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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세규 Sep 19. 2022

까짓 거 ~ 눈 가리고 아웅 해도 좋습니다.

' 눈 가리고 아웅 ~'


[속담] 매우 얕은수로 남을 속이려 한다는 말.


언제나 그렇듯 금요일 퇴근길은 발걸음이 가볍다. 이틀의 여유로운 늦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아내가 한잔 하자는 치맥 데이 역시 금요일이다.


" 띠링 ~ 띠링 ~ "


아내다. 치킨에 생맥주 한잔 하자는 말이 오늘따라 유독 반갑다. 그러나 소소한 즐거움은 아내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내게 말하기 전까지였고 아무런 예고 없이 쓰라림은 ' 훅 ' 들어온다.


" 자기양~ "


오잉! 웬 애교지.. 이건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아양인데..


" 지금 기분이 어때? 좋아? 아님 나빠? "


뭐지? 사고라도 쳤나? 순간 엄습해 오는 불길한 예감은 1초도 안돼서 적중했다. 나이는 오래됐어도 그나마 깔끔한 외모를 유지하던 까망이 SM3 가 살짝 상처를 입었다.


아내가 찍은 사진을 내민다. 후진을 하다가 기둥을 들이받았는데 그리 세게 받지는 않았단다. 윽~~ 마치 내 몸에 상처가 난 듯 아프다. 연식은 구형이지만 오랫동안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 줬는데.. 식구나 마찬가지인 까망이의 뒷 범퍼가 살짝 들어갔다.


우리 집 까망이는 2008년도에 태어났다. 사람 나이로 치면 14살, 자동차 나이로 치면 도로에서 SM3 구형은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까망이와의 인연을 잠시 풀어본다. 2010년 겨울이다. 빨강 마티즈는 갑자기 고속도로에서 시동이 꺼졌다.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옆 차선에 달려오는 차들이 없었기 망정이지 달리는 관성의 속도를 이용해 나는 가까스로 차를 멈출 수 있었다.


견인차를 불러 서비스센터에 갔다. 엔진 결함으로 리콜 대상이라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매일 고속도로를 달려 출, 퇴근 했으니 천운이 내 곁을 스쳐간 듯했다.


리콜 대상이라 300만 원이 넘는 수리비를 내지 않았지만 운전 중 조금만 이상한 소리가 나도 불안했다. 차를 바꾸긴 바꿔야 하는데 여유가 없으니 망설였다. 이것저것 다 끌어 현찰 800만 원을 모았다. 일단 중고차를 기웃기웃거렸다.


' 중고차는 잘 사야 된다는데, 사고 이력을 속일 수도 있고.. '


이래저래 고민이 깊어가는 도중 마침 조카가 타던 차를 중고로 내놓는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해서 까망이 SM3와 인연이 이어졌고 12년을 함께 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사고나 고장 없이 우리 가족을 태우고 집안의 사소하고 큰 행사를 같이했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아내의 실수가 야속했다. 수리 비용을 알아보려 카센터에 전화를 했다. 2008년 산 SM3라는 말을 듣고 정비소 직원이 하는 말이 ' 사장님 그냥 타세요. '라고 했다. 족히 20만 원이 든다고 했다.


' 이걸 어떻게 하지.. '


그냥 타고 다니면 볼 때마다 마음 아플 거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까망이가 안 좋아질 것 같고. 뿌리는 스프레이 검색을 했다. 살짝 파이긴 했어도 검은색으로 뿌리면 괜찮을까 싶기도 했다.


' 이건 뭐지? '


검색 도중 눈이 반짝 뜨이는 신세계를 발견했다.

차량용 스크래치 스티커였다. 살짝 긁힌 부분을 깜쪽 같이 커버할 수 있었다. 가격대는 다양했다.


순간 머릿속이 다시 한번 번쩍였다. 음.. 다이소에서 차량용 스티커를 본 기억이 났다. 쪼르르 다이소에 갔다. 초보운전 스티커 옆에  ' 곰돌이 한 마리와 아기가 타고 있어요. ' 1000원짜리였다.


' 푸하하하 '


1000원짜리 스티커로 눈 가리고 아웅 했다. 다음날 까망이의 뒷모습을 본 아내의 회사 동료들이 배꼽을 잡았다고 했다.


어쩌랴~ 까짓 거 눈 가리고 아웅 해도 좋다. 까망이 SM3는 오늘도 씽씽 도로를 뒤 따라오는 차들에게 의문을 품게 만든 채, 잘~ 아주 잘 ~ 달린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 곰돌이. 저거 왜 범퍼에다 붙옇지? 뒷 유리창에 붙이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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