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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Mar 14. 2021

제 이름은 유기견이 아닙니다.


나는 버려진 것일까.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내 친구에게 주사를 놓는다. 그는 다리에 힘이 풀리고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잠이 든다. 사람들이 친구를 차가운 냉장고 속으로 데려가는 사이를 틈타 보호시설에서 도망쳐 필사적으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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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버려진 유기 견들도 주인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 막막하고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찾아 거리를 배회하며 살아간다. 그들도 상처를 받고 감정이 있다.

그 녀석의 이름은 ‘깜지’였다. 개의 수명은 평균 10~15년, 사람은 80~100년이다. 16년을 살았으니 사람의 나이로 환산하면 80세 정도다. 고운 흰털을 지닌 귀여운 외모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 처형 곁을 떠날 때까지 여전히 ‘깜지’라 불렀다. 사람을 잘 따르는 견종인 ‘몰티즈’(Maltese)이었다.
 
제 어미와 떨어진 지 두 달 여쯤 되었다고 했다. 똘망똘망 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내 품으로 들어와 쏙 안겼다. 눈치가 빨랐다. 이름을 부르면 잠시 멈칫하고 마치 알아듣는 듯했다. 깜지를 만난 그해 선영이가 태어났다. 포대기에 쌓인 큰 딸아이를 처음 처형의 집에 데려갔을 때 깜지도 우리를 살갑게 맞이해 주었다. 깜지가 태어난 해와 큰아이가 태어난 해가 같았다. 선영이가 첫돌이 지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입학하고 그렇게 깜지는 딸아이와 같이 성장해갔다.
 
처형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 맡겨둘 곳이 마땅치 않아 한 달을 우리 집에서 지냈다. 깜지가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일요일 오전이었다. 청소를 하다가 잠깐 현관문을 열어놓았다. 선영이가 깜지를 불렀다. 이름을 부르면 쪼르르 달려오던 녀석이 보이지 앉았다. 어디에 숨어 있겠거니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아도 깜지는 없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잠시 열어 놓은 문 사이로 집을 나간 모양이었다. 일단 아파트 주위를 둘러보았다. 깜지라는 이름만큼 작고 귀여운 녀석을 누가 데려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경비실과 관리 사무소에 깜지 이야기를 해두었다. 녀석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이대로 못 찾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처형한테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아빠 우리 깜지 어떻게 해요..” 선영이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조금만 기다려 보자.”깜지가 집을 나간 일요일 오후 우리 식구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반나절의 시간이 흘렀다.

"띵동.” 경비 아저씨였다. 화단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오도 가도 못하고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다고 했다. 한 걸음에 달려 가보니 깜지가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이었다. 저도 놀랐는지 내 품에 안겨서 바들바들 떨었다. 그날 밤 깜지는 애탔던 우리 식구의 마음도 모른 채 마치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배를 드러내고 자고 있었다. 우리 식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내가 처형과 전화통화를 했다. 깜지가 잘 먹지도 못하고 힘들어해서 동물 병원에 데려가니 며칠을 못 넘길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1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깜지는 몇 해 전부터 노안이 왔지만 건강은 이상이 없었다. 세월의 무게는 그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깜지가 지난밤 무지개다리 앞으로 갔다는 소식을 받았다.

가족과도 같은 반려견이 죽으면 ‘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라는 표현을 쓴다. 널리 알려진 작자 미상의 산문시에 먼저 저 세상 앞으로 떠난 반려견이 무지개다리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함께 천국으로 건너간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평균수명도 길어지고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요즘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말 그대로 동반자라는 의미이다. 반려견이 주인과 함께 평생을 같이 살다가 죽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뉴스에 나오는 유기 견 문제가 심각하다.
키우던 개를 길거리나 휴가지, 산속에 유기하는 일부 사람들은 생명의 고귀함은 안중에도 없다. 버리는 이유 또한 다양하다. ‘오래 키우다 보니 질린다. 해외여행을 가는데 맞길 만한 곳이 없다. 이사를 가야 한다. 병이 들어서 보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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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신이 났다. 식구들이 나를 차에 태우고 여행을 갔다. 한적한 계곡이다. 신기한 게 너무 많았다. 풀벌레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부르릉’ 타고 온 자동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실수로 나를 두고 간 줄 알았다. 식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서웠다. 첫날밤 차가 떠난 그 자리에서 멍하니 차를 기다렸다.
 
어디로 가야 할까.. 하염없이 걸었다. 먹은 것이 없어 몸에 힘이 없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털이 흠뻑 젖었다. 어느 회사 현관 앞에서 서성이다가 몸을 뉘었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곁눈질로 나를 슬금슬금 바라보고 지나갔다. “얘! 이리 와.” 누군가 큼지막한 소시지와 먹을거리를 내주었다.

배가 고프다. 또다시 며칠을 굶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놀이터 한 구석에서 아파트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예전에 살던 집하고 비슷하다. 허공을 응시하는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우리 가족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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