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의 운서동은 잘 만들어진 계획도시다. 직장이 가까운 이곳에 가끔 가는 산책로가 있다. 벚꽃, 이팝나무, 아카시아 , 가을 낙엽 내음 등 계절이 주는 작은 선물을 그저 걷기만 해도 받을 수 있다. 길 끝에는 바다가 있고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하다. 산책 길 중간에 '세계 평화의 숲'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많은 종류의 나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작은 숲이 주는 고즈넉함은 잠시 벤치에 앉아 사색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둥근 동심원이 겹겹이 둘러 쌓인 그림이 보인다. '나이테 우리가 살아온 역사'라는 글귀와 함께 맨 안쪽의 원에는 나무 탄생 1950년. 6.25 전쟁 그 위쪽의 동심원에는 우리나라가 겪어 온 큰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88년 올림픽 개최, 1997년 한국 IMF 위기.2002년 월드컵 개최.. 나무가 태어나고 자람의 흔적이 1년에 한 번씩 남기는 띠를 통해 남아 있는 것이 나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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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 등본을 인터넷으로 발급받다가 초본을 떼어 봤다. 내가 살았던 주소지가 과거 순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이 두 가지 있다. 홍수로 부엌까지 들이찬 흙탕물을 할머니 등에 업혀서 바라본 것과 어머니가 밭에서 캐주신 무 한 덩어리를 손에 쥐고 둑위를 걷던 기억.
1975년 경기도 소하리에 살았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세네 살 쯤으로 추정된다.
주민등록 초본을 보니 1980년대, 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주소지가 익숙한 숫자로 다가왔다. 2002년 결혼과 함께 세대가 분리되고 2021년 지금 사는 곳까지 그려온 삶의 흔적은 나무가 남긴 나이테와 같지 않은가.
2020년은 나무가 지닌 나이테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코로나 전 세계 유행. 아주 작은 바이러스는 당연시되는 일상생활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나이테에 남는 과거의 기록처럼 언젠가 뒤돌아 볼 시간이 있을 거다.
동심원 하나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시간이 기록되듯 우리 사는 것도 그렇게 1년의 나이듬이 새겨진다. 나무는 하나의 원을 그렸고 또 다른 한 해의 삶은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어 가고 있다.
1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2월 03일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다. 2021년의 봄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