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리는 계절의 안부


3월의 날씨는 속내를 알기 어렵다. 오후 햇살은 세상을 금방이라도 구원할 듯 따뜻하다가도, 아침과 저녁은 아직 겨울의 꼬리를 자르지 못한 바람이 차갑다.


옷장 앞에서 두꺼운 외투와 얇은 옷 사이를 서성이는 아침은 3월이 가진 망설임 그 자체다. 어쩌면 봄이라는 확신보다, 아직 겨울을 다 보내지 못한 마음들이 짐을 꾸리지 못해 머뭇거리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쉰을 넘긴 나이에 마주하는 3월은 예전과 결이 다르다. 이제는 화려하게 터지는 꽃망울보다, 그 꽃을 밀어 올리려고 뜨거운 지열을 묵묵히 견뎌낸 대지의 인내에 먼저 눈이 간다. 서두르지 않고 제 보폭을 찾아가는 날씨처럼, 내 삶도 이제야 비로소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탈수를 마친 외투를 건조대에 넌다. 3월의 햇살은 금세 옷을 말려줄 듯 찬란하게 쏟아지지만, 손끝에 닿는 옷감은 여전히 축축하고 차갑다. 겉은 마른 것 같아도 시접과 안감 사이에는 여전히 물기가 고여 옷걸이를 무겁게 끌어당긴다. 우리네 삶도 이와 닮았다. 남들 앞에서는 화창한 봄날을 지나는 듯 허허 웃어 보이지만, 마음의 밑단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기억들이 습기처럼 고여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도 그런 밑단이 있다. 오래전 서랍 깊숙이 넣어둔 서툰 실패의 기록이나, 끝내 전하지 못해 녹슬어버린 미안함 같은 것들.
세탁기 안의 빨래를 보며, 내 안의 해묵은 감정들도 깨끗이 헹궈져 가벼워지기를 가만히 기다려 본다. 서두른다고 마르는 것은 없다. 바람과 볕이 제 일을 다 할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는 것, 그것이 머뭇거리는 3월이 건네는 조용한 타이름이다.

집 앞의 목련은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듯 망설이고 있다. 목련은 계절을 몸으로 써 내려가는 기록자다. 가장 먼저 빛을 탐해 피어나고, 가장 처연하게 멍들며 떨어진다. 바닥에 뒹구는 꽃잎은 더 이상 순백이 아니다.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고 흙먼지가 묻어 검게 타 들어가는 그 모습에서, 치열하게 생을 살아낸 이들의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을 읽는다.

사람들은 대개 나무 위에 매달린 화려함만을 예찬하지만, 나는 자꾸만 바닥에 남은 얼룩에 마음이 머문다. 화려한 수식어를 걷어낸 뒤에 남는 투박한 진실. 그것은 꽃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거름이 되기로 결심한 생의 단호함이다. 내가 쓰는 문장들도 저 목련의 얼룩을 닮았으면 좋겠다. 매끄럽고 유려하지는 않아도, 누군가의 삶에 닿아 지워지지 않는 정직한 흔적으로 남는 그런 글 말이다.

목련꽃이 피는 기쁨 뒤에는 반드시 꽃이 지는 얼룩이 뒤따른다. 하지만 그 시린 바람과 얼룩이 있기에 봄은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다. 나는 이제 3월을 ‘꽃이 피는 달’이 아니라 ‘뿌리가 깊어지는 달’이라 부르고 싶다. 텅 빈 병에 볕을 가득 채우듯, 삶도 이 불확실한 계절의 아름다움을 묵묵히 받아내며 익어갈 것이다. 비바람이 지나간 자리, 그곳에 돋아날 연둣빛 새순을 기다리며 봄은 이제 막 고요하게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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