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사의 공기는 지상과 밀도가 다르다. 수만 명의 호흡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인 소음, 바쁜 발걸음이 만든 먼지가 한데 뒤섞여 흐른다. 계단을 내려가 화장실의 문을 밀면, 알싸한 락스 향이 가장 먼저 마중을 나온다. 코끝을 찌르는 그 인공적인 청결함은, 이곳이 쉼 없이 더럽혀지고 있으며 동시에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필사적으로 복구되고 있다는 생존의 신호와 같다.
구석진 칸의 문을 닫는다. 잠금쇠가 맞물리는 ‘딸깍’ 소리가 들리고서야 비로소 한 평 남짓의 고립을 허락받는다. 환풍기는 쉼 없이 돌아가지만, 밀폐된 공간의 무게를 들어 올리기엔 역부족이다. 눈높이에 맞춘 글이 시야에 들어온다. 모서리가 말려 올라간 종이 위에는 서툰 필체로 적힌 문장이 적혀 있다.
“화장실 볼일은 변기를 이용해 주세요. 바닥에 싸지 마세요.”
그것은 글이라기보다 차라리 누군가의 몸에 남은 멍자국에 가깝다. 잉크가 번진 글씨마다 누군가의 구부정한 허리와 젖은 바닥을 응시하던 피로한 눈동자가 맺혀 있다. 이곳은 몸의 짐을 덜어내는 해방의 공간인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타인의 가장 비루한 흔적을 마주해야 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상상은 실재가 되어 눈앞에 펼쳐진다. 청소 노동자가 든 분무기에서 락스 물이 가느다란 안개처럼 흩어지며 떨어진다. 투명한 액체가 메마른 타일에 닿는 순간, ‘치익-’ 하는 짧은 숨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피어오른다. 타일 틈새에 단단하게 굳어 있던 얼룩들이 강렬한 약품에 반응하며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다.
귀를 기울이면 거품이 터지는 미세한 소리가 들린다. ‘토독, 톡.’ 그 작고 날카로운 파열음은 공간을 깨끗하게 씻어내려는 힘과 버티려는 오염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리 없는 싸움이다. 하얀 포말들이 타일의 미세한 홈을 파고들며 누런 흔적들을 녹여낼 때, 노동자의 낡은 고무장갑은 쉴 새 없이 바닥을 문지른다.
물기를 머금은 신발 바닥이 젖은 타일 위를 미끄러질 때마다 ‘쩍, 쩍’ 하며 엉겨 붙은 공기가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화장실 벽면을 타고 울린다. 청결이라는 성역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가 온몸의 하중을 실어 바닥을 보듬고 있는, 처절하고도 숭고한 노동의 음악이다.
이 풍경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화장실에서 목격한 한 장면 때문이다. 열차 시간은 촉박했고,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뛰어갔다. 가장 안쪽 칸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그곳에 한 노년의 여성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처음에는 몸이 아파 쓰러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갔을 때 본 것은, 누군가 남기고 간 비릿한 흔적을 얇은 장갑 하나로 훑어내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그녀는 변기 뒤편, 손이 닿지 않는 좁은 틈새에 낀 때를 지우기 위해 상체를 차가운 바닥에 바짝 붙이고 있었다. 타일의 냉기가 가슴팍을 파고들었겠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닳아버린 솔을 들어 틈새를 문질렀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녀가 닦아내고 있는 것은 액체의 흔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익명성이라는 그늘 뒤에 숨겨 내버린 ‘무책임’ 그 자체였다는 것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닦을게. 바닥이 미끄러우니까 조심해요.”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생리적 욕구보다 더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누군가 남긴 찰나의 부주의가, 이분에게는 무릎을 꿇어야만 해결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역사의 소음도 그 순간만큼은 정적 속에 잠겼고, 타일을 닦는 물소리만이 성당의 종소리처럼 경건하게 울렸다.
소변기 중앙에 그려진 작은 파리 한 마리를 떠올린다. 이 기발한 장치는 인간의 심연을 꿰뚫는다. 왜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하얀 변기보다, 작은 점 하나가 찍힌 변기를 더 깨끗하게 사용하는가. 강요하지 않고도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다.
그러나 이 통계는 서글픈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타인에 대한 고결한 윤리나 공감 능력보다, 눈앞의 파리를 맞추는 ‘놀이’에 더 충실히 반응하는 존재인가 하는 물음이다. 도덕이라는 추상적인 가치가 조준에 실패할 때, 파리라는 구체적인 욕망은 성공한다.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를 다스릴 힘을 잃어버린 채, 누군가 그려놓은 가상의 과녁이 있어야만 비로소 한 발짝 다가서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아까 본 그 여인이 무릎으로 버티며 닦아내던 것은, 파리 그림조차 무시하고 지나간 누군가의 눈먼 무심함이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다. 아까보다 옅어진 락스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플랫폼으로 향하며 생각한다. 글을 쓰는 일 또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과 닮아 있다. 내가 쏟아낸 문장들이 읽는 이의 마음에 오물로 튈지, 아니면 맑은 사유의 여백이 될지는 전적으로 나의 ‘조준’에 달려 있다.
지상으로 올라오는 계단 끝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은 큰 구호가 아니다. 비가 온 뒤 맑아진 하늘처럼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자연의 정교한 섭리와 같다. 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시지 않고 제 길을 지키며 바다로 나아가듯, 인간사의 모든 관계에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경건하게 한 발짝 앞으로.”
이 문구는 이제 내게 권유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정중한 태도가 되었다. 누군가의 무릎 꿇은 노동을 기억하며, 오늘 내 삶의 모든 자리 앞에 경건하게 서 본다. 내가 머물다 간 자리가 누군가에게 지워야 할 얼룩이 되지 않기를, 오히려 그 자리에 짧은 온기라도 남아 다음 사람의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하기를 바란다. 열차가 들어온다. 나는 수많은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가며 다시금 한 발짝을 내딛는다. 타인을 배려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거리만큼. 삶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누군가의 고단함을 덜어줄 줄 아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