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어른의 문장


둘째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평온하던 내 시야 안으로 낯선 풍경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아직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들 사이로 하얀 연기가 무심하게 피어올랐다. 라이터가 헛돌며 쇳소리를 내자, 옆에 있던 친구가 제 담배 끝을 맞대 불을 옮겨주었다. 붉은 불꽃이 옮겨 붙는 그 기묘한 우정의 의식은 학교 정문에서 고작 열다섯 걸음 떨어진 곳에서 당당하게 치러졌다.

순간 내 안의 '어른'이 세차게 흔들렸다. 창문을 내리고 따끔하게 나무라야 한다는 정의감과, 돌아올 것이 뻔한 차가운 냉소 사이에서 나는 머뭇거렸다. 신호등이 초록빛으로 바뀌자 나는 비겁하게 액셀을 밟았다. 차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내가 지켰어야 할 어떤 경계선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백미러 속에 남겨진 아이들의 잔상은 내 마음의 사각지대에 걸려 오래도록 깜빡거렸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피해야 할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세상이 무서워졌다고 혀를 차면서도, 정작 그 무너진 틈을 메우려 하기보다 뒷걸음질 치는 데 익숙해졌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은 이제 비웃음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최소한의 예의를 향한 그리움이 서려 있다. 우리 세대도 담배를 피웠다. 그러나 우리는 어른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어둡고 깊은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것은 걸릴까 봐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공동체의 질서를 지탱하던 어른들을 향한 마지막 공경이자,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줄 알던 마음의 표현이었다. 아이들이 이토록 당당하게 연기를 뿜는 것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무관심으로 눈을 감아버린 나 같은 어른들이 만든 비겁한 평화가 그들의 무례를 키웠다.

조선의 정조 임금은 자신의 글모음인 《홍재전서》에서 담배를 '남령초'라 부르며 아꼈다.

"더울 때는 시원하게 하고, 추울 때는 따뜻하게 하며, 음식이 체했을 때 소화가 되게 하니 백성들에게 이보다 더한 보살핌이 어디 있겠는가."

정조에게 담배는 백성의 고단한 시름을 달래주는 따뜻한 위안이었다. 그는 온 나라에 연기가 가득하기를 바랐을지 모르나, 그 연기조차 '예(禮)'라는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는 않았다. 당시 기록을 보면 아무리 담배가 흔해도 아랫사람은 윗사람 앞에서 함부로 불을 붙이지 못했다. 그것은 억압이 아니라 타인의 존재를 마음속에 두는 공적인 예의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것은 담배를 향한 규제가 아니라, 타인을 의식하며 스스로를 단정하게 갈무리하는 마음이다.

나 역시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연기 속에서 살았다. 밥을 먹고 난 뒤의 한 모금 '식후 땡!'은 달콤한 휴식이었고, 일의 중압감을 버티게 해주는 지팡이였다. 하지만 금연 10년 차에 접어든 지금, 나는 그것이 내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영혼의 창을 흐리던 지독한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금연을 결심하고 첫 한 달은 폐허를 걷는 듯했다. 사소한 말에도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아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힘든 시간을 지나오자 기적이 찾아왔다. 가장 먼저 돌아온 것은 세상의 맛과 냄새였다.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차려낸 맑은 콩나물국을 떠먹었을 때의 맛을 잊지 못한다. 예전에는 그저 뜨겁고 짠 국물에 불과했던 것이, 그날은 달랐다. 콩나물 줄기 끝에 매달린 흙의 생명력과 국물 끝에 감도는 은은한 단맛이 내 혀의 감각을 하나하나 깨웠다. 조미료 뒤에 숨어 있던 식재료 고유의 정갈한 결이 비로소 제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아이들과 포옹할 때 느껴지는 보드라운 살 냄새, 아침 공기의 청량함까지. 금연은 독을 끊는 일이 아니라, 마비되었던 생명력을 되찾는 복원이었다. 저 아이들이 영웅심으로 연기를 들이마실 때, 그들은 세상이 선물하는 이 감각들을 스스로 지워가고 있다. 진짜 '살아있음'의 향기를 잊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깊은 부채감을 느꼈다.

글을 마치며 다시 그 횡단보도를 떠올린다. 도망치듯 지나갔던 나를 반성한다. 세상이 무섭다는 핑계로 어른의 자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윽박지르는 꾸짖음은 반항을 부르지만, 마음을 담은 타이름은 작은 여운을 남긴다.

다음에 다시 그 아이들을 마주한다면 나는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묵직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얘들아, 호기심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건 이해한다. 아저씨도 그랬으니까. 최소한 사람들이 지켜보는 곳에선 예의를 지켜주면 좋겠어. 그게 너희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는 법이야."

이것은 훈계가 아니다. 연기 속에 길을 잃어가는 아이들에게 건네는,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어른의 문장'이다. 무관심의 가속 페달을 밟는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평범함이라 부르는 기적을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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