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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Jun 20. 2022

사랑의 물리학 / 김인육

시 해설 / 임세규


사랑의 물리학 /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시 해설 / 임세규


상상만 해도 첫사랑의 감정이 ' 쿵쿵쿵 ' 다가옵니다.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섰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는 묘한 긴장감과 비슷합니다.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첫사랑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기다니요,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 쿵쿵 ' 거리며 아찔하게 뛰다니요,


이만큼 첫사랑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첫사랑...   제게도 있었군요.]


첫사랑 / 임세규


그날 머리핀을 주었더라면,.

말총머리를 묶어 준다. 딸아이는 제 엄마보다 아빠가 더 잘 묶는다며 칭찬일색이다. 별 하나, 하트 하나  ‘똑딱' 머리핀을 앞머리에 꽂는다. 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가영이의 머리핀이 잠시 머문 햇살과 함께 반짝인다. 흐드러진 벚꽃나무 사이로 미풍이 불어온다.

까맣게 잊고 지냈다. 딸아이의 머리핀 하나가 오래전 기억의 단상(斷想) 속으로 데려갔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고1 때다. 지금이야 촌스럽지만 그때는 빵집에서 만나는 미팅이 어색하지 않은 시절이다. 큰 딸아이에게 말하면 아빠는 '옛날 사람'이라고 한소리 들을 법도 하다.

학교 앞 독일 제과 안에서 여학생 쪽이 각자의 소지품을 꺼낸다. 볼펜, 머리핀, 손수건이 탁자 위에 있다. 하트 모양이 달린 머리핀을 잡는다. 나와 그녀가 짝이다. 그녀가 앞머리를 살짝 올려 핀을 꽂는 모습이 앙증맞다.


박은정이라고 해.”


 “반갑다.”


그녀의 이름과 머리핀이 살짝 닮아있다. 조금 어색한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공원을 걸으며 날씨 이야기, 학교생활은 어떤지, 일요일에는 뭘 하며 지내는지, 많은 대화를 했다. 그녀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 가끔은 유치한 문구를 넣은 글들과 말린 은행잎도 넣어 보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감정의 차이는 어떤 것 일까. 사랑함은 좋아함 보다 이성적인 감정이 아닌가. 사랑은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좋음은 딱히 무엇이라 할 수 없는 우리가 알고 있는 느낌. 그녀를 좋아했다. 사랑해란 말은 10대의 은정이와 내게는 어색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녀는 대학에 진학을 하고 나는 군대를 지원했다. 시간은 우리가 서로의 우편함을 확인하는 횟수를 점점 줄어들게 했다. 친구를 통해 그녀의 소식이 종종 들려오곤 했다.


첫 휴가를 나와 상봉터미널에 내렸다. 그녀가 보고 싶었다. 좌판에서 머리핀을 샀다. 그녀를 만나면 머리핀을 앞머리에 꽂아 주고 싶었다. 큐빅 머리핀과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나비 리본 핀이 눈에 띄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커피숍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핀을 주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하지..’


바보 같았다. 은정이와 석호의 커플링을 보기 전 까지는.. 첫 미팅의 멤버였던 석호도 함께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후회가 밀려왔다. 은정이에게 리본 머리핀을 주고 올 것을.. 친구니까. 그게 뭐라고. 뭐가 어때서.


영어에 If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 정의는 만약에... 라면, 문법으로 가정법이라 한다. If you라는 문구는 팝송 가사에 흔히 나온다. 만약에 당신을, 너라면 으로 해석된다. 만일, 어땠을까 라는 문장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향수와 아쉬움을 가져온다. 그날 은정이와 둘이 길을 걷다가 머리핀을 건네고 사랑 고백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가수 싸이가 노래하고 박정현이 피처링(featuring)한 ‘어땠을까.’라는 가요의 가사다.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너와 나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왜 그랬을까 그땐 사랑이 뭔지 몰라서 사랑이 사랑인 줄 몰랐어 / 혼자서 그려 본다 /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 어땠을까(너와 나 지금까지 함께 했을까) 왜 그럴까. 그땐 사랑인 줄 몰랐어.


노래 가사처럼 사랑인 줄 몰랐던 시절이었다.


“후두두” 비가 내린다.


“가영아! 비 온다.”


소나기다. 딸아이와 1층 현관 앞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가끔 운명이란 말을 생각한다. 이미 정해진 것처럼 만들어진 길을 가는 것인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은정이와 사랑하고 헤어지고 가슴 아파하는 청춘을 보낸 건 아니. 그러나 그녀와 주고받던 편지 속 10대의 풋풋한 순수함과 전해주지 못한 머리핀의 아련한 기억은 내게 첫사랑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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