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김포공항에서 통근 버스를 기다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눈앞에 펼쳐진 건 경계가 완전히 지워진 잿빛 장막이다. 활주로 너머의 높은 건물들은 누군가 수묵화를 그리다 물을 너무 많이 타버린 듯, 형체마저 희뿌옇게 번져 나간다.
기분 탓일까, 목구멍이 따끔거리고 시야가 자꾸만 침침해진다. 주머니 속 휴대폰을 확인하니 화면 속 미세먼지 수치는 보란 듯이 선명한 빨간색 '나쁨'을 띄우고 있다. 사방을 에워싼 탁한 공기가 젖은 솜이불처럼 내 어깨를 짓누른다. 숨을 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가라앉는 이 묵직한 이물감. 나는 지금, 보이지 않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부턴가 봄은 생동감의 계절이 아닌, 인내의 계절이 되었다. 봄바람은 설렘 대신 불청객을 실어 나른다. 국경도 없이 밀려드는 이 거대한 그림자를 지리적 인접성이나 중국의 책임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과연 저 먼지 속에 섞인 것이 타인의 욕망뿐일까.
입가를 조이는 마스크의 감촉 위로, 아주 오래 전의 기억 하나가 겹쳐진다. 여덟 살 무렵의 하교 길. 그때의 하늘은 지금처럼 무채색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은 마치 맑은 물에 파란 잉크를 듬뿍 풀어놓은 듯 눈이 시리도록 투명했다. 마스크는 이름조차 낯설었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옅은 풀 비린내와 기분 좋은 햇볕 냄새가 동시에 폐부로 스며들었다.
지금의 우리에게 깨끗한 공기는 어느덧 ‘유료 서비스’가 되었다. 거실 한구석에서 웅웅 거리며 돌아가는 공기청정기의 숫자에 안도하고, 주기적으로 돈을 지불하며 필터의 등급을 따진다. 미세먼지가 많을 때는 마스크라는 필터를 거쳐 숨을 쉰다. 숨을 쉬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이 기묘한 일상이 어느덧 당연해진 풍경이다.
문득 이 뿌연 장막이 지구가 인간에게 내뱉는 거친 기침 소리처럼 들린다. 우리가 누려온 문명의 편리함이 뱉어낸 지구의 회색 눈물일지도 모른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편하게 살고 싶어 했던 나의 이기심이 차곡차곡 쌓여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성벽을 쌓아 올린 것이다. 어제 손가락 하나로 주문했던 그 편리한 택배 상자가, 오늘 아침 나의 목을 조여 오는 먼지가 되어 돌아온 것은 아닐까. 내가 누린 안락함의 청구서를 지구가 회색 눈물로 대신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커먼 먼지는 결국 내가 던진 부메랑이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창틀을 닦아본다. 하얀 걸레가 단 한 번의 훔침 만에 시커먼 먼지로 얼룩진다. 그 검은 자국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먼지를 보태며 살았는가?"
나 역시 문명의 이기심으로 미세먼지를 지구의 환경에게 빚처럼 떠넘기며 오늘을 버텼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 손끝의 가벼운 ' 클릭 '이 누군가의 바쁜 바퀴를 굴리고, 그 바퀴가 남긴 흔적은 기어이 내 창틀에 내려앉는다.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소모해 왔던가.
창틀을 닦아낸 걸레를 물에 헹구며, 씻겨 내려가는 검은 구정물 속에 내가 오늘 누린 안온함의 대가를 본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흘려보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없다. 공기 중에 흩뿌린 매연도, 배달 상자 속에 담겨온 욕망의 찌꺼기도 결국은 돌고 돌아 나의 오늘에,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내일에 다시 쌓일 뿐이다.
비워진 창틀 위로 바람이 스친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가벼운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을까. 마우스의 딸깍거림 이전에 한 번 더 고민하고, 가속 페달을 밟기보다 조금 더 걷기를 선택하는 마음. 그 사소한 결이 모여 이 시커먼 얼룩을 조금씩 옅게 만들어가기를, 바라본다.
베란다 창문 앞에서 엄마와 손을 잡고 지나가는 아이의 작은 마스크를 바라본다. 마음껏 숨 쉬며 뛰어놀 권리를 박탈당한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봄이 오면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이 아닌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정말 무서운 건 뿌연 하늘이 아니라, 이제는 이 잿빛 풍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무감각함이다. '오늘도 나쁘네'라는 짧은 탄식 뒤에 무심히 마스크를 고쳐 쓰는 일상이 과연 정상인가. 우리는 언제부터 숨 쉬는 자유를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본다.
거창한 구호보다, 오늘 내린 나의 작은 절제 하나를 믿고 싶다. 오늘 내가 내려놓은 사소한 편리함이 내일의 하늘에 아주 작은 틈이라도 낼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그 파란 잉크 같은 공기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창밖은 여전히 희뿌연 수묵화 같지만, 마음속에는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가장 선명한 푸른색을 꺼내본다. 내일은 우리 모두가 마스크 없이도 파란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투명한 하늘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