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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Mar 16. 2021

엇! 말이란 게 비수가 되어 꽂힌다더니

서툴러도 괜찮아. 누구나 처음은 있잖아. 육교 위 현수막에 걸린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동차 뒷면 유리창에 '초보운전' 대신 쓴 글들이 기발하다.


''오빠 나 처음 이야. 난 이미 틀렸어. 먼저 가.''


장난스럽지만 센스 있는 말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운전에 관한 재밌는 방송 사연을 들었다. 실화란다. B가 면허를 땄다. A와 함께 도로 주행을 하다가 좌회전을 하려고 깜빡이를 넣었다.


차가 밀릴 때 옆 차선으로 끼어드는 건 초보 운전자에게 어려운 일이다. '어딜 감히' 조금만 양보해 주면 될 것을 옆 차들은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보조석에서 친구의 운전을 가르쳐 주던 A가 말했다.


''도대체 말이야. 우리나라는 끼어들기를 하려면 대가리 먼저 들이밀어야지 통한단 말이야.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B는 창문을 열더니  정말로 자기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었다.


여기서 A가 말하는 대가리란 사람의 머리가 아닌 자동차의 앞부분이었다. 구수한 입담이 섞여 재미가 더 있었다.


자동차를 몰고 처음 길을 나섰을 때 긴장을 하다못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옆 차선으로 가야만 하는데 과감히 들어가지 못해 주저하며 당황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종종 어른 개구리는 그 어린 시절을 잊어버린다. 나는 초보 올챙이가 깜빡이를 켜면 속도를 줄여준다.


누구나 어릴 때 어설픈 첫걸음을 뗀다. 큰 아이가 돌 때쯤이었다. 어느 날 소파를 붙잡고 일어섰다. 한강공원 잔디 위에서 보조기를 잡고 걷기 연습을 했다. 넘어지고, 울며 일어나고를 반복했다. 세상 모든 이치가 처음이란 게  있지 않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줄넘기를 처음 배울 때 선영이는 첫 발 조차 뛰지 못하고 자꾸 걸렸다.


''아빠 ~ 힘들어~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 오늘은 한 발만 뛰어넘어 보자. 내일 이면 두 번을 넘고. 그렇게 조금씩 해가는 거야. 안 될 것 같은 일들도 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지. 아빠가 응원해줄게.

 ''

울먹울먹 하는 딸아이는 고개를 '끄떡끄떡' 했다.


큰아이가 7살 때 처음 피아노 콩쿠르 대회에 나갔다. 관람석에서 숨죽이며 딸아이의 연주 순서를 기다렸다.


어찌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지 마치 내가 피아노 앞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1층, 2층으로 학부모와 가족들이 꽉 들어찼다. 아이는 얼마나 떨렸을까. 선영이는 실수 없이 연주를 끝내고 무대를 내려왔다.


결과를 보려면 다른 아이들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선영이와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가 무대에 올랐다.


아이는 너무 힘들었는지 바싹 얼어 있었다. 피아노 학원 원장 선생님 인듯한 여자분이 상황을 파악하고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꾹'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사회자는 재빨리 현장을 정리했다.
모든 아이들의 연주가 끝났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대기실 복도 끝에서 남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아까 그 아이였다. 엄마에게 혼이 나는 듯했다.


''왜 그랬니? 바보야? 여태껏 얼마나 연습했는데..
그걸 못해. 너는 여기서 못하면 평생을 못하는 거야.''


엇! 말이란 게 비수가 되어 꽂힌다더니 이런 경우를 말하는구나 싶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처음 나온 콩쿠르에서 연주를 못했다고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 어떻게 그런 말을 아이에게 할 수 있지? 친아들이 맞나? 그 아이는 엄마의 말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괜찮아.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어' 꼭 안아주며 따뜻한 말을 해주었다면 그 아이는 콩쿠르로 인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친구 P의 전화를 받았다.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P는 새로운 부서에 배치를 받았고, 해보지 않은 업무라 조금 걱정이 앞선다 했다.


처음, 첫날은 아무리 베테랑도 긴장된다. 막상 또 해 보면 어느새 손에 익는다. 내공이란 오랜 시간 쌓은 경험으로 생긴 힘이다. 이미 P의 안에 있다. 내 안에 있는 나를 믿으면 된다. P에게 머리를 질끈 묶은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보낸다.


서투른 건 당연한 거야. 누구나 처음은 있지. 넌 충분히 잘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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