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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Sep 18. 2021

신라에  내정간섭까지 했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초급 2번. 한국사 기출문제, 고구려 광개토 대왕

<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1. 역사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

2. 한국사 시험을 준비하시는 분

3. 누군가를 기다릴 때, 출. 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잠깐, 부담 없이

    읽을 글이 필요하신 분.


<이글에 나오는 내용 요약 >


* 가야는 총 6개의 소국이었고 신라로 흡수되면서 신라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김유신, 우륵 (가야금)이 가야 출신이다.


*측우기는 장영실이 아니라 문종이 최초로 고안한 거다.


*고구려의 평양천도는 장수왕이 했다. 한강 이남까지 영토 확장을 했다.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은 한강 이북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해주고 실리를 챙겼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


고구려는 B.C 37년 동명성왕 ~ 668년 보장왕, 28대의 왕들을 거치며 19대 광개토 대왕 때 가장 큰 영토를 갖게 됩니다.


이 기세를 몰아 삼국 통일을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했다면 우리 민족이 아시아를 지배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동북공정 ( 東北工程 )을 아시지요?

중국을 기준으로 동북지역은 우리나라의 고구려, 발해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죠. 중국은 이들 나라의 역사를  왜곡해서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려 합니다.


왜 어려운 한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개개인의 역사의식이 뭉쳐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걸 통해 외세에 대항할 힘을 키울 수 있는 거겠죠.


정답은 맨 끝에 있습니다.


광개토 대왕의 업적에 대해 묻는 문제다. 우선 출제자의 의도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삼국 왕들의 업적들을 섞어 놓고 고르라는 건 아주 단골로 나오는 문제다. 삼국시대의 왕들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광범위하면서도 조금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하면 쉽게 풀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삼국시대란 우리나라가 고구려, 백제, 신라로 3분 된  700여 년간을 말한다.

고구려에서 주로 시험에 나오는 왕들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15 ~ 20번의 왕들이 주목을 받은 이유는 고구려의 중흥기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특히 광개토 대왕과 장수왕은 주목해야 한다.


기출문제 2번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묻는 문제다. 주어진 4지선다형 문제를 하나씩 분석해 보자.


* 1번 대가야를 정복함 *


대가야는 오늘날  낙동강 주변에 있던 나라다.


가야는 6개의 작은 나라가 있었는데 통일되지 못하고 신라에 흡수되었다. 그중 금관가야가 가장 힘이 셌지만 532년 신라와의 전쟁에서 패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562년에 대가야가 신라로 넘어갔다.


가야문화는 신라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삼국 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신라에 거문고를 전했던 우륵도 가야 출신이다.


>>> 대가야는 신라가 정복했다.


* 2번 측우기를 제작함 *


측우기 하면 세종 대왕과 장영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잘못된 정보를 오랫동안 알고 있으면 아무리 거짓이라 해도 좀처럼 바로잡기 어렵다.


측우기는 장영실이 아니라 세종의 아들 문종이 처음 고안했다고 한다.


다음 기록은 세자 시절 문종에 대한 기록이다. 측우기에 대해 나온다.


<세종실록 세종 23년(1441) 4월 29일 >


근년 이래로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젖어들어 간 푼수(分數)를 땅을 파고 보았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비가 온 푼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는 궁중(宮中)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괴인 푼수를 실험하였는데,


이제 이 물건이 만일 하늘에서 내렸다면 하필 이 그릇에 내렸겠는가.


>>> 측우기는 세종시대 문종이 고안을

       해서 만들었다.



* 3번 도읍을 평양으로 옮김 *


평양 천도는 고구려 장수왕의 업적이다. 장수왕은 아버지인 광개토 대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영토를 한반도 남쪽으로 넓혔다.

압록강 유역의 국내성 >>> 평양으로 수도 옮김


장수왕이 남진 정책을 펴자 신라와 백제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나. 제 동맹을 체결한다.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건 장수왕이지만 사실, 광개토 대왕 때부터 평양을 적극 지원해주고 기반을 다져 놓았다.


알다시피 현재 북한의 수도인 평양은 대동강을 끼고 있는 평야가 있어  경제적으로 좋은 위치다.


오늘날 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옮기고자 하는 일이 많은 어려움이 있듯이 그때도 그랬다.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다는 건 오랫동안 국내성에 기반을 둔 정치 세력의 약화됨을 의미한다.


기득권이 있는 지배층이 가만히 있을 리가 있는가. 평양으로 가자는 쪽과 가지 말자는 쪽이 대판 싸우고 서로를 죽이는 혈투가 벌어졌다.


어찌어찌하여 장수왕이 잘 마무리하고 수습을 했지만 이때 형성된 국내 성파 / 평양 성파의 대립은 쌓이고 쌓여 훗날 고구려 멸망의 원인 중 하나가 된다.


>>> 평양 천도는 고구려의 장수왕이 한 일이다.


* 4번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함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광개토 대왕이 신라를 도와줬다. 신라에 칩입한 왜군을 몰아내고 혼쭐을 내줬다. 


이 사건의 배경을 살펴보자. 광개토 대왕은 북과 남으로 영토를 확장시켰다. 남쪽으로는 한강을 기준으로 그 위까지 내려왔다. 백제는 이러다가 고구려 때문에 멸망하지 않을까 위기의식을 느꼈다. 바로 코 앞까지 왔으니 말이다.


상대에 비해 힘이 좀 밀린다 싶으면 할 수 있는 전략이 있다. 바로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며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거다. 백제는 이웃나라인 중국, 가야, 왜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광개토 대왕은 백제의 집 앞까지 들어왔다. 긴장한 백제는  가야와 왜를 연합세력으로 만들고 신라를 공격했다.


깜짝 놀란 신라의 내물왕은 고구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광개토 대왕은 기꺼이 군사를 보내어 신라에서 백제군과 왜군을 몰아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고구려는 신라에서 군대를 빼지 않고 조공을 요구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했다.


1946년 호우명 그릇이 경주에서 출토되었는데 이 그릇에 광개토 대왕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이 시기에 신라가 고구려의 속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남쪽으로 파란선은 광개토 대왕, 빨간 선은 장수왕이 내려온 곳이다.


>>>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한 것은 광개토 대왕이다.


*기타 부가 설명*


연호 란 이 즉위한 해에 붙이던 칭호를 말한다. 즉, 광개토 대왕이 연호를 ' 영락 '이라고 했다는 건 영락 1년, 영락 2년 이렇게 자기부터 그 나라가 시작한다는 걸 의미한다. 자기의 권위를 높이려 함이다.


영락 (永樂)을 필자, 또는 독자분들 이름으로 바꿔보자. 세규 1년, 2년, 3년.. 뭔가 매우 어색하다. 아무튼 내가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고 그때부터가 새 역사의 시작임을 알리는 과시를 하기 위해 연호를 사용했다.


영락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용된 연호 '다.


광개토 대왕은 한강 이북까지 내려왔다. 아차산은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전략적 요충지다.


백제의 땅이었던 아차산에 올라 한강 이남의 백제 (송파구, 강남구)를 한눈에 바라보던 광개토왕의 흡족한 웃음을  상상해본다. 지금도 아차산성의 일부가 남아있다.


<마무리 글>


이 문제는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묻는 문제다. 정답은 4번이다. 간단히 정리해본다.


 광개토 대왕 >> 영락이라는 연호 씀

                       >> 한강 이북까지 내려옴

                       >> 신라를 도와 왜를 몰아냄

     


*참고 자료 :  한민족 문화 대백과 ,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국사 편찬 위윈회 한국사 기출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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