면 도와줄 사람, 함께 고통을 이겨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회복 후 알게 되었다.
책 내용에는 많은 영화와 많은 인물이 나온다.
우리들의 느낀 점은 허지웅 작가가 정말 많은 걸 알고 있는 박식한 사람이고 회복 후 모든 것을 너그럽게 보는 글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 나누게 되었다.
청년들에게 불행에 대처하는 방법을 전달해 준다. 청년들의 고민은 스무 해 전에 자신이 했던 고민과 똑같아서 놀랄 때가 있다고 한다.
불행을 겪으면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면서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그럴싸한 대상을 찾게 되고 핑계를 만들게 된다. 벌어진 일들은 반드시 벌어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피할 수 없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두 번 다시 그런 일들이 그런 실수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열 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반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하거나 덜하면 둘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가 붕괴된다. 인간관계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본문 중-]
허지웅 작가는 혼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고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 상처 받지 않으려고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서운함 때문에 상대는 상처를 받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정한 거리를 둔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복지관 일을 하면서 대상자와의 거리를 어느 정도가 적당한 거리인지 알 수가 없을 때가 있다. 이만큼이 적당하다 생각하고 이만큼만 다가가면 너무 많이 다가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조금 다가왔다고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서로의 보호막이 다른 것이다. 거리감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작가는 이제는 그 거리감을 좁힐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악마는 당신을 망치기 위해 피해의식을 발명했다.
토론 중 각 조마다 많이 나왔던 피해의식이다. 허지웅 작가는 닉슨과 케네디의 영화로 피해의식을 설명하였다. 리처드 닉슨은 아무런 자산 없이 노력하고 좌절을 하면서 혼자 힘으로 지구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의 권력인 정점 대통령 자리에 왔지만, 특유의 피해의식과 모든 사람을 적으로 보고 적을 대하는 방식 때문에 임기가 계속될수록 괴물이 되어가고, 부유하게 자란 케네디하고 비교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피해의식 때문에 괴로워하고 괴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닉슨이 케네디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케네디의 초상화 앞에서 내뱉는 말~
“사람들은 당신에게서 이상을 보는데, 내게서는 그들 자신을 보는군요.”
힘겹게 살아남으려는 자기 자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성공에는 운이 따른다. 실패에는 나쁜 악운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실패는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성공을 할 수 있는 선택도 내가 선택한 것이고, 실패를 하는 선택도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나보다 금수저를 부러워하다가 자신을 낮추게 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지 말고 문제에 직면하는 답을 찾는 방법을 찾는다면 성공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시간이 없다.
[자기 삶이 애틋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오해받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누군가에 관한 평가는 정확한 기준과 기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본문 중-]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평가의 기준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 좌지우지될 필요가 없다 그 시간에 나를 발전시키는 시간을 갖고 묵묵히 나의 일을 하는 것이 더 내가 원하는 성공의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우리도 허지웅 작가를 우리의 기준으로 바라보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까칠하고 성격이 이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보는 나의 시각으로 허지웅 작가도 바라보고 평가한 것이다. 누구나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주민들과 만남에서 적당한 거리감과 사람을 대라는 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인문학 세미나를 통해서 허지웅 작가를 조금은 알게 되었고, 토론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의 감성을 전달받게 되었고, 같이 느끼는 점도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따뜻한 사람 냄새를 맡게 되었다.
다음에 하는 인문학 세미나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고 결심이다.’~ 허지웅 멋진 말을 남겼다.
허지웅 글을 참 잘 쓴다. 먼저 나왔던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