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 스무 살의 앳된 청년으로 돌아간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그녀.

by 임세규

-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그녀 -


살다 보면 닮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동그란 안경테에 단정하게 올린 머리, 키는 내 어깨를 넘어서니까 여성으로서는 큰 키다.


출근할 때 버스 정류장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녀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내가 유독 그녀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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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이 되던 해에 운전면허를 땄다. 지금도 그렇지만 필기시험은 기출문제 위주로 조금만 신경을 쓰면 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예비 시험문제를 풀어보니 상식선에서 맞출 수 있었다. 나는 '그거 뭐 별거 있나' 쉽고 만만하게 시험을 봤다. 아뿔싸! 1점 차이로 떨어지다니..
자만심이 불러온 결과로 운전면허 실기도 아닌 필기시험을 재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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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면허 시험장 교실에서 그녀를 봤다. " 만점 받으신 분들 자리에서 일어나 보셔요. 축하합니다." '짝짝짝..'

두 명의 만점자 중 그녀가 있었다. 뭐랄까. 세련된 느낌의 학구파.. 영민해 보였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만점 합격이 뭐 그리 대수랴만. 어쨌든 그녀는 똑똑해 보였다. 합격도 좋은데 만점을 받은 그녀와 나를 비교하니 쯧쯧.

강서 면허 시험장 앞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어! 아까 그 만점자? 그녀를 우연히 만났다. 같은 방향의 버스를 탔다.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그녀가 내렸다. 단정하게 묶은 말총머리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 우리 동네에 사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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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번째 필기시험을 준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 일이지만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기출문제집을 보고 또 보고 달달 머릿속에 아예 넣어 버렸다. 솔직히 창피했다. 친구들한테는 뭐.. 대충 둘러 댔다.


마침내 시험 결과가 나왔다. 앗싸~ 아! 그날 만점자는 한 명이었고 그 주인공은 내가 됐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그녀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내 검은색 뿔테 안경 끝이 빛나며 우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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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기 시험 준비를 하러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연습용 차종은 '르망'이었다. 클러치 조작을 했다. 반 클러치 조절을 적당히 잘해야 시동이 꺼지지 않았다. 그때는 대부분 수동 면허를 준비했다. 각종 조작 연습과 코스를 준비하는 요령 등을 배웠다. 재미가 있었다.

강사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하니 L자, T자, S자 코스를 쉽게 익혔다. 학원에 다닌 지 2주째 였다. 코스 연습은 강사님 없이 조심히 혼자 연습할 수 있었다. 시동을 걸고 앞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뭐지.. 앞차가 문제가 있는 듯했다.

차에서 내려 앞 차로 갔다. 당황한 모습의

그녀는.. 허걱. 면허 시험장에서 본 만점자였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지 않은 상태였다.

" 저기요~ 사이드 브레이크가 잠겨 있네요."

" 아! 이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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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안경테에 학구파의 영민한 인상을 가진 필기시험 만점자가 그 차에 있었다. 연습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렸다. 그녀도 같이 있었다.


" 같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거 같은데요. "


나는 필기 시험장에서 그녀를 봤다고 했다. 그녀는 '실기시험에 떨어졌다' 했다. 같은 정류장에서 그녀와 함께 내렸다. 그렇게 두 명의 필기 시험 만점자가 잠시 인연이 됐다. 나이는 동갑이고 같은 동네에 살았다.


실기 시험을 같이 보러 갔다. 둘 다 합격을 했다. 그녀는 대학생이었고 나는 취업을 했다. 친구사이가 된 그녀와 가끔 만났다. 우리는 서로 사귄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헤어진 것도 아니었다. 나는 군대를 갔고 만남의 횟수가 적어지자 시간이 우리를 멀어지게 했다.


내가 운전면허에 대한 추억이 있듯 그녀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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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같은 단지 아파트에 사는가 보다. 오래전 그녀와 닮은 사람을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만난다.

나는 어느덧 스무 살의 앳된 청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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