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쯤 전의 일입니다. 어느 날 공원을 걷다가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더니 뒤로 넘어졌습니다. 마침 같이 있던 아내가 재빨리 몸을 부추겨 충격이 머리로 가지 않아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었죠.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 주위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들리는데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답답한 호흡이 밀려왔습니다.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한 제가 숨 막힘을 호소하자 산소마스크를 씌워 주더군요. 신선한 공기의 흐름이 한결 숨쉬기 쉽게 만들어 줬습니다. 각종 검사를 해보니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멀쩡하던 신체 건강한 남자가 갑자기 쓰러지다니.. 분명 이유가 있었겠지요. 요즘처럼 흔한 공황장애 또는 번아웃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때는 생소했던 때였습니다. Burn out!어학 사전 뜻 그대로 몸과 마음이 다 타고 꺼진 상태였던 거죠.
돌이켜보면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 과도한 업무와 여러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지 않고 끙끙 앓기만 했지요. 시간 압박에 시달리는 심적인 부담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당분간 쉬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려 했지만 쉽지 않더군요.그러다 떠난 여행길에서 나를 천천히 뒤돌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데 그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앞만 보며 달려왔을까.. 숨 가쁘게 살아오며 잃어버린 건 무얼까..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비로소 번 아웃의 늪에서 점점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제게 찾아온 번아웃의 원인은 과도한 책임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는 살되 동료들과 소통하며 가족들과도 함께하는여유를 가졌어야 했는데 저는 ' 나 아니면 안 될 거야 '라는 착각을 하며 살았던 거죠.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타타버릴 정도의 에너지 소모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잠시내가 놓치면 안 될 삶의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아내와 함께 하는 차 한잔, 공부 문제로 고민이 많은 딸아이 마음에 공감해주기, 빨래 개는 아내 옆에서 같이 개 주기, 마트에서 장을 본 재료로 함께 요리하기, 한 여름 공원 잔디밭에 둘러앉아 시원한 바람맞기..