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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Mar 20. 2021

그는 내가 잊고 사는 무언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일출과 일몰 두 개의 태양이 공존하는 이곳 영종도는 새벽 02시를 넘긴 시간이다.


대기 중인 화물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여전히 이어진다. 하 차장 7번 게이트 앞에 재홍이가 서있다. 그는 언젠가부터 우리 곁에 있다.  


4.5톤 화물차에서 하차를 담당하는 그는  저녁에 출근을 하고 다음날 아침 퇴근을 한다.


그는 책을 많이 읽는다. 대화를 하다 보면 그의 방대한 지식의 양과 기억에 감탄을 한다.


빨강 머리 앤은 캐나다의 농촌을 배경으로 감수성이 풍부한 주근깨 소녀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1908년 발표작이다.


일본 후지 TV에서 만화영화로 제작되어 지금도 방영된다.


앤 션리 (주인공), 매트 커슈버트 (할아버지), 마닐라 커스버트 (아주머니), 다이애나 베리(친구), 그는 이 소설 주인공들의 이름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 빨강 머리 앤은 원래 출판사에서 외면했어요. 아이들을 낳고 중년이 된 앤의 이야기 후속작 '에이버리의 앤 '도 있고요.'' 


그가 내게 소설의 줄거리를 줄줄 들려준다. 기억력이 대단하다.

사실 재홍이는 지적 장애 3급을 가지고 있다. 교육을 통한 사회적, 직업적 재활이 가능한 사람이 3등급이라고 한다.


'' 저 좀 이상해 보이지 않아요?''


 그가 내게 처음 건넨 말이다. 반쯤 면도를 한 듯 거무스름한 얼굴, 더벅머리, 엉성한 옷차림, 누가 봐도 한눈에 어리숙한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는 자폐증이 있고 지금은 많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장애를 스스럼없이 말하고 정확히 알고 있다.


한 손에는 항상 책을 들고 다니는 그에게 ''책을 참 좋아하는구나'' 하자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많이 읽어 주시고 사주셨어요.''라고 한다.


아마도 자폐 증상이 있는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책'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다. 그들은 취업을 못할 것이다. 돌발적인 행동으로 무섭다. 장애인 시설이 우리 지역에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진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엄마들이


'' 우리 아이들은 혐오 시설이 아니다.''


 라며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호소한 적이 있다.


장애인 시설 건립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첨예한 대립이다. 결국 해법은 찾지 못하고 갈등 중이다.


'각 지역마다 장애인 시설을 만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 수 없는가 '에 대한 자문 (自問)을 해본다.


그 누구도  장애를 부끄러워하거나 혐오해서는 안된다. 우리 부모, 형제, 아들, 딸, 나 자신도 뜻하지 않은 장애를 가질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란 구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안타깝다.

그가 퇴근 무렵 버스를 기다리는 내게 다가온다.


"화단에 예쁘게 피어있어 그려보았어요."


조그만 수첩에 연필로 어설프게 그린 제비꽃을 보여준다.


서른 살 중반을 넘어선 그는 어제저녁 미역국을 처음 끓여 보았고


''동생도 맛있게 먹었어요.''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건넨다.


수척해진 그의 모습을 보고 근황을 물었을 때 그는 ''주말에 세신사를 해요. '' 한다.


발달 장애를 가진 그가 부모로부터 독립을 위한 일이었다며..


재홍이가 순수함을 잃지 않고 해맑게 웃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잊고 사는 무언가를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그는 내게 보여준 제비꽃과 닮아있다.


어쩌면 그의 마음은  길가에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를 보며 하얀 웃음을 짓던 둘째 딸아이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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